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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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장은 박찬혁의 말빨에 휘말리다 보면 지갑에서 자연스레 금일봉이 빠져나간다며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조언해줬다.

게다가 이번 현장 방문은 고사원의 강성을 일깨우기 위한 것도 있지만 현장 관리자의 현장 이탈에 대한 조사도 필요한 부분이라 조금은 냉정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박찬혁반장과 맥심 한잔을 타고 흡연실로 향했다.

"별일 없으시죠?"

"네. 그럼요. 사무실에서 인원도 잘 뽑아줘서 별일 없고요."

"여기는 매일 전쟁터죠? 들어보니까 작년보다 물량이 2배 이상은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죽겠습니다. 무슨 이런 현장이 있나 싶습니다."

"그래도 매번 박반장님께서 잘 해주시니 저희들이 아무 걱정 없습니다.. 혹시 쿠몬 본사 직원들하고는 사이가 어때요?"

"터치 없어요. 매번 똑같은 일 반복이니까 서로 쌍욕 오가는 일도 없고."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점 있으면 말씀해주시고요."

"뭐.....있다면 한 가지가 있죠."

"뭐죠?"

박찬혁 반장이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들이켠 뒤 나를 노려보듯 바라봤다.

"비품 지원 좀 자주 보내줘요. 직원들 종이컵이나 커피 같은 지원.."

"그 부분 제가 직원들한테 얘기해서 바로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그런데 반장님한테 따로 비품 관리 수당 입금 되지 않나요?"

“에이.. 그 쥐꼬리만 한 돈으로 이렇게 많은 사원들 어떻게 먹입니까. 아시면서 그래. 그리고 솔직히 현장 사원들 먹을 물이나 커피 정도는 좀 신경써줘야 하는 부분이잖아요. 그렇죠..?"

"저희들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네요. 업무 공유 카톡방에 올려주시면 바로바로 확인해서 보내드릴 텐데 말씀이 그간 없으셔서요."

"저도 현장일이 많아서요. 사무실에서 정기적으로 고정적으로다가 보내주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회사에 얘기해서 정기적으로 택배 보내라고 얘기하겠습니다."

"김과장님이라고 하셨죠?"

"네."

"최부장한테 듣기론 그나마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분이라고요."

"제가 뭐 현장 관리를 직접 해본 것도 아니라 서요. 박반장님에 비하면 한참 멀었어요. 일단 반장님! 현장 한번 구경 시켜 주시겠어요?"

나는 고사원과 함께 박반장을 필두로 현장을 둘러보며 주간 일용직 근무자들을 살폈다.

11T차량에 들어가서 쉼 없이 상하차를 하는 젊은 일용직 근로자들이 온 몸이 땀에 젖은 채로 일을 하고 있었고, 다른 구역에서는 지역별 파레트에 쉼 없이 물량을 적재를 해댔다.

물량이 적재된 파레트는 EPT로 옮겨 이동시키고, 지게차로 윙바디에 상차했다. 그리고 다시 빈 파레트로 채워지면 또 반복.

이렇게 지역별로 나눈 파레트는 쿠몬기사들이 바로 배송할 수 있게 배송지역의 소규모터미널로 향했고, 11T에 직상차하는 물량은 지방으로 향했다.

현장의 소음을 오랜만에 듣고 있자니 지난 날 사고가 났던 악몽이 이따금씩 떠올랐지만 이젠 뭐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

현장 사원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정장을 입은 두 명의 모습을 보고 잔뜩 긴장을 한 것 같았다.

하긴 현장에 정장맨들이 등장하는 것은 항상 뭔가 일이 터졌을 때였다.

나는 그들에게 구십 도로 인사를 하며 그들에게 같은 편이라는 행동을 전했다.

현장 사원들의 복장을 보니 조금은 불안해 보였다. 안전화도 없었고 낙하물이 있는 장소에 안전모도 쓰질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

"혹시 현장 사원님들 안전화는 안 쓰시나요?"

"안전화요? 허허. 김과장님 안전화 지급받은 게 1년 전이고 그때 40개 받았습니다. 그게 아직 남아 있을까요."

"그러면 지금 직원 분들 안전화도 없이 일한다는 건가요?"

"....뭐 하루일하고 관두는 직원들도 있고 길게는 3개월 더 길면 1년 겨우 채우는 일용직 직원들한테 안전화를 사비로 사라고 할 수도 없죠."

"고사원 메모했지?"

"넵!"

박반장은 내 옆에서 연신 메모를 하고 있는 고사원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신입인가요?"

"저희 사무실 막내입니다. 앞으로 현장 TF인원으로 꾸릴 예정이고요."

"반장들 지랄 맞은데. 나이도 한참 어려서 되겠어요?"

"제가 도와줘야죠."

"참..제가 이런 말하기 뭐하지 만은..우리 현장이라는 게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잖아요? 김과장님도 보시다시피 오늘도 알바생 한명이 못하겠다고 도망갔어요."

"아이고..."

"빈번한 일이라 뭐 이제는 신경도 안 쓰는데.. 현장 TF라면 저희 인원 펑크 났을 때 와서 도와준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일단은...뭐 구체적인 계획은 잡지 않았지만 현장 대응 위주 업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박찬혁반장이 이내 고사원이 만만해 보인다는 느낌으로 바라봤다.

조롱기를 품은 듯한 눈빛이었다.

하긴 고사원은 덩치에 비해 얼굴이 너무 순하다.

박찬혁 반장은 이내 무례하게 입술을 삐죽거리며 나와 고사원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우리 과장님하고 사원 분 처음으로 오셨는데 땀 한 방울씩은 흘리셔야 보람차지 않을까요."

박찬혁반장의 저 비아냥대는 모습부터 나에 대한 불신과 무시가 반영된 저 말투까지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박반장을 향해 말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오늘 신규 한 명이 펑크 냈다고 들었는데...그쪽으로 보내주시죠."

그리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고사원은 이미 와이셔츠를 벗어 던지고 흰색 민소매만 입고 있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그간 정장 속에 감춰진 고사원의 저 단단하고 엄청난 이두를.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소속 및 애정욕구의 성공률이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달성율 90%!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네가 이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나의 적극적이고 당당한 말투에 박찬혁반장이 나와 고사원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물이었다.

2L 삼명수짜리 물이 대거 파레트위에 쌓여 있었고 주소 송장을 확인하여 파레트에 지역별로 분류를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깔려있는 파레트만 대충 봐도 10개 정도는 됐다. 한 파레트에 적어도 120개는 쌓여 있는 물이었으니 총 1,200개의 물을 소분해야 하는 상황.

소수의 현장 사원이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하고 있었지만, 작업은 더디기만 보였다.

"신규가 이거 하다가 도망갔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박찬혁 반장에게 기본적인 업무 방법을 전해 들은 고사원이 2L 물을 한 번에 두 개씩 짊어 옮기기 시작했다.

성격만 순했지 팔 근육부터 장난 아니게 붙어 있었고, 그의 다부진 몸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수십 년간 헬스와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었다.

고사원 홀로 미친 듯이 옮기며 파레트 위에 적재해댔다.

이 모습은 마치 히딩크가 박지성을 보는 기분이랄까.

나는 잠시 손을 털고 고사원이 일하는 광경에 넋을 잃고야 말았다.

때마침 박찬혁 반장도 뒷짐을 지며 고사원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새끼가 일하고 있는데 뒷짐을 져?

"저희 직원이 혼자서 고생하는데 도움 좀 주시죠?"

"크흠.."

박찬혁 반장이 내 말에 대꾸도 잘 못 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고사원에게 다가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니 나도 덩달아 달려들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현준이의 체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체력보다 훨씬 앞설 정도였다.

[고현준 사원은 「체력」LV2 상태이상회복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어지럼증, 구토, 현기증 외 일상생활의 상태이상 면역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고사원의 능력은 굉장히 탁월했다. 현장에 완전히 최적화된 스킬을 소유하고 있었다. 솔직히 고사원이 움직이며 일하는 노동 강도를 일반인이 따라 했다면 진즉에 토하고 어지럼증을 호소했을 것이다.

역시 이미 박찬혁 반장의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사무실 직원에게 체력적으로 밀리기 싫은 듯 박찬혁 반장이 이를 악물고 일을 해대고 있었는데, 이건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세 파레트의 물을 다 소분해내고 나서야 박찬혁 반장이 겨우 허리를 일으켰다. 그리고 한숨을 푸욱 쉬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고사원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박찬혁 반장이 내게 다가와 고사원의 움직임을 보며 말했다.

"워킹휴먼 사무실 근무자들은 기본적으로 체력들이 대단하신가 보네요."

"뭐 저희야 현장을 관리하다 보니까요.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죠."

"하...역시 과장님의 탁월한 안목은 뛰어나다니까요...."

"힘드시죠?"

내가 입을 빼죽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박찬혁 반장이 조금 기분이 상하는 듯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박찬혁 현장관리자의 「분노」LV2 천인공노스킬이 집중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박찬혁 반장이 소유하고 있는 분노 스킬이 발현되기 직전에 있었다.

대체 박찬혁 반장이 소유한 분노는 뭐란 말인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박찬혁 반장을 불안한 눈빛으로 살폈다.

때마침 고사원 옆에서 일하는 현장 일용직 사원의 움직임이 둔해지자 박찬혁 반장의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빨리! 지금 몇 시간째 이것만 하고 있을 겁니까! 지금 뭐 봉사하러 왔어? 놀러 왔냐고!"

고사원은 박찬혁 반장의 고함질에 놀란 듯 일을 하다 말고 갑자기 멈춰 서서 들고 있던 물을 내려놓고 그저 멍해져버렸다.

일용직 사원들은 일상적인 질타인 듯 애써 몸을 더 움직이고 있었다.

고사원의 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는 고사원을 불러들였다

"이제 그만하고 나와. 현준아."

"네.."

고사원이 풀이 죽은 채로 내게 다가왔다. 박찬혁 반장이 지속적으로 고함을 칠 때마다 현준이의 몸이 움찔거리며 놀라는 것 같았다.

* * *

"혹시 제가 움직임이 둔했나요..?"

고사원과 함께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음료수를 마시며 벤치에 걸터앉자 고사워이 아까의 일을 되풀이하며 말했다.

"너한테 그랬던 거 아냐.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같이 일했던 현장 사원분들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눈치 없이 너무 빠르게만 움직여서 괜히 욕먹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하아..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천천히 움직일 걸 그랬습니다."

[고현준 사원이 타인의 육체적 고통을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고현준 사원이 「이타」LV4의 스킬의 발현 조건에 부합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서 도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우리 일이 아냐.."

"..."

"넌 저기서 일하는 분들이 불쌍해서 그런 거야?"

"불쌍한 게 아니라...그저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단은 내버려 둬."

"네..?"

"너는 사무실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너무 남들만 신경 쓰는 거 아냐?"

"죄송합니다."

"죄송한 게 아니라..하아..남들이 힘들어 보인다고 매번 도와주면 네가 힘들 때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도와줄 것 같아? "

"..."

"고사원이 사회생활 처음인 건 알겠는데 네가 이타적인 그런 마인드로 살아가는 건 네 자유야. 그런데 매번 남들 도움만 주면서 살건 아니잖아?"

"맞습니다."

"현준이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는 내가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너 그런 성격이면 사회에서 이용만 당할 거야. 인생 선배로서 얘기하는 거다."

"..."

"그건 이타적인 게 아니라 너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진심 완전 호구야...."

고사원이 벤치에 풀 죽은 자세로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진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무거운 분위기를 애써 풀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괜히 현준이에게 오지랖만 부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기분은 음료수 한 캔을 다 비우는 동안도 살아나지 않았다.

"과장님..말이 좀 심하십니다."

"뭐..?"

"과장님께서 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다고 했지만...그걸 모르면서 제 성격을 매도하는 건 잘못 됐다고 생각합니다...분명 회사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질 않는 성격인건 맞지만.. 이렇게 모욕당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아까 같은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해야 맞을 것 같아? 그저 바보 멍청이 같이 놀란 토끼 마냥 서서 나를 바라보면 내가 도와줄 것 같아?"

"그건..."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잖아? 네가 욕먹을 상황도 아닌데 싸잡아서 욕먹었으면 적어도 너는 네 할 말은 했어야 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격이.."

"하...그건 내가 알 필요 없고."

"네.."

"어차피 넌 내가 키우려고 데려온 친구고, 내가 어떻게든 잘 교육 시켜 보려고 최부장님한테 부탁해서 현장으로 데려온 거라고."

"...."

"그런 내 새끼가 밖에서 쥐어 터지고 들어와서 남 걱정이나 해대면 내 속이 어떨 것 같아?"

"..."

"아니다..내 능력에 무슨 오지랖을 부리냐. 어쩌면 네 말따나 네가 살아온 환경이 있는 거고 네 성격이 있는 건데."

"그건...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너도 내 말을 흘려듣지 말고 이참에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 네가 이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아...."

"방금은 말 잘하더니 이제는 또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거야?"

[고현준 사원의 「허물의 벽」이 무너지며 감정 과잉 상태에 돌입합니다.]

"저도 잘하고 싶습니다!"

고현준 사원이 갑자기 벤치에서 일어나 내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소릴 질러댔다.

"잘하고 싶다면 내가 묻는 말에 잘 생각해봐. 아까 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면 넌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됐을까?"

"제가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죄송합니다.."

[고현준 사원이 「이타」LV4 불의철퇴 스킬발현 조건에 부합됐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달려드는 맹견의 성질입니다.]

띠링!

[축하드립니다! 서브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고현준 사원의 강성 스킬이 오픈 됐습니다.]

「완료 보상 500UNI를 입금합니다.」

[현재 고현준 사원의 스킬 목록을 도식화 하겠습니다.]

[「이타」LV4 「체력」LV2 「강성」LV1]

「서브퀘스트 완료 보상 500UNI를 입금합니다.」

고사원이 제 스스로 강성적인 면모를 가지게 됐다는 것을 알 수나 있을까.

상대방의 내력을 도식화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나만의 능력이긴 했지만 현준이의 감정이 궁금하기도 했다.

강성의 스킬이 오픈됐다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 텐데 멀뚱히 앉아 먼 산만 바라보는 저 멍한 표정에 어떤 강성적인 면모가 숨어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때마침 현장 사원들의 쉬는 시간인 듯 야외 벤치에 저마다 자리를 차지해 앉았고 박찬혁 반장이 흡연실에 있는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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