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정지된 삶을 재생하기 위한 프로그램
"오늘만 좀 어떻게 안 될까요? 오늘 인원 못 맞추면 저희 죽어요."
나는 「워킹휴먼」 인력파견회사의 대리로 근무 중이며, 현재 내가 전화로 애걸하는 인간은 물류센터의 현장 관리자다.
-김대리님 저희도 할 만큼 했습니다. 매번 물량대비 인원 좀 늘려달라고 할 때 무시하더니 이제 와서요?
"그러니까... 하아...그건 제가 사과드리고요. 그래도 이렇게 인원 한 번에 빠지시면 안 되죠. 일은 누가하냐고요."
-알아서들 하세요. 저희들 전부 빠질 테니까.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물류센터의 인력공급을 해왔는데, 매번 증원 요청이 무시되자 직원들이 대거 사직하겠다는 상황.
한마디로 좆된 상황이었다.
대기업의 물류 하청을 받는 도급회사 워킹휴먼의 3년 차 대리로 근무하면서 이런 파업 조짐은 처음 겪은 상황이라,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몰랐다.
지금 당장 물류센터 일과는 1시간 남은 상황에서 직원들이 출근을 안 하겠다니, 만약 대기업 본사에서 알게 되면 이건 도급계약 해지거나, 막대한 페널티를 물게 되는 촉박한 상황이었다.
나는 급히 최과장님께 이 상황을 보고했다.
"과장님 화도 물류센터 직원들 중에 20명이 오늘 빠집니다."
"뭐!? 그걸 왜 이제 얘기해!?"
"저도 방금 전화 받았습니다."
최과장은 나름 짬밥도 가득 찼고, 주변 인맥도 넓어서 해결책이 있는 줄 알았다.
"좆됐다. 야 지금 당장 부를 사람 없어!?"
"....일단 저라도 가서.."
"한 명이서 뭘 하겠다는 거야. 일단 빨리 알바사이트 시급 2배로 공고 올리고 교통비까지 지급해준다고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는데 효과가 있을까요."
"일단 한 명이라도 아쉽잖아. 그리고 다른 물류센터 인원 파악해보고, 여유 있는 곳 있으면 파견 보내, 교통비, 일급 더 올려준다고 얘기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송파에 위치한 물류센터에 전화하여 여유 인원을 파악했으나, 현재 물량대비 정티오로 운영하는 곳이라 인원을 빼 올 수가 없었다.
최과장은 담배만 연신 뻑뻑 피워대며 한숨을 푸욱 쉬어댔다.
"으아 씨발!"
최과장님도 별다른 수가 없어 보였다. 결론은 정장 벗어 던지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오늘 좆뺑이를 쳐야 한다는 거였다.
"가자."
최과장이 무거운 엉덩이를 띠며 말했다.
* * *
지금 이 시각이면 현장관리자와 직원들이 조회를 하고 업무에 투입이 돼야 할 시간임에도 현재 30명이 있어야 될 현장은 10명 남짓, 곧 있으면 쏟아져 나올 물량을 처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다.
가뜩이나 많은 물량을 현재 소수 인원으로 쳐내야 한다는 불안감에 직원들의 눈은 이미 겁에 질렸다.
당일 배송을 하는 물류 업체라 우리 탓에 주문을 막는다면 그 손해배상은 온전히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과장은 이내 결심한 듯 손매를 걷어붙였다.
"오늘 죽었다고 생각하자."
"10명으로 하자고요? 오늘 물량 2만5천 개 정도 될 텐데요."
"그럼 어째? 이러고 손 놓고만 있어? 본사에 전화해서 주문 막아달라고 그래?"
"하아..씨.."
목구멍에서 씨발소리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뭐, 오늘 하루 물량 간신히 쳐낸다고 쳐도, 당장 내일은?
나와 최과장이 조금의 설전을 벌이고 있는 틈에 물류센터의 상층부에서부터 하층부까지 이어진 전동 레일에는 일일 물량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정상적인 인원이 있었다면 각자 맡은 지역구 파트에서 물량을 소분해내면 그만인데, 10명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땅바닥에 물량을 쌓아놓는 수준이었다.
최과장이 아무 말 없이 물건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지역별로 나뉜 파레트에 물건을 쌓았다.
참..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해결하려는 모습에 나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몸을 움직였다.
그때 한 일용직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저기요. 오늘 이거 우리가 쳐내면 일급도 똑같나요? 알바 공고에는 일급 두 배던데요."
"3배는 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어르신 이거 오늘 저희 못 끝내니까 적당히 하셔도 됩니다. 무리 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쉬는 시간도 보장 되는 거죠?"
"네. 보장해드려야죠. 당연하죠."
하아..나도 쉬고 싶어 죽겠다. 한 시간 뜀박질해대며 일을 하고 나니 팔과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운동이라도 좀 해놓을 걸...
나는 최과장님이 걱정돼 살폈으나 현장에서 보이질 않았다.
이럴 때 대체 어딜 가신거야..
한참을 현장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니 현장 구석에서 누군가와 연신 통화하는 최과장을 발견했다.
최과장은 이번 소규모 파업을 총대 메고 진행한 현장 관리자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요구 사항은 시급 11,000원에 근무 시간 한 시간 더 연장하여 식비 지급이라는 단순한 요구였다.
그러나 최과장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 정도 요구는 들어줄 정도 아닌가요?"
"식대지급은 본사에서 막은 거야. 본사에서 식대 지급을 안 해주는데, 결국 우리 회삿돈으로 지급해야 하는 부분이고, 시급 11,000원이면 우리 남는 거 없다. 물량 단가 대비해서 인건비가 너무 비싸. 그러면 우리 적자야."
우리 회사도 본사와 하도급을 맺은 계약이라 일정 이상의 지출이 발생하면 마이너스 손실이다.
"일단 급한 불은 끄고 봐야죠..."
"김대리... 어찌됐든 오늘 사건으로 나는 짤린다. 무슨 말인지 알어?"
"..."
"너한테 책임은 없어. 어차피 짤려도 내가 짤린다고. 그런데, 내가 얘네들 요구사항 다 들어주고 우리 회사 마이너스 나면, 우리 직원들 어떻게 할 건데? 응? 직원들 월급도 못 주게 생기잖아."
나는 그제야 최과장이 일용직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
"과장님이 왜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요."
"시발. 짤리면 네가 내 자리로 올라 올텐데, 좆같이 만들어 놓을 수는 없지."
"..."
최과장님은 불구덩이 같은 눈빛을 내뿜으며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직원들과 뒤섞여 열심히 물건을 파레트에 쌓는 모습을 보니 참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그의 옆에 붙어 물량을 옮기기 시작했다.
끝도 없었다.
두 개를 한 번에 짊어지고 옮겨 뒤돌아서면 10개가 쌓여 있었고, 완전히 미친 듯이 물량을 적재해도 당최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한번 숨을 크게 내쉬고, 다시 움직이길 반복하니, 어느 덧 4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리고 상층부 출고 팀의 쉬는 시간이 온 듯 레일도 멈춰 섰다.
최과장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나마 단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인지라, 10명의 직원들 전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30분의 휴식시간동안 뭐라도 사 먹을 수 있었지만, 이미 다리가 풀려버린 탓에 누구 하나 일어서 편의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은 듯했다.
나는 애써 무거운 몸을 이끌고 편의점으로 향했고, 일용직 사원들이 먹을 김밥과 음료수 등을 샀다.
"3만 오천 원입니다."
쌔다.
연봉 3천 계약이라 한 달 고정 지출비 빠지면 내 생활비 한계 설정이 30만 원이라 한 번에 삼만 오천 원의 지출은 너무 쌨다.
하아..그런데 뭐 어쩌겠나.
인간들 전부 지쳐서 쓰러질 판인데, 누구 한 명 나서 먹을 것을 사와 당 충전을 하지 않으면 분명 앞으로 남은 네 시간동안 누구 한명 졸도할 게 분명했다.
휴우
나는 길거리에 잠시 서서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이제 쉬는 시간이 끝나면 쳐내지 못한 물량 5천개와 앞으로 출고될 물량은 약 만개정도 됐다.
곧 펼쳐질 지옥도를 상상만 해도 짜증이 밀려왔지만, 앞으로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처음 인력파견일이라고 앉아서 사람만 뽑아주면 된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입사를 하긴 했지만 앞으로 내 미래는 최과장이 한계일 것 같았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뛴다고 해도 결국 최과장이다.
최과장님을 내가 미워해서도 아니고 그의 삶이 안타까워서도 아닌데...이상하게 좌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담배를 피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구인구직 사이트를 살폈다.
어찌됐든 이회사에서 추노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내 스펙으로 갈수 있는 회사는 대부분 수준과 연봉이 비슷하여, 결국 거기서 거기.. 결국 제자리에서 홀로 뒹구는 수준이다.
차라리 막노동을 할까.
막노동을 해도 요즘 하루에 일당 12만 원은 가져갈 수 있었는데, 지금 내가 하는 건 정말 시간과 금전적 비율을 따지면 완전한 소모였다.
휴..
그냥 로또나 사자.
그리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발길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했다.. 뭐라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다 잡으면 조금이라도 이내 답답한 마음이 해소될 것 같았다.
이 막연한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구가 로또라는 게 스스로 조소가 났지만, 겪어본 이들은 고개만 끄덕여줬으면 좋겠다.
썩은 동아줄이든, 금 동아줄이든, 뭐든 조금의 희망이 있다는 건 삶에 엔돌핀이 되곤하니까..
때마침 보행자 신호등은 파란불로 변했고, 건너편 편의점을 향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내 뒤를 따르던 할머니가 폐지 리어카를 끌고 있었고, 나는 할머니가 정정한 탓에 별로 개의치 않고 내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폐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할머니는 애써 침착하게 박스를 다시 리어카에 실으려 하는데, 파란불이 5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조금은 위험할 듯 보였다.
휴.
나는 그 할머니에게 향했고, 폐지를 포기하고 리어카를 얼른 끌기 위해 잡은 찰나.
빠앙!
검정색 세단 승용차가 나를 들이받았다.
직원들을 먹이기 위해 샀던 김밥과 음료수가 모두 터져 길바닥을 나뒹굴었다.
머리칼이 쭈뼛스더니 장기가 뒤틀리듯 속이 뒤집혀졌다.
그 고통이 상상을 초월해서 일말의 비명조차 나오질 않았고, 나는 꺽꺽 거리며 바닥에 털썩 쓰러져 허공을 응시했다.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났다.
* * *
사고를 당하고 2년을 산재병원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일을 하며 다친 근로자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다.
무릎과 허리가 아작 났고, 갈비뼈가 폐부를 깊이 찔러 대수술도 치러야 했다.
사고를 낸 가해자 측이 음주였고, 업무 중 산업재해를 인정을 받아 치료비 전액과 보상을 받아낼 수가 있었다.
30대 초중반의 2년이란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남들은 커리어의 정점을 바라볼 시점의 발판이 될 때인데 내 경력은 사고로 인해 완전히 끝나 버렸다.
앞길이 막막해졌다. 그나마 가해자에게 받은 피해 보상금 삼천만 원과 여태 모아둔 적금을 합하면 당장 1,2년은 버텨낼 수가 있겠지만, 지금 퇴원 수속을 밟고 사회로 나갔을 때 뭔가를 당장 시작해야만 하는 위치였다.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망연자실함에 벤치에 앉아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앞을 오가는 사람들의 귓가에 한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내쉬었다.
“그래도 몸이 완전히 회복 되셨나 보네? 한숨 소리가 병원까지 울리겠어.”
내게 캔커피를 건네며 옆에 앉은 사내는 이곳 산재 병원에서 현재 3년째 외래 치료중인 환자였다.
“오늘이 마지막 치료였습니다.. 형님도 오늘이 마지막이죠?”
“그치. 이제 졸업이다. 막막하지?”
그가 구부정한 자세로 앉으며 말했다. 그는 공사장 인부였고 덕트가 무너져 큰 사고를 당했었다.
“그쵸. 나이도 있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예전처럼 열정도 사라졌고..”
“직장에서는 다시 안 받아 준데?”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병원을 퇴원하는 날이면 사회초년생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아..”
“아..”
“사회에서 나를 받아줄 곳도 없는 것 같고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너만 가지고 있는 고민 아니야.”
“...”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야. 나 같은 놈도 이렇게 살 잖냐. 잘 살고.. 연락하자.”
그가 위안을 주는 미소를 내비치며 말했다.
그리고 벤치에서 일어나 다리를 절뚝거리며 어딘가로 향해 나아갔다.
이 형님의 말처럼 사회에서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
산업재해를 당한 이력이 있는 나를?
부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근로자들의 이력서를 매일 검토하고 인력을 파견시켰던 내게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다.
재해를 겪었고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 어찌 됐든 회사입장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게 분명했다.
휴.
나아가고 싶어도 나아갈 수 없는 그 무기력함은 마치 삶이 일시 정지가 된 느낌이었다.
[앞으로 제가 이끄는 대로 삶을 살 수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