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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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사주는 게 이 정도라고?

이번 퀘스트 생각보다 쉽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강남에 위치한 벤츠 매장에 들렀다.

일단 신차로 예약 구매를 걸었으나 여름쯤에야 받을 수 있는 상황.

어쩔 수 없이 21년식 벤츠 S클래스 AMG로 계약을 해야만 했다.

가격대는 약 2억.

점심시간 안에 계약을 끝내고 사무실로 향해야 했으니 엄청 급하게 계약을 진행했다.

"고객님 혹시 저희가 뭐 따로 특별히 해드릴 만한 게 있을까요?"

"없고요. 그냥 빨리해주세요. 옵션 풀로 해주시고 서비스 있는 거 알아서 해주시고요."

"네..."

계약까지 약 30분 걸렸나?

계약서에 서명하고 일시불로 결제하자마자 매장을 뛰쳐나가는 찰나.

매장 직원들이 줄줄이 나와서 인사를 해댔다.

나름 기분은 좋았지만 좀 오글거렸다.

그래서 대충 인사만 하고 잽싸게 나와 버렸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원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최부장은 뭐가 그렇게 피곤한지 안대를 쓰고 의자를 젖혀 잠을 자고 있었다.

나도 스마트폰을 켜서 주식 앱으로 차트를 보고 있었고, 때마침 나의 주식 차트는 빨간색 선이 잇따라 줄을 이어 상승하고 있었다.

양봉의 빨간색 차트.

반갑다.

앞으로도 매일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사무실을 발칵 열고 들어왔고

박찬혁이가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박찬혁이 인사드립니다."

그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황부장에게 향했다.

황부장은 무슨 천군만마를 얻은 것 마냥 자리에 벌떡 일어나 박찬혁이를 안아줬다.

사무실이 다소 소란스러워지자 최부장이 안대를 벗어 박찬혁이를 바라봤다.

"어이 박찬혁이."

최부장의 부름에 박찬혁이가 서서히 다가왔고 최부장은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인사 똑바로 안 하냐?"

"아이고 우리 최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이야. 물류1팀 분위기 아주 좋네요. 정주임? 오랜만이지? 오대리도 그렇고.. 여기는 고사원인가? 저번에 현장에서 봤지? 얼마 못 버틸 줄 알았더니 아직도 있네. 그리고 여긴 김 과장님?"

"..?"

박찬혁이가 내게 악수를 건넸다.

뭐 하는 새끼지? 당최 속을 알 수가 없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박찬혁의 악수를 받았다.

"이렇게 또 뵙네요. 박찬혁씨?"

"그죠. 김과장님 얼굴 훤해졌네..들어보니까 현장 이슈도 없고 아주 완벽히 퍼펙트하게 굴린다더니.. 다른 친구들 얼굴 보면 그게 또 맞는 것 같고. 대단한 양반이셔."

나와 박찬혁이의 대화 속에서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부장과 오대리의 불안한 눈빛과 황부장과 박대리의 자신에 찬 눈빛.

그리고 나는 위트가 풍기고 여유가 넘치는 한 마디를 박찬혁이에게 건네고 싶었다.

"왜 이렇게 삐쩍 마르셨대? 밥은 먹고 다니죠?"

"흐흐."

박찬혁이가 눈에 가시를 돋치며 나를 바라봤다.

어차피 나하고 박찬혁이는 섞일 수가 없다.

마치 주식의 양봉과 음봉처럼.

그리고 음봉은 부숴야 제맛이다.

워킹휴먼에 피바람이 불겠다.

퇴근 시간이 임박해오자 정주임은 급히 사무실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저녁 6시.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현준이도 마찬가지.

그리고 정시가 되자마자 친구들은 급식을 먹으러 가는 것처럼 잽싸게 튀어 나가버렸다.

물론

2팀은 야근 확정이고.

2팀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었다.

송팀장은 연신 한숨만 푹푹 쉬어대며 어느 센터 현장이 크게 펑크가 났는지 인원 구인에 전념이었고

박대리는 신호수 파견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지라 원청으로부터 전화를 수시로 받아댔다.

자리 잡히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일전에 현장 청소 파견을 담당했던 정주임과 오대리는 인원 안정화하는 데까지 약 한 달이 걸렸다고 했으니, 박대리의 업무 능력으로 봐선 두 달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박찬혁

저 인간은 내가 아무리 봐도 정체를 알 수가 없다.

2팀의 사무실 인력 보강이라는 명분으로 들어온 것 치고는 너무 태평하게만 보였다.

사원들이 열심히 일에 매진하고 있을 때 지속해서 사무실을 비우며 담배만 뻑뻑 피워댔고 마치 산만하고 집중력 없는 아이를 보는 것처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물론 황부장도 박찬혁이의 이상한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거의 15분에 한 번씩 사무실과 흡연실을 오가지 않는가.

황부장은 그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박찬혁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제 성질을 못 참은 황부장이 박찬혁이에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담배 못 피다 죽은 귀신이 들린 거야? 어?"

"에이. 황부장님. 저 사무실 업무 복귀한 지 꽤 오래된 거 아시잖아요. 놀고 있는 거 아닙니다. 사무 업무 파악 중입니다."

"업무 파악은 앉아서 해 새꺄. 하여튼 그 혀를 콱."

박찬혁이는 황부장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이내 능글맞게 웃으며 자신의 동생 박대리에게 다가가 핀잔을 줬다.

"박찬수 대리."

"네."

"우리 황부장님 노하지 않게 일 잘해 새꺄"

"알겠습니다."

그리곤 다시 하품을 길게 하며 태평하게 사무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해댔다.

나는 박찬혁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는 이상하리만큼 소름 끼치는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김과장님 벌써 퇴근하시게요?"

"여섯 시잖아요. 할 일도 없는데 가야죠."

"술 하시죠?"

일순간 황부장을 비롯하여 물류2팀의 전 사원이 경악한 얼굴로 박찬혁을 바라봤다.

황부장 성격을 알면서 이런 행동을 한다고?

황부장이 참지 못하고 박찬혁에게 고성을 질러댔다.

"야이 개새꺄! 너 지금 나랑 장난해?"

"황부장님. 아시잖습니까. 저는 걸리적거리는 인간이 제 눈앞에 있으면 일이 안 돼요. 일이. 개인적으로 회포 좀 풀게 시간 좀 주시죠. 안 그래요 김과장님? 피차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박찬혁이가 능글맞은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나야 뭐. 술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그러죠. 술 먹죠."

"황부장님! 들으셨죠? 전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

* * *

박찬혁이와 함께 인근의 노가리 포차에 들렀다.

황부장에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나랑 풀어야만 하는 일이라면 예전 남양주에서 터졌던 사건이겠지.

나는 이미 박찬혁이의 대응에 미리 준비해둔 부분이 많았다.

그의 항변이라면 언제든 되받아칠 수 있었고 서운함을 표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받아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박찬혁이가 사무실에서 보인 행동은 어쩌면 다른 개수작이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긴장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테이블에는 10마리의 노가리가 줄지어 접시 위에 배열됐고 박찬혁이는 연신 즐거운 얼굴로 노가리를 뜯어내며 먹기 좋게 만들고 있었다.

"김과장님 보고만 있지 마시고 노가리 좀 같이 잘라 놓죠. 노가리 대가리 먹어요?"

"못 먹습니다."

"흐흐 뭘 모르시네. 노가리는 머리가 진짜배기입니다."

박찬혁과 함께 생선 대가리를 뜯어내는 내가 대체 뭐하는 짓거린가 싶었다.

박찬혁이 앞에는 대가리 10개가 나열됐고 내 앞에는 먹기 좋게 발라진 노가리 몸통이 있었다.

박찬혁이 먼저 내 잔에 잔을 따라줬다.

"한 잔 시원하게 하시죠."

박찬혁은 능글맞은 얼굴로 가게 내부를 연신 둘러봤다.

"진짜 오랜만에 옵니다. 노가리 포차."

"주위 회사원들이 많아서요. 망할 수가 없죠.. 본론만 말씀하시죠. 뭡니까?"

박찬혁은 본인의 잔에 술을 따른 뒤 한잔 벌컥 마셔댔다.

그리고 노가리 머리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자신만만한 태도로 나를 바라봤다.

"성격 급하시네. 제가 아까 황부장 앞에서 김과장님 얘기를 좀 사납게 했죠? 그거 먼저 사과하겠습니다."

대뜸?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박찬혁이를 바라봤다.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박찬혁이 이내 손에 땀이 차는지 바지에 손바닥을 문질러댔다.

그리고 소주를 한잔 더 따른 뒤 내게 잔을 건넸다.

"김과장님. 제 사과받아 줄 수 있죠?"

"...거기까지만 하죠. 알겠으니까."

"흐흐."

박찬혁이는 소주잔을 자신의 목구멍에 털어 넣은 뒤 말을 이어나갔다.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모르겠는데 김과장님이 저 잘라버리고 나름 오지에서 와신상담했습니다."

"...?"

"그때 남양주에서 김과장님하고 나하고 얼마나 피 말렸습니까? 현장 사원들이 줄지어서 저를 고발하다시피 몰아세우고.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열불이 터져요."

"그건.."

"압니다. 알아요. 제가 잘못했으니까 그랬겠죠. 덕분에 저도 깨달은 게 아주 많습니다."

"...?"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처절하게 느꼈죠. 제 동생도 마찬가지예요. 동생이 김과장님에게 갈굼도 많이 당했다고 들었는데, 맞죠?"

"박대리가 그럽니까? 무슨 얘기를 들었는 지 모르겠지만 일과 관련된 수준에서 얘기한 거 그게 답니다."

"흐흐. 동생이 매번 하소연하더라고요. 힘들다고. 뭐. 저도 동생을 두둔할 마음은 없습니다. 일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지금 저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뭐죠?

박찬혁은 이내 혀를 날름거리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과열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제가 현장 돌아다니면서 일만 했겠어요?"

"네?"

순간 박찬혁이의 말이 이해되질 않았다.

"제가 여기서 일하기 전에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일했거든요. 제가 거기서 뼈저리게 느낀 게 뭔지 압니까?"

"...?"

"뒤통수에 눈이 달려도 배신은 못 막는다."

박찬혁이가 노가리 대가리를 한 입 집어 먹으며 말했다.

"..."

"황부장 쳐내려고 왔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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