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303화 (303/324)

303화

“죽일 방법이…없었다고요?”

“그래.”

그 말에 천후는 아연해졌다. 아니 그게 말이 되나?

천후는 잠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심장이 있는 곳. 희주에 의해서 완전히 적출당했었는데도 그는 되살아났다. 그렇긴 하지만….

“분명히 제 재생력은 강력한 것 같지만…아예 못 죽일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심장이야 다시 붙었지만 완전히 오체분시하거나, 막말로 갈아서 빻은 다음 태평양 사방에 뿌리거나, 원심분리기에 처넣어버리면 죽지 않을까?

막상 이 몸에 살아가는 천후는 자신이 완전히 불사의 몸이라는 말은 쉬이 믿을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네 말이 맞다. 아예 못 죽이진 않아. 그러니까 죽일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수 있는 거였지. 좀 더 정확히는 뒤탈 없이 죽일 수 있을지 어떨지의 문제였다고 하는 게 맞겠지.”

“뒤탈?”

“그래. 뒤탈.”

거기까지 말한 최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지금까지 몇 차례나 겪었겠지만…말하자면 너는 폭탄이다. 외부 자극에 의해서 너는 너조차 알지 못하는 힘을 몇 개나 깨우곤 했지. 너를 함부로 해하려다가 실패한다면…메이거스에 의해서 봉인되어있는 그 폭탄이 터질 수도 있기 때문에 고민하는 거다.”

“…….”

최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폭탄.

천후는 그것이 위기 상황에 종종 말을 걸어오는 소년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자기 몸을 탐하고 싶어 하지만, 무언가에 가로막혀서 자유롭게 빼앗지 못하는 이질적인 존재.

지금은 그게 메이거스라는 자의 조치 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죽을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면 어떨까?

천후가 물었다.

“그렇지만…아저씨는 빛이 된 저조차 막아낼 수 있었잖아요. 그 뒤탈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그것이 전부라는 확신이 없어. 게다가 너와 악시스 문디는 연결되어있다. 메이거스의 봉인이 풀렸을 때, 그 반동으로 악시스 문디의 행동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은 함부로 시도할 수가 없다.”

“행동이 변화해?”

“막말로 갑자기 악시스 문디의 경계 확장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거지.”

“…….”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였다. 잘못 건드리면 삽시간에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 빛의 화신으로 변해 그냥 날뛰어도 처리하기 힘든데, 거기에 더해서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니?

“가이아, 그리고 악시스 문디가 너에게 걸러둔 생명 연결의 메커니즘은 아직 완벽하게 파악된 게 아니다. 확실한 수단이 아니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천후는 잠시 머리를 짚었다. 갑자기 들은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어지럽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체 유그드라실이 왜 여태까지 자신에 대해서 감추려고 들었는지 들어보니 얼추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대체 누구와 공유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유그드라실은 지금까지 유년기의 그를 ‘보호’해왔다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동안 천후는…특히 지상에 내려온 이후론 그걸 개소리 이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사정이 이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보호가 맞았다. 그가 이러한 존재란 것이 만천하에 공개된 상태로 지상에 그냥 남았다는 전제로 생각해보자면, 그는 사춘기를 맞이하기도 전에 사망하고, 인류는 스스로 자멸의 방아쇠를 당겼으리라.

물론 유그드라실의 보호란 것 역시 그에 대한 ‘분석’을 하기 위한 보호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죽이기 위한 연구를 하기 위해 살려두다니.

“무슨 이딴 아이러니가….”

그렇게 중얼거린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하나같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지금 이 순간에도 사건은 진행되고 있었다.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천후는 지금 상황을 간단히 되짚어 보았다.

1. 10년 전에 내가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류 멸절의 세계수, 악시스 문디가 나에게 생명 연결을 했기 때문이다.

2. 악시스 문디를 직접 없앨 순 없고, 내가 죽어야만 활동을 멈춘다. 다만 자연사할 경우엔 생명 연결이 다른 이에게 넘어간다.

3. 그런데도 지금까지 날 죽이지 않은 건 서투르게 시도하면 내 안에 잠든 힘이 폭주할 뿐만 아니라 악시스 문디가 연쇄 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천후는 그것들을 전부 현실로 받아들이고 질문을 이었다.

“…그렇다면 고인규와 유그드라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번에 절 공격한 겁니까? 실제로 저는 이렇게 살아남았어요. 다행히 악시스 문디의 범위 확장이 빨라지진 않았지만, 위험하지 않습니까?”

최완의 말을 전부 사실로 받아들이자면 그건 정말 미친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최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말로 이번 투표에서 찬성파가 승리한 이유지. 고인규는 이번 투표에서 가져왔다. 너를 죽여도 뒤탈이 없는 확실한 무기를….”

이 대화의 흐름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뻔했다.

천후는 등 뒤에 서리가 맺히는 느낌을 받았다. 정답은 이미 머릿속에서 떠돌았다. 입에서는 도저히 잘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게…희주씹니까?”

간신히 나온 말은 마치 피를 토해내는 듯 괴로웠다. 슬프게도.

“그래.”

최완은 그 질문에 확답을 주었다.

*

천후의 얼굴은 한눈에 보아도 피폐해 보였다. 이제 막 의식을 회복해서 나누는 대화라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둘 중 어느 쪽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최완이 말했다.

“조금 옛이야기가 되지만, 대참사가 일어나기 전부터 유그드라실은…아니 그 전신인 고위 마법사들의 회동에서부터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조짐을 느껴왔다. 가이아는 인류와 마법사에게 시련을 내려왔고, 그들은 늘 그것을 극복해왔지.”

“그게 그녀가 말했던 열세 시련입니까?”

“아마도. 그것은 자세히 기록으로 남겨져 있지 않긴 하다만.”

“좋아요. 계속 말씀하시죠.”

“그 과정에서 그들은 늘 생각해왔다. 그런 신적 존재가 나타날 조짐은 보이고 있으니, 그에 맞는 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 부분에 대해서 여러 세대에 걸쳐서 연구해온 집단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유그드라실을 처음 만드는데 일조한 원로들이지.”

“…….”

“마법사가 인간을 지배하려는 야욕은 좌절되었지만, 그들의 연구 기록과 그 사상은 고스란히 유그드라실 일부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고스란히 너란 존재를 반대하는 쪽에 섰지. 그리고 가장 주축이 되어서 너를 죽일 방법을 연구해왔다. 그리고…몇 가지 성과를 냈지.”

“성과?”

“그래. 성과. 과거의 연구와 지난 10년간 너를 가지고 한 실험에서 알아낸 방법은 세 가지였다.”

그렇게 말한 최완은 손가락을 세 개 폈다.

“첫째. 진리구현자로 죽인다. 자연적으로 수련을 통해 사실상 가이아에게 신역에 접어들 자격을 부여받은 그들은 말하자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신살자들이다. 이전 사하르에게 네가 몸을 지배당했을 때 너의 처리를 강호 양에게 맡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죽으면 생명 연결도 끊겨버리지. 이건 강호 양이 중간에 확실히 너를 처리하지 않아 재생력이 발동하면서 좌절되었다.”

“…….”

그 말에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즉, 최완은 그때 한 번 마음을 굳혔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최완의 말이 계속되었다.

“둘째. 디제스터로 죽인다. 결국 디제스터는 말하자면 악시스 문디가 나타난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일종의 힘의 부산물이다. 동종의 힘을 가진 그것들에게 죽는다면 뒤탈이 없다. 네 사명감과는 별개로, 네가 일리미네이터가 되었을 때 첫 임무부터 메인 퀘스트가 떨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말인즉슨, 제발 가서 뒈져달라고 마구 내려보냈다는 소리다. 다만 경급 이상에 투입되는 건 내부에서도 사정 모르는 마법사들에게 반발이 심하게 나와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디제스터 상대론 너도 점점 내면의 힘을 각성하곤 했지. 첫 임무부터 그랬었으니까.”

“그랬죠….”

대 디제스터 전에서 천후는 아예 죽일 수 없는 존재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삼 자매는 이강호에게 다쳤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손쉽게 그를 회복시켰고, 그 자신도 워낙 강해서, 지금 와서는 지구 최고의 일리미네이터가 되어있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뒤탈을 각오하고 그냥 힘으로 찍어 눌러 죽인다. 그걸 위해서 준비되어 있던 게…나다.”

“…….”

그 말에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아연해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우습기도 하지. 최후의 때가 오면 내 손으로 너를 죽이라고 해놓고, 나보고 네 양아비가 되라니.”

“아, 아저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쉬이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최완은 곧 고개를 들어 똑똑히 그를 마주 보았다.

“아니. 그만두자. 지금은 이런 감상적인 이야길 할 때가 아니야…. 그런 걸 빼고 이야기하마. 다만 이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시도였다. 정말 최악의 때가 아니면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지.”

“…….”

“그런데…. 그들은 지금껏 숨기고 있었지만, 네 번째 방법이 있었다.”

천후는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가 10년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고민은 그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커서, 당장 그의 손을 잡고서 말을 멈추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의 눈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아니라 천후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운명만을 볼 수 있도록 이끌고 있었다.

저 눈을 앞에 둔 이상, 그 역시 이제 다른 곳에 곁눈질할 수 없었다.

“그게…뭡니까?”

“그건 아마 너도 이미 접해봤을 거다. 엘모세와트를 상대하면서…. 지금도 네 곁에 있는 그 라즈베리라는 아이.”

“…….”

순간 천후의 머릿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래. 결국 인간이 신을 해하려면 신역에 닿는 수밖에 없다. 닿으려는 이유는 다르지만 그 연구 주제는 일치했던 거지. 만나보았을 거다. 모리나 그윈들링을 통해 만들어낸 한정적인 인류 사념 통합체를.”

인간을 마약에 절이고, 정신적으로 최고조의 고양상태로 접어들게 해서 인류의 공동체적 영역에서 엮어서 신역에 접한다. 그 과정에서 나온 끔찍한 광경은 아직도 머리에 새겨져 있었다. 그게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최완은 말했다.

“아니. 주제는 공유하고, 협조도 했지만 두 집단의 방법론은 조금 달랐다. 엘모세와트는 사람의 의식을 모아 일시적으로 신인 상태를 만들어냈다면, 이쪽은…애초부터 신인은 창조해내겠다는 발상을 했다.”

“창조해? 무슨….”

“그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하지만…그들의 후계자는 최고의 마법부여사, 그리고 현존하는 유일한 SA 랭크 마법사였다. 사실상 신과 마법사의 관계. 악시스 문디 시스템에 대해서 랑크 메이거스를 제외하면 가장 잘 아는 남자였지.”

“뭐라고?!”

“네 짐작대로 SA 랭크는 이제 세상에 없다. 단 하나를 제외하곤….”

“그게 고인규라고?”

최완은 굳게 고개를 끄덕였고. 말했다.

“그리고…그는 해냈다. 신인 창조를.”

그 신인이 누구인지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고인규가 남기고 간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야말로…오로지 그를 죽이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그만을 위한 병기였다.

마음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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