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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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머리를 싸맸다. 앞으로 넉 달간 이런 식으로 깽판을 쳐댈 거라는 도급사 직원의 으름장을 아마 믿기지 않은 듯했다.

하긴 여태 얼마나 많은 도급사들이 그들 앞에 굽신거렸겠나.

"작업 방식도 개차반입니다. 이건 우리가 손쓸 방도가 없으니 여태 해왔는데, 기본적으로 전동레일 더 설치해주시죠."

"한 대에 이천만 원입니다. 그건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약속만 하시죠. 구두라도 좋고 서면이면 더 좋고."

"일단 지금 당장 해드릴 수 있는 건 넉 달간 시급인상이나 식대지급이니 이 부분 검토는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당신들..어차피 이번이 마지막 일 것 같으니까 한 마디만 하자면, 그따위 업무 마인드로 물류도급? 아웃소싱? 못살아 남습니다. 어차피 업계 소문 파다하게 퍼질 거고, 워킹휴먼은 물류업계에서 퇴출이라 보시면 될 겁니다. 그 정도는 감당하고 말씀하신 걸로 하고 회의 끝내죠."

"아뇨."

옆에서 듣던 최부장님이 드디어 말을 꺼냈다.

"현재 경성택배 일산현장과 계약된 도급사만 일곱 군데입니다. 그 중에 자금난에 허덕이는 회사가 세 군데고, 나머지 네 군데는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며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

"그 말 취소하시죠. 아니라면 제가 책임지고 내일까지 모든 도급사들 전부 발 빼자고 담합하겠습니다."

"지금 저희 겁주는 겁니까?"

"제가 물류 경력만 20년입니다. 그 정도 능력이 안 되겠습니까? 그간 나이도 한참 어린 본사 직원들에게 굽신 거린다고 저희 회사가 개차반으로 보이셨나요?"

"..."

"당신들하고 싸우자는 마음이 아닙니다. 적어도 아무리 도급이라 하더라도 파트너 관계 아닙니까. 개선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그런 막말은 앞으로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일단 구두로나마 약속 해주셨으니 책임지고 안정화 시켜 놓겠습니다. 오늘 일은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 *

온몸에 피곤함이 밀려왔다.

나와 최부장님, 오대리가 계단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날밤을 지새웠고 이제 사무실로 출근하여 인원을 재정비해야만 했다.

최부장이 계단을 내려오다 털썩 주저앉자, 나도 덩달아 옆에 앉았다. 오대리도 내 옆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네.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내일 일이니까."

최부장이 힘에 붙인 듯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라. 고생들 했다."

[축하드립니다! 서브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김도일님의 부하 직원 2명에게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완료 보상 500UNI를 입금합니다.」

로또 5등으로 한번 조져 보는 거다.

오랜만에 육체노동의 한계까지 밀어붙였으니 제 몸이 버텨줄리 만무했다.

온몸이 찌릿찌릿 저렸고 물 한 잔 마시려는 데도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휴우.

하루 만에 발생한 일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무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일이 잘 해결됐다는 것.

시급 만천 원의 성과를 따냈다..

좆빠지게 힘들기 때문에 그 정도는 받아야 마땅하다고 봤다. 그저 무심코 던진 만천 원이었는데 콜 때리는 본사 관계자들을 보니 그들도 어지간히 힘들었겠지.

일반 시급에 야간 수당과 주휴수당이 붙고 주 5일만 일하더라도 일용직 사원들이 한 주에 65만 원 이상은 가져갈 수가 있었다.

이제 일산 현장은 걱정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본사와 대등한 관계에서 최부장이 언급한 파트너관계라는 단어는 지금껏 하청도급이라는 말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언제든 판을 뒤엎을 힘이 있다는 관계라고 봐야 할까.

남들 눈에는 별것도 아닌 일가지고 오버 떤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경력 20년 짬밥의 최부장이 그래도 이제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 능력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그 능력이 완전히 개방한다면 최부장은 각성하겠지.

각성하게 되면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크크

하여튼 일전의 일처럼 본사와 회의를 하며 치고받는 과정중에 최부장과의 호흡이 과거에도 좋았었다.

최부장은 그저 묵묵히 타이밍을 기다렸고, 나는 공격수처럼 계속 골문을 두들겼다.

그리고 마지막 최부장의 한 방은 항상 강력했다.

최부장 나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왔을 것이다.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최부장이 나섰을 것이고.

[현재 김도일님의 컨디션이 하향곡선입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서브퀘스트를 완료하여 500UNI를 획들 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500UNI로 대체 뭘 할 수 있는 거지?

[현재 500UNI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체력」입니다.]

「체력」이라면 체력회복을 할 수 있는 스킬인 것 같은데...고민이었다. 이걸 써 말아..

[「체력」스킬을 레벨업 하여 우선적으로 체력을 회복하시고 다시 환불하시면 됩니다.]

오.. 스킬 초기화까지 가능한 건가?

[맞습니다.]

체력을 레벨 업 해줘.

[체력스킬을 레벨업 합니다.]

「체력」LV1」상승]

「LV1 SKILL 체력충전」

[현재 스킬을 발현하시겠습니까?]

「YES」

뻐근했던 몸이 원상태로 돌아오더니 내 생각도 맑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뭔가를 시작할 수 있을 만한 체력이었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자니 다시금 몸이 근질근질 해져왔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나는 마트에 들려서 일용직 사원들이 먹을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산 뒤 그길로 다시 일산 현장으로 향했다.

* * *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지옥과 같았던 현장이었다.

사원들의 절규로 가득했고 택배들이 제자리를 잃어 바닥에 나뒹굴고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현장을 다시 마주하니 지금도 생각만 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물류센터 외부에 있는 흡연실에 조반장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 너무 고생을 한 탓에 그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급 인상이라는 성과를 따낸 소식을 들었는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사 들고 찾아온 나를 본 조반장의 얼굴이 다소 놀란 듯했다.

"아이고..과장님 오늘도 나오셨어요..?"

"어제는 제가 빈손으로 왔잖아요. 사원들 먹을 간식 좀 사 왔습니다.."

"덕분에 퇴사한 인원들 전부 재입사하겠다고 연락 왔습니다. 아마 시급인상이 가장 크겠죠."

"다행이네요. 휴우...앞으로 당분간 일산 현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요즘 어디 가서 시급 만 천 원 받고 일할 수 있습니까. 아마 줄 서서 일하겠다고 달려들 겁니다."

하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뛰어든 투잡러들이나 일당이 급한 사람들이 달려드는 일이기 때문에 시급 만천 원이면 만족할 수준.

"조반장님은 어떠십니까."

일을 관두리라 마음먹은 조반장 이었지만, 조반장이 현장에 관리자로 남아 있어 주길 바랐다.

"...제가 근래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일에 치여서 일상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만두고 다른 일 좀 해볼까 했는데..일이 잘 풀렸으니 좀 더 다녀야죠.."

"감사합니다. 조반장님 같은 분이 현장에 계셔야 돼요. 아시잖아요. 그래도 반장님 같은 분 안 계시는 거.."

"저야 뭐.."

"어제 있었던 일들 통해서 조반장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일용직 사원들과 함께 땀 흘리고 일하는 모습 보면서 참 존경스러웠고요."

"현장 관리자니 뭐 어쩔 수 없죠."

"혹시 뭐 따로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시고요."

조반장이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코를 훌쩍거렸다.

마치 그간의 짐을 털어낸 듯한 기분이었다.

"...제가 과장님에게 따로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못했습니다.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일이 잘 풀렸습니다."

"아닙니다.."

"사실 저도 수많은 도급 회사들을 거치며 현장을 꾸려 나가긴했지만 이번 워킹휴먼 회사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예전 도급사는 완전히 개차반이었거든요. 어쨌든 과장님 같은 분이 계셔서 저희가 좀 숨을 쉬네요..."

"감사합니다..이제 곧 현장 시작하시죠..?"

"네.. 일단 과장님도 같이 오시죠. 저희 사원들도 과장님 얼굴을 좀 익혀둘 필요가 있죠.."

"에이..거기까지는 안하셔도 됩니다."

"아뇨. 본인들이 시급이 오른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현장은 어제와는 달리 굉장히 많은 사원들로 북적거렸다. 적어도 어제 보다 3배는 더 많아 보였으니 말이다.

조성일 반장이 일용직 사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조회를 하기 시작했다.

"다들 들었다 시피 어제 큰 사건이 있었고 잘 해결돼서 시급 만 천 원으로 인상됐습니다."

조성일 반장이 말하자 일제히 웅성웅성 거리며 웃음소리가 들렸다.

"반장님! 혹시 또 며칠만 하고 또 시급 깎아 먹는 거 아니겠죠?"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모셔왔습니다. 우리 도급사 워킹휴먼 김도일 과장님입니다. 앞으로 시급 인상과 더불어 계약관계에 대해 설명을 더 해드릴 겁니다."

조반장의 소개와 함께 일제히 오와 열을 맞춰 조회를 받는 일용직 사원들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워킹 휴먼 김도일 과장이라고 합니다..여러분들이 매일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작업에 임해주셔서 저희도 힘을 내서 시급 인상이라는 성과를 따냈습니다. 전부 여러분들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원들이 입가에 미소를 내비치며 박수를 쳐댔다. 습관적 박수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기분은 나름 좋았다.

"그리고 한가지 제가 염려의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 회사가 본사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아마 본사에서 자주 시찰을 나와 여러분들이 작업하는 동안 사사건건 간섭할 경우도 생길 겁니다.. 그럴 경우 사원님들께서 대처하지 마시고 조반장님께 바로 말씀드리세요. 여러분들은 조반장님 지시와 워킹휴먼 관계자의 지시만 따를 뿐 절대로 본사 직원들의 지시는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혹시라도 하는 노파심이었다. 본사와 설전이 오간 뒤로 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네!"

"그리고 아쉽지만 저희 워킹휴먼은 경성택배와 재계약을 약 4개월 정도 앞두고 있습니다.."

도급사와 본사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금 비딩 하고 만약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끝이다.

"그럼 4개월만 시급 인상이 되는 건가요..?"

"다만 제가 약속드리는 건 저희 회사가 경성택배 일산 현장 손을 떼더라도 시급은 변화하지 않도록 제가 힘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을 듣던 일용직 사원들의 모습이 조금 주눅 든 표정이었다. 일시적인 시급 인상일 것이라는 사원들 나름의 추측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과장님 덕분에 애들 학원은 하나 더 보낼 수가 있게 됐어요!"

"학원이 최고죠."

또 다른 사원이 말했다.

"이번에 할부로 차 뽑았습니다. 시급 인상 계속 이어 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해야죠...아무튼 다들 현장에서 안전이 최고인건 아시죠. 다치지 않고 항상 안전에만 주의해서 작업에 임해주신다면 감사드립니다."

마무리 인사를 통해 물러나자 사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조반장의 작업 시작 소리와 함께 사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고 나는 다시금 조반장과 함께 흡연실로 향했다.

"최부장님에게 듣기론 어제 설전이 심하게 오갔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모 아니면 도입니다. 어제 보셨다시피 본사 측에서도 함께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까? 현장의 고충을 좀 뼈저리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요."

"아..."

"이제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항상 부당한 일 겪으시면 사무실에 연락주시고요...조만간 또 찾아뵙겠습니다."

"흐흐. 원래 도급사에서 찾아오는 날이면 사건 터졌을 때 아닙니까?"

"에이...설마..."

"흐흐 농담입니다. 얼른 들어가시죠."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인생 업적 「충신의 맹약」을 달성하셨습니다]

[「충신의 맹약」은 앞으로 김도일님에게 전적으로 충성하고 신뢰하는 인물입니다.]

[업적 성과금 500UNI를 입금합니다.]

흐흐. 이거 업적 시스템까지 있었던거야? 그렇다면 조성일 반장이 나를 완전히 충성한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추후에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이다.

현장을 나와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또 다시 좋은 소식이 들렸다.

[김도일님의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소속 및 애정욕구의 성공률이 대폭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달성율 89%!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한 번에 엄청나게 높은 수치가 올랐다.

하긴 일용직 사원들에게 박수를 받은 일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적어도 애들 학원은 하나 더 보낼 수 있고 할부로 차 뽑았다는 사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삶의 보탬이 된 게 아닐까.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대체 이 감정은 뭘까.

일산 현장의 사원들은 매일 새벽 쏟아지는 택배 물량 앞에서 죽어라 일하며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이렇게 물량이 많지 하는 고민을 해왔을 거다.

어쨌든 본인들이 이걸 쳐내야만 퇴근을 조금이라도 빨리하는 것이고 생계가 달린 일이기 때문에 악착 같이 일을 했겠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일을 관두는 거 밖에 없다.

씁쓸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 같다.

나 혼자만 변한다고 해서 뭐 크게 달라지겠나.

가진 건 몸뚱아리가 전부고 내 뼈 깎아 학원비 보내는 분들에게 단 숨이라도 됐다는 거, 딱 거기까지다. 그래도 나름 뿌듯했다.

어쨌든 이 감정은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 * *

사무실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500UNI와 그리고 체력회복 스킬을 위해 썼던 500UNI를 초기화하고 1000UNI를 얻었다.

로또에 무조건 몰빵이었다.

LV2 로또 스킬을 LV3까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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