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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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김과장 생각이 그렇단 말이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최부장님이 깊은 생각에 빠져있을 때 나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고사원을 불렀다.

일단 고사원의 생각이 중요했다. 만약 고사원이 현장을 책임지고 관리해보겠다고 콜만 떄린 다면 최부장도 별다른 수가 없어보였다.

최부장이 온 몸에 땀이 젖은 고사원을 보며 조금 놀란 듯했다.

"고사원.. 김과장한테 들었다. 현장 일에도 빠삭하고 사원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사무실보다는 현장일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아..."

현준이가 내 얼굴을 보고 조금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일단 고사원이 만약에 현장을 책임지고 관리할 의향이 있다면 난 반대하지 않아. 어떻게 생각해?"

"저는..."

고사원이 머뭇거리며 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고사원이 욕심을 부렸으면 했다. 비록 사람 상대하는 일 까다롭고 현장 수칙을 숙지하고, 사원들의 근태와 근로계약서, 안전교육 등을 담당해야 하는 데 일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30명의 사원들 중에 완장을 차는 일은 굉장한 경험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고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준이가 홀로 이 현장을 책임지지는 않을거다. 적어도 나도 당분간 네 옆에서 지켜줄 거고 최부장님도 남양주에서 살다시피 할 거야. 앞으로 네가 현장 관리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러니까 너무 겁먹지 마."

"아...과장님..제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제 자리가 있다고 보거든, 현준이 자리는 여기야. 그러니까 이번 기회 놓치지 말고 제대로 한번 해봐."

고사원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부장님이나 과장님이 제게 해주셨던 배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런데...이번 일은 싫습니다."

"뭐?"

"앞으로 계속 부장님과 과장님하고 일하고 싶습니다. 비록제가 부족한 부분도 많아서 실무적으로 실수도 있긴 했지만 계기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믿어주십시오."

"..."

의외였다. 나는 당연히 고사원이 받아들일 줄 알았다. 최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고사원 생각이 그렇다면 앞으로도 사무실에서 잘 해보자고."

"그리고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지..?"

"제가 현장에 있으면서 현장 관리자로 뽑을 만한 사람을 좀 눈여겨 봤습니다. 굉장히 적극적이고 책임감도 있어 보였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분이 맡아준다면 남양주 현장은 걱정 없을 것 같았습니다. 부장님과 과장님께 한 번 검토해주셨으면 합니다."

"좋아. 한번 해보자고."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인생 업적 「동반자」를 달성하셨습니다]

[「동반자」는 앞으로 김도일님에게 전적으로 함께하며 동료가 되는 인물입니다.]

[업적 성과금 500UNI를 입금합니다.]

그렇다면 고사원이 내 인생의 동료란 것이었다.

그래.

현준이 정도면 아쉽지.

남양주 현장을 책임지기에는 나를 잘 따르는 부하직원 한명은 두고 볼 필요가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소속 및 애정욕구」를 완료하셨습니다!]

[완료보상 1000UNI를 지급합니다.]

크크

때 마침 두 번째 메인퀘스트도 달성했다.

그리고 이제 내게는 1500UNI가 생겼다.

내일 당장 토요일. 로또 당첨이 있는 날 이었다.

로또 5등으로 한번 조져보는거다.

[로또스킬을 레벨업 합니다.]

「로또」LV3」

「로또」LV4 상승」

「LV4 SKILL 세 번째 자리 수 확인가능」

[현재 스킬을 발현하시겠습니까?]

「YES」

[1004회차 로또 당첨번는 「3」「15」「30」입니다.]

세상에 1등만 있는 게 아냐! 5등도 있다고 5등!

토요일.

현재시간 아침 아홉시고 저녁 여덟시까지가 마감이니까 총 11시간이 있었다.

일단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털었다.

은행 ATM기로 당장 현금화 시킬 수 있는 금액은 오백 만원.

로또 천 장을 살 수 있는 오천 개의 조합으로 순수 5등 고정 수익 이천 만원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집 근처 로또 판매점은 총 다섯 군데가 있었는데 1회 한도 10만 원 탓에 이 다섯 군데를 계속 돌아다니며 로또에 전부 투자해야 했다.

1004회차 로또 당첨번호「3」「15」「30」을 고정수로 두고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1등을 수동으로 맞춰보려 했건만 완전 개 노가다.

2천장 이상을 수동으로 사야 1등 당첨 확정이었다.

45개의 번호 중 3개를 알고 있다고 1등 경우의 수를 순수 내 인력만으로 이겨내기에는 너무 힘들다.

게다가 시간도 촉박했다.

반자동으로 돌려 버리는 거다.

그렇다면 뭐라도 걸리겠지.

일단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로또 10만원 어치를 산 뒤 또 다른 곳에서 10만원을 샀다.

계속 반복적으로 몇 시간째 돌아다니며 로또를 사재기 하듯 샀는데 복권 판매점 사장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총각 로또에 인생 올인하는 겨?"

복권방 사장 할아버지는 나를 인생 패배자 마냥 바라보며 말했다.

하긴 내가 이곳 복권 판매점에서 몇 시간 동안 구매한 로또만 해도 지금 100만 원 어치가 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짓을 반복적으로 계속하다 보니 이골이 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가 로또에 인생을 걸 작정인데 제게 도움을 좀 주시겠어요?"

"잉?"

"사실 1회 한도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고 있긴 한데 여기서 한 번에 500만 원치 사고 싶습니다."

"안되는데.."

"10% 때 드릴게요. 당첨되면."

"아이고...총각 그러다 낙첨되면 어쩌려 그래."

"제가 되던 안 되던 어쨌든 할아버지가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오히려 이득이잖아요?"

"..."

복방 사장님과 그 자리에서 담합을 해버리고 500만 원어치 한 번에 사버렸다.

크크

"그런데 총각. 인생 그렇게 험난하지 않아. 어찌됐든 노력하다 보면 잘 될 날이 올 거야."

"네 왔습니다. 잘 될 날."

오백만원 어치 1,000장을 가방에 마구 쑤셔 넣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째 몸이 좀 찌뿌둥한가? 내게 남은 자투리 동전 500UNI로 체력을 레벨 업 했다.

「LV1 SKILL 체력충전」

[현재 스킬을 발현하시겠습니까?]

「YES」

[체력이 회복 되셨습니다.]

쏟아지는 잠도 한 번에 가셨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하고 싶었으나 대체 뭘 해야 할까.

* * *

나는 그길로 엄마가 살고 있는 경기도 고양으로 향했다.

엄마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만으로 환갑이다.

본인 입으로는 한창때라며 멀쩡하다고 얘기하는데 성치 않는 몸 이끌고 이 악물고 살았겠지.

아마 엄마의 스킬 내력을 도식화 한다면 희생 만렙으로 예상한다.

30대 중반 먹도록 변변치 않은 월급으로 용돈도 쥐여주지 못했는데 오늘 만큼은 아들 노릇 좀 하려고 마음먹었다.

내가 15살 때부터 엄마는 식당 파출 일을 했으니 이제 20년이 넘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빠짐없이 일을 했는데 안타까운 건 퇴직금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일단 파출 식당이다 보니 근무지가 자주 변경되는 탓도 있었고 파견업체에서 엄마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별 수를 다 썼을 거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현재 파견 일을 하다 보니 업계 돌아가는 것쯤은 좀 훤했다.

좀 일찍 알았으면 적어도 퇴직금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엄마가 사는 어느 한 동네로 향했다.

엄마의 집은 다가구 반지 하였다.

근 2개월 만에 엄마를 마주했다.

서울에서 고양은 넘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있었지만 변변찮은 살림살이에 엄마를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고 찾아뵙고 싶어도 매번 엄마에게 해주지도 못하는 게 많아서 죄책감에 얼굴도 자주 못 보겠더라.

"엄마 나왔어."

내 목소리를 들은 엄마가 문을 활짝 열고 나를 반겼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산재병원 졸업 기념이랍시고 밥을 아주 잔뜩 차려놨다며 얼른 들어오란다.

"뭐 이런 것까지 차려놨어...에이."

2개월 만에 먹는 엄마 밥인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맛이었다.

엄마 얼굴에는 주름만 가득 지며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어도, 엄마 밥은 항상 매번 변함이 없다.

단짠단짠

"엄마. 이제 일 좀 그만하고 편하게 살아."

밥을 먹다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편타. 지금이 제일 편해."

"편하긴. 관절염은 어때? 요즘도 계속 약 먹으래?"

"류마티스는 평생 약 먹고 살아야 한다더라. 뭐 조금씩 줄여주기는 하는데.."

"그러니까.. 일을 계속 하니까 낫지 않는 거야. 남들 엄마 나이면 여행도 다니고 하더만..돈 벌어서 뭐하려 그래."

"잔소리 시작인거지?"

아뿔싸.

"너는 언제 장가들려고 하니? 엄마가 괜히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하는 것 같아? 적어도 네 장가는 보내줘야 할 것 아냐."

"아 엄마가 왜 그런 거 까지 신경 써. 장가 안가. 내 나이 이제 35살이야. 차도 없고 집도 없고 뭐하나 가진 것도 없는데 어느 누가 미쳤다고 나한테 시집을 와?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야 엄마."

"아이고...내팔자야."

"그러니까 엄마. 손주 볼 생각하지 말고 우리 인생이나 살자. 엄마 인생 좀 편하게 살고, 내 인생도 그냥 남들 뒷바라지 없이 온전히 살고 싶다고."

"그래. 그러자. 온전히 네 인생만 생각하며 살아라. 그게 네 복이다."

"..."

매번 결혼 얘기만 나오면 항상 같은 결말로 끝난다.

하찮은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능력에 무슨 결혼?

아니지.

내 능력이면 결혼은 나중에 해야겠지?

최대한 나 혼자만의 삶을 즐기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동생은? 잘 지낸대?"

"작년에 지방 내려갔다. 뭐. 어디 조선소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용접인가 뭔가 한다더라. 벌이도 괜찮고. 할 만하데. 1년 일했고 이제 1년만 더 하면 정규직 달 수 있다던데."

"2년 채우면 정규직 시켜 준다지? 그거 비정규직으로 2년은 최대한 채워서 계약종료 시키려고 하는 사탕발림이야.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어휴...넌 좀..."

"그런데 엄마."

"응?"

"우리 집안은 원체 하청이냐. 엄마도 하청, 나도 하청, 동생도 하청, 머슴 짓도 대감집 머슴이 낫다더니. 크크. 머슴도 그냥 머슴이네."

"말하는 본새하고는. 밥 다 먹었으면 알아서 치워라. 엄마 이제 일 나가봐야 된다. 오늘 자고 갈거니?"

"엄마."

"왜."

"일 가지마. 어차피 거기 일용직 아냐. 오늘 하루 빼버려. 몸 아프다고."

"갑자기. 무슨 일 있어?"

"내가 엄마한테 큰 선물 하나 하려고. 조만간 로또 하지? 내가 로또를 오백 장 샀거든. 당첨되면 엄마 줄게. 믿어봐."

천장이라고 얘기하면 완전히 미친놈으로 볼 것 같았다.

"아이고...내 팔자야. 너 지금 그걸...진심이라고 하는 거니?"

"어. 남들은 1등 되겠다고 1등만 바라보고 로또를 사는데. 엄마. 나는 있잖아. 5등만 노려. 확률도 높지 않아. 1/45야."

"...!"

"그러니까 오늘 엄마 아들이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지 한번 지켜 보라고."

결국 등짝 스매싱

짝!

"내가 널 허투루 키웠구나. 내가 살면서 너희 아버지처럼 키우지 않으려고 남들 돈 한번 쉽게 빌리지도 않았고 내 손으로 내가 직접 먹여 살렸다. 착실하게 모아서 살면 그만인데 이제 정말 그런 희박한 꿈에 인생을 거는 거니? 실망이다...난 헛살았다."

"엄마... 그런 게 아니라."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어. 그런데 이렇게 엄마한테 실망을 안겨주니."

"하."

뭐 예상된 결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진심 엄마를 일터로 보내기가 싫었다.

순댓국집 야간 식당 알바도 이제 관두게 하고 싶었고, 적어도 한 달 생활비 꼬박 몇 백씩만 보내주면 일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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