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종언의 마법사>
최초의 포문을 연 것은 최완부터였다. 제 자리에서 한순간에 뛰쳐나간 그는 황금빛 오오라를 둘러쓰고는 그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말은 길게 했지만 이미 서로 마법을 끌어올린 상태.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거리가 좁혀진다.
“흠.”
그 역시 이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바가 아니었는지, 그대로 고개만 까닥여 그것을 피해냈다. 직선으로 내질러진 주먹에서부터 충격파가 터져 나와 하늘에 일자형 비행기 구름을 만들어냈지만, 그런 것엔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듯, 남자는 그대로 그의 명치에 카운터를 꽂아 넣었다.
“크헉!”
최완의 복부가 단 일격에 관통되고, 그의 등 뒤로도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는 속절없이 피를 토해내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싸늘하게 내려 본 남자는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상대하고 있는 게 누구인지 잊은 모양이군.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던 아들의 특기가 뭐였는지 잊었나?”
“크으…!”
힘겹게 몸을 일으킨 최완의 몸에 이미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남자의 눈에는 그렇게 회복하기 위해서 그가 큰 소모를 했다는 것이 눈에 훤히 잡혔다. 그의 눈매는 더욱 차가워졌다.
“디제스터. 내가 이 몸에 완전히 귀속되면서 갈라져 나온 찌꺼기들…. 그것들에게 이 녀석이 죽게 해보려고 애를 쓴 결과가 재미있게 나와 버렸어.”
남자는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10년 전. 그 꼬맹이와 같은 몸이라곤 생각지도 못할 몸이다. 지상에 접근전에서 이놈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있을까?
없지야 않을 것이다. 같은 체격, 혹은 더 큰 체격의 격투기 세계 챔피언 정도면 견적이 나오겠지. 하지만 막상 이 녀석을 막을 ‘자격’을 가진 이들 중에선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리고 인류의 마지막 수호자 타이틀을 달고 온 저 장년의 남자는 또 어떻단 말인가?
“그렇다고 너와 장거리 마법전을 하는 거야말로 바보짓이지.”
그렇게 말한 최완은 다시 한 번 쇄도해왔다. 이번엔 곧장 라이트 스윙을 해오는가 싶더니, 실제론 아래서 위로 쳐올리는 장저가 노림수인 공격. 처음 그 큰 동작을 보고 되치려고 했다간 그대로 머리가 위로 들릴만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런 숏 어퍼 계열의 공격은 일반인은 모를까, 온갖 기상천외한 공격을 다 대비하고 있는 괴물 살해자에게 통할만 한 공격은 아니었다. 남자는 몸을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면서 그 타격점에서 벗어나며 오히려 좌, 우로 훅을 갈겨댔다.
그 공격이 또 섬전처럼 빠르다. 다행히 최완은 이번엔 장저가 빗나가자마자 몸을 빼서 피해냈다. 그 모습을 보며 남자가 말했다.
“안쓰럽군, 수호자여. 지금 나는 아직 ‘녀석’이 할 수 있었던 범주 안의 힘만 쓰고 있는데도 이렇게 고전하다니.”
“후우…. 나라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가? 그렇다면야.”
그렇게 말한 남자의 몸에서 밝은 빛무리가 흩날렸다. 부분 신위의 빛. 하지만 그것이 어느새 그의 몸 전체를 뒤덮는다 싶더니, 단 한 번 백열의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큭!”
과거, 이그네스 사태 때 선보였던 완벽한 형태의 신위. 하지만 그 모양새는 조금 달랐다.
당시의 영천후의 상태가 완전히 빛과 동화되는 것처럼 보였다면, 지금 그는 어느새 빛무리를 벗어나 아무런 오오라도 두르고 있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다는 듯이.
이미 그 자체가 현인신 그 자체이니, 신위를 획득한 영향으로 변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 몸을 차지한 영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모습 그 자체였다.
“일단 이 정도로 상대해볼까?”
그것은 과거. 6년 전 최완이 폭주했던 영천후를 제압했던 때와 같은 수준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 이 타클라마칸 사막에 펼쳐진 대형 결계 안에서도 한계 따위 모르는 것처럼 쉽사리 힘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여력을 여전히 한참이나 남기고.
“후우….”
그건 최완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기회이기도 했다.
상대는 말 그대로 정진 정명한 신의 대자. 지금 이 싸움을 인간의 마지막 발버둥으로 규정하고, 그와 인류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받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 당장 인류가 가진 모든 핵미사일을 여기에 쏟아 부어도 그는 전부 받아들여 주리라. 물론…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자신이 있으니까 하는 행위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기회가 있다면 같은 지평에서 맞상대해주는 지금뿐이다. 아직 그의 의지가 작용해서 악시스 문디의 경계 확장 속도 역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끝장을 낸다면….
“…….”
영천후의 몸과 영천후의 얼굴을 한…저 녀석만 쓰러뜨릴 수 있다면. 인류의 미래가 계속될지도 모른다. 비록 그걸 해냈을 때 그 결과는 그를 평생 좀먹을지언정.
그래도…!
“신의 대자여. 신위는 너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음?”
“가假. 신위神位.”
순간. 최완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황금빛을 띠던 오오라는 점점 그 색이 밝아지더니, 이윽고 백열이 되었다.
“아니?”
그 모습을 본 남자는 깜짝 놀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신위란 기술의 정체는 결국 영천후 그 자신이 가이아의 아들과 융합된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시적으로 신의 영역에 강제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해내다니? 아무리 저 최완이라는 자가 기량이 대단하다 한들?
“이거나 맞고 정신을 차려라! 멍청한 아들놈아!!!”
그런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코앞까지 다가온 장년인은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렸다.
*
타클라마칸 사막 위를 검은 선 하나가 일자로 가르며 흙먼지가 거칠게 일어났다. 수 km를 그렇게 쏘아져 나간 남자는 간신히 균형을 되찾았다.
“크으. 제법이군.”
이 한 방에 아예 머리통이 증발해버렸다. 물론 그는 이미 영육의 경계가 없는 존재이니 머리 좀 날아간 거야 순식간에 복구되었지만, 맞고 날아가는 운동량 자체를 죽이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따라붙은, 아니 더 빠르게 날아온 최완은 그대로 자신이 맞았던 곳과 똑같은 부위, 명치는 발로 내리찍었다.
그 한 방에 사막 대지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모래들은 녹아서 유리화되어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고, 지각은 진도 6 이상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린다.
최완은 이미 상대가 자기 양자의 몸을 쓰고 있든 말든 그런 속박을 벗어 내버렸는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추가 공격을 준비했다.
치지지지직! 그의 몸에서 타오르는 백열이 손끝으로 모인다. 하늘 위로 쏘아진다면 그대로 열권을 통과하여 우주까지 날아가고도 남음이 있는 힘이다. 어지간한 산에도 구멍을 낼 수 있으리라.
그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그가 내리꽂힌 지면을 향해 쏘아버렸다.
투확! 에너지가 발사되며 주변 대기가 물러나고, 세상이 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백열이 지면에 꽂히지는 않았다.
지면에서 튀어 오른 무언가가 그것을 쳐내서 방향을 역으로 바꾸고서 최완에게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머리의 반과 팔 한쪽이 날아간 남자였다. 그의 몸은 무슨 모래 인형이 부서진 장면을 역 재생하는 것처럼 빠르게 회복, 아니 복원되고 있었다.
“제법이군!”
공중에 따라붙은 남자는 그렇게 외치며 다시금 접근전을 걸었다. 최초 날아들면서 내찔렀던 잽을 피해낸 최완은 뒤로 물러서면서 그것에 응했다.
쿵! 쿠쿵! 쿠르르릉! 사람의 몸에 임한 빛과 인영이 충돌할 때마다 천지가 뒤흔들린다. 주먹과 주먹이 교차하는 속도는 소리보다 빨라서, 그들이 행동했음을 알리는 표시는 뒤늦게 울리는 천둥만이 알려줄 뿐이었다.
사람의 눈으로는 쫓을 수도 없는 공방. 마치 용이 승천하듯이 허공에서 맞붙은 그들의 교차는 한참이 지나서야 잠시 멈추었다.
“헉…. 헉….”
“힘들군. 과연 마지막 수호자로 점지 될만한 실력은 있었는가?”
누구를 승자라 칭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최초의 일격을 성공했던 최완은 계속해서 그를 밀어붙였지만, 그는 본래 가진 실력에 더해서 강력한 복원력의 힘으로 몸이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아무런 타격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무한해 보였던 그가 가진 힘의 총량이 어느 정도 깎였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와의 싸움에 일격사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니 소모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최완은 분명 꽤나 그를 ‘소모’시켰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렇지만 그쪽도 많이 소모했군. 슬슬 신위 상태를 유지하기 힘든 게 아닌가?”
“…….”
그 말에 최완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딱딱하게 굳은 그 표정이 대답이 되었다.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대충 메커니즘은 알겠군. 마법사의 시원은 랑크 메이거스가 열었지만, 그전에도 일부 인간들에게 본연의 초자연적 능력은 있었지. 지금은 네츄럴 소스라 부르던가? 원시 마법사라 부를 수 있는 것들. 자네도 그중 하나군. 그걸 극한까지 개발해서 메이거스에게서 받았던 힘조차 초월하다니. 대단한 노력이야.”
네츄럴 소스란 말하자면 가이아가 정식으로 낳은 돌연변이들. 신역에 자연적으로 접하는 인간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영역은 한정적이어서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도 제한되지만…최완 같은 경우엔 그것이 마법이었다.
또 하나의 선택받은 마법사라고 해야 할까?
“메이거스는 나에게 말하더군. 자신이 마법사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최후의 시련을 치렀을 자는 분명 나였을 거라고. 그래서 나를 최후의 수호자로 삼았다고.”
“그렇군. 그렇다면 확실히 그대에게는 자격이 있지.”
가이아가 안배해놓은 열세 시련. 그녀는 인류에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 역시 동 시기에 함께 낳는다. 그는 본래대로였다면 열세 번째 시련을 두고서 싸워야 했을, 말 그대로 인간의 마지막을 지킬 수호자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언정…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최후의 수호자여. 이미 그대의 때는 지났다. 그대가 치러야 했을 시련, 앙골모아의 때 역시 랑크 메이거스의 제자들이 극복해냈지. 그대는 나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야. 그리고 어머니께선…적합한 수단이 아닌 자에겐 가혹하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완의 신위 상태가 해제되었다. 빛의 화신 상태에서 돌아온 그의 머리칼은 완전히 백발이 되어있었고, 피부는 빼빼 말라 당장에라도 수분 보급이 필요해 보였다.
눈 아래는 퀭하니 들어가 있고, 몸이 무거운지 허리는 굽었다. 며칠이나 기아에 시달린 것 같은 모습. 본래 그가 발휘할 수 없어야 할 힘을 발휘한 대가였다.
“자. 그럼 이제 어쩔 테지? 이제 그대들이 나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없어 보이는군.”
“큭….”
최완이 비통해하는 침음성을 내자, 남자는 차가운 눈으로 검지와 중지를 붙인 채 앞으로 손을 뻗더니, 그것을 좌에서 우로 한 번 그어버렸다.
흠칫한 최완은 양팔을 들어 막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곧 남자의 행동이 자신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막을 감싸고 있는 녹색의 경계의 상부가 갈라져 나가는 것을 보고서.
“아…….”
“구조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이미 전투에 의해서 1차, 길게 지속해서 2차로 부하가 걸리고 있었으니, 그걸 증폭시키는 건 일도 아니지. 마법사의 생명력을 치환해서 사용하는 마법진 따위….”
그나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어서 중간에 시전을 포기하거나 나가떨어져도 탈진하는 데에 그치는 구조였지만, 그런 만큼 두 번 펼치기는 힘드리라.
아니나 다를까. 한 번 손상을 입은 결계는 순식간에 무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의 몸에서 다시 한 번 인류 멸살의 오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는 이미 최완이 소모를 버티지 못하고 신위가 해제된 시점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저항이 끝났다고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기다려! 아직 인류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
그는 외쳤지만, 신의 대자는 차갑게 바라볼 뿐이다. 무엇이 더 남았는가? 그것을 눈으로 묻고 있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일리미네이터? 그들이 아무리 모여 봐야…. 노블레스 클럽이 통째로 다 모여 봐야 지금 최완이 발휘했던 힘에 단 몇 초 근접할까 말까 할 뿐이다. 그것도 순수한 물리력이 그렇단 거고, 그 힘은 아무리 모여봐야 신역에 닿지 않았으니, 그를 해할 방도가 없었다.
몇몇 네츄럴 소스나, 그에게 상처입힐 가능성 있는 이가 세상에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 모두가 모조리 미숙하고 부족하다.
그러니 그가 끝이었다. 더는 없었다. 상대해줄 의미조차 없다. 오히려 처절한 꼴이 될 뿐이다.
그런 의미로 신의 대자는 오히려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는 셈이었다. 더는 추하지 않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게끔.
그러나 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후야!!!! 정신을 차려라, 제발!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인간은 언제까지고 추하다는 점이었다.
“…….”
“저항해! 저항하란 말이다! 너는 그 신의 대자와 10년을 넘게 같은 몸을 쓰고 지냈다! 정신의 주도권에 대한 적응도 여러 번 겪었으니, 싸움이 안 될 리가 없어! 일어나라! 일어나라고!”
얼굴의 잔주름들이 탈진으로 깊게 파인 장년인은 눈물마저 흘리며 그렇게 외쳤다. 그 모습을 신의 대자는 말없이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과거. 11년 전 막 눈을 뜬 그였다면 이런 모습 역시 능멸하며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최완의 말대로 10년을 넘게 ‘인간’과 한 몸에서 합방한 사이다. 그동안 인간에 대해서 좀 더 많은 학습을 할 수 있었다.
인류의 통합사고, 아카식 스트림을 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수많은 인간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렇기에 그는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인간 그 본연의 모습임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면서.
“마지막 희망을 녀석에게 두었는가? 그렇지만 슬프게도 녀석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끝입니다, ‘아버지.’ 편히 잠드십시오. 모든 인류와 함께.”
인류 역사의 최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