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엄마가 조금 걱정됐다.
"엄마. 내가 한 가지 부탁만 할게."
"응?"
엄마가 커피를 마시다 내 눈을 바라보며 커피 잔을 내려놨다.
"엄마가 언제까지 일할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관둬도 돼. 그러니까 무리해서 일 나가지 말고.."
"난 또. 내가 알아서 해."
"그리고 만약에 엄마가 생각했을 때 뭔가 식당이나 파출이나 뭔가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나한테 연락해. 알았지?"
"네가 변호사야?"
"약속해."
"그래 약속."
엄마와 간단히 커피를 한잔 마시고 로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말했다.
연신 싱글벙글 이었다.
엄마는 500장의 로또를 단순히 시장 장보거나 급전이 필요할 때를 위해 아껴둔다고 했다. 나는..당장 뭘 할까 싶었다.
오백장의 로또를 바꾸는 것도 문제다.
으흠.
* * *
"로또5등? 세상에 5등에 관심 있는 인간들도 있었나? 허허. 걱정 말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오백장의 로또 용지를 들고 있는 나를 보며 웃었다. 할아버지 복방에 로또 5등이 대량으로 당첨된 걸 확인하고 이미 현금을 잔뜩 뽑아온 상태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긴장이 되는지 마른 침을 삼키며 복방 문을 잠그고 셧더를 내려버렸다.
500장의 로또 용지를 일일이 당첨 스캔을 해서 1등 여부를 가리는 일이 할아버지에게 중요했겠지만.
로또LV1 당첨지역 확인 스킬을 이용하여 이 근방에 1등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을 한 상태였다
내가 이렇게 운이 없었나?
할아버지는 이내 로또를 일일이 기계에 스캔을 하였고 500장의 로또를 스캔하는 시간은 딴짓 하는 시간 제외하고 약 3시간이 걸렸다.
500장의 로또, 2,500개 조합의 총 당첨금액은 로또 3등과 4등을 포함하여 약 1850만원.
3등 로또 용지는 세금을 제하기 때문에 은행에서 교환을 해야만 했다.
복방 할아버지에게 당첨금액의 10% 185만원을 건넸다.
한 번에 500장을 사게 해준 건 할아버지에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일일이 마킹해가며 반자동으로 사는 일은 정말 완전한 고역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4등 로또를 위해서 복당 할아버지에게 좀 더 친밀하게 다가가야 했다. 크크. 참고로 4등도 세금이 없다.
당첨금액을 현금으로 16,650,000원을 건넸다. 오백만 원을 투자해서 대체 하루 만에 얼마나 번거지.
나는 할아버지가 건넨 현금 뭉치를 가방에 넣고 복방을 떠나려는 찰나 할아버지가 나를 붙잡았다.
"총각. 어떻게 한겨?"
"네? 뭘 어떻게 해요? 로또에 무슨 방법이 있나요. 그냥 믿고 찍어보는 거죠."
"믿기지가 않아서 그려. 내 평생 복방 운영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고 말이야."
"...사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언젠가 잘 될 날 있을 거라고. 그게 제 인생에서 오늘인가 보죠.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나는 쿨하게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복방을 빠져나왔다.
구불구불한 다가구 밀집 골목을 걸으며 당장 이 돈으로 뭘 할지 고민이었다.
차를 살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대로 렌트해서 쓰면 될 일 이었다.
어휴.
당장 돈이 생겼는데 왜 막상 제대로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이게 지긋지긋한 가난으로 인한 습관 때문인가.
돈이 생기면 그저 주머니에 쑤셔 넣기 바빴으니 지출이 겁나는 게 당연하지.
그런 성격을 버려야 했다.
집으로 들어 간 뒤 가방에 있는 현금 뭉치를 모조리 꺼냈다.
그리고 남김없이 침대에 현금을 뿌려댔다.
침대 위에 뿌려진 지폐를 보며 나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점프!
하아..
이게 행복인가.
돈밭에 굴러본 이가 진정한 행복을 할 것이다.
과거에는 돈 때문에 못살 것 같았는데, 이제 돈 때문이라도 진짜 너무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돈밭 위에서 휴대폰을 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를 해볼 생각이었다.
사치를 해야 한다.
이제 돈은 나와 친하게 지내야하고 앞으로의 인생에서 항상 나와 더불어 지낼 사이였다.
돈이랑 깊은 관계를 맺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과감히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겠지.
크크.
휴대폰 인터넷 쇼핑을 하다 내가 평생토록 갖고 싶었던 물건을 찾아냈다.
TV
그것도 사람 몸집만한 TV였다.
남들은 명품 매장에서 옷이나 시계 등을 사려고 했겠지만 어릴 적 TV를 맘 편하게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로망이 생겼다.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TV앞에서 멍 떄리는 거. 그런 삶이 온다면 그게 제일 행복이라고 봤다.
그리고 나는 천만 원을 호가하는 85인치 TV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방 벽을 거의 다 가릴 듯 엄청난 크기의 TV였다.
* * *
주말이 너무 일찍 지나가버렸다. 머릿속에 행복회로를 돌리며 시간을 축내다 일요일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제 뭐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어떤 퀘스트가 나를 반길지 몰랐다. 퀘스트를 지속적으로 깨서 로또 LV10까지 노려보는 거다.
그런데 왜 세 번째 메인퀘스트가 발현이 되질 않는거지? 시스템 오작동이라도 있는건가?
[현재 휴먼매니저는 김도일님의 휴식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휴식이라니. 지금 쉴 시간 없다고. 당장 세 번째 메인 퀘스트를 띄워.
[김도일님의 세 번 째 메인 퀘스트를 발현하겠습니다.]
[인류 재생 프로그램의 세 번째 미션]
[안전 욕구]
「완료 보상 1000UNI」
「제한 시간 무제한」
[미션달성조건 - 안전에 충실하십시오.]
안전욕구.
사람이 살면서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며 살아가는 데 그중에 하나가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안전욕구였다.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집이나 주위 환경이 안전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중의 기본.
어떻게 보면 생존을 위한 욕구라면 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흐흐.
어쨌든 이번 퀘스트는 단연코 내게 최적화된 미션이었다.
2년 전 사고가 났고 안전에 굉장히 예민했다.
언제든 죽음의 위기가 닥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돌다리도 몇 번씩 건드려서 걷게 된 성질이었다.
그런데 「안전」이라면 그 기준이 뭐지? 내가 안전적으로 살면 그만인가?
[김도일님의 안전이 1순위입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1005회차 로또 5등 번호를 발현시켰다.
[1005회차 로또 당첨번호는 「1」「10」「12」입니다.]
이만한 안전이 있을까.
지금 당장은 직진이다.
이천만 원의 현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중소형 차를 한 대 뽑을까? 아니면 천만 원짜리 롤렉스 시계를 살까?
분명 내 기준에서는 엄청나게 큰돈은 분명하지만 결국 소형 자동차 한 대 사면 사라질 돈이고 사치를 하기에도 참 애매한 돈이다.
찜 해놓았던 TV도 지금 당장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만약 내게 20억이 있었다면 잠시 샛길로 빠져서 플렉스도 해보고 이것저것 해볼 텐데 지금 당장은 직진이다.
특히 「안전욕구」의 메인퀘스트는 내가 직진을 할 수 있게 휴먼매니저의 배려와 같은 임무가 아닌가 싶었다.
내게는 너무 쉬운 퀘스트.
좋아. 그렇다면 일단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나는 현재 물류1팀의 사무실을 둘러봤다.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사무실의 먼지를 제거 한다면 적어도 위험한 세균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이것도 안전의 한 부류니까.
[미세먼지는 1군 발암물질로서 호흡기, 혈관, 뇌질환을 유발합니다.]
어찌 됐든 이번에 물류1팀에서 맡은 현장은 확실히 안전에 고위험 노출된 부분이 많았다.
일전에 일산부터 남양주까지 그리고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현장들까지 하면 뭐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중대 재해 처벌법
사망자가 1명 발생하거나 동일한 원인의 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한다면 사업주가 막대한 벌금 또는 쇠고랑을 차는 법이다.
자세한 법안은 머리가 나빠서 외우질 못했다.
어쨌든 최근 이런 법안까지 생겨서 안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준비를 하고 안전을 매번 강조해도 노동 현장에는 사고가 너무 빈번히 발생했다.
안전 불감증.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였다.
잠시 한눈판 사이에 내 옷이 컨베이어벨트에 끌려가 버리고, 잠시 한눈판 사이에 낙하물이 머리 위로 떨어져 버린다.
현장 사원들이 안전 교육을 숙지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안전을 몰라서가 아니다.
안전하지 않은 현장을 제공한 사측이 원인이고 문제다.
「안전」에 대한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는 안전 불감증이 아닌 안전 과민증으로 행동해야 했다.
한편 최부장은 물류1팀의 사무실 분위기가 예전과 사뭇 달라진 게 너무 좋은 듯 매번 싱글벙글 이었다.
고사원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묻어 나있었고 오대리는 내 옆에서 뭔가 성과라도 보여주고 싶다는 듯 일에 열중이었다.
정주임은 뭐. 매번 한결같은 친구라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물류1팀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친구.
하긴 이제 일주일이다.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이 많은 일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앞으로 남은 회사 생활 동안 무슨 일이 터지든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직원들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렇단 말은.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겠지. 직원들이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물론 과장이란 직위는 책임도 막중하지만 그 책임도 무섭지 않았다.
왜 무섭지 않을까.
책임이란 말처럼 사회에서 무서운 단어가 없는데 말이다.
직원들이 잘 뛰어 주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오대리, 정주임, 고사원이 내 얼굴에 먹칠하지 않게끔 그런 마음으로 업무에 임해준다면 책임 따위는 무섭지 않았다.
"김과장.."
최부장이 서류 검토를 하다 문득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무슨 로또에라도 당첨된 거야? 왜 그렇게 얼굴이 싱글벙글 이야."
"아. 그러게 말입니다. 기분이 좋네요."
"그리고 있잖아. 저번 주에 샀던 로또 꽝 됐다."
"저도 꽝입니다."
"에이. 회사 때려 칠 줄 알았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