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 (27/200)

천사장이 최부장을 보며 말했다.

"최부장. 신규 아직도 안 뽑았어?"

"네. 허허. 조금 문제가 있어서요. 현재 보류 중입니다."

"2팀에서 태클을 걸었다는 게 무슨 말이야? 황부장 해명 해봐,"

"뭐.. 태클을 걸었던 건 아니고요. 어차피 2팀도 신규 증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한 번에 같이 하자는 뜻이었죠."

"그게 뭔 개뼉다구 같은 말이야. 우리가 뭐 신규 공채 받아? 필요할 때 뽑아 쓰는 거지."

"크흠."

"최부장 신규 증원해."

"네. 알겠습니다."

이 상황을 나는 곧바로 깨톡으로 상황을 전파했다.

김 [신규 증원 확정!]

정 [역시 과장님 최고^^]

고 [막내가 들어온다는 거죠? 흐흐]

오 [30대로 뽑죠.]

고 [아...오대리님..]

노트북 깨톡방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송팀장이 손을 들며 천사장에게 말했다.

"황부장님 말처럼 저희 인력이 자주 현장에 나가는 건 맞지만 저는 보통 사무실에 있습니다. 제가 한번 꾸려보겠습니다."

아...송팀장..

너무 착하다. 서로 떠넘기기만 바쁜 이런 상황에서 송팀장이 손을 든 이유는 분명히 착해서다.

나쁜 의미로 호구지만 좋게 얘기하면 송팀장 같은 친구가 있어서 그나마 회사가 좀 수월해진다.

송팀장의 발언에 황부장의 이맛살이 잔뜩 구겨졌다.

"송팀장. 이거 나랑 얘기 안 된 부분이잖아. 갑자기 이러면 어뜩하나."

"박찬혁이가 지금 현장 돌아다녀서 저희 팀원들 무리하게 현장에 있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박대리 뿐만 아니라 다른 사원들 기본적인 사내 업무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왜 그렇게 현장에만 죽 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가 확실히 교육 해보겠습니다. 믿어주시죠. 부장님."

이걸 팀킬이라고 하나?

"하아.."

황부장으로서 할 말이 없는 상황.

솔직히 저걸 내가 걸고넘어지려고 했는데 송팀장이 자진해서 나서는 걸 보니....고마우면서도 안타까웠다.

천사장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그러면 2팀에서 해봐."

"뭐 2팀에서 부담스럽다면 저희도 해볼 만한 인력이 있긴 합니다. 현재 남양주하고 일산현장, 인천 현장은 증원된 상황이고요."

"잘됐네. 1팀에서 굵직한 센터는 채워주니까 2팀은 그나마 수월하겠네? 안 그래 황부장?"

"네 그렇죠."

황부장이 내 얼굴을 보며 인상을 써댔다.

크크

열불 터질 거다.

1팀의 작고 영세한 경기도 외곽 끝자락에 위치한 것까지 전부 담당해야 되니까.

* * *

1팀의 분위기는 축제였다.

신규 증원과 더불어 2팀에게 아주 짬처리를 시켜버렸으니 특히 정주임의 표정이 너무 환했다.

생각해보니 물류팀 유일한 홍일점인 정주임과는 별로 관계가 없었다.

"정주임 그렇게 좋냐?"

"그럼요..저 박대리 표정 똥 씹은 거 보이죠? 크크. 과장님 커피 한잔 하시죠?"

"야 조용히 말해. 다 들리겠다."

정주임과 함께 회사 계단으로 향했다.

내게 캔커피를 건넸다.

"사실 과장님한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응?"

"솔직히 이번에 제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 퇴사까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

"과장님 아니었으면 저 여기 없어요."

"그랬겠지. 그간 고생 많았어. 이제 좀 바꿔보자고. 오대리한테 들어보니까 정주임이 없으면 우리팀 안 돌아간다고 얘기하던데.."

"과장님도 계속 다니실 거 맞죠?"

"현재로선. 왜?"

"궁금해서요. 1팀이 이렇게까지 활기찬 적도 없었고 제가 주말을 반납해서 일했었던 적도 없었고. 예전하고 다른 이 분위기가 순전히 과장님이 들어오신 이후에 바뀌었으니까요. 그래서 물어 본 거예요. 걱정돼서."

"..."

그때 정주임의 휴대폰에 깨톡이 울려댔다. 엄청나게 울려대는 깨톡에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

고사원이었다.

고 [오늘 회식 한번 하시죠!]

고 [회식!]

고 [회식이 꼭 필요한 날입니다.]

고사원의 깨톡을 확인한 정주임이 답장을 했다.

정 [김과장님 어떻게 하실래요?]

김 [하자. 최부장님은요?]

최 [난 쉴란다. 몸이 영]

고 [제가 식당 예약 잡아 놓겠습니다. 매일 가는 대패 맞죠? 예약 없으면 못가는 존맛탱 집.]

씨바.

생각해보니 매번 대패였다.

물론 맛있기는 하지만...

김 [현준아 오늘 유정집으로 예약해.]

고 [헉. 거기 소고기집 아닙니까?]

김 [어. 괜찮아. 오늘 내가 한턱 쏠게.]

오 [과장님...]

그리고 정주임이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박."

유정집.

1인분에 4만원은 기본 호가하는 소고기 집이었다.

그 소고기 집을 지나치면 옆 가게가 대패 삼겹살 집.

사원들은 매번 대패를 먹기 위해 유정집을 지나칠 때마다 한번 슥 보고 지나치더라.

"매번 먹고 싶었잖아."

* * *

소고기.

회식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가끔은 참석해보고 싶은 의향을 만들게끔 하는 마법의 음식.

그래서 고사원이나 오대리가 저렇게 설레고 있는 건가.

"천천히 먹어. 체하지 않게."

"넵!"

"고사원!"

"네 과장님."

"요즘 곤조도 있고 보기 좋아."

"감사합니다."

직원들과 긴 회식을 했다.

정주임의 하소연을 듣고 고사원의 인생과 오대리의 빚까지.

그리고 주식얘기 부동산 얘기. 등등

예전에는 회식할 때마다 일 얘기가 우선 이었는데 오늘은 뭔가 서로 떠들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만큼 이 친구들 앞에서 권위적으로 군적도 없었던 것이고, 내가 가진 직위로 이 친구들을 찍어 내린 적이 없었으니까 가능한 수준이겠지.

내가 가진 권위로 3명의 이 친구들을 그렇게 잡고 싶지는 않았다.

"야 현준아. 너는 짜증나게 왜 계속 소고기를 팍팍 구워대냐."

"아..."

오대리의 질책에 고사원이 기가 죽었다.

한우 투뿔이다.

팍팍 익히던 적당히 익히던 그게 그거지 뭐.

나는 고사원의 집게를 뺐어버렸다.

"줘. 내가 구워줄게."

존경의 욕구라고 한다면..명예욕과 더불어 권력욕, 제 삼자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였다.

직장 내 더 높은 지위가 될 수 있고 사업 확장, 명예를 드높여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

그런데 워킹휴먼은 너무 좁다.

내가 인정을 받고 사내에서 존경을 받고자 하는 임원급의 인물들도 없다.

그러나 대기업과 같이 정치질이 완연한 정글보다는 지금 당장은 이 좁은 워킹휴먼이 더 좋다.

"과장님 혹시.. 주말에 시간 되세요??"

정주임이 고기를 한점 집어 먹으며 말했다.

"주말에..? 왜?"

"오대리님하고 현준이하고 같이 영화보러 가려는데 과장님도 같이 가실래요?"

"안 가. 너희끼리 놀아."

"아.."

"선약이 있거든."

올해는 연애 좀 해보자고.

내가 대중들 앞에서 처음 노래를 했을 때가 수년전 대학교 2학년 축제 때.

그때 당시 유행했던 가수 워너비 노래를 아주 기막히게 불러댔는데 그게 영상으로도 유명해져서 그때 당시 2학년 최고 인기스타는 ‘나’ 김도일이었다.

그 이후로 몇 번 노래를 해보고자 했는데 뭐 수년간 무명 생활을 해가며 벌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못 버틸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노래를 했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뭐라도 됐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연신 수다를 떨고 있는 명석이 와이프 신애씨는 내 노래 실력을 의심하고 있었고

나는 명석이네 부부가 사주는 일식을 먹으며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었다.

"명석이한테 얘기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미인이십니다."

"호호. 별말씀을. 역시 명석이 친구라 그런지 도일씨도 굉장한 미남이시네요."

내가 지금 명석이네 부부를 만난 것은 내 노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게 말이 되나?

내 노래 실력을 의심해?

신애씨의 목적은 다분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니 결혼식 하나 만큼은 제 친구들의 결혼식보다 월등하게 앞섰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이럴 거면 연예인을 부르지 왜..

"제가 너무 욕심이 지나치죠? 명석이가 도일씨 칭찬을 얼마나 하던지. 그래서 언젠가 한 번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밥 한 끼는 같이 해야 하는 사이니 겸사겸사 오늘 노래방도 가서.."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혹시 도일씨 코디도 좀 봐 드려도 될까요?"

"네..? 무슨 코디...?"

신애씨가 내 차림새를 보고 있었다.

하긴

그간 내가 사놓은 사치품을 모두 해체 시켜버리고 해묵은 정장과 중고시장에서 득템한 시계를 차고 있었다.

초라해 보이겠지.

무엇보다 신애씨는 이제 마흔 중반이다.

그간 골드미스로 살아오면서 돈도 많이 모아놨을 것이고 훤칠한 남자들도 많이 만나봤을 거다.

솔직히 온갖 명품으로 휘황찬란하게 등장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다고 생각했다.

뭔가 더 극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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