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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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머니마켓이면 식품 위주로 하는 현장이잖아? 여기서 왜 산재가 발생하는 거지?"

"저희 물류1팀이 맡은 파트가 포장 쪽이라 칼을 많이 사용해서 자상도 많고요. 특히 현장이 협소하다 보니 EPT사고가 자주 발생한 것 같습니다."

"음.."

"그리고 제가 현장 관리자와 통화해본 결과 아무래도 시간당 현장 사원들이 쳐내야 하는 물량 할당에 쫓기다 보니 너무 급하게 흘러간다고 하네요."

일단 현장 관리자들의 의견을 묻고 싶었다.

특히 2년간 산재 발생이 가장 많았던 인천물류센터.

총 48건의 산재 리스트 중에 14건이 인천 물류센터에서 발생을 하고 있었다.

나는 깨톡으로 물류1팀의 현장 관리자들을 모두 초대하여 의견을 묻고자 했다.

[안녕하십니까 관리자님들. 워킹휴먼 김도일 과장이라고 합니다. 현재 워킹휴먼 물류1팀에서 맡고 있는 모든 물류현장 관리자님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이방은 산업재해 관련 토의를 위한 방입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일산 조성일 반장입니다.]

[이번에 새로 남양주 현장을 맡게 된 김경태 반장입니다.]

역시 조성일 반장은 충신답게 내 글에 가장 빨리 답글을 달아줬다.

이번에 새롭게 부임한 남양주 반장은 남양주 현장에서 오랜 시간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사원이었다.

고현준 사원의 추천으로 뽑은 인물인데 책임감도 있고 인성도 나름 좋았다.

[최근 산업재해 건수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해 현장의 어려움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는 판단됩니다. 그래서 현장 반장님들께 산업재해의 원인이나 해결 방안 등에 묻고자 하니 상기 내용 확인 하시면 개인 톡이나 해당 방에 언제든 의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남양주 확인 합니다..]

[일산 확인]

[김포 확인]

[인천 확인했습니다.]

아직 읽지 못한 현장관리자들이 있었지만 현장의 의견을 듣고 그 내용을 토대로 현실적으로 반영해 보고자 했다.

그렇다면 산업재해를 좀 더 줄여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조성일 반장이 먼저 글을 올렸다. 일산 현장 같은 경우 지게차 신호수의 부재가 가장 컸다.

[지게차가 오고가는 현장에 신호수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제가 매번 원청에 제안을 했지만 묵묵부답입니다.]

이걸 지속적으로 원청에 제시를 했지만 시간만 계속 지체 됐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신호수 배치 건을 매번 반려 당했다.

그리고 인천 마켓의 현장관리자가 말문을 열었다.

[저희 쪽도 그 부분은 마찬가지입니다. 현장내 지게차도 많이 돌아다니는데 신호수가 없으니 현장 사원들이 직접 보면서 피해 다녀야 합니다.]

[혹시 다른 현장도 다 사정은 마찬가지 인가요?]

[네. 저희도 없습니다.]

.

일단 신호수 배치는 당장 시급한 일이었다. 물류센터 내에 사람 다음으로 많은 것이 지게차였다.

그리고 현장 관리자들이 일제히 신호수 얘기를 꺼낸 것은 며칠 전 뉴스에 보도된 사건 때문이었다.

뉴스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지게차와 현장 사원의 추돌 사고였다.

지게차 운행 중에는 필수적으로 지게차의 신호를 봐주는 신호수가 배치돼야 함에도 사고 현장에는 신호수가 없었다.

왜 없었을까.

첫째도 인건비

둘째도 인건비

셋째도 인건비 탓이다.

지게차 신호수 배치 한 달 인건비와 년 인건비만 따져도 억 단위로 넘어가는 데 사업주 입장에선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겠지.

노동부에서 아무리 안전보건체계를 서류화시켜 만들고 과로 및 작업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백날 돌아다녀 봐야 변하지 않는 건 사업주들의 돈 욕심과 지랄 맞은 하도급 관계의 책임전가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변화하고 싶었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 과거에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내 판단으로 인해 현장 사원들의 복지가 달렸고 생사가 달렸다는 데 큰 책임감이 따랐다.

단순히 시급을 더 높이 받는다고 해서 현장이 안전해지는 건 아니었다.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현장 사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건 원청과 하청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일이고 안전과 관련된 일은 과감한 지출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

지게차 사원은 사람 잘 보고 피해 다니고, 사람도 지게차 잘 보고 피해 다니면 그만일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겠지.

[이번에 지게차 사고 다들 보셨을 겁니다.빠른 시일 내로 신호수 배치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인천 확인.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일산 확인 했습니다~ 파이팅~]

[남양주 확인 했습니다. 과장님 힘내십시오!]

[마지막으로 더 말씀드리자면 현장에서 안전화는 필수로 착용 할 수 있도록 지도 부탁드립니다. 개인 사비로 사시고 영수증 첨부해 주시면 저희가 계좌로 보내드릴 테니 무조건 지켜주세요! 상하차 및 낙하물 있는 곳은 안전모 필수입니다! 매일 사진 찍어서 깨톡으로 보내주세요!]

휴.

현장 관리자들에게 일을 만드는 경우라 그들이 조금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하지 않으면 절대 안 지켜지는 게 현장이다.

아마 대충 사진만 찍고 넘기려는 현장관리자들도 있겠지.

[혹시 사진만 찍고 대충 넘기려는 분들 있으면 업무지시 불이행으로 회사에서 징계 조치 들어갑니다! 필수로 지켜주세요!]

됐다. 이 정도 협박이면 충분하다.

더불어 육체적 노동을 하면서 다치는 경우는 정말 비일비재 하지만 산재를 신청하거나 회사와 합의로 공상처리 하는 것은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어찌 됐든 다치고 싶어서 다친 건 아니지만 개인의 부주의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았고 다치면 관리자들에게 안 좋은 소리가 오가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입 다물고 사비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관리자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안 그래도 불안전한 일용계약직이라 생계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식당에서 평생 일하며 사소한 부상 따위는 홀로 참아 내셨을 거다.

그런 생각 하니 가슴이 아팠다.

적어도 내가 맡고 있는 현장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했다.

[만약 현장 사원이 단순 자상이나 아주 사소한 부상이더라도 넘기지 마시고 공상처리라도 부탁드립니다. 저희 회사에서 치료비와 휴업수당 자체적으로 지급할 용의 있으니 참고 바라며 발생시 현장 담당 고현준 사원에게 보고 부탁드립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만약 단순히 조금 살짝 칼에 베였다고 해도 공상 처리합니까?]

[네 무조건 처리하시고 저희한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회사 지출이 너무 많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거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어차피 회사 곳간 아직 여유 있습니다.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네! 고생하십시오. 과장님!]

큰 부상이 아닌 경우는 현장 근로자들도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는 과정이 귀찮아서 회사랑 합의보고 공상으로 처리한다.

근로복지공단 산재 신청서 작성시 재해발생시기부터 목격자여부 재해 발생 경위까지 조밀하고 빼곡한 서류를 보고 있자면 다친 것도 서러운데 조서 쓰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산재 신청 과정은 눈 안 좋은 어르신들은 거의 신청이 불가능할 정도.

이거 누가 좀 쉽게 못 하나.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세 번째 메인 퀘스트 안전욕구의 성공률이 대폭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달성률 40%!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산재 예방과 신호수 배치를 위한 업무를 하는 와중에 달성율이 높은 수치로 올랐다.

"고사원!"

"현장 관리자들 안전교육 16시간 과정 수료 여부나 관리감독자 시험여부 전부 확인했어?"

"넵! 제가 어제 현장 별로 전부 연락 돌려서 반장님들 전부 수료 확인했습니다."

"확실 한 거지?"

"네. 확실합니다. 수료증 전부 출력해서 제가 현장별로 우편으로 보내드릴 계획입니다."

"좋아. 그리고 오대리."

"네."

"오대리는 현재 물류1팀 야간 현장 근무자들 전부 특수건강검진 여부 확인하고."

"넵!"

그때 사무실을 박차고 누군가 들어왔다.

물류2팀의 황철현 부장이었다.

그는 최부장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왔던 동료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다고 들었다.

아마 업무 이해 방식이 철저히 극과 극이라는 게 문제일 것이다.

최부장은 현장 사원들 중심이었고

황부장은 오롯이 현장 중심이었다.

그 차이의 힘은 어마했다.

황부장은 현장 중심으로 모든 걸 꾸려 내다보니 원청으로부터 인정을 많이 받았으나 최부장은 그러질 못했다.

"어이. 황부장. 오늘 지방에서 복귀 했다고?"

"팀원들하고 방금 복귀했다. 김과장 어디 있어?"

황부장이 나를 찾았다.

"황부장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흐흐"

"쪼개지 말고 인마. 나와. 담배나 한 대 피자."

나는 최부장의 눈치를 살피며 황부장 뒤를 졸졸 따라갔다.

황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었다.

저 스포티한 머리와 새까맣게 탄 얼굴.

현장에 최적화된 다부진 몸.

매번 마감 시간보다 일찍 일을 끝내 현장 사원들을 조기퇴근 시켜 인건비를 세이브 시키는 인간.

그러나 지속적으로 현장사원들의 노무 관련된 일에 시달리는 양반이었다.

그렇다보니 물류1팀과 2팀의 업무 진행 성격도 너무 달라 간혹 부딪히는 경우도 발생했었다.

[황철현 부장의 능력을 도식화하겠습니다.]

[능력 확인 완료]

[현재 황철현 부장의 능력은 「두목」「욕심「정치」「요설」]

[능력의 설명을 들으시겠습니까?]

「NO」

참 능력도 많은 양반이다. 특히 저 두목이란 능력이 황부장의 내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느 자리에 가든 우두머리로 서고 싶은 성질.

특히 현장에서는 매번 왕 노릇이었다.

흡연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그랬다.

황부장은 오래전부터 담뱃불도 제 스스로 붙이지 않고 항상 부하 직원의 손을 빌리는 사람이었다.

뭐 한번 붙여주고 말지.

황부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뭔가 굉장한 불만이 있는 듯했고 이걸 어디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게만 보였다.

연신 내 앞에서 담배만 뻑뻑 태우던 황부장의 입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며칠 전 남양주에서 잘라버린 현장관리자....박찬혁 반장이었다.

"박찬혁이 네가 잘랐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황부장 입에서 왜 내가 해고시킨 현장관리자 이름이 나오는지 의아했다.

"네. 제가 잘랐습니다."

황부장은 이내 침을 찍 한번 내뱉었다.

그리고 캔 커피를 한 모금 좍 마시더니 캔을 한손으로 찌그러뜨리며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짜증나는 인간.

그래도 저 덩치는 좀 무섭다.

"박찬혁이 왜 짤랐어?"

"양아치라서 그랬습니다."

"걔가? 어딜 봐서?"

"현장에서 취침, 음주, 현장이탈, 그래서 즉각 해고 조치했습니다. 황부장님 혹시 문제 있습니까?"

솔직히 말했다.

박찬혁 반장은 나와 맞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관리하는 현장이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황부장의 생각은 달랐나보다.

"김과장 많이 컸네. 현장 관리자도 서슴없이 잘라버리고..사실은 말이다. 네가 자른 박찬혁 반장이 우리 물류2팀 박대리 형제거든. 너 그건 알고 있었냐? 최부장이 그건 얘기 안 해주든?"

"따로 들은 얘기는 없었습니다."

"너 때문에 지금 우리 박대리 회사 관두네 마네 난리인건 아냐? 전후 사정은 좀 보고 행동 했어야지. 식구끼리 이러기 있는 거냐? 엉?"

"제가 그 부분은 몰랐습니다."

일이 아주 좆같이 꼬여버렸다.

간혹 제 식구 챙겨주는 명분으로 현장에 자기네 가족들 꽂아 넣는 경우가 많은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하필 물류2팀 박대리 형제라니.

그런데 이거 최부장이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그때 최부장이 헛기침을 하고 흡연실 내부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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