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 (30/200)

대학교 1학년 OT때 내가 무대에서 노래했는데 그때부터 친구들을 사귀는 게 수월 해졌으니까.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거의 노래만 전담을 했었다.

클럽에 가서 헌팅을 할 때도

나이트에 가서 부킹을 할 때도

노래로 흥을 띄우는 위치라고 할까?

친구들끼리 모이면 어찌됐든 제들 각자의 역할이 있으니까.

누구는 이야기를 주도하고

누군가는 그 이야기에 리액션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들의 분위기에 맞춰 신나게 노래를 해주고.

그게 나였다.

신나게 노래를 해주는 거.

그래서 잘나가는 신사들 사이에서 내가 낄 수 있었던 건 내 노래 실력이 크게 한몫했다.

그런데

오늘은 목이 좀 아팠다.

"도일아 시원하게 노래 한 곡 뽑아보자."

"미안해. 오늘 목이 좀 아프네. 담에 할게."

"에이...좀 해줘."

"목 아프다니까."

"한 곡 좀 뽑아보라니까. 에이 친구끼리 너무 하네."

"창수야. 내가 지금 몇 번 말했어?"

"뭐..? 야 친구끼리 왜 그래 새꺄."

"내가 목이 아프다고 했잖아."

"하.. 알았다. 하지마라. 하지마. 오랜만에 만나서 네 노래 좀 듣고 싶다는 데 그게 그렇게 띠껍냐. 됐다."

하긴 내가 노래를 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아마 친구들도 으레 당황하고 있을 거다.

지금 이 무리에서 맡은 내 역할에 벗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싶었다.

그때 순호가 창수를 보며 말했다.

"도일이가 하기 싫다는 걸 왜 억지로 그러냐? 네가 너무한 거야 인마."

"알았다고."

"애 딸린 유부남들끼리 쪽팔리게 이게 뭐하는 짓이냐. 어휴. 병신들. 내가 한곡 뽑을게."

결국 순호가 마이크를 잡아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는 게 보였으나, 창수는 그럼에도 기분이 나쁜지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술을 마셔댔다.

아니.

내가 노래 부르기 싫다는 게 그렇게 기분이 나쁜가.

그게?

창수의 저 태도부터가 나는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순호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잡기 위해 노래를 열심히 불러 댔지만, 친구들의 미약한 반응에 1절만 부르고 꺼버렸다.

그리고 순호는 나와 창수를 번갈아보며 마이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냉전.

때마침 마이크에는 이명과 같은 소음이 들렸고

-찌익

귀를 막아대는 친구들을 보고 나는 마이크를 꺼버렸다.

순호는 이 분위기가 싫은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나를 바라봤다.

"도일아 창수 표정 좀 봐라. 이거 내가 아무리 흥을 띄워도 오늘 쟤 안 풀릴 것 같거든. 친구끼리 좀 해줘라."

"그러니까. 내가 창수 기분 풀어주려면 노래를 해야겠지."

"..."

"창수야.. 좀 적당히 하자. 내가 네 기분 풀어주려고 노래까지 해야겠냐? 어?"

"서운하잖아. 맨날 해줬는데. 안하니까. 언제 목 아프다고 안 했냐?"

"...하아. 야. 너 씨발 진짜"

"머 씨발?"

"지랄 좀 적당히 떨자 응?"

"하아. 너 요즘 정신 나갔냐? 단톡방에서도 개소리를 지껄이지 않나."

"뭐?"

"재일이가 부러우면 부럽다고 얘기를 하지 그렇게 비아냥대냐? 뭐 비행기를 타지 그랬냐고? 네 주제에 맞게 행동을 해. 새꺄."

"..."

"꼴에 롤렉스는 어휴. 병신"

"말 다했냐?"

하아. 씹새끼.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맨날 네 아버지 팔아가며 꽃집 물려받겠다는데 지금 뭐 제대로 하는 게 있냐? 엉? 너는 네 돈으로 롤렉스도 못 사고 에르메스 살 능력도 없잖아"

"참나."

"참나? 그면 한번 사와. 내일 한번 네 손목에 롤렉스 달려있는지 한번 확인 해볼까? 엉? 네 주제나 파악해 인마."

유치했다.

그래서 더 속 시원했다.

내 말에 창수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주병을 거꾸로 잡아 던질 기세였다.

주위 친구들이 말리긴 했지만 창수의 저런 허세 하루 이틀 인가.

그리고 나는 다른 친구들을 바라보며 결혼식 때 품었던 앙금을 내뱉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씨발 명석이가 그간 너희들한테 축의금으로 얼마나 냈는데. 오만 원? 그러고도 너희가 친구냐? 어? 난 삼백 냈다 이 개새끼들아. 명석이가 오죽하면 나한테 하소연을 하더라."

"..."

"그리고 친구끼리? 뭐만 하면 친구끼리? 진짜 친구로 생각했으면 그따위로 대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도일아 왜 그래..."

"왜 그러기는 씨발. 너희들이 명석이 생각하는 정도가 딱 거기까지라는 거야."

"..."

"그리고 최창수 이 씹새꺄. 너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노래하라고 지랄해대면 뒤질 줄 알어."

분노 폭발.

그간 쌓였던 앙금 따위를 폭발 수준이 아니었다.

억지로 나와 맞지 않는 친구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싫었다.

나는 그길로 술집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왜 이렇게 속이 뻥 뚫려 버리는지

창수를 비롯 다른 친구들과 절연 한다고 해도 솔직히 상관없다.

내 생각 그대로 전달을 했고 선택은 친구들이 하는 거지 뭐.

됐다.

그냥 말자.

나하고 맞지 않는 옷 입겠다고 살 빼는 거 스트레스다.

그냥 끼리끼리 뭉치라지.

이제부터는 내인생 내가 사는거고

노래도 내가 하고 싶을때만 하는거다.

그때

그렇게 기다렸던 상담 선생님에게 문자가 왔다.

내 노래가 어땠냐고 질문을 했었고 거기에 대한 답장이었다.

[너무 좋았어요. 다음에도 도일씨 노래 들어보고 싶었어요.]

언제든지 노래를 해줄 의향이 있지.

[네! 언제든지요! 내일 뵙겠습니다!^^]

로또 당첨번호는 「25」「29」「32」「38」「40」「41」

[1007회차 로또 당첨번호는 「25」「29」「32」「38」「40」「41」입니다.]

휴먼매니저의 로또 LV5 스킬로 1007회차 로또 당첨 번호를 발현시켰다.

1007회차는 한 박자 쉬고 가려고 했으나 눈앞에서 수십억을 놓치는 거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짓.

나는 로또 1등 당첨을 위해 돼지복권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소소하게 1등 중복 다섯 번.

그리고 현재 내가 가진 자산 140억 3천만 원에서 33억은 아파트 구매를 위한 금액으로 따로 빼뒀고 현금 7억 정도 사치금액으로 남겨 놨다.

나머지는 100억은 올 주식에 투자할 계획을 짰다.

돈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도 멍청한 짓인 것 같았다.

너튜브로 자산가들의 투자 방법에 대해 찾아봤으나 결국 거기서 거기.

주식과 부동산 얘기가 전부였다.

특히 부동산이 대세긴 했다.

대출 잔뜩 껴서 오르면 되팔고 수익 얻는 게 마치 리셀러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도 일이다.

나 같은 경우는 법인도 설립해야 되고 이것저것 쏘다니며 정보 수집도 해야겠지?

솔직히 하기 싫다.

어차피 이번 주 로또 1등 중복 다섯 번으로 먹으면 60억 정도 나올 것 같았다.

그 돈이면 이미 건물 한 채 올린 수준이 아닌가? 크크.

그래서 소소하게 우량주 세 곳만 투자하기로 했다.

분산투자를 한다면 충분히 돈을 더 만질 수 있겠지만 관리하는 것도 머리 아프다.

1년에 배당금 4번 주는 우량주들만 골라서 샀다.

없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묻어두는 돈.

주식에 투자하여 배당금 년 1억만 먹을 수 있게 설계하여 투자했다.

우량주라 회사가 망할 일도 없고 적당히 년 5~10%만 먹고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우량주는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주식을 한꺼번에 매도해버려도 부담되는 일이 없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적어도 돈이 일을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10회 중복 당첨자의 이슈는 일주일이 지났지만 사그라지지 않았다.

돼지복권방의 할아버지는 뭐가 그렇기 좋은지 복권방 앞을 지나칠 때마다 새로 걸린 현수막을 보며 웃어댔다.

복방 개업 1년 만에 달성한 로또2등 1회 당첨과 전국최초 10회 중복 당첨자를 배출한 희대의 복권방이니 그럴 수밖에.

나는 능청스런 눈으로 현수막을 올려다보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와아. 10회중복.. 이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그러게 말이야. 누군지 몰라도 참. 전생에 나라를 구한 놈이 틀림없을 것이다."

"나라만 구했겠습니까? 이정도면 세계를 구한 수준이죠. 혹시 저분 아닌가요?"

"응?"

"매번 여기서 거의 고시공부 하다시피 로또 번호 찍어내던 사람 있었잖아요."

"김씨? 아녀."

"에이. 물어보셨어요?"

"지금도 저러고 있잖여."

할아버지는 손가락질하며 가게 내부를 가리켰다.

어차피 이번 주 1007회차만 구입하면 이제 돼지복권방은 이별이다.

나는 이곳에서 수동 오천 원 어치 로또를 샀다.

"할아버지 항상 건강하시고 저는 이사 갑니다."

"어딜?"

"저는 하천보다 한강이 더 좋더라고요. 지긋지긋한 쌍문동은 이제 끝입니다. 떠나기 전에 할아버지에게 선물 하나 하려고요."

"응?"

"현수막 새로 짜셔야 하셔야 될 겁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

* * *

나는 그길로 택시를 타고 강남에 위치한 심리상담센터로 향했다.

오랜만에 지영씨를 만나 상담을 하는 날이었다.

그녀도 월요일 오전 일찍 나와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물론 [네! 언제든지요! 내일 뵙겠습니다!^^]라는 답변 이후로 문자가 끊어져 버렸지만..

어휴..병신.

지영씨와 명석이 와이프하고의 관계는 예전에 지영씨가 방송국 근처의 심리센터에서 일할 때 만났다고 했다.

방송국 근방에 심리 상담 카운슬러가 많은 데 그때 매번 찾아오는 내담자중 한 명이었다고 하며 지금도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단다.

아마 작가들이나 PD들이 시청자들의 댓글과 악플에 많은 영향을 받으니 상담을 많이 받는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