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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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과장님! 부장님께 들었습니다. 혹시 제가 야간 근무로 빠질 수 있는 겁니까?"

"빠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면 네가 희망을 한다는 거지?"

"네! 부장님께 들어보니 야간근무면 시급도 오르고 서류작업도 안 해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부장님이 그사이를 못 참고 현준이에게 한번 떠본 것 같았다.

"서류작업이라...."

오대리의 눈치를 살폈다. 오대리의 인상이 잔뜩 구겨져 있는 모습에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오대리가 말문을 열었다.

"고사원. 말을 똑바로 해."

"네..?"

"잡일이나 서류 작업이 싫어서 야간 근무로 빠지고 싶은 거야?!"

"그건 아닙니다."

"너 현장 출근부 취합 다 끝나긴 했어?"

"아니요..."

"내가 그거 해달라고 아침부터 얘기했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오늘 안에 끝내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매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반복이잖아. 아주 내 귀에 피가 나요. 출근부 파악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현장에서 엑셀 파일로 보내주는 거 현장 별로 취합해서 급여 팀한테 빨리 보내줘야 할 것 아냐. 너 때문에 현장 일용직 사원들 당일 일급 못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이게 어려워?"

"아닙니다."

"기본 중에 기본이잖아. 그런 일도 못하면서 무슨 현장 관리를 해보겠다고 나서냐고."

"...."

"오대리 적당히 해. 애 기죽이지 말고."

"김과장님 사실 고사원이 마침 와줘서 제가 얘기하자면요. 이 친구 완전 고문관입니다..너 솔직히 이름도 고문관이지?"

"죄송합니다...대리님..."

순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간 오대리와 고사원 간에 미묘한 감정선이 타고 있었던 것 같았고, 내가 불씨에 불을 지핀 꼴이었다.

"일단 오대리 알았으니까...사무실에 먼저 올라가있어. 그리고 넌 잠시 남아."

오대리가 고사원에게 눈을 흘기며 사무실로 다시 올라가자 고사원의 눈매가 조금씩 촉촉해지고 있었다.

"너 지금 우는 거야?"

"아뇨..눈에 담배 연기가 들어갔습니다."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오대리하고 사이가 안 좋았어?"

"사실..예전에 제가 근로계약서를 잘못 파악해서..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노동부에 신고를 먹었습니다...그때부터 인 것 같습니다..."

"그러냐...? 근로계약서 미신고면 그때 벌금 꽤 깨졌겠는데?"

"삼백 깨졌습니다."

"참...하아.."

하긴 뭐 신입이 간혹 크게 해먹는 경우가 있긴 한데 삼백은 좀 쌨다.

그제야 최부장이 고사원 얘기를 꺼냈을 대 크게 거절하지 않은 부분을 알았다.

내가 교육을 하겠다고 자처했으니..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현준아. 일단 오늘 저녁에 시간 되니?"

"네..저 오늘 일이 있어서.."

"그래..푸욱 쉬고 내일 얘기해보자고.."

"네...알겠습니다."

고사원을 어떻게 서든 업무 능력을 올려놔야만 했다.

그래도 뭔가 특별한 재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찾으면 분명히 나온다.

[고현준 사원의 능력을 확인중입니다.]

[능력 확인 완료]

[현재 고현준 사원의 능력은 「체력」 「이타(利他)입니다.]

[「이타」의 설명을 들으시겠습니까?]

「NO」

이타..? 하아..이건 뭐 업무에 전혀 상관없는 능력이 아닌가 싶다.

내가 발현할 수 있는 스킬 능력에 비하면 너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타적이라면 본인보다 상대방의 이익을 더 중요시여기며 본인 밥그릇도 잘 못 챙기는 성격이 아닌가?

때마침 고사원이 흡연실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고 있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포기하고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취업한 곳이 워킹휴먼이란다.

그래..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사회 초년생 친구에게 너무 극단적으로 갈구는 건 안 된다.

그게 오랜 시간 트라우마가 된다.

현준이를 어떻게 한번 잘 키워 볼 수밖에..

[고현준 사원의 신뢰도와 믿음이 상승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서브퀘스트가 발현 됐습니다!]

[고현준 사원의 숨은 능력 「강성」의 잠재성을 일깨워 주십시오.]

의외다. 고현준 사원에게 강성의 잠재성이 존재한다면 단연코 쓸모가 있었다.

「완료 보상 500UNI」

「제한 시간 12시간」

[미션달성조건 - 고사원을 각성하여 강성의 잠재성을 발현하십시오.]

[퀘스트 실패시 패널티 - 없음]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흐흐. 단연코 예스다.

앞으로 나랑 잘해보자고.

일단 고사원과 면담을 해야 했다.

고사원이 진정 이 회사에 무슨 뜻을 품고 있고 앞으로 현장을 담당하게 될 텐데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솔직히 택배 물류 현장은 온갖 인간 군상들이 즐비한 곳이라 현장 관리자들은 굉장한 강성들로 배치하곤 한다.

왜.

본사 관계자들과 강성인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기가 죽으면 안 되니까.

한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

일급 벌겠다고 깡패 한 명이 현장에 왔었는데 일이 너무 힘들다며 현장 관리자의 싸대기를 날리고 도망친 사건.

물론 물류1팀이 아닌 물류2팀의 사건이었지만 말이다.

육체적으로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다는 택배 현장은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었지만 적어도 내가 맡은 현장은 조성일 반장과 같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소유한 분들로 관리자를 배치하곤 했다.

그게 더 현장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관습화된 현장 성질 탓과 편견 때문에 현장 반장의 성질은 어딜가나 비슷했다.

고사원을 불러들여 함께 백반 집으로 향했다.

식탁에 반찬들이 즐비하게 깔리자 고사원은 연신 입맛을 다시며 식당 아줌마의 일손을 덜어주며 반찬그릇을 세팅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고사원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고사원 요즘 들어 힘든 게 있나?"

내 질문에 고사원의 표정이 조금 냉랭해졌다.

"힘든 거요..? 없습니다..."

"밥 먹자."

나는 고사원의 눈빛을 자주 살폈다. 뭔가 덤덤한 듯 보이지만 그 눈빛 속에 불안감이 가득해 보였다.

"과장님..."

"응?"

"저 잘리나요..?"

"갑자기..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사실...예전에 근로계약서 파악을 잘 못 해서 벌금 삼백만 원 깨졌을 때...언젠가 제가 잘릴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거든요..."

하긴 갑작스럽게 과장직위와 막내 사원이 밥을 먹는다는데, 고사원 입장에서는 뭔가 비보를 들을만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잘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과장님 눈에는 한참 모자라고 아직 사회생활도 부족하긴 하지만요.."

"잘 할 수 있을 거야. 걱정 말고... 밥이나 먹어.그리고 잘린다는 그런 말 하지마..우리 부장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지 고민 중이니까."

"네..감사합니다.."

"현준이 얼굴 보면 요즘 일이 많이 힘든 것 같아서. 그래서 물어본 거야."

"사실 힘들다긴 보다는... 제가 실수가 잦아서요.. 선임들이 힘들어 하시는 게 보입니다.."

"음...어떤면에서?"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요..그래서 과장님한테 솔직히 말씀드리면..제가 현장 업무로 빠지면 그나마 사무실 분위기가 나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고사원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굉장히 남들 배려하는 성격이잖아?"

"어떻게 아셨어요..?"

"매번 탕비실에 있는 커피 고사원이 채워 넣지? 프린터기 A4도 마찬가지고 사무실내 안 보이는 구석구석 오대리나 정주임 불편하지 않게 지원해주는 거 알아."

"아..."

"단순히 현준이가 막내라서 그런 일을 자처하고 나선다는 느낌보다는 사실 누구한명 시키지도 않은 일을 나서서 하는 거잖아? 그치?"

"네 맞습니다.."

"오대리도 잘 알고 정주임도 잘 알거야. 현준이가 사무실 내에서 미치는 영향을 말이야. 만약 현준이가 사무실에 없으면 당장이라도 찾지 않을까?"

"...."

"회사 내에서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 무슨 일을 하든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기죽지 말고 어깨 피고 다니라고 덩치 아깝잖아."

"네..알겠습니다."

"앞으로 나랑 잘해보자고."

"네.."

현준이의 큰 덩치가 아깝게 너무도 순한 성질을 가졌다. 그의 강성적인 면모를 어떻게 뽑아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솔직히 이번 퀘스트는 너무 어렵다. 휴먼매니저라면 순전히 나를 위한 매니지먼트가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거 스트레스만 엄청 쌓이는 퀘스트잖아!

[.....]

대답을 해! 이게 지금 맞아? 내가 아무리 휴먼매니저의 나침반을 믿고 따른다고 해도 스트레스 받아가며 할 필요는 없잖아!?

[휴먼매니저가 김도일님의 스트레스를 감지합니다. 현재 스트레스 지수 70%]

[위험지수에 도달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방안을 탐색중입니다.]

[탐색완료]

[고현준 사원과 현장을 함께 가십시오.]

음. 일이 꽤 쉽게 해결됐다.

휴먼매니저를 협박하려 드는 건 아니었고, 적어도 내 스트레스를 관리를 해주는데 스트레스 받아가며 휴먼매니저를 이용할 수 없으니까.

크크.

* * *

고사원과 점심을 먹은 뒤 사무실로 향했다. 앞으로 있을 고사원의 각성을 위해 어느 현장에 갈지 고민이 앞섰다.

"김과장 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연신 고사원의 각성에만 정신이 팔린 탓에 최부장의 부름에도 대답도 못해버렸다.

"부장님..저희 이번에 현장TF 충원 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어..그래.."

최부장이 연신 고사원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고사원도 현장TF라는 말에 귀가 쫑긋해진 상황.

"현준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사원이..?"

최부장이 머릴 긁적거리며 고사원을 바라봤다. 고사원이 다소 놀란 듯 침을 꿀꺽 삼켜댔다.

"솔직히 부장님이 바라는 수준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긴 하지만...저 덩치를 보십쇼. 여기 사무실에만 있는 게 좀 아깝지 않습니까?"

"사실 그렇긴 하지.. 언젠가 고사원이 들어 왔을 때 인재가 왔구나 싶었거든."

나와 최부장의 칭찬 릴레리에 고사원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최부장이 고사원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기 시작했다.

"김과장.. 고사원데리고 남양주 한번 갔다 와봐."

"남양주..? 남양주라면 제가 2년 전에 사고 났던 곳..."

"가서 현장 좀 둘러 보고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무슨 일 또 터졌습니까..?"

"정주임! 아까 일용직 사원에게 전화 온 게 무슨 내용이라고 했지?"

"현장 관리자가 현장에 없고 차에서 퍼질러 잔답니다."

"들었지. 김과장? 일용직 사원이 직접 우리 사무실에 전화해서 고발한 내용이야."

"에이...설마요."

"알잖아. 일용직들 앞에서 대장인데 누가 건드리는 인간들 없으면 현장 관리자들 가끔 그래."

"참나.."

"잘됐네. 이번 기회에 고사원이랑 같이 남양주가서 현장 좀 둘러보고 현장 관리자가 어떤 개판을 치고 있는지 좀 파악해봐."

남양주쿠몬 현장은 물류1팀에서 맡고 있는 현장 중에 꽤나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이었다.

실시간으로 주문을 받고 익일에 곧바로 배송해주는 미사일배송 시스템을 운영하다 보니 매일 전쟁터와 같은 현장이었다.

차를 타고 향하는데 고사원이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체가 경직되고 삐질삐질 땀을 흘려대는 모습이 완전히 긴장된 상태가 분명했다.

마치 자대배치를 받기 위해 떠나는 훈련병의 모습처럼 보였다.

사실 고사원이 차를 탔을 때 자연스레 뒷좌석에 앉은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할까도 싶었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조수석에 고사원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게 더 신경 쓰일 것 같았다.

"긴장되십니까 사장님?"

"네?"

사장님이라는 말에 고사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뒷좌석에 앉은 모습이 사장님 같으셔서요. 제가 오늘 잘 모시겠습니다."

"아닙니다....감사합니다. 과장님."

* * *

역시 남양주 현장은 변한 게 없다. 2년 전 이곳에서 좆뺑이를 쳤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실제로 어제처럼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현장 관리자가 정장을 차려입고 온 나와 고사원을 보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이고. 별일 없으시죠? 요즘 사무실에서 잘 안들리길래 저희 현장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죠."

지금 내게 아양을 떠는 인간은 쿠몬의 남양주 주간 현장을 담당하는 박찬혁 반장.

그의 나이 40대 초반에 과거 자동차 중고 매매 일을 했었다고 최부장에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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