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 (23/200)

어차피 최저임금이라 각종 보험이나 세금 등 때고 또 여기에 신호수 파견하면서 생기는 우리 워킹휴먼 회사 인건비까지 더하면 순이익 남는 게 거의 없다.

많아 봐야 4% 5%다.

그게 수백 명이면 좀 남지. 한 현장에 많아봐야 10명도 안 된다.

차라리 이 정도 수준이면 안 하는 게 낫다.

본부장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아마 여기서 기싸움에 밀려버리면 본부장도 회사에서 두들겨 맞는 정도로 압박을 받겠지..

원청에서 작전타임을 원하는 듯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자고 제안을 했다.

그리고 나는 도급사 대표들과 함께 흡연실로 향했다.

"최부장이 대본 써줬냐?"

"흐흐 아닙니다. 대표님."

"김과장이 다시 재입사한다고 했을 때 우리 회사에서 먼저 손 내밀고 싶었다니까. 그런데 너무 강성적으로 밀고 나가는 거 아냐? 워킹휴먼 사업 배제 시켜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믿는 구석이 당연히 있었다.

쿠몬 현장에서 워킹휴먼이 담당하고 있는 현장 점유율은 45%.

거의 자회사나 다름없는 관계라 좀 강해도 된다.

물론 신생 회사였다면 진즉에 회의실에서 쫓겨났겠지.

"5% 먹겠다고 그만한 책임을 지라는 게 말이 되는 겁니까. 제안 안 받아주면 저희는 신호수 관련된 일은 손 떼버릴 겁니다."

"천사장이 용납할까. 그래도 5%가 어디야. 가만히 앉아서 들어오는 돈인데."

"사고 나면 그 책임 감당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본부장 말하는 게 견광봉만 휘두르면 된다는 것부터가 전혀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수준이잖아요. 신호수가 쉬운 줄 아나."

"크흠."

흡연실의 기운이 모두 내게로 쏠려 있었다. 아마 많은 도급사 대표들도 내 말을 듣고 고민하는 부분이 많을 거다.

그때 다른 도급사 대표가 내게 다가왔다.

"김과장님 너무 밀어붙이지 마시죠."

"네?"

"어차피 5%든 뭐든 먹고 살자고 일하는 거 아닙니까. 워킹휴먼도 그렇게 해서 커진 회사 아닌가요."

"..."

"워킹휴먼이야 물류 도급에서 힘 좀 쓴다지만 저희 같이 신생기업은 한 푼이 시급합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부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계약서에 사인하면 결국 피곤해지는 건 대표님이고 더 나아가 근로자들 아닙니까."

".."

"아마 원청에서도 지금 회의 중일 겁니다. 머리 싸매고 있을 게 분명한데 저희도 좀 힘을 합쳐야 되는 거 아닙니까."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안정 장치를 만들어야죠."

10분간 서로 작전타임을 가진 뒤 다시 회의는 시작됐다.

계약 조건이 수정된 부분이 있었다.

1일 3교대 24시간의 공 타임이 없어졌다.

그리고 법적 휴게시간 한 시간이며 고정된 시간에 휴게 할 수 있도록 정했다.

허나 내가 강하게 본부장을 밀어붙이고 압박을 했던 가장 중요한 계약 사항중 하나.

그게 빠져 있었다.

본부장은 수정된 계약서를 들이밀며 이 정도 수준이면 만족하지 아니하냐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게 정상적인 계약서이건만..

"그런데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만약 최악의 상황에 치달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청에서도 책임이 있다는 것. 그거 명시해주시죠."

"하아. 김과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약 안 된다면 현재 모인 도급사 대표님들 전부 빠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본부장님께서 작성하신 계약서 그대로 알바사이트에 올리셔서 직접 고용해서 운영하시면 될 겁니다."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다른 조건들이야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맞춰서 운영한다고 쳐도, 책임을 회피하는 원청들을 압박해서 적극적으로 안전에 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게 신호수 운용의 가장 큰 주요 맹점이자 안전장치였다.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세 번째 메인 퀘스트 「안전욕구」를 완료하셨습니다!]

[완료보상 1000UNI를 지급합니다.]

[로또스킬을 레벨업 합니다.]

「로또」LV4」

「로또」LV5 상승」

「LV5 SKILL 로또 번호 전체 확인가능」

[현재 스킬을 발현하시겠습니까?]

「YES」

[1006회차 로또 당첨번는 「11」「23」「35」「39」「40」「41」입니다.]

* * *

원청 회의가 끝난 뒤 도급사 대표들과 앉은 이 술자리에서 한 마디도 내뱉지 않고 그저 로또 번호만 생각하고 있었다.

로또 레벨5 정도면 네 자릿수 확인 정도의 스킬인 줄 알았건만 로또 번호 전체 확인할 수 있는 레벨이었다.

하아.

이제 정말 로또 1등인건가.

살면서 단 한번도 1등을 해본 적 없던 내가 이제 하루 뒤면...1등이 될 수 있었다.

"김과장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네."

굿타임즈의 대표가 술 한 잔을 따라줬다. 그리고 나는 그 술을 받아 마셨다.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이번에 김과장이 아주 제대로 보여줬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매번 주는 거만 받아먹으면 원청도 습관 안 좋아집니다. 가끔씩은 들이대 줘야죠."

"흐흠. 그런데 그게 쉽나. 요즘 워낙에 도급사가 많아서 경쟁이 아주 치열하잖나."

"그렇죠."

굿타임즈의 이대표의 하소연도 그저 멋없게만 보였다.

술자리에 모인 다른 대표들도 마찬가지.

이번 일을 뭔 대단한 것 마냥 떠들어대는데 왜 나는 아무 감정 없이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걸까.

내 옆에 앉아 있던 오대리도 마찬가지였다.

내 성과다. 내가 일궈낸 일이다.

오대리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앉아만 있었다.

그게 제 스스로 마음에 걸리는 일이겠지.

나는 오대리와 잠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술집을 빠져 나왔다.

"어깨 펴."

"하아. 이걸 제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도급사 대표들처럼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오대리."

"네.."

"그게 정상인거야. 다른 도급사 대표들처럼 가만히 앉아서 원청이 말하는 거 듣고 계약서에 서명하는 거, 그게 전부인 일이야. 겁먹지 마라."

"아.."

"내가 별 난 놈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나처럼 할 필요도 없고, 나처럼 살면 언젠가 크게 당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너무 심란해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과장님."

오대리가 나처럼 특별한 이능이 있지 않는 이상 나처럼 살다가 언제가 업계에서 퇴출당하고 밥줄 끊겨 버린다.

그걸 얘기해주고 싶었다.

나는 특별하지만 너는 보통사람이라고.

내 인생에서 로또 1등이 제일 쉽다.

퇴근 뒤 씻기도 전에 책상 앞에 앉아 로또 OMR카드에 천천히 1등 로또 번호를 마킹했다.

손이 떨렸다.

5등 번호를 쓸 때는 그렇게 쉽게 써지던 번호가, 막상 1등 번호를 쓰려니 긴장감과 설렘이 동시에 엄습해왔다.

814만분의 1.

확률도 무시해버리는 이 말도 안 되는 이능으로 앞으로 어떻게 사용해 나갈지 고민이 앞섰다.

생각할 게 있나.

지금 당장은 그냥 펑펑 써대면 그만이다.

게다가 100억 이상이 생길 텐데 일을 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까 싶다.

토요일 아침 일찍 집 앞 복방에 들려 로또를 사기 위해 어제 써놓은 OMR카드를 챙기고 나갔다.

만원 어치. 조합 10개.

평균 1등 당첨금 15억~20억 정도 잡고 내가 100억 이상을 먹기 위해서는 1등을 한 번에 10번은 중복 당첨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대한민국 로또 당첨금은 너무 짜다.

미국의 파워볼이나 메가 밀리언 정도의 능력이었으면 단번에 세계 재벌 순위에 들 수가 있겠지.

매주 파워볼에 당첨되는 인간이면 충분히 그럴 수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미국의 파워볼 당첨자중 괴한들에게 살인강도를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걸 보니 나도 좀 마음에 걸렸다.

로또 1등 수동 조합 100개를 써서 사버릴까도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언젠가 신상이고 뭐고 다 까발려질 것 같고 인생 피곤해 질 것 같았다.

게다가 아무리 익명과 신분을 보호 한다고 하더라도 매주 농협 본점에서 당첨금을 수령해야만 했다.

매주 당첨금을 타러 온다면 그것도 뉴스에 나올만한 일.

이번에는 소소하게 백억 정도만 먹고 또 추후에 언젠가 크게 먹어버리면 될 일이다.

그리고 로또 레벨은 10까지다.

로또1등이 끝은 아니다.

분명히 또 뭔가 있다는 것이지.

그때까지는 내 정체를 들켜선 안 된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복방 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며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긴 예전에 5등으로 돈 좀 꽤나 만지지 않았나.

"이번에도 5등이여?"

"아뇨. 로또고 뭐고 이제 영 재미가 없네요. 앞으로 매주 만 원씩 사려고요. 큰 기대는 마세요. 앞으로 5등에 인생 몰빵을 하는 도박은 없을 겁니다."

"흐흠. 아쉽구먼."

나는 뒤돌아 복방을 나가려는 찰나 할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저번 주에 우리 가게에서 2등이 나왔어. 자네 아닌가?"

"아뇨."

로또를 사고 돌아온 뒤 그저 내 방벽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85인치 TV 앞에서 멍하니 앉아 영화만 보고 있었다.

일전 심리 상담사가 한 가지 목표를 두라고 당부했었다.

그 사소한 목표 하나가 TV를 사는 것이었다.

거대한 TV.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사이즈.

내가 TV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내 심신의 안정을 찾아줬다.

일요일 주말에 가족들끼리 모여서 보는 TV가 내게는 그만큼 소중했으니까.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들이 떠나질 않는다. 손에는 계속 땀이 흘렀고 침도 계속 말라 아무리 물을 마셔대도 입이 삐쩍 말라갔다.

현재시각 저녁 8시

곧 몇 분 있으면 로또 추첨 방송이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1등 당첨이 될 걸 알면서도 그걸 보기가 굉장히 떨렸다.

하아.

영화도 당최 무슨 내용인지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11」「23」「35」「39」「40」「41」

앞으로 내 인생을 180도 바꿔버릴 숫자.

뭔가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숫자

그때 스마트폰에 깨톡이 울렸다.

대학교 친구들과 오랜 시간 유지 하고 있는 깨톡방이었다.

또 누군가 자랑 질을 위해 글을 써놨겠지.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풍경 예쁘지? 그레이하운드 버스 타고 지금 6시간째 갇혀 있는 중 ㅜㅜ]

역시 북미 여행 중인 재일이가 또 사진을 올려댔다.

[와. 대박. 경치 존나 예쁘네.]

누군가 자랑을 한번 올리면 잽싸게 답글을 달아준다.

참 잘 주고받는다.

그때 10살 연상의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명석이가 글을 올렸다.

[씨발새꺄 결혼식 전에 입국 안하면 죽인다.]

[ㅋㅋㅋ 축의금만 보낼수도 있음]

[백만원 정도면 이해함]

[ㅈㅅ]

[그리고 도일아]

응? 명석이가 단톡방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그냥 무시해버릴까도 싶었다.

단톡방에 내가 글을 올렸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내가 단 한 번도 뭔가 주도를 해서 대화를 끌어냈던 적은 없었으니까.

나는 친구들 깨톡방의 유일한 독자였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안 좋은 일들이 겹겹이 쌓이니 나에 대해서 할 얘기가 없어지더라.

[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