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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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사이에 큰 깨달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일이가 2년 만에 엄청나게 변했다고. 놀라웠다. 사실."

"아..감사합니다."

"네 말따나 요즘 시대에 회사에 목메는 인간들 몇이나 되겠나. 워라벨? 요즘 그게 대세 더만..너도 너무 애쓰지 마."

최부장이 약간 씁쓸한 어투로 말했다. 최부장처럼 회사에 헌신적으로 매달리는 태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닙니다..부장님이 애써주신 만큼 저도 잘 해보겠습니다."

"2년 전 네가 사고 났을 때 일을 때려 칠까도 했는데 이렇게 다시 재입사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다."

"그렇죠. 사람일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최부장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지었다. 그래도 최부장님 덕에 주4일과 출퇴근 자유, 그리고 과장직위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최부장님과 노가리포차를 나와 편의점으로 향했다.

나는 최부장님과 편의점에서 로또를 샀고 일단 내가 알고 있는 번호 「1’」번을 찍어줬다..

이번 주 로또 회차에 무조건 「1」번이 등장하겠지만 나머지 다섯 자리를 맞추는 건 천문학적 확률이겠지..

그래도 조금의 당첨 확률은 있으니까.

그건 삶의 엔돌핀이 되니까.

"이거 당첨되면 나 일 관둔다."

"저도 관둘래요."

"재입사 하자마자 관두는 건 좀 너무 한 거 아냐?"

"낚시나 해야죠."

"너 이 자식! 낚시 못하잖아! 아주 영악해."

"흐흐 부장님에게 배운 사회생활입니다."

부담을 내려놓자.

최부장과 내가 샀던 로또는 을지로의 한 편의점이었다.

1등 당첨 번호가 나오지 않을 건 알지만 그래도 2등을 노려볼 만 하지 않을까.

일단 고정 로또번호 1번은 100%의 확률로 나온다고 했고, 내가 작성한 번호는

[1,7,14,22,31,33]

1번을 제외한 다섯 개 번호 중에 3개만 맞춰도 4등은 노려볼 수 있었다.

어쨌든 본전은 뽑아야 되니까.

[인류 재생 프로그램의 두 번째 미션]

[소속 및 애정 욕구]

-달성률 24%

달성률도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회사 일을 할수록 퀘스트를 달성하고 로또 당첨에 한 발짝 더 나아간다는 건 축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로또뿐만 아니라 내가 부족한 부분의 스킬을 이용하면 사회생활을 하며 부딪치는 부분을 언제든 대응할 수 있는 편리함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강력한 패시브스킬

[알코올 분해 PASSIVE SKILL]

[발암물질 분해 PASSIVE SKILL]

이 두 가지는 앞으로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 * *

3년 전과 달리 워킹휴먼의 자본금과 회사 이익은 꽤 상승했었다.

20명이었던 직원은 이제 40명 가까이 늘어났고, 과거 물류업 도급만 계약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도급계약을 맺고 인력파견을 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우리 회사와 계약된 일용직 직원들을 합하면 1,000명을 넘었다.

좋게 말해 무직자들이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나쁘게 말하면 비정규직과 계약직 양성소였다.

본사에서 직접 고용을 해서 인력을 쓰면 될 일인데 왜 도급사가 생겼는지는 잘 모른다.

식견이 짧은 탓이지만 어쨌든 도급사의 탄생 이후로 비정규직과 계약직이 성행했고, 기업은 간접고용을 통해 인력을 책임지는 부담을 덜었다고 한다.

남들은 이런 일을 한다며 혀를 찼고 사람 장사라는 나쁜 표현까지 썼다.

뭐 솔직히 인건비에서 일정의 수수료를 떼는 것은 맞지만 그것도 처음만 띠고 이후에는 일절 수수료는 없었다.

일자리를 소개해줬으니 소개비 받은 명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인건비를 떼먹거나 수수료를 일정량 이상으로 과다하게 갈취하며 구조적으로 악용하는 나쁜 파견업체도 있다.

그런 나쁜 인식 때문에 최부장과 나는 현장 사원들이 비록 계약직이나 일용직이라도 식구처럼 대했고, 최대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노동 강도를 낮추며 1년을 채울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계약 한번 잘못해서 한꺼번에 20명이 빠져버리는 사달도 일어나긴 했지만, 내가 지난 2년간 워킹휴먼에서 일했던 기조가 변하지 않았다면 비록 2년은 쉬었지만 업무는 금방 파악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예정된 출근 시간 보다 한 시간은 일찍 출근하여 직원들의 이름과 전반적인 업무 등을 파악하기로 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최부장이 출근을 한 상태였다.

현장에서 또 밤을 지새운 건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부장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안 좋습니다."

"현장 좀 갔다 오느라고..."

"집에 가서 좀 주무시지.."

"그래도 김과장 첫 출근이잖냐. 내가 직원들에게 직접 소개는 해줘야지.."

"넵. 근데 부장님. 혹시 제 밑에가 대리인가요?"

"오대리, 2년차. 착해."

"아.."

"일단 한 시간만 좀 잘 테니까 9시 되면 깨워라."

최부장님은 사무용 의자를 뒤로 젖혀 안대를 쓰더니 금방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

나는 직원들의 책상을 살폈다. 굉장히 깔끔하고 정리정돈 잘된 책상을 비롯해서, 뭐가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온통 포스트잇으로 도배된 책상과 이게 돼지우리인지 너저분한 책상 등 다양했다.

일단 내 자리는 부장에서 가장 가까운 책상이었다. 빈자리로 있는 것으로 보아 지레짐작한 부분이지만 과거와 책상 위치가 똑같았다.

아마 최부장이 직접 책상 위치를 잡아준 것 같았다.

일단 서류 가방을 책상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아 의자상태나 책상 상태 등을 살폈다.

기본적인 사무용품과 노트북 상태도 양호한 편이라 당장 업무를 시작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

"노트북 새로 샀다. 예전처럼 화난다고 부수지 말고."

"안 주무십니까?"

"크흠. 잔다."

아마 최부장님도 생각이 많을 것 같았다. 직원들 입장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인간이 신입인줄 알았더니 과장을 달고 있고, 게다가 부장과도 친하다?

그리고 출퇴근이 자유롭고 주4일을 한다? 직원들은 나를 사장의 친인척으로 오해를 살만한 일이었다.

이건 뭐 최부장님이 알아서 잘 설명을 했길 빈다.

"오늘은 직원들 이름이나 성격 좀 파악해.."

"...부장님 제가 자리 피해드릴까요?"

"이제 진짜 잔다."

나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것 같아, 그냥 회사를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아침이라 그런지 건물 외부에 위치한 흡연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흡연실에 들어서야 이제 서서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2년간 사회생활 부재가 과연 과장 직위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실질적으로 최부장님의 업무를 분담한다고 생각하면 쉽겠지만, 직원들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 해주는 것도 내 책임이다.

잘 할 수 있을까.

때마침 흡연실에는 출근하는 인원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를 피해 흡연실을 나오려는 찰나 두 사람이 더 들어 왔는데, 명찰을 확인하고 나는 담배를 한 대 더 물 수밖에 없었다.

워킹휴먼.

그들은 워킹휴먼 직원이었다.

에헴.

"오대리님 혹시 불좀...?"

"어.."

불을 빌려주는 녀석이 오대리인 것 같았다. 그나마 이 회사에서 2년차 대리로 짬밥이 가장 많이 찬 녀석이다.

"야 이번에 새로 오는 사람 있다며?"

"제가 듣기로는 부장님하고 친하다던데요."

부장님하고 친하다? 그들이 얘기하는 대화가 곧 나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내 귀가 쫑긋해졌다. 나는 스마트폰을 하는 척하며 내 정신은 그들의 대화에 팔려있었다.

"부장님도 체력이 안 되시는 거지."

"네?"

"관리가 안 되는 거라고.. 도급 계약 건은 계속 늘어나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잖아."

"하긴 그렇긴 한데..."

"오늘도 부장님 밤새 현장 나갔다더라..참.. 난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솔직히 최부장님이야 완전히 일에 미치신 분이고.. 오대리님한테 강요는 없잖아요?"

"그렇기는 한데...눈치가 보이는 거지. 니네 쪽은 어떠냐?"

"저희 팀이야 뭐 매일 똑같죠."

"난 솔직히 우리 부장님 일하는 방식 마음에 안 든다. 뭐냐 이게. 일주일에 한두 번은 귀가 하냐?"

"말은 안 되죠."

"이번에 들어오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마...내가 봤을 때는 부장님 일 덜어주러 오는 거라 본다."

오대리란 친구는 꽤나 통찰력이 있다고 봐야하나?

오대리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간 부장님의 업무 방식을 사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게 느껴졌다.

하긴 부장님 정도의 나이에 저렇게까지 일을 한다는 게 나조차도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매번 인원 펑크 나면 현장으로 달려가서 현장 반장들을 달래고, 일용직 직원들 음료수 나 간식거리 사 먹이고, 하여튼 참 대단하신 분이었다.

직원들이 부장님을 대하는 태도나 말투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사원들이야 상관들 노가리 까는 맛으로 담배를 태우는 건 맞는데, 막상 그걸 내 귀로 들으니 조금은 씁쓸했다.

나는 애써 담배를 꽁초가 될 때까지 피워댔다.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으나 이내 그들의 주제는 어제 있었던 야구 주제로 빠졌다.

* * *

9시가 되자 물류1팀의 직원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최부장이 안대를 벗어 기지개를 펴댔고 직원들은 최부장을 보며 간단히 인사를 했다.

"다들 알지? 어제 얘기 했던 김과장이다. 나랑 오래전에 일했던 친구고. 앞으로 모든 업무는 김과장을 통해서 나한테 오는 걸로. 무슨 말인지 알지?"

"넵."

직원들이 대답하자 최부장은 더 할 말이 있는 듯 부언했다.

"전설적인 친구야. 너희들이 쩔쩔매고 있는 쿠몬과의 계약 관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친구야. 그때 이후로 우리 회사가 커진 거고. 다들 잘 모셔야 돼."

하아...내 사고로 어쨌든 계약관계가 더 좋아지긴 했는데, 최부장은 나를 직원들 앞에서 띄워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네."

"그리고 내가 어제 동탄 현장 한번 들렀다 왔는데 말이야."

최부장의 인상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동탄 현장이라면 3년 전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물류센터였다. 동탄에 존재하는 물류복합단지로 경기도 내에서 꽤 큰 물류센터다.

"어제 현장에 3명 펑크 난거 알고들은 있냐?"

예를 들어 물량 천개에 필요한 인원이 10명이라면, 어제 새벽 동탄 물류센터에서는 물량 천개를 7명이서 했다는 뜻이었다.

물량대비 적은 인원으로 물량을 쳐냈으면 인건비를 절약한 회사에게 이익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물량을 쳐내는 일용직 직원들의 노동 강도는 엄청나게 힘들어진다.

"하..."

"내가 얘기했지? 새벽에 돌아가는 물류센터 알바생들은 특별 관리해야 한다고."

"죄송합니다."

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한 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아마 최부장이 나 보라고 직원들을 아침 댓바람부터 잔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번 죄송하다. 죄송하다. 하지말고 우리가 제대로 인원을 보내줘야 현장 일이 수월 해진다고 몇 번을 얘기하나."

"죄송합니다."

"지금 내가 깨어있는 시간만 30시간이다. 가서 사우나 좀 하고 올 테니까 그렇게들 알어."

"네."

아씨. 좀만 더 있다 가지.

최부장이 나가자 사무실내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직원들은 아침부터 부장님의 잔소리를 듣고 시작했으니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 오대리의 표정은 완전히 썩어 있었다.

아마 나와 첫 대면 하는 날부터 잔소리 듣는 게 조금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았다.

흡연실에서 들었던 말투부터 오대리는 성깔이 있는 녀석이 분명하다.

오대리가 한 여성 직원에게 쏘아붙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 여성의 이름은 ‘정성희’

"정주임님 내가 얘기하지 않았나? 새벽 출근하는 알바생들 잠자기 전에 문자 한번씩 돌리라고,"

"네...그런데 제가 어제 밤에 친구들하고 술 먹느라.."

"그게 변명이야?"

"솔직히...저희가..하...아닙니다."

"펑크낸 3명 앞으로 절대 뽑지 말고 알바생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려놔."

"네.."

그들의 고충을 잘 안다.

워킹휴먼에서 3년간 일하며 많은 걸 경험했는데 그 중에서 단연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원 관리였다.

특히 알바생들.

출근 약속 잡아놓고 펑크내는 친구들이 40%는 됐다.

매일 출근 인원 맞추려고 밤잠을 설쳐가며 일했다. 내가 인원을 맞추지 못해 펑크가 나면 현장 직원들이 힘들어질 게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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