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워킹휴먼 건물 흡연실에서 박대리를 마주했다.
서로 등을 돌려 흡연을 하는 와중에도 내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거슬렸다
박대리의 총구가 내게 향해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나와 박대리는 서로 경력은 비슷했지만 어찌됐든 직함으로 따지면 상사다.
적어도 상사 얼굴을 보면 인사 정도는 해야 기본인데 싸가지 없는 자식은 그저 못 본 척 담배만 빨아댄다.
하긴 나는 박대리의 형을 현장에서 즉시 해고 시켰다.
그때 당시의 현장 분위기와 사정을 박대리는 모른다.
박찬혁이와 현장에서 설전이 오간 것은 구전 돼 박대리 귀에 와전돼 들어갔을 것이고 박대리 입장에서는 내가 완전히 나쁜 인간이고 지네 형을 잘라버린 악독한 상사겠지.
어차피 한번은 부딪치고 나눌 얘기들이다.
돌려 얘기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을 꺼냈다.
"내가 회사 사람이라고 해서 봐주거나 부당한 행동을 눈감아 주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아."
박대리는 담배를 깊게 한번 내쉬고는 손으로 꽁초를 튀긴 뒤 뒤돌아섰다.
"저한테 말씀하신 건가요?"
"너 말고 누가 있어."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
하아. 이 새끼 이거.
"너희 형 얘기하는 거야 인마."
"아.. 저희 형이요? 과장님이 자르셨다고 해도 지금 근무 잘 하고 계시는데요. 갑자기..왜.."
"근무를 잘하고 있다고?"
"뭐. 물류1팀하고 방식이 맞지 않은 거겠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식? 그러면 60대 가까이 되신 어르신을 공개적으로 불러 세워서 갈구는 게 물류2팀 방식이라는 거야?"
"참..그게 아니라요. 과장님 아시잖습니까. 어차피 20대든 60대든 현장에서는 똑같은 일용직 사원이라는 겁니다. 다 아시면서."
물론 박대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맞다.
그런데 박대리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대리는 참 보는 눈이 좁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지금 너랑 입씨름해서 이기려는 수작도 아니고 네 형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도 아냐.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겠어?"
"..."
"네 태도나 좀 보려고 했던 거야. 잘못을 인정하고 일이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그거 한마디 했으면 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말지"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뭐?"
"같은 지붕아래서 좀 맘 맞게 일하고 싶다고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래? 2팀처럼 현장 쉬는 시간도 쪼개 버리고 현장 사원들 마실 물도 끊어버리고 필요한 비품들도 제 돈으로 사게 하고. 그 돈으로 워킹휴먼 회사 살림살이 늘려서 호의호식하자?"
"..."
"막말로 우리 같은 회사가 양아치 소리 듣고 피땀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회사라고 소리 듣는 거 다 2팀 방식 때문이잖아."
"제가 이거 황부장님한테 말씀드려도 되는 부분이죠?"
"이 새끼 봐라."
순간 욱했다.
"과장님 같이 매번 현장 사원들에게 환심 사려고 하는 분들 많이 봐왔습니다. 그래서 과장님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요? 과장님만 여기서 착한 인간 되려고 하는 겁니까? 어차피 저희 방식으로 수익 늘리는 거고 그게 과장님 월급에 꽂히는 거 아닙니까."
"내 월급?"
순간 조소가 나왔다.
"네. 과장님 월급이요. 주4일에 퇴근도 자유로우신 분 아닙니까"
사실 박대리의 말에 뭐라고 대꾸할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141억을 가진 내가 가장 멋지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보자면.
"너희 형 데려와."
"네?
"얼굴 한번 보자고."
"..."
"그리고 박대리."
"네."
"실수하지 말자."
"무슨 실수를 했다는 말입니까. 저는 맞는 말씀 드린 겁니다."
"네 말이 틀렸다는 게 아냐. 네가 나한테 등을 돌렸다는 실수를 얘기하는 거야."
"...."
"할 말 없으면 나가봐."
* * *
역시 나와 박대리의 설전이 오간 것을 들은 황부장의 표정은 마치 썩은 취두부를 먹은 것 마냥 일그러져 있었다.
박대리가 아마 다 얘기했겠지
황부장은 엄청나게 기분 나쁠 게 분명하고.
그리고 박대리는 그걸 노림수로 보고 황부장을 가스라이팅 했을 수도 있다.
이게 내가 박대리와 얘기해본 그의 성질이자 결과였다.
허나 박대리 본인은 엄청난 실수를 했단 것을 아마 아직까지 실감하지 못할 거다.
다른 팀이라고 할지라도 상사와 적대 관계를 맺는다?
게다가 나를?
"오대리 센터별로 지게차 가용 대수 파악해 놓은 거 각 센터 출고 파트에서 메일 날아 왔을 거야."
"네. 지금 확인 중입니다. 현재 센터별로 신호수 배치 현황 올라왔는데.. 과장님 혹시 이거 결정된 거 맞습니까?"
"왜?"
"평일 주5일 근무자는 주휴수당 지급 예정인데, 주말 주2일 근무자는 주휴수당 제외입니다. 주말 근무자도 주 15시간 넘지 않나요?"
"한 달 평균 주 15시간은 해야 주휴 지급 조건이야. 일단 이거 원청이랑 꼭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다. 그리고 현준아."
"네 과장님 부르셨습니까."
"남양주 현장에 박찬혁이 서류하고 짐이 아직까지도 있다니까 그거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봐."
"누구한테 말입니까?"
"박대리한테 물어보던가. 박찬혁이한테 전화해보던가."
"네. 알겠습니다."
고사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파티션 너머 2팀 쪽으로 향했고 박대리가 고사원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뭐야?"
"박찬혁 반장 짐. 남양주에 아직 있다는 데. 저희가 새로 선임한 현장 관리자가 이거 버릴지 말지 물어봐 달라는데요."
"뭔데? 무슨 짐?"
"저도 모르죠."
"알았다. 그리고 김과장님한테 2팀 신호수 배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
"직접 물어보시면 안 될까요? 불과 몇 미터밖에 안 떨어졌는데."
"흐흠."
크크. 역시 고사원.
박대리가 의자를 끌고 내게 다가왔다.
"이거 1팀 쪽에서 책임지고 한다고 했죠?"
"...그게 당연 하거냐?"
"아니요."
"그리고 박대리."
"...?"
"2팀 센터별로 신호수 배치 인원 현황 파악됐지? 취합된 자료 조사한 거 지금 가져와.."
"아직 안됐습니다."
"바로 투입해야 하는 거 몰라?"
"알고 있습니다. 일단 송팀장님한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너 나랑 장난 하냐?"
"..."
"송팀장님이 네 부하직원이야?
"아닙니다."
"부하 직원이 상관에게 업무 여부를 물어보겠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냐? 일을 안했으면 지금 빨리 해오겠습니다 가 맞는 거야 새꺄. 어째 개념이 그렇게 없냐? 어휴."
"죄송합니다."
"네가 할 일이야. 네가. 정신 차려 새끼야. 그리고 어디서 의자를 끌어. 위아래도 없는 것만 배워서는... 지금 당장 해와."
사무실은 굉장히 조용하다. 서로 오고 가는 말 따위를 부장들은 다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쫄깃하다.
그때 황부장이 내 말을 듣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씨발 신호수 배치 한다는 게 언젠데 아직까지 준비도 안 되고 있었던 거야? 박대리! 일 똑바로 안 해?"
"죄송합니다. 부장님."
"송팀장!"
"네 부장님."
"애들 똑바로 관리 안하냐. 어? 지금 1팀에서 책임 맡았으면.. 씨발것들아..자료 정도는 조사해서 줘야 되는 거잖아!"
"죄송합니다."
"아우 씨발 뭔 제대로 하는 것들이 없어."
황부장은 화가 나면 그게 사무실에서도 욕부터 나온다.
믿기지 않겠지만 가끔 의자도 집어 던진다.
물론 벽에.
나는 황부장을 향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 정주임은 주말에도 사람 충원해보겠다고 결국 몸살까지 났지 않습니까. 그런데 2팀에서 이렇게 나와 버리면 저희 맥 빠집니다. 계약까지 따왔는데 이런 식이면 천사장님한테 말씀드리고 2팀으로 넘기겠습니다."
"김과장. 적당히 해. 너도."
"아니 그렇잖습니까. 지금 저희 팀원들 사기 죽죽 빠진 거 안보이세요? 지금 정주임까지 몸살 나가지고 없는 인력으로 일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요."
"최부장한테 따질 일을 왜 나한테 얘기하고 지랄이야 짜증나게."
"아이고 황부장님! 아까 박대리가 그럽디다.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좀 잘 해보자고."
"뭐?"
"그럼 좀 서로 도와가면서 하자고요. 박대리 그렇지? 네가 그렇게 얘기 했잖아?"
나는 박대리의 얼굴을 보며 능글맞게 말했다.
크크
무슨 박대리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아주 속 시원했다.
"박대리 나랑 얘기 좀 하자고."
박대리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리고 내가 말한 실수했다는 부분을 어느 정도 깨달았겠지.
그리고 황부장은 박대리를 끌고 사무실을 나갔다.
솔직히 대형 물류센터의 100명 가까이 들어가는 현장을 거머쥔 상황이라 신호수같이 하루 10명 미만 들어가는 일은 섣불리 나서서 하는 게 귀찮다.
속된말로 짬처리를 누가 담당할거냐는 뜻이었다.
그래서 돈에 환장하는 황부장도 입을 다물고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고착화된 관행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었다.
1팀에 당연히 짬처리 해버리는 관행을 말이다.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네 번째 메인 퀘스트 존경욕구의 성공률이 상승했습니다!]
[현재 달성률 10%!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뭐지? 누군가 나를 존경을 하고 있다는 건가?
나는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정주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병가 낸다며?"
"몸이 좀 괜찮아졌어요."
* * *
오대리와 건물 흡연실로 향했다. 방금 2팀에게 신호수 일을 넘기겠다고 한 부분을 오대리는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장님 이거 진짜 저희가 안할 수도 있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일단 최부장님 곧 오시거든 내가 얘기해볼게."
"하아..진짜...진짜..과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2팀에 한번이라도 넘겨주십쇼."
"그렇게 간절하냐?"
"죽도록 간절합니다. 매번 당연시 되듯이 저희가 맡아 온 것들이 여태 얼마나 많았는데요."
"오대리. 그간 우리가 바보같이 일을 해왔다는 뜻이야."
"아.."
"막말로 우리 최부장님 같은 성격이 사내에서 정치질에 익숙하냐?"
"정치질보다는...정직하시죠."
"그래. 그거야. 황부장 같은 인간은 매번 본인들 이익이 얼마나 될까, 어떻게 하면 성과금을 더 처먹을까. 이런 생각만 하는 거지.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어?"
"맞불이죠."
"우리도 이제 좀 약아 빠지게 행동하는 거고 싫은 소리 좀 해가면서 일을 해야 된다는 거야. 황부장이 사무실에서 욕하고 지랄 해대는 거? 이거 일부러 저러는 거라 본다. 찍소리 못하게끔 하려고."
"맞습니다."
"최부장한테 강력하게 얘기해서 이런 고착화된 일들 송두리째 뽑아버리자고 할 테니까 오대리 너는 내가 시키는 일만 잘하고 있어. 나 믿냐?"
"네."
"그리고 정주임한테 이거 전해줘."
나는 주머니에서 박카스 하나를 꺼내 오대리에게 건넸다.
"직접 주시지 왜..저한테.."
"나 원래 이런 거 잘 못해. 그러니까 네가 전해줘라. 와줘서 고맙잖냐. 몸도 안 좋을 텐데."
"네. 알겠습니다."
"내일 잘해보자고."
"감사합니다. 과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