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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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켰다."

황부장과 최부장의 저 날선 기류 사이 그저 쥐죽은 듯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저는 그런 인간하고 같이 일 못 합니다.

최부장과 황부장 사이에서 날선 기운이 감돌았다.

그간 수많은 인력을 다뤄본 강성의 인간들이 서로 마주하고 있으니 기 싸움이 만만치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나도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랄까.

황부장은 박찬혁을 물류1팀에서 해고한 일에 불만이 가득했다.

최부장이 살살 달래가며 얘기를 좀 잘해보려고 하지만 황부장은 말을 듣지 않았다.

최부장도 목덜미를 문지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박찬혁이가 자네한테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적어도 옳은 판단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맡은 현장을 이렇게 사사건건 간섭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안 그래 황부장?"

"간섭이라니. 간섭이 아니라 이해관계야. 이해관계. 이쪽 바닥이 태평양이야? 연못 하나 두고 치고받고 싸우는 바닥 아니냐. 이해관계 얽히는 건 당연 한 거지. 알면서 그래."

"그래서 이미 잘라버린 박반장을 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걸 뻔히 알면서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야?"

황부장의 낌새가 분명히 있어 보였다. 황부장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이내 갑자기 눈을 돌려 나를 쏘아봤다.

"이번에 물류1팀에서 현장TF 운영한다고 들었다. 천사장한테 물어보니 신입도 충원한다고? 요즘 최부장 얼굴 좋아진 거 보니까 편한가 보네."

"..."

"물류2팀에도 현장 TF로 박찬혁 반장 염두에두고 있으니까 알고만 있으라고. 기본적으로 내가 멋대로 처리 해버리려다가 최부장 얼굴 봐서 미리 얘기해두는 거야."

사실 황부장의 결정을 최부장이 막아설 명분이라곤 물류1팀에서 잘라버린 관리자라는 건데 물류2팀의 변명은 그래도 박대리의 형제라는 것.

이건 최부장도 별수 없이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최부장이 긴 한숨을 내쉬며 황부장에게 당부했다.

"내가 잘라버린 사람이니까 불미스런 일 발생하지 않도록 잘 좀 컨트롤 해줬음 싶다. 박반장 성격 알잖아. 내가 꿀릴 건 없지만 김과장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아. 그건 걱정하지들 마시고. 내가 박반장한테 아주 잘 얘기해 놨으니까.. 그리고 문제는 우리 김과장 처신에 달린 거지."

그런데 황부장이 한참 선을 넘어버린 거다. 황부장이 박찬혁을 영입해버린 건 엄연히 물류1팀을 견제하기 위한 영입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 인간 얼굴 보면서 일 못 한다.

그냥 싫다. 싫은 걸 어찌하랴.

"그런데 알고 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두 부장들 앞에서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

"제가 관두겠습니다."

"뭐..?"

"아시잖습니까..제가 그 인간을 어떻게 잘랐는데 왜 다시 데려온다는 겁니까. 한 지붕 아래에서 일 같이 못하니까. 제가 관둔다고요."

"어허. 참. 김과장! 내가 누누이 말했지 않나! 이해관계라고 이해관계!"

"그러니까요 이해관계가 복잡하니까 그런 겁니다. 솔직히 제가 박찬혁 반장을 몇 번 만나보지도 못했고 하루 만났고 하루 만에 해고 시켜버렸습니다. 사람 인성 됨됨이가 그렇게 좋지 못한 것도 맞았고 현장에서 자빠져 자고 술까지 퍼마시는 양반인데 어떻게 그걸 보고 가만히 있습니까. 황부장님께서 무슨 생각으로 박찬혁을 다시 데려오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이해관계 만드시면 이해 못 하는 제가 맘 편하게 관두면 되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인간하고 같이 일 못 합니다."

내말을 끝으로 황부장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담배를 꽁초까지 피워대더니 침을 찍 뱉으며 나를 노려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

"최부장..사내 질서는 좀 지켜야 하지 않겠어?"

황부장이 내 눈을 노려보며 흡연실을 빠져나갔다.

재수 없는 새끼.

나는 최부장을 바라봤다.

최부장도 뭔가 할 말이 엄청나게 많아 보였지만 간신히 꾹 눌러 참은 것 같았다.

황부장과 싸우면 좋을 게 없다는 걸 아는 걸까.

최부장은 그저 내 어깨를 한두 번 쳐대며 무언의 위로를 해줬다.

"걱정 말아라. 김과장."

"최부장님이 저 생각해주시느라 직접 박찬혁이 잘랐다고 거짓말 하셨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한테 박찬혁이 같은 그런 인간 쉽습니다. 그런 인간 무서워서 제가 왜 부장님 뒤에 숨겠습니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

"그런데 최부장님도 그거 알고 계셔야 됩니다. 박찬혁이 저희 사무실에 발 디디는 순간 저 그냥 관두는 겁니다."

최부장이 이해할거라고 봤다.

현장관리자를 해고조치 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비리나 횡령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거의 믿고 맡겨두는 경우가 다분하다.

그런데 그런 현장관리자를 잘라버린 건 몇 년간 내가 유일했다.

최부장도 쉽게 못한 일을 내가 했던 일이었다.

"김과장이 관두는 날이면 나도 관둬. 그러니까 그런 말 말고, 들어가자. 황부장한테는 내가 지속적으로 얘기해 둘 테니까 걱정 말라고."

"네. 감사합니다..부장님.."

역시.

회사생활이 너무 내 의지대로 잘 흘러간다고 했다.

하아.

일에 집중도 안 된다.

산재 퍼센티지를 줄이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저 뱀 같은 인간이 들이닥친 이후로 모든 게 리셋된 기분이다.

내가 박반장 눈치를 보거나 물류2팀 박대리 앞에서 기가 죽을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황부장의 저런 고압적인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뻔히 나하고 싸운 인간인걸 알면서도 물류2팀 현장 TF로 데려온 것부터 언제든지 물류1팀을 견제하겠다는 뜻 아닌가.

파티션 너머로 보이는 저 까치머리 황부장을 보고 있자니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황부장 옆에서 실실 쪼개는 저 자식이 박대리겠지.

지방에 있는 물류센터 오픈 기념으로 오늘 거하게 회식하겠다더니 벌써부터 다들 축제 분위기다.

술로 한번 죽여줄까.

황부장은 예전부터 저런 속보이는 흑심을 간혹 내비쳤다.

나도 최부장도 물류2팀의 저런 공격적인 견제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리저리 펜대를 굴리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오대리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저기 과장님...과장님이 부탁하신 자료입니다. 현장 반장님들 의견 취합했고 개선점과 개선방안에 대해서 현장 별로 정리해놨습니다."

"어..그래. 고생했다. 오대리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고."

오대리와 건물 계단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앞선 물류2팀에 대해 궁금한 게 있었다.

"2팀 박대리 어때?"

"물류2팀 박대리 말씀이십니까?.."

"일산 박찬혁 반장이 물류2팀 박대리 형이란다. 참나. 일이 이렇게 꼬이냐."

"그거 알고 그러 신거 아니셨나요..?"

"내가 그런 것 까지 어떻게 일일이 알고 있어."

"솔직히 속 시원했습니다."

"뭐..?"

"꼴사나웠거든요.. 황부장 뒤에 찰싹 달라 붙어가지고 일은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아주 보면 속 터지는 친구입니다. 과장님이 신경 쓸 친구 아니니 너무 염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크흠.. 물류2팀 황부장은 뭐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찌 변한 게 하나도 없네."

"그렇겠죠..사실 저도 처음에는 물류2팀에 발령 났다가 제가 자진해서 1팀으로 빠지겠다고 했었어요. 과장님도 아시다시피... 속된 말로 양아치 짓거리가 좀 많습니까."

"..아직도 그래?"

"네. 예전에 현장에서 여성사원들한테 껄떡댄다고 말 많았어요. 심지어 저희 정주임에게도 그래가지고 천사장한테 된통 쓴 소리 들었다니까요."

"아직도 그 더러운 습관을 못 버렸네.."

"제가 봤을 때 언젠가 한번 제대로 터질 겁니다."

"나는 황부장이 뭐 현장에서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던 뭘 하고 다니던 신경 안 쓰는데 우리 건드리는 순간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오대리 너도 알고 있어야 돼.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싸한 입김 들어오면 그땐 바로 나한테 얘기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과장님."

물류2팀과 파티션 하나를 두고 업무를 봐야 하는데 숨소리마저 거슬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은 저쪽에서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난 그저 가만히, 얌전히, 묵묵히, 내 일만 할 생각이었다.

그때 물류1팀 단체 깨톡방에 정주임이 글을 올렸다.

정 [황부장 마빡 한 대 갈기고 올 사람 제가 만원 드림]

고 [제가 하겠습니다. 만원이면 될까요?]

정 [콜.]

오 [마빡 두 대 2만원.]

김 [한 대 더. 3만원.]

최 [이제 그만들 하지.]

김 [물류1팀의 산업재해 건수를 일주일동안 1%미만으로 낮추십시오.]

정 [과장님..갑자기요?]

김 [ㅇㅇ 성공하면 한턱 쏨.]

크크

그래도 물류1팀 직원들이 내 마음과 같아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

* * *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먹으면 폭탄주라고 했다.

속에서 뻥하고 폭탄이 터지듯 쏴하게 내려가는 그 시원함과 다음날 머리가 터져버리는 숙취.

그래서 폭탄주는 사람들에게 하루를 날려버리는 폭탄과도 같다.

그래서 먹겠지.

나도 지금 먹는 거고.

그런데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 않는 건 재미가 없다.

술을 먹으면서 잊고 싶은 것도 있고 취기로 하소연하고 싶은 속내도 많은데 말이다.

오랜만에 명석이를 만난 자리는 그래서 2%부족하게만 느껴졌을까.

"표정이 왜 그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갑지도 않냐?"

"반가워. 아주 반가워 미칠 것 같은데. 오늘따라 술이 너무 물 같다."

"새끼. 소주가 물 같으면 오늘 넌 좆된거야. 취할 준비 해야겠네."

"그런가?"

명석이와 소주잔을 부딪히며 시원하게 한잔 들이켰다.

명석이가 소곱창을 한 점 먹으며 하소연하듯 말했다.

"깨톡방에 친구라는 놈들은 그저 지들 자랑질만 해대지. 어휴. 솔직히 꼴사납지 않냐?"

"언젠가부터 그랬지. 그래도 잘살고 있는 모습 보니까 좋은데 뭐.."

"좋긴 개뿔. 요즘은 아주 깨톡방을 폭파시켜 버리고 싶다니까. 진수는 왜 여행 다니는 걸 매시간 올려대?"

"크크. 부럽냐?"

"안 부럽게 생겼냐. 존나 부럽다. 너랑 나랑은 원체 사치란 걸 누려보질 못했잖냐. 너 비행기 타봤냐?"

"아니."

"병신. 크크."

"너도 안 타봤잖아."

"작년에 탔어. 제주도 갈 때."

"기내식은 먹어야 비행기 탔다고 얘기 할 수 있는 거야.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쪽팔리다."

"도일아."

분위기 갑자기 싸해졌다. 명석이가 이렇게 나긋한 목소리를 한다는 건 뭔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와 뭔가 헛짓거리를 하기 시작했을 때다.

"뭔 일 터졌구나. 뭔데?"

명석이가 괴로워 보였다. 굉장히.

"나 결혼한다."

"...."

"미안하다. 먼저 가서."

"잘됐네. 갑자기 놀랬잖아. 뭐야. 그 표정은."

"씨이발.. 그렇게 됐다. 이제 네가 우리 친구들 중에 유일한 총각 아니냐. 그래서 사과하러 왔다."

"개새끼. 술이나 자셔."

한 놈 또 가는구나.

다시는 돌아올 수 저 먼 바다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때면 거친 파도에 좌초된 선장의 모습이겠지.

"누구야?"

"거래처 돌아다니다 만났어."

"바쁘다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연상이야."

"몇 살?"

"10살."

"오."

그저 솔직한 내 리액션이었다.

"돌싱?"

"그냥 싱."

"능력자네."

"나한테 매번 잘해줘."

"너 예전부터 그랬잖아. 언젠가 엄마 같은 여자 만나보고 싶다고. 항상 너를 케어해주고 아껴주는 여자."

"..."

"꿈을 이뤘네."

"그래. 맞아. 예전부터 얘기했지만 난 전적으로 내 여자를 위해 인생을 바칠 거다. 그런데 반대로 여자도 나를 지켜 줘야 돼."

"그래서. 잘 때 네가 안아줘? 제수씨가 안아줘?"

"그건 비밀이고 개새끼야. 아까부터 계속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아냐. 진심으로 축하 해주는 거야."

"넌 내 맘을 알아줘야 돼. 막말로 네 인생 내 인생 뭐 별거 있냐. 돈에 치이면 가족한테 치여, 가족한테 치이면 회사에 치여, 너도 한번 잘 생각해봐. 언제까지 혼자 살 수는 없더라."

"아냐. 할 수 있어."

"그러냐? 할 수 있냐?"

"어. 잘해. 너무."

"그럼 내가 할 말 없고. 일단 내가 할 말이 뭐냐면 너도 이제 너무 혼자서 독자노선 타지 말고 연애 좀 해. 연애가 뭐 별거냐. 나이 차이 뭐 별거 있냐. 열 살 연하든 연상이든 서로 좋으면 그만이지. 조건 보지마. 그냥 딱! 서로 맘만 맞으면 그만이야."

하긴 명석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결혼이란 주제는 과거에는 멀게만 느껴졌었다.

개뿔 아무 능력 없고 가진 건 몸뚱아리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잘 살아라. 그리고 난 사회고 뭐고 일절 안 한다. 무슨 말인지 알지? 그냥 참석만 할게. 축의금도 두둑하게 낼테니까.."

"너 노래 좀 하지 않냐?"

"아니. 내가 며칠 전에 사고가 나서 성대 결절이 왔어."

"친구가 좀 부탁하면 들어주라. 응?"

"하아..야. 막말로...아니다."

"뭔데. 말을 해."

"내가 네 결혼식 가서 축가 불러봐야 제수씨 지인들 전부 결혼하고 애까지 전부 있을 거 아니냐. 뭔 재미로 노래를 불러."

"너 잘 부르는 거 그거 한곡만. 부탁할게. 친구 부탁 좀 들어줘라. 누나가 이번 결혼식 거의 다 준비 했어..내가 준비하겠다고 한 게 축가 밖에 없다. 너 믿고 내뱉은 말이야. 저번에 통화로 잘 살아 보자며..? 나 잘살게 좀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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