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 (22/200)

과거의 아버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죽지 않고 산다고 언젠가 그런 말을 남겼을 때 무슨 심정이었을까 싶었다.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사채 빚만 남기고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버린 아버지를 찾기에는 어릴 때의 상처가 너무 컸다.

그리고 나를 버린 아버지를 굳이 찾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내가 다시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간 잘 지냈냐고? 그간 뭐하고 사셨냐고?

아니 그냥 왜 내 앞에 나타났냐고 소릴 지를 것 같다.

언제든 내 안전에 위협이 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으로서 살지 못하는 건 순전히 무능력하고 술독에 빠져 살며 매번 소리치고 엄마에게 폭력을 썼던 아버지 탓이었다.

그 공포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이걸 이겨 낸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 날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건 내가 단순히 직장에서 일을 잘하거나 뛰어난 능력으로 인정을 받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강남대구 411번지 101호]

갑자기 휴먼매니저가 주소를 띄웠다. 대체 이게 뭐지. 나는 그 주소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그리고 그곳은 강남구 도심에 위치한 어느 심리치료센터였다.

* * *

아무도 모르는 제삼자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직장에서는 그걸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처럼 전래 동화처럼 내려져온 고착화된 이야기다.

본인의 흠을 남들이 이해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얘기 한다고 해도 사내 직원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고 언제든 내게 비수로 날아올게 뻔하다.

약점이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이 사면의 꽉 막힌 방안에서 콧대 높은 상담 선생님이 안경을 슥 올려 쓰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언제든 내가 얘기를 꺼내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저 온화하고 예쁜 미소를 가진 분 앞에서는 무슨 얘기를 해도 다 들어줄 것 같았다.

선생님이 내게 던진 첫 질문은 오늘은 무슨 일을 하고 또 어떤 시간을 보냈냐는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다.

"딱히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반차를 내고 집으로 갔는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아. 그러셨네요. 제가 성함으로 불러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도일씨는 요즘 직장이 많이 힘드신가요?"

"힘들다기보다는... 뭔가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듭니다."

"취미 생활이 따로 있으신가요?"

취미 생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질문이었다.

전혀 없었다.

"없습니다. 제가 딱히 취미를 가져본 적도 없고 그걸 누릴만한 여유가 없어서요."

"도일씨가 잘하시는 게 분명히 있을 거예요."

"노래는 조금 합니다. 그런데 그걸 취미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취미가 있으신가요."

궁금했다.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와 마음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참 오랜만이라 그런지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런데 이게 실수인가.

상담 선생님이 조금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는 일이 끝나면 항상 복싱을 해요. 도일씨는 복싱해 보신 적 있나요?"

"저 맞는 거 싫어합니다."

내 말을 듣던 상담 선생님이 노트북으로 뭔가를 굉장히 많이 써내려갔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이 물 한 잔을 마신 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일씨가 좋아하는 일이 있나요?"

"네. 그건 분명합니다."

"뭐죠?"

"로또를 사는 일입니다. 앞으로 그게 제 인생의 전부 일 것 같습니다."

"아.."

내가 너무 도박에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급히 말을 바꿨다.

"목표도 없고 직장은 매너리즘만 가득하고 그런데 로또를 사면 그게 환기가 되는 기분이 들거든요."

"저도 로또 좋아합니다. 가끔 내담자분들에게 추천해드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너무 로또에만 매달리시면 일상생활이 무미건조해지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맞아요."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려도 될까요?"

"뭐죠?"

"한 가지. 매주 딱 한 가지만 목표를 잡아보세요. 그게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도일씨가 직장 내에서든 집안에서든 사소한 목표 하나만 잡고 해나가 보세요."

"음.."

"그리고 다음 주에 다시 뵙게 됐을 때 그 목표에 관해서 얘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과제인가요?"

"네. 맞습니다."

"저희 매주 만나는 건가요?"

"그럼요!"

이래서 카운슬링을 받는 건가 싶었다.

나와 나이대도 비슷해서 직장인들의 애환 정도는 너무 쉽게 공감대가 형성됐다.

게다가 목소리도 나긋나긋하니 뭔가 정화 되는 기분이 들었다.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세 번째 메인 퀘스트 안전욕구의 성공률이 상승했습니다!]

[현재 달성률 95%!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이 얘기한 지금 나의 한 가지 목표는 분명했다.

* * *

다음 날 일찍 쿠몬 본사로 향했다.

본사 회의에 오대리와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다.

쿠몬과 계약된 모든 하청도급사 대표 또는 부장 직급들이 모이는 자리라 실질적으로 최부장이 와야 할 자리인 건 맞지만 오랜만에 원청의 사무실 냄새를 맡아 보기로 했다.

그게 좋다.

칙칙한 물류1팀 내부보다는 훨씬 쾌적하니까.

그래서 오대리도 한번 데려와 보고 싶었다. 본사에서는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어떻게 하청근무를 맡기는지에 대해 한번 파악해보라고 얘기했다.

추후에 오대리가 독립을 하던 내가 독립을 하던 언제든 대기업과 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대리에게 출근 전날 미리 멀끔한 정장을 입어 오라고 시켰다.

매번 넥타이 풀어 헤치며 일했던 모습이 아니라 깔끔하며 사무직 냄새 풀풀 풍기는 그런 분위기.

"오대리 긴장되냐?"

"네. 아닙니다."

"내가 하는 것만 지켜봐."

"넵."

본사 회의실로 향하는 길에 굿타임즈 대표를 만났다.

그는 경성택배의 입고 담당을 맡은 하청 도급사였는데 차림을 보니 어디 또 현장에서 굴러온 듯 보였다.

"도일이. 오랜만이다. 이야. 말끔히 차려입고 오셨네."

"쌔삥 냄새 풀풀 나죠. 대표님."

"간만이다. 몸은 좀 어떠냐."

"괜찮습니다."

"최부장은 안 오고?"

"제가 대신 왔습니다. 옆에는 저희 워킹휴먼 오대리라고 2년 차입니다. 일도 잘하고 해서 굳이 최부장님이 오실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요."

"최부장 아주 노났네. 흐흐. 그나저나 이번에 신호수 임금은 얼마 책정해주려나 모르겠네."

"보나 마나 최저시급이겠죠."

"크흠. 사람 구하기 힘들다. 요즘 최저시급 알바 찾기도 힘들어."

"그럼 우리 굿타임즈 대표님께서 총대 메고 시급 만 원으로 한번....?"

"... 쫓겨나기 싫다. 그냥 주는 거 받아만 먹자고."

주는 거 받아먹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계약조건 일일이 따져가며 하청에서 조금이라도 가져가려는 수작질이 보인다면 원청은 다른 하청회사 찾으면 그만이니까.

때마침 다른 도급사 대표들과 부장직급 인물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곧 몇 분 뒤 원청 대표로 이본부장이 들어왔다.

본사 관계자는 나를 몰랐겠지만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오랜시간 쿠몬에서 일을 해왔던 양반이고 박스당 단가에 현장 분류 사원들 급여 계산하여 십 원도 깎아내리려는 양반이다.

원을 우습게 보는 경우가 있는데 박스 당 배송 단가에서 분류 인원의 임금을 평균 수십 원 낮추면 연으로 따지면 억대의 차익이 생긴다.

최저시급은 정해져있는데 어떻게 이걸 낮추랴, 쉽다.

첫째로 물량대비 To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고 그걸로 부족하다면, 프리미엄이라 일컫는 야간 수당.

22시 이후부터 06시까지 시급에 1.5배를 지급해야 하는데 이걸 피하기 위해 마감 시간을 최대한 앞당기거나 야간 근무자 출근 시간을 늦춰 근로시간을 쪼개버리는 거다.

지출을 줄여 이익을 얻는 것은 기업으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내가 브레이크를 잡으려면 내가 기업 회장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최근 불거진 사망사고로 현재 모든 물류센터가 신호수를 구하기 위해 매진이라고 했다. 그에 반해 쿠몬은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이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신호수 업무가 굉장히 단순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아본 결과 견광봉 견광조끼만 들고 신호를 보는 업무인데, 시급은 최저 시급으로 정하고 현장별로 지게차 미운용 시간에 신호수 휴게시간으로 공제하는 거로 할 테니 계약사항 한번 검토해 보시면 될 겁니다."

일제히 본사 사원들이 계약 사항을 명시해 놓은 서류를 자리 앞에 뿌려댔다.

기본적으로 신호수가 가지는 일의 특성상 업무가 굉장히 단순하고 쉬웠다.

지게차와 보행자의 신호를 봐주는 일이기 때문에 시급도 최저시급 수준.

그거야 뭐 그렇다 쳐도.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신호수의 쉬는 시간이 명시된 부분이었다.

"이게 왜 쉬는 시간이 2시간이나 책정됐고 휴게시간도 지게차 미운용 시간에 휴식이라고 돼 있는 거죠?"

순간 내 질문에 모든 도급사 대표들과 본사 직원들이 나를 바라봤다.

8시간 근무에 2시간 휴게 정해서 공제하면 주간 근무자의 하루 임금 5만 4천 원도 정도다.

아침 6시부터 나와서 오후 2시까지 근무하는 황금 파트 타임 시간대에 누가 5만 4천원 받고 일을 하랴.

게다가 이번 신호수 계약은 도급이 아닌 파견이다.

파견과 도급의 가장 큰 차이는 파견직 사원 같은 경우 비록 워킹휴먼과 근로계약을 맺더라도 원청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파출 식당 아줌마와 비슷하다.

원청으로부터 불합리한 지시를 받은 근로자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분.

내 말을 듣던 본부장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휴게시간을 정하는 건 도급사 대표님들께서 알아서 결정해주시면 될 일입니다. 저희가 일일이 맞춰드리지 못합니다."

"분명하게 휴게시간을 짚어 주셔야죠. 지게차 미운용 시간이 아니라 정확히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쉬어야 한다고 명시가 돼 있어야 저희가 사람을 뽑기나 하지. 이거 뭐 누가 일하겠습니까."

"..."

"다시 정해주세요."

내 말을 듣던 본부장이 미간을 찌푸려댔다.

본부장의 말마따나 도급사에서 알아서 시간 정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것도 굉장히 고착화된 습관인데 결국 알아서 정하라는 말은 일 터지면 책임 면피 하겠다는 방책이다.

휴게시간 정도는 그러려니 넘어가고 말겠는데 이게 조금씩 쌓이다가 결국 사고 나면 원청이 하는 한마디 ‘알아서 했잖아’

그게 맞는 말인걸. 어떡하랴.

그리고 내가 쉬다가 갑자기 뛰쳐나가고, 쉬다가 또 뭐 하라고 시키고, 그러면 누가 일할 맛이 나나.

쉴 땐 푹 쉬어야지. 어차피 공제인데.

"다른 도급사 대표님들 의견 좀 묻고 싶은데요."

본부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나와 방금 얘기를 나눴던 굿 타임즈 대표가 손을 들었다.

"저는 워킹휴먼과 같은 생각입니다. 요즘에 워낙 현장 근로자들이 노무적인 부분에 많은 걸 알고 있어서 이런 식의 근로계약서 들이밀었다간 퇴짜 맞습니다. 이 정도 수준은 알바 구인 사이트에도 못 올립니다. 사람 못 구합니다."

"다른 분들은요?"

너나 할 것 없이 도급사들이 손을 들었다.

그 후광을 입고 내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야간에는 지게차를 운용 안하는 겁니까? 왜 야간의 신호수는 자정에 출근해서 6시까지 근무를 하는 거죠? 1일 3교대면 중간에 비어있는 시간이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업무 공백 시간에 지게차가 움직일 수도 있잖아요? 현장에 무슨 일이 발생 할지도 모르는데. 신호수 공백에 사고 생기면 그 책임은 누구보러 지라는 겁니까."

아마 원청도 그걸 몰라서 계약서를 들이민 게 아닐 거다.

다 알고 있다.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뭐 알아서들 하겠지 하니 한번 떠보는 경우다.

22시부터 자정까지 야간수당을 줄이려는 수작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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