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 휴대폰에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인간들의 목록을 찾기 시작했다.
뜸 들일 필요가 없다.
당장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명석아."
-어. 웬일이냐.
"나랑 밥 한 끼 하자."
-뭐? 갑자기?
"시간 안 되냐?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한데, 내가 한턱낼게..."
-...미안한데 요즘 바쁘네.
하아. 너무 적극적이었다. 마치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뉘앙스라 명석이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그런데 이게 이렇게 어려운 미션이었나.
[친구의 개념을 재정립하십시오.]
"뭐?"
[친구가 꼭 동년배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동년배가 아니라면...."
[휴먼매니저는 친구의 개념이 굉장히 포괄적입니다.]
"혹시 형이나 동생도 친구가 될 수 있나?"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단연코 최과장님이다.
병문안도 간혹 와주며 말동무가 되곤 했었다.
과장님을 못 뵌 지 1년이 넘어 꽤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그나마 사내 생활하면서 서슴없이 지냈던 상관이자 직장 동료였다.
나는 곧바로 최과장에게 전화했다.
"과장님 잘 계십니까?"
제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게 있어요.
나는 능청스러운 말투로 최과장에게 말했다.
"과장님 잘 계십니까?"
최과장은 내 목소리를 듣고 순간 뇌정지가 온 듯 말을 쉽게 내뱉지 못했다.
-도일이? 도일이냐?! 퇴원 한 거냐?"
"그럼요. 과장님께 먼저 인사는 올려야 될 것 같아서요."
-이야.. 잘됐네. 몸은 어떻고.
"괜찮습니다. 아주 팔팔해요. 일을 계속 쉬었으니 더 젊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과장님 안 바쁘시면 밥 한 끼 하셔야죠."
-해야지. 당연히!
"시간 되시죠?"
-지금 회사로 와라.
"아직도 거기 다니세요?"
-나 부장됐다. 얼른 와.
"넵!"
나름 고마웠다.
오랜 시간 연락이 없었음에도 나를 이렇게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래도 내가 사회생활 하나는 착실하게 했다는 데 뿌듯함이 밀려왔다.
사실 최부장과 함께 흘린 땀이 있었으니 사람을 잘 만난 탓이겠지. 크크.
게다가 2년 전 물류센터 소규모 파업당시 나와 좆뺑이를 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부장을 달았다니 덩달아 뿌듯했다.
회사로 향하는 길에 처음 느껴 보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겼다. 예전에는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내 마음이 울부짖었는데, 이제는 뭔가 가볍고 설렌다는 느낌?
나는 미친놈마냥 혼자 실실 웃으며 텅 빈 버스에 올라탔다.
이게 휴먼매니저의 후광이란 걸까.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 하늘을 날 것 같았고, 언제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를 올려다봤다.
언제나 지랄 맞은 건 변함없던 회사가 내 눈앞에 다시금 등장하니 뭔가 내 명치끝이 아려왔다.
매번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봤던 이 건물이 오랜 시간 찾지 않은 고향처럼 느껴졌다.
고향의 향내를 굉장히 오랜만에 맡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매번 뜀박질로 오갔던 이 회사를 이제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들어갔다.
높게 솟은 빌딩의 중간층에 워킹휴먼의 회사가 있었다.
도급사 인력파견은 쉽게 말해 대기업과 계약을 맺어 인력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회사였다.
원청즉 대기업과의 관계도 유지하며 노동자들의 편의도 봐줘야 하는 중간관계의 위치로 스트레스가 엄청난 직군임과 동시에 월급도 더럽게 짰던 직업.
2년이 흘렀으니 나를 아는 직원들은 대부분 관뒀다. 직업 특성상 1년 이상을 버티지 못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좆소라 대부분 탈출한 격이다.
최부장이 내 얼굴을 보자 아주 반기며 내게 다가왔다.
내 어깨와 팔을 쓰다듬어댔다.
"징그럽게 왜 그러세요."
"괜찮은거지?"
2년 만에 회사 앞 노가리포차에 왔다. 어째 최부장은 2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매일 저녁마다 들렸던 노가리 씹으며 한탄했던 곳을 2년 만에 찾아온 나를 데려오다니. 참 최부장다웠다.
최부장이 내게 소주 한잔을 따라줬다.
오랜만에 먹는 소주를 한 번에 들이키니 막힌 속이 뻥 뚫리며 알코올 향이 쌔 하게 콧김으로 새어 나왔다.
[알코올은 휴먼에게 각종 암을 유발하며 생활에 이득이 없는 물질입니다. 휴먼매니저는 김도일씨의 알코올을 직접 분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코올 분해 PASSIVE SKILL]
[알코올 동기화 완료]
[100% 분해 완료]
크크. 역시 내 매니저답다. 내 몸에 쓸어 내려가는 알코올을 분해해준단다.
이거 사발로 들이켜도 취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죽입니다."
"술을 벌써 해도 되는 거냐?"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장님까시 다셨데요?"
"말도 말어라. 2년 전에 그 일이 내 족쇄가 됐다."
"네?"
"너 사고 나서 아주 난리도 그런 생난리도 없었다고. 파업, 본사, 기자, 뉴스, 대충 이 네 가지만 들어도 답 나오지 않냐?"
"아...제 사고가 뉴스도 탔나요?"
"그래. 다행히 본사와 부당계약 관련해서도 잘 해결됐고, 일용직들 입급도 올려 줄 수도 있었고....너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다 네 덕이야."
"이야...제가 큰일 한번 했네요. 흐흐 요즘은 어때요?"
"뭐..너도 알잖냐. 기업들 성질 어디 안가지.. 매번 똑같이 반복이다. 너는? 일은 하고?"
"퇴원한지 이제 이틀 됐어요. 먹고 살길을 찾긴 해야 하는데..."
"일은 해야지."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아무것도 못하고 2년이 흘렀고, 이제 내나이 30대 중반인데, 어디서 저를 써줄 곳도 없고, 기술을 배우자니 의욕도 안생기고요."
내말을 듣던 최부장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일할 생각은 있는 거냐?"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내 최부장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미간을 찌푸리며 긴 콧숨을 내쉬었다.
"네가 그립다."
"네?"
"그래도 너 있을 때 우리가 호흡이 좋았잖냐. 비록 이런저런 사건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네가 있을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부장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최부장이 공허한 시선으로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직원 중에 2년차 대리가 한 명 있는데 물량 도급 잘못 해가지고 지금 1년째 개고생중이다."
"아.. 현장을 보지 않고 계약을 했나보네요.."
"그래. 내가 계약하기 전에 현장에 적어도 삼일은 상주하라고 그렇게 얘기 했거만 물량 만개 계약했는데 실제로 만 오천 정도 떨어진다니까."
"어휴. 그럼 마이너스겠네."
"담배는 필수 있냐?"
"그럼요."
최과장과 나는 술집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3년만의 첫 담배라 목에서 기침이 새어나왔다.
[담배는 휴먼에게 각종 암을 유발하며 생활에 이득이 없는 물질입니다. 휴먼매니저는 김도일씨의 각종 발암 물질은 직접 분해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암물질 분해 PASSIVE SKILL]
[발암물질 동기화 완료]
[100% 분해 완료]
"담배를 아주 기깔나게 피는구만"
"첫담입니다. 2년만에."
"도일아. 옛날이 그립다.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그래도 우리가 일 하나는 기막히게 하지 않았냐?"
"매일 빵꾸 틀어막는데 바빴죠."
"그게 우리 일이잖냐. 요즘은 너무 잔잔해. 천장에 물이 새면 누구하나 틀어막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어."
"부장님 같은 분이 안계세요. 예전에도 그러셨어요..직원들 힘들까 부장님이 매번 힘쓰시고...이참에 직원들 잔소리 좀 해보세요."
하긴..최부장이 그걸 몰라서 안 했겠냐. 매번 1년도 버티지 못하고 퇴직하는 직원들이 많은 이유 탓에 직원 한 명이 소중했다.
최부장은 이내 담배 한 대를 더 물며 나를 바라봤다.
"도일아. 이번에 큰 계약 하나 따낼 것 같거든. 그런데 이걸 맡아줄 인간들이 없다."
"무슨 말씀이세요?"
"할래?"
"제가요? 에이. 저도 감 다 잃었어요."
"하자. 경력직으로..사장도 반길 거다."
"생각 좀 해보고요."
"먹고는 살아야 될 것 아냐. 사람이 가만히 집에만 있으면 아주 폐인이 돼요 폐인이..사람들하고 부대껴가며 일해야 그게 뭐가 됐든 살맛이 나는 거라고."
"부장님 말씀도 맞지만... 2년 만에 찾아왔는데...노가리는 너무 합니다.."
"참치 먹으러 갈래?"
최부장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선뜻 최부장의 재입사를 단번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은 내게는 회사보다 「휴먼매니저」의 나침반이 있었다.
거기서 이끌어주는 삶을 살면 그만이지, 애써 스트레스 받아가며 최부장과 함께 또 예전처럼 현장을 돌아다니는 일은 솔직히 말해 시간 낭비였다.
하지만 정말 최부장이 나를 원한다면 내게 조건이 있었다. 그 조건을 만약 최부장이 들어준다면 언제든 회사에 다시 재입사할 여지가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적인 재입사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최부장은 고급 일식집의 코스요리를 시켰고, 소주가 아닌 사케를 시켜댔다.
최부장이 술자리에서 이렇게 돈을 써댄다는 건 분명 어떻게든 나를 끌어오리라 다짐한 상태였다.
"우리 회사가 나름 물류업계 도급 순위로 따지면 꽤 상위권이 있는 거 알지? 게다가 이번에 은행 청원경찰도 들어갔고, 마트 캐셔도 맡았고, 나름 입지 다져가고 있다. 커지고 있다고."
"네..."
"네가 받던 연봉에 1.5배는 더 쳐줄 수 있다는 말이야."
과거 연봉의 1.5배면 4500만원이다. 입사 조건은 나름 만족스러운 수준.
하지만 난 4500만원의 연봉을 좇을 처지가 아니다.
"부장님 사실 제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게 있어요."
"무슨? 네가 프리랜서로 일할 게 뭐가 있어? 그저께 퇴원했다고 하지 않았나?"
"병원에서 한 달간 뭘 먹고 살아야하나 고민하다가 아는 지인분 통해서 프리랜서로 일할 기회를 얻었어요."
"잘 됐네."
"그리고 상시로 발주가 떨어져서 기한 내에 끝내지 못하면 페널티가 있을 수도 있어요."
사실 휴먼매니저의 퀘스트 실패시 페널티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설마 있을까 싶다.
[휴먼매니저의 퀘스트 실패에 대한 페널티는 현재 V1.0 버전에는 없습니다. 휴먼매니저는 김도일씨의 인생을 전적으로 매니지먼트 해주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출퇴근을 자유롭게 했으면 합니다."
"뭐?"
"제가 맘대로 출퇴근 할 수 있게끔 해주세요."
"흠...이게 요즘 선진국이 한다는 업무 방식인가? 나로선 적응이 어려운데."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주 4일이요."
"...주....주..4일?"
"넵!"
뭔가 두려움 따위가 없었다.
맘껏 내지를 수 있는 것.
휴먼매니저의 아주 좋은 성질 중 하나였다.
최부장은 내 말을 듣고 조금 난색을 표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오기가 조금은 벅차리라 봤다.
"주4일이면...대체 일은 언제 한다는 거야? 그리고 이건 나 혼자 결정할 부분이 아냐. 사장님하고 상의를 해봐야 될 일이야."
"천사장님이야 제가 다시 재입사 하겠다면 무조건 반기실 분이고...부장님이 힘만 써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크흠..그래 요즘은 워라벨이 대세더라. 일단 얘기는 해볼게."
"그런데...부장님...?"
"응?"
"얼굴이 2년 사이에 왜 이렇게 늙으셨어요..?"
"그러니까 말이다. 도일이가 와준다면 내가 10년은 더 젊어지겠어!"
이후로 최과장과 나는 일 얘기는 제쳐두고 그간 2년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들었다.
사회 일면을 다룰만한 사건들을 아주 재밌게 썰을 풀어댔다.
그것과 더불어 연예계 전 국민이 엉덩이를 들썩였던 가십거리들..
최부장과 나는 그날 밤새 술을 마셨다.
그리고 알코올을 아무리 비워내도 마치 물을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흐흐.
[축하드립니다.]
[일상 회복 생리적 욕구 「관계」 달성]
-달성율 100%
[「휴먼매니저」의 일상 회복 미션의 성공보상 선물입니다.]
[1000UNI 획득하셨습니다.]
나는 1000UNI라는 휴먼매니저의 고유 화폐로 로또 스킬을 레벨업했다.
스킬을 레벨업 할수록 로또에 대한 고유 기술을 획득 할 수 있었다.
일단 레벨1은 당첨지역 확인이었고, 레벨2의 고유 기술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로또스킬을 레벨업 합니다.]
「로또」LV1」
「로또」LV2 상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