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4/200)

「2LV SKILL 첫 자리수 확인가능」

[현재 스킬을 발현하시겠습니까?]

「YES」

[1003회차 로또 당첨번호 첫째 자릿수는 「1」입니다.]

이번 주에 있을 로또 1등 당첨 숫자의 첫 번째 숫자는 1

아직까지 이 숫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 미션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인류 재생 프로그램의 두 번째 미션]

[소속 및 애정 욕구]

「완료 보상 1000UNI」

「제한 시간 무제한」

[미션달성조건 - 소속감이나 애정욕구]

그건 삶의 엔돌핀이 되니까

최부장을 만나기 전 나는 위계질서의 노예가 돼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그저 고개를 숙였고, 선배라는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렸었던 과거 탓에 위계질서에 굉장히 민감했다.

하긴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으로 더 높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자연스레 기가 팍 죽어버렸으니까.

그런데 최부장님은 달랐다.

그저 나보다 서열이 높다고 무조건 수동적이고 깍듯하기만 하다면 상관도 도태가 된단다. 어디서 책을 봤는지 위대한 리더쉽은 상급자가 하급자를 존중하는 데서 나온다며 술자리에서 자주 했던 말이었다.

그렇기에 최부장의 성격도 굉장히 털털했고, 가장 싫어했던 게 돌려 말하는 거였다. 직설적으로 깔끔하게 의견을 피력해야만 회사가 살아난다나 뭐라나.

이게 워킹휴먼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하여튼 최부장이 왜 워킹휴먼에서 근무하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여태 만난 상사 중에서는 그나마 나았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토로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은 최부장 앞에서 침을 튀기며 싸웠다.

서열에 트라우마가 있었던 내게 그건 내 인생의 큰 변환점이었다.

"사회생활의 기준이 뭐지? 미션 달성 조건이 굉장히 모호해서 말야."

[사회생활의 기준은 없습니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면 되는 일입니다.]

사회의 일원이라면 만약 최부장이 내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고 입사를 허락한다면 금방 해결될 일이었다.

휴먼매니저의 후광으로 툭 던져본 주4일과 출퇴근 자율제가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아마 최부장 성격이라면 나와 더 일하고 싶을 게 분명했다.

문제는 사장이었다.

나는 워킹휴먼에서 근무하면서 사장을 잘 만나지 못했다.

돈이 많아서 돈놀이 한다는 소문도 들었고, 워킹휴먼 사무실에 일주일에 한 두 번꼴로 등장하는 인간이라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최부장이 사장에게 내 조건을 얘기했다면, 아마 사장은 크게 난색을 표했을 수도 있지만, 그간 입찰 계약을 수월하게 따냈던 내 전력을 높게 평가한다면 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농후했다.

때마침 최부장에게 전화가 왔고 최부장과 사장님의 삼자대면을 통해 내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아마 천사장은 내 심중이 궁금하리라.

* * *

최부장님과 회사의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사장님을 만나기전 최부장과 전략을 짜기 위해서 약속 시각보다 한 시간은 더 일찍 만났다.

사실 말이 전략이지 최부장도 궁금한 게 많으리라 봤다.

프리랜서일을 한다고 했지만, 주4일이나 출퇴근을 자율적으로 시행함으로서 내가 어떻게 회사 일을 할지 걱정이 됐을 것이고, 그리고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그 심중을 정확히 알아야만 최부장도 내 의견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었다.

나는 프리랜서 일을 한다는 그런 단순한 변명보다는 좀 더 고차원적인 의견을 내밀어야만 했다.

하아..이럴 줄 알았으면 로또스킬에 레벨업을 할 게 아니라 「설득」 「매력」과 같은 스킬을 사용할 걸 그랬나.

"도일아 사장님이 궁금한 게 많으시다. 일단은 네가 프리랜서 일을 한다고는 얘기 안 했다. 그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거든.."

하긴 그 이유가 투잡이라고 밝혀지면 사장은 무조건 반대다.

게다가 나로 인해 다른 직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반발심이 생긴다면 그것 또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건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 사장의 생각이 중요했다.

최부장은 사장의 성격을 굉장히 잘 알았다. 내게 어떤 조언을 해줬다.

"네가 능력이 있고 정말 회사에 이익을 가져와 줄 수만 있다면 사실 사장님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보거든?"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냐. 사장님 입장에서 주4일을 해서 과연 회사에 이익을 가져와 줄 수 있냐는 게 문제거든."

"아.."

"알다시피 천사장 성격이 모 아니면 도야. 사람만 보고 달려드는 분이라 본인 철학에 맞으면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주시는 분이고 그게 아니라면 가차 없다. 뒤돌아서면 끝이야."

"넵."

"말 잘해야 돼."

천사장은 굉장히 강성이라고 소문난 사람이라 최부장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나 또한 최부장 앞에서는 친근하게 다가갔지만 천사장 앞에서는 매번 주눅이 들었고 큰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때마침 저 멀리서 워킹휴먼의 천사장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절하듯 인사를 했고 천사장님과 악수를 했다.

"얼굴이 좋아. 최부장하고 병문안 갔을 때가 2년 전인데 말이야."

"네. 덕분에 쾌유했습니다."

"최부장한테 들었다. 주4일에 출퇴근 자유롭게 하고 싶다고?"

"네. 꼭 하고 싶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이나 선진화된 사내 분위기만 시행한다는 주4일을 좆소에서 시행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게 맞는 건가.

최부장이 기대하는 것과 천사장이 기대하는 부분이 나에게 클 텐데. 내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결국 욕먹는 건 최부장이었다.

그냥 주4일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게 나았을까. 후회가 조금 밀려왔다.

게다가 반평생 영업으로 다져진 저 깊은 눈매 속에 감춰진 날카로움은 선뜻 입을 열지 못할 것 같은 압박감과 압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내 콧잔등에는 땀이 맺히고 있었다.

천사장이 오래 뜸을 들여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내가 도일씨 능력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야."

"천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딱히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2년 전 사고를 겪고 난 뒤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20살이 되던 해부터 사고가 나기 전까지 집안 빚 갚겠다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러다 이 회사까지 오긴 했습니다만...단 한번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써본 적이 있었나. 그런 시간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 말입니다."

"음...그런데 회사입장에서는 나를 위한 사람보다 회사를 위한 사람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오랜 시간 사업체를 꾸리면서 그래도 나름의 기본 개념이라고 보거든.."

"그것도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를 위해 투자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발전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발전하는 직원이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겠죠."

"음..."

손에는 땀이 흥건해졌다. 나는 바지에 손을 비벼대며 땀을 닦았다.

"자네 영업 좀 뛰나?"

"사람들 만나고 하는 거 재능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시켜준다면 잘할 자신은 있습니다."

"흠...자네 같은 성격이면 영업이 딱인데 말이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영업보다는 사무실하고 현장 조율하는 게 제 성격에 맞습니다."

"주4일하면 남는 시간은 뭘 할 거지?"

이건 투잡을 뛴다고는 얘기해선 안됐다.

"일과 생활을 균형적으로 조율해서 자기 개발이나 충분한 재충전으로 업무에 더 집중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너무 모범적인 답변인데?"

지금이 기회였다.

"제가 낚시를 좋아합니다."

순간 최부장님이 커피를 내뿜을 뻔했다.

천사장의 표정은 뭔가 확신에 찬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리송했는데 표정을 잘 읽을 수가 없었다.

천사장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낚시?"

"사실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병원에서 낚시 프로를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해보고 싶었습니다."

"의외네. 언제 낚시 한번 가지 그래?"

사장이 낚시를 좋아했다.

"네!"

역시 조금의 환심은 샀다.

"나도 도일씨가 근무 했을 때 회사가 잘 돌아갔다는 건 알아. 비록 2년 전에 불행한 사고가 있었지만 그간 도일씨가 해왔던 업무 방식을 최부장이 아주 그리워 하고 있기도 했고.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냐. 도일씨만 주4일을 하게 되면 다른 직원들이 불만을 가질 거야. 뭔가 더 특별한 이유가 없을까?"

"음...일단 제가 생각했을 때 주4일을 하면 효율성이 더 올라간다고 봅니다."

"효율성? 어째서?"

천사장이 반신반의하는 투로 말했다.

"4일만 일하고 쉴 수 있다는 그런 매력, 그리고 엔돌핀이 엄청나게 자극된다고 볼 수 있죠."

"음. 좀 더 구체적인 예가 필요할 것 같은데?"

"저희 회사 근무시간이 총 9시간입니다. 그 중에 실제로 일하는 시간이 몇 시간이나 되겠습니까."

"뭐? 난 이해하기가 힘드네."

"인간의 뇌는 1시간 이상을 집중하면 자연스레 집중력이 흐트러집니다.."

"그런가?"

"딴 짓하는 시간만 적어도 한 시간 전후로 잡는다면 많게는 하루치를 날려버립니다. 어차피 실제 업무시간은 주4일입니다."

"허허허. 뭐 나도 회사를 안 다녀본 게 아니라 이해는 한다만.. 사장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래서 말씀드린 겁니다."

"...?"

"과장 달고 싶습니다. 직원들 주5일 업무 효율성 높이겠습니다. 그리고 이쪽 업계 3년차 직원 경력이면 과장정도 달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마지막 비수였다.

"아이고.. 이거 직원들이 용납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부장님과 함께 회사 체계 다시 잡아 나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천사장의 눈빛이 다소 매섭게 변했다. 진지한 얼굴로 나를 날카롭게 주시하는 듯했다.

애써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내 천사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최부장을 향해 말했다.

"최부장은 어떻게 생각해?"

"예. 허허. 도일이 같은 친구가 없죠."

"사람이 한번 마음먹으면 그게 옳은 방향이든 틀리든 간에 직진 하는 마음가짐도 좋다고 봐."

"그렇죠."

천사장이 확고한 어투로 말했다.

"좋다. 허락하마. 다만 나도 조건이 있네."

"...?"

"낚시!"

"넵!"

하...그건 싫은데....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하나만 더 하자면 최부장이 혼자서 애쓰는 물류1팀에서 도일씨가 최전선으로 뛰어줬으면 해. 최부장 나이도 이제 사십 후반이다. 무슨 말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번에 만나면 그때는 커피 말고 술 한 잔 하자고."

"넵!"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소속 및 애정욕구의 성공률이 대폭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달성율 20%!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입사를 통해 퀘스트의 달성율이 한번에 20%나 올랐다. 아마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참가를 하는 부분에 큰 보너스를 얻은 것 같았다.

일단 아주 큰 산을 넘었다.

내가 바라는 데로 주4일과 출퇴근 자유를 따냈고, 더불어 과장 직위라는 자리까지 얻었다.

분명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 * *

최부장과 노가리포차에서 간단히 소주를 마셨다.

최부장은 일단 이번 주는 생각을 좀 정리하고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라고 했지만 지난 2년을 쉬었다.

"내일부터 하겠습니다."

"급한 거 아냐?"

"괜찮습니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지. 좋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제가 사실 사장님한테는 직원들 잘 관리해보겠다고 말은 했지만..아시잖아요. 저 부장님 만나기전에 엄청 내성적이었던 거...그런데 직원들은 어때요? 강성이에요?"

"다들 착해. 사실 내가 잘 못 갈구는 성격인 것도 맞지만 딱히 지적할 것도 없어. 다들 조곤조곤하고 자기 할 일 해."

"아..."

"많이 변했네."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