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급 두 배의 꿀 알바 구인광고를 본 알바생들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알바지옥보고 연락드려요.
"네 안녕하세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21살입니다.
"대학생이신가보네요."
-네 맞습니다. 혹시 오늘 일 할 수 있나요? 일산 택배상하차요.
"네 할 수는 있는데 사실 엄청 힘들 수도 있어요."
-네..?
"일당 두 배와 꿀 알바는 사실 잘 매치가 되질 않죠?"
-네..맞습니다..그래서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일당 두 배는 맞지만 꿀 알바는 아닙니다. 아마 여태 해온 알바 중에 가장 힘들 수가 있어요. 그래도 하실 의향이 있으세요..?"
-네..제가 돈이 급해서요. 무조건 하고 싶습니다.
"네. 그러면 이 번호로 선생님 이력사항 간단히 보내주시고요. 곧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내 통화를 듣던 정주임과 오대리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한 명의 구인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과거 3년간 일을 해왔던 내 방식은 아니었다.
"과장님.. 저희 한 명이라도 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일일이 사실대로 얘기해버리면 저희 인원 못 구합니다."
"솔직히 얘기하자고. 우리가 아무리 급해도 속이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현장이 꿀 알바는 아니잖아."
[축하드립니다! 서브퀘스트가 발현 됐습니다!]
‘응? 서브퀘스트?’
[휴먼매니저에는 김도일님을 재생시키기 위한 다양한 서브퀘스트가 존재합니다.]
[김도일님의 부하 직원들에게 인정을 받으십시오!]
「완료 보상 500UNI」
「제한 시간 무제한」
[미션달성조건 - 최소 2명의 직원에게 인정받으십시오.]
[퀘스트 실패시 패널티 - 없음]
조금만 더 버티면 곧 모든 게 끝난다.
이 상황에 서브퀘스트가 발현되다니.
하여튼 휴먼매니저는 사람 재생 하나는 잘 시킨다니까.
어쨌든 이번 서브퀘스트 성공을 달성하면 500UNI를 더 획득할 수 있었다.
메인퀘스트의 긴 호흡보다는 이렇게 짧게 끝낼 수 있는 서브퀘스트로 UNI를 더 획득 할 수가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오대리는 연신 울상이었다.
사무실에서부터 지금까지 휴대폰을 붙잡고 신규 지원 전화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제 현장 출근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은 상황이라 더 이상의 증원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나로선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현장으로 출발하자고."
"네."
오대리와 나는 회사 차를 타고 일산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오대리가 연신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일산 현장의 경성택배와 계약 내용을 잘 살피지 않고 섣불리 계약한 오대리였으니 아마 마음이 상당히 착잡하리라 생각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죄송하긴 천장에 물이 새면 틀어막아야지. 그게 우리 일이잖냐."
"그런데 신규들이 일을 잘 모를 텐데...하..생각만해도 어질어질합니다."
"오대리가 신규들 빠르게 교육하고 현장 투입시켜."
"네 알겠습니다. 혹시 조성일 반장님도 안 나오십니까?"
"부탁은 했는데...오대리 너 같으면 다시 할 수 있겠어?"
"아뇨..."
"그래. 조성일 반장님이 관둬도 딱히 붙잡을 명분도 없다. 우리로선."
"맞습니다."
"만약에 계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런데 내 입에서 차마 조반장님에게 부탁을 못 하겠더라.."
"저도 몇 번 말씀 드렸지만...조반장님이 계셔서 그나마 지금까지 버틴 거니까요."
"현장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진다면 조반장님 에게 한번 더 전화드려봐. 비록 우리가 그간 신경써주지 못한 부분도 많았지만 고생만하고 관두는 게 참 씁쓸하다."
"네..알겠습니다."
조성일 반장이 남아주길 기대했지만 오랜 시간 소수 인원으로 작업을 해왔던 조반장을 다시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그간 조반장이 버텨왔던 현장이니만큼, 오늘 새벽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 시켜야만 했다.
* * *
현장에 막 도착했을 때는 마치 폭풍전야의 모습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트레일러들이 오가고 11T차량들이 바삐 도크에 차를 정차하고 있었다.
지게차가 연신 움직이며 도크에 쌓인 파레트를 외부로 옮기고 있었다.
다른 도급사 현장 사원들도 출근을 하고 있었고, 흡연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경성택배 일산현장은 대규모 물류단지로 워킹휴먼 뿐만 아니라 타 도급사들도 인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오대리는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고, 나는 물류센터내에 있는 워킹휴먼 현장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조성일 반장이 있었다.
"오늘까지입니다. 오늘만 해보고 더 나아질 상황이 안 된다면 저도 관두는 걸로 부장님과 얘기 끝났습니다."
최부장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네 반장님..그래도 정말 감사합니다...사실 걱정이 많았습니다..현장 반장님이 계셔야 작업이 조금이라도 될 테니까요.. 혹시 기존에 계신 분들 출근율이 어떻게 되나요?"
"일단 제가 부탁해서 오늘 하루 남겠다고 한 분들이 2명입니다."
"아..그러면 신규들 포함해서 총 9명이네요. 작업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하죠! 설마 이 인원으로 작업 하실 생각이십니까..?"
"시작은 해야 합니다."
"사람 죽습니다. 아시잖아요. 김과장님도 예전에 이런 일 겪어서 사고 나신 거 아닌가요..?"
"오늘은 다를 겁니다."
한편 최부장은 경성택배 일산 현장과 계약된 도급사들과 긴급회의를 열었다.
일단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최부장의 간곡한 지시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밀어붙입니까. 뭣도 모르고 출근한 신입 분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
"저 표정들 좀 보세요. 이게 지금 맞는 건지."
나는 사무실에 영문도 모른 채 이제 막 도착한 일용직 신규 사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대체 이게 무슨 현장인가 하는 의문 가득한 모습과 지레 겁에 질린 듯한 공포심이 가득해 보였다.
조반장 말따나 이건 아니다.
나는 신입 분들에게 이런 사태의 전말을 솔직히 얘기해줘야만 했다.
4명의 신입들을 내 앞으로 불러 모았고, 조반장이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같이 힘든 시기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시 오늘 일 못 하나요..?"
"그게 아닙니다.. 다만 오늘은 정말 많이 힘들겁니다.. 그 힘든 수준이 아마 여태 살면서 가장 힘든 일 일겁니다.."
"아..."
아줌마 신입 한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따지듯이 내게 말했다.
"분명히 꿀 알바라고 명시된 거 보고 왔는데요. 그러면 그게 거짓말이라는 건가요?"
"그건 저희 직원들이 실수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 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도 많으셨는데, 지금 집에 귀가하서도 괜찮습니다. 일당의 절반은 쳐드리겠습니다.."
"저 갈래요."
아줌마 한 분이 손을 들고 말했다. 일전 오대리가 문자지원으로 뽑은 신입이었다.
"문자 보낸 연락처로 계좌번호하고 성함 쓰셔서 보내주시면 내일까지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아줌마가 미련 없이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신규들 3명이 서로들 눈치만 보고 어물쩍거렸다. 나는 지체 없이 또 말했다.
"또 다른 분들 계시면 말씀해주세요."
"힘든 일이던 뭐든 간에 일당 2배는 맞죠?"
"혹시 저와 통화 하신 분 맞죠?"
"네 맞습니다."
"오늘 일 끝나면 일당 3배까지 쳐드리겠습니다. 오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얼른 시작하죠."
내가 말하는 걸 지켜보고 있던 조성일 반장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반장은 신규들을 데리고 현장으로 나갔다.
사실 마음 같으면 조반장 말따나 오늘 일을 멈추고 다 돌려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최부장님이 어떤 깊은 뜻이 있겠거니 했다. 본사와의 줄다리기에서 주도권을 잡고 싶다는 데 일단 현장이 멈추면 안 된다는 최부장의 뜻이었다.
* * *
현재 워킹휴먼이 맡고 있는 파트는 간선 상차를 하는 곳이었다. 물량을 분류하여 간선 차량에 싣고 각 지역에 보내는 일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택배가 접수된 물건이 모이는 곳이니 가령 지옥의 알바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 현장이라고 보면 된다.
택배사 마다 작업 방식이 다르긴 했지만 경성택배의 일은 단순했다.
지역별로 분류된 택배를 행낭과 트레일러에 상차를 하면 그만이었다.
곧 있으면 작업이 시작될 때였다.
그리고 조반장과 나는 흡연실로 향해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얘기했다.
"오늘 물량 많습니다.."
"하필 오늘이 월초 피크네요."
"네.. 과장님은 일하지 마시고 상황만 좀 지켜봐주세요. 그게 나을 겁니다."
"아뇨. 같이 해야죠."
"괜찮으실까요? 만만치 않을 텐데요. 오늘 식자재 쇼핑몰 할인 행사 들어가서 쌀도 많을 겁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일단 전반전 물량 어차피 못 쳐낼 겁니다. 그러니 바닥에 쌓아두셔도 무방하니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하아.."
조반장이 인상을 쓰며 현장을 바라봤다.
"제가 현장을 10년이 넘게 돌아다니고 있지만 오늘 같은 일은 처음입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탓입니다."
"최부장님 믿고 오늘 하루는 어떻게 해보겠지만 사실 내일도 별반 다를 게 없겠죠."
".."
"오늘 죽자고요."
현장에서 자동레일이 가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물량들이 쏟아져 내려온다는 뜻이었다. 조성일 반장이 눈을 부라리며 담배를 깊이 한 모금 마신 뒤 현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길게 늘어선 트레일러에 물건들이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가 택배 물량을 상차하기 시작했다.
트레일러 내부는 마치 동굴과도 같았다. 석탄의 갱도 같은 느낌도 들었고, 마치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끝도 없이 밀려 내려오는 물량에 겁이 나긴 했지만 어쨌든 하는 만큼은 해야 했다.
"오대리 힘들지..?"
"괜찮습니다.."
"상하차일은 해본 적 있고?"
"몇 번 해봤습니다."
"너무 자책하지마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모든 게 다 제 탓입니다. 제가 계약서를 잘 검토하고 현장 확인까지 했어야 했는데요..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피해를 입힐 줄은 몰랐습니다.."
오대리가 연신 박스를 상차하며 말했다. 그의 말끝마다 옅은 신음이 흘렀다.
"원래 이쪽 바닥이 그래. 한번즘 뒤통수 맞았으니 다음번에는 잘 하면 되잖아."
"사실..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일에 적성이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일단 오늘 일 마무리하고 더 얘기해보자고."
"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차 분량을 가득 채우고 나니 곧바로 빈 트레일러가 도크에 정차됐다.
곧이어 또다시 시작된 상차.
쉴 틈 없이 몰려 들어오는 물량을 한 없이 바라보며 내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 몸이 기계인 것처럼 말이다.
물량을 들고 쌓고 반복하며 마치 도를 닦는 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님이 천배 만배를 하듯
나도 천개를 쌓고 만개를 쌓는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내 체력이 바닥나 버리고 말았다.
정상적인 인원이 있었다면 1명이 더 붙어서 교대를 해가며 할 수가 있었을 텐데 3시간째 쉼 없이 움직이다 보니 온 몸이 저려왔다. 이제 체력이 버텨주질 못할 것 같았다.
"하아.."
미약한 신음을 내뱉으며 나는 오대리에게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했다.
트레일러 안에만 4시간을 갇혀 있었으니 밖에 상황은 살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동굴 같은 트레일러를 빠져나와 밖의 상황을 살펴보니 이내 내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바닥에 쌓이고 내팽개쳐진 박스들과 신입 사원들의 절규, 그리고 조반장의 고함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일당 3배로 간신히 꼬셨던 신규들의 표정은 이미 울음을 터뜨리고 싶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고, 기존자들도 이 정도의 노동 강도는 처음인 듯 연신 헉헉 거리며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으아 씨발!"
연세가 50대 정도로 돼 보이는 기존자 직원이 소리를 질렀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물량과 소수인원으로 쳐내야할 물량 비례 저 정도 욕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개새끼들아 하차 좀 천천히 해!"
기존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며 욕을 해대는 곳이 하차 팀이었다.
하지만 하차 팀은 우리와 다른 회사라 내가 지시할 수 있는 권한도 없었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개새끼들아 사람 죽는다고!"
"씨발 진짜 이게 사람 할 짓이야!"
기존자들의 연신 외쳐댔지만 하차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들의 하차 속도가 빨라지면 우리한테 달려드는 물량도 그만큼 빨라진다.
어차피 현장 소음 탓에 들리지도 않을 일이고 이곳 상황도 모를 것이다.
나는 조반장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남은 근무시간 5시간, 그중 4시간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지만, 조반장의 얼굴은 이미 쓰러질 것 같아 보였다.
"조반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