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티오를 맞추지 못하는 날이면 현장의 원망을 오롯이 감당해야만 했다.
"과장님 혹시 알바 뽑을 때 노하우라도 좀 있을까요..."
정주임이 내게 물었다. 낙하산 달고 내려온 과장 직위를 직원들은 분명 능력을 의심할 것이다.
정주임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뇌정지가 올 뻔했지만, 지난 일을 회상하며 정주임에게 말했다.
"이번에 펑크 난 3명 친구죠?"
"어떻게 아셨죠?"
"3명이 한 번에 펑크 낸다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일단 저 같은 경우는 시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방학 시즌이니까 아무래도 20살이나 대학생애들이 많이 들어 올 건데, 특히 중요한건 웬만하면 동반으로 가능하냐고 묻는 애들을 차선책으로 두세요."
"한 번에 펑크내니까..."
"네. 그리고 커플도 금지입니다."
"커플...?"
"힘들다고 여자가 못하겠다고 하면 남자랑 같이 도망가더라고요."
"아.."
"그리고 이건 30대 남자들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웬만하면 30,40대 남자로 뽑아요. 특히 물류센터는 그게 좋습니다."
"20대 초반이랑 30대 중에서도 30대로 뽑습니까?"
"네. 20대 초반은 단기적 체력은 오래 못 가더라고요. 30대 40대가 체력이 더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그러면 요즘은 전화지원보다 문자 지원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혹시 거를 수 있는 방법이...?"
"어차피 물류 일이 단순 노동인거 알죠? 이것저것 따지고 들면 뽑지 마세요. 서로 피곤해집니다. 싸가지 없어보여도 좋으니 굴고 짧게 단답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출근율이 좋더라고요."
"아..."
"그리고 펑크가 났을 경우 항상 현장 관리자에게 전달하세요. 그래야 미리 대비를 하니까요. 저희만 알고 있어선 안 됩니다. 현장 관리자에게 욕 한번 먹으면 그만이니까 꼭 말씀하세요."
"네..."
내 말을 듣던 정주임을 비롯해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할 게 없는 노하우이긴 했지만, 그들이 사람을 뽑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했다.
"과장님 커피 한잔 드실래요?"
정주임이 캔 커피 한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좋지."
일단 시작은 좋다.
최부장님의 부재로 사무실내 긴장감이 조금 흐르긴 했지만, 붙임성도 좋고 쾌활한 성격으로 보이는 정주임 덕에 분위기는 조금 살았다.
게다가 허투루 과장직위를 단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휴.
매일 사건이 터졌고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던 지난 회사 생활이 더 나아졌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게는 내 인생을 책임지고 방향을 제시해 줄 휴먼매니저가 있었다.
부담을 내려놓자.
내가 지금 회사에 목메달기 위해 재입사 한게 아니잖아?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로또에 당첨이 될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현장이 꿀 알바는 아니잖아.
나는 정주임에게 부탁하여 그간 워킹휴먼과 계약한 회사내역과 계약내용의 서류를 부탁했다.
지금 현재 워킹휴먼의 물류1팀에서 계약중인 회사는 한일통운, K마켓, 쿠몬, 경성택배, 등 물류 회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사실 돈이 가장 되는 일이 물류센터였다. 물량도 많고, 인력도 많으니 돈의 흐름도 억 단위로 흘렀다.
나는 첫째로 최부장님이 가장 스트레스 받아하며 잘못된 부당계약을 맺은 회사를 살폈다.
경성택배의 일산현장
물량 만개를 계약했지만 실제로 현장에 떨어지는 물량은 만 오천 개다.
물류업계와 하청도급사는 보통 물량단가로 계약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잘못된 계약을 하게 되면 본사는 우리에게 계약된 만개의 물량 금액만 결제해주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계약에도 없는 오천 개의 물량을 가만히 손 놓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우리가 손 놓으면 태업하는 도급사로 물류업계 낙인이 찍힌다.
그렇다면 물류 업계 퇴출과 다를 바 없다.
이게 결정적으로 물류 대기업들이 하청관계를 아주 잘 이용하는 것 중 하나였다.
결론은 오천 개 이상씩 떨어지는 물량은 순전히 우리 돈으로 인력을 굴려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고, 자칫 수지타산 잘못하면 마이너스 손실이었다.
그래서 인건비도 최대한 아끼기 위해 그만큼 소수인원만 들어가는 현장이다.
다른 현장에 비해 노동 강도가 엄청나게 힘든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하필 오늘...내가 과장을 달자마자 경성택배의 현장에서 일용계약직 현장 사원들의 대거 이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과 2년 전의 일이 또 2년 만에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오대리가 전화기를 붙잡고 연신 부탁조로 얘기해대는 인물은 현재 일산현장의 현장관리자였다.
"이렇게 하루 만에 퇴사하시면 현장은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제가 관둔다니까 다른 일용직 사원들도 관둔다는데..이건 제가 말릴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현장관리자를 새로 임명하고 현장 사원들 뽑을 수 있는 시간은 주셔야죠."
-...오대리님 제가 지속적으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인원 부족하니 증원요청 매일 했는데 회사에서 들어주기나 했습니까.
"그건... "
오대리가 연신 전화기를 붙잡고 부탁조로 얘기하며 하루만 더 견뎌달라는 모습에 지난 날의 내가 떠올랐다.
하아.
또 시작이네.
역시 오대리의 간곡한 사정을 현장에서 들어줄리 만무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애걸하고 부탁 해봐도 어찌됐든 매일 소수인원으로 쳐냈던 물량을 하루만 더 부탁하는 건 부당한 일이다.
나는 오대리와 함께 흡연실로 향했다.
현재 시간 11시. 곧 있으면 점심시간인데 현장에서 소규모 파업을 시행하겠다고 통보받은 오대리의 표정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고, 나는 멀뚱히 서서 그의 표정을 바라봤다.
"오대리? 현장에서는 뭐라고 하지?"
"현재 15명 정도 사직 하겠다는 상황입니다.."
"그래..?"
오대리는 내 반응을 보고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굉장히 촉박한 사건임에도 내 표정은 평온해 보이기만 했으니까.
"과장님 첫 출근부터 이런 일 터지게 해드려서 죄송하지만....저희 어떡하죠..? 새벽 출근인원 파악해보니 현재 1명입니다.."
오대리의 표정이 울상이었다.
"티오가 몇 명이지?"
"16명입니다."
"16명이라..나하고 오대리 포함하면 출근인원 3명은 될 수 있겠네?"
당연한 말을 해대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오대리가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맞습니다. 과장님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새벽출근까지 어떻게든 인원을 구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일단 내가 현장관리자하고 통화를 해볼게..일단 조금의 여유는 있으니까 너무 불안해 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자고.."
"네..."
오대리는 내가 말한 여유라는 표현에 이맛살을 구겨댔다.
"일단 알바 공고 사이트에 시금 2배와 교통비 지급 올려주고.. 다른 현장 연락 돌려서 여유 인원 있는지 파악해봐.."
"네..알겠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뭐 오늘 날 밤 까고 센터 가서 일 해야지.."
"알겠습니다..일단 전화 돌려 보겠습니다."
오대리가 눈을 부라리며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지난날을 통해서 교훈을 얻고자 싶었지만, 과거 내 위치에 있던 최과장은 10명이서 좆뺑이를 까자는 결론이었다.
물론 그때는 출근 시간이 1시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의 여유는 있었다.
일단 현장관리자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있었고 왜 이렇게 한 번에 인원이 빠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경성택배의 일산현장 조성일 현장관리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일용직 사원들을 현장 관리하는 반장이다.
"안녕하십니까. 반장님, 이번에 워킹휴먼 새로 부임한 김도일 과장이라고 합니다."
-네..방금 오대리와 통화 했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내용은 전부 전달했는데..무슨 일이시죠?
"부당하게 겪으신 일에 대해 먼저 사과드립니다."
-...아..
"매번 적은 인원으로 현장 꾸려나가시기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애써주셔서 여기까지 버텨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알아주시니 감사하네요. 그런데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물량 대비 인원도 너무 적고요. 저희 나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 했는데, 이건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압니다. 저도 겪었는데요. 혹시 반장님께서 제안하고 싶은 사안들이 있는지 여쭙고자 연락드렸습니다."
-제안은 제가 숱하게 드렸지만 매일 거절당했습니다.
"제가 거절하려고 전화 드린 거 아니니 말씀해주세요."
조성일 반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티오가 너무 적습니다. 물량대비 정티오가 말도 안 되게 적으니 저희 현장 사원들 버티질 못하고요. 그리고 시급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사무실에서 현장을 무리하게 굴리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아..그렇다면 일시적으로 시급 인상과 티오 증원을 해주면 그나마 괜찮아질까요?"
-그렇다면 일용직 사원들 설득은 시킬 수가 있겠지만..저는 관두겠습니다. 어차피 저 없다고 해서 일이 안돌아가는 것도 아니고요.
"일단은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역시나 문제는 2년 전과 동일했다. 증원요청과 시급문제.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현장의 제안을 들어줘야 마땅했다. 하지만 최부장의 생각이 중요했다.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됐다.
나는 최부장님과 함께 회의실에서 만났다. 사우나를 하고 온 듯 최부장님의 얼굴이 멀끔해져 있었다.
최부장이 긴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푹 기대어 앉았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볼을 긁적거렸다.
그로선 당장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뜸들일 필요 없이 본론먼저 얘기했다.
"부장님 2년 전의 실수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장 측 제안 받아들이고 잘 넘겨야 된다고 봅니다."
"김과장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해선 안 돼."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부장이 마른세수를 해대며 기어이 속내를 내비쳤다.
"김과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지만...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지켜볼 게 뭐가 있습니까. 지금 당장 현장관리자 관두고 줄줄이 일용직들 딸려나가면 현장 무너집니다."
"냅 둬."
"내버려 두라뇨."
"무너지게 냅두라고."
일순간 최부장의 의도를 잘 파악 해내지 못했다. 현장이 무너진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우리에게 돌아올 텐데 말이다.
"무슨 생각이 있다면 제게도 말씀해주세요."
"도일아.."
"네...부장님."
"2년 전에 네가 큰 사고가 났을 때...나도 그때가 큰 충격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
"아.."
"나도 예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야. 물론 계약을 잘못한건 우리가 맞지만 애초에 완전히 잘못된 계약을 제시한 본사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계약사항을 잘 살피지 못한 건 우리책임이지만 애초에 물량을 속여 가며 계약 제안을 한 본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본사에서 제 발로 움직이게끔 놔두라는 말입니까?"
"그렇지."
"감당 할 수 있겠어요?"
"김과장이 있잖아. 내가 무서울 게 있나."
"참.."
"어찌됐든 오늘 일을 해결하더라도 내일 또 반복일거다."
"그러면 일단 현장을 무너지게 한 뒤 본사 관계자들이 직접 목격 할 수 있게끔 하자는 말씀인거죠?"
"그렇지. 나도 생각이 있다. 나 믿고 따라와."
"알겠습니다."
최부장의 판단이 좋은 방향대로만 흘러간다면 본사는 계약을 재검토 해보겠다고 먼저 제안을 하겠지만, 완전히 최악의 방향이라면 결국 계약해지와 더불어 경성택배와의 관계는 끝장나는 일이었다.
어차피 세상에 도급회사는 많다.
위약금 물고 계약해지하고 재계약할 회사는 천지란 말이다.
한마디로 도박이었다.
하지만 최부장은 이걸 도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매번 반복되는 이런 일들을 이제 좀 주도권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급사가 본사와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주도권을 잡는다..?
만약 그 주도권을 손에 쥔다면 일용직 사원들을 비롯해 조성일 반장도 그만두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 * *
사무실 분위기는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다. 오대리는 한명이라도 사람을 더 뽑기 위해 구인 전화를 받고 있었고, 정주임은 구인 사이트에 계속해서 구인광고를 지속적으로 넣고 있었다.
경성택배협력회사 워킹휴먼
[일산물류현장 개꿀알바 일일 오픈
단순택배 상하차/소화물 중심/개꿀/친구와 동반가능/당일지급/시급 두 배!/셔틀운행!]
나는 알바사이트에 올라온 구인광고를 보고 실소를 내뿜고야 말았다. 현장이 꿀 알바는 아니잖아?
"지금 현재 2명 정도 구인 완료된 상태입니다. 한명은 대학생이고 한 명은 아줌마입니다. 괜찮겠죠..?"
오대리가 긴박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아줌마면..하아 힘드실 텐데..일단은 출근 명단에 넣어놔. 한 명이라도 급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대리. 이런 일을 2년 동안 지금 몇 번 겪었지..?"
"자주 터졌습니다..특히 경성택배 현장은 심할 정도고요."
"오늘만 참자."
"네...?"
"무슨 좋은 방도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러니 오늘만 어떻게든 막아보자고."
"네..알겠습니다."
"그리고 정주임 구인광고 연락번호에 내 번호도 올려놔."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