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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262화 (262/324)

262화

이 산간 지방에 잘도 가져다 놨다 싶은 지대지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알프스 산맥 안에 정말로 정체불명의 무장세력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정말로 있을 줄이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의 정상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강제로 국경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산맥은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이 찾는다. 그런데 그 시선을 모두 속이고 시설을 짓고 무장을 갖춰두었다니?

“하지만 그래 봐야 대단치 않겠지.”

산속을 파고들어 가 뭔가를 만들어냈다고 해봐야, 거기에 기계화된 장비들이 머물 공간이 많이 나올 리가 없었다. 하물며 동 세대의 전차나 장갑차, 헬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외부로 노출되어있는 곳만 타격하고 특수부대를 쏟아 부으면, 아니 거기까지도 필요 없고 모든 육상 이동 루트를 막고서 기다리기만 하면 식량이 다 떨어지는 순간 끝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저 안쪽엔 마법사들이 많다고 했다. 손짓 한 번에 폭발을 일으키는 놈들을 굳이 상대해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제압당한 지대지 미사일 발사대나 자주포, 견인포대가 있는 곳 근처에 뚫려있는 구멍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어린아이였다.

“인질인가?”

보고를 듣고 놀란 지휘관들이 잠시간 공격대기를 명령한 그 시간 동안, 소년 소녀들은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의 차림새는 단출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원피스 하나만 덜렁 입혀놓은 그 아이들의 얼굴엔 생기가 없었다.

소년병을 떠올린 이들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딱히 총화기로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손에 웬 약병 같은 것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 저게 무엇인지 몰랐다. 당연했다. 아는 이가 있었다면 이 시점에서 어떻게든 약병을 회수했을 테니까. 하지만 몰랐기에…. 그들은 소년병보다도 더욱 끔찍한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쨍그랑! 쨍그랑! 어느 정도 다가온 아이들은 그것을 땅에 던져서 깨트렸다. 그 순간… 병 속에 있던 검은 물체가 갑자기 울퉁불퉁하고 커지더니, 근처에 있는 아이들을 감쌌다.

“안 돼!”

그 광경을 본 군인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이미 사건은 일어나버렸다.

뿌직뿌직.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몸집을 불린 그 검은 물체는 곧 전설이나 설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가상의 괴물들. 디제스터가 되어서 아이들을 습격했다.

아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모두 쓸려나갔고, 디제스터는 그 몸을 연합군 쪽으로 돌렷다.

“디제스터!”

“아니? 저게 무슨…. 디제스터를 원하는 대로 가둬둔 건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은 당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디제스터를 사람이 통제하고 있었다고? 아니 그럴 리가? 분명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걸 몇 번이나 봐왔는데?

쾅. 콰쾅! 판단보다도 먼저 포가 불을 뿜으며 막 나타난 디제스터를 피 거품으로 바꾸었다. 이렇게까지 밀집된 화력 앞에서 아무리 파급 디제스터라도 재래식 병기의 밥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 아이들의 시신은 이제 수습할 방법조차 남지 않았다.

그 뒤로도 아이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병을 들고서 걸어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오오라를 피워올리는 아이들도 보였다. 마법사가 섞여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군인이고 명령이라지만, 이제 10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포를 쏘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망설임의 대가는 참혹했다.

지상에서 쏘아 올려진 빛덩이에 맞은 헬기는 꼬리날개를 잃고서 그대로 추락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디제스터를 풀어대고 있었다.

“아. 아아아….”

도무지 더 봐줄 수가 없는 광경에 연합군인들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미친 마법사들의 근거지라는 설명은 들었지만…. 그게 미성년자를 학살하는, 혹은 죽어 나가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일일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걸…. 그냥 지켜봐야만 한단 말인가? 일이 이렇게 커졌는데도 마법사들은 그저 손을 놓고 지켜보고만 있단 말인가?

그 불합리함에 그들의 마음이 분노로 바뀌어 갈 즈음….

하늘이 어두워졌다.

놀란 병사들이 하늘 위를 올려다보자, 그곳에는 하나의 구체가 있었다.

수많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촘촘히 새겨진 회색빛 구체의 중간엔 하나의 금이 가 있었다. 마치 감겨있는 눈처럼 생긴 그 모양새를 보고….

그들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음에도 저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유그드라실…!”

하늘에는 불가시 모드를 해제한 유그드라실이 떠 있었다.

*

유그드라실의 대기홀. 이그네스 엠프레스 레이드를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공간에 여유가 있던 이곳엔 이제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스컬린의 수완을 빌려 군을 움직인 천후는 곧장 유그드라실에 지원을 요청했다. 정규공격대에도 역시.

“이번 일에서까지 발을 뺀다면 세상은 당신들의 존재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할 겁니다.”

“알고 있소. 우리도 오랜 구적과 종지부를 찍을 생각으로 이곳으로 왔으니 이제 그만 말씀하시지요.”

그 홀의 단상에는 유그드라실 고위 간부들과 영천후. 그리고 정규 공격대장들이 마주 보고 있었다. 화면을 통해 지상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내려 본 그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사람이 디제스터를 통제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아직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일이 일어났고, 저걸 해결할 것은 우리란 겁니다.”

유그드라실의 노인들의 당혹을 단칼에 끊어낸 천후는 사람들 앞에 나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공간이 생겼다.

엘모세와트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그 모든 총대를 멘 것이 바로 이 남자였다. 그것은 지난 수년간 엘모세와트를 잡아내려 해왔던 유그드라실조차 부정할 수 없는 진실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마치 명령만을 기다리는 준비된 병사들처럼.

그들을 향해 그가 소리쳤다.

“여기서 연설이나 길게 할 시간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아픔을 끊어낼 때입니다! 지금 이후론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여러분.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갑시다!”

짧은 선언이 홀에 울렸다. 그와 동시에 지상으로 수많은 큐브 엘리베이터들이 떨어져 내렸다.

“새로운 시대라.”

스치듯 지나간 말이지만 가슴에 남았다. 지금 이 고비를 넘어서면, 조금 더 새로운 세상이 열릴까?

그런 건 사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 작자를 보고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고 만다.

‘적어도 저런 놈이 있으면 잠깐이라도 좀 더 나아지겠지.’

근거 없는 희망이 열기가 되어 마음을 채운다. 그 힘이 눈앞의 비극과 싸울 힘이 된다!

“흐으으읍!”

지상으로 내려온 마법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병사들이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접근한 마법사들은 병을 빼앗고 그들을 기절시키기 시작했다.

“방해.”

“처리.”

방해가 들어오자 마법사 아이들이 그들을 상대했지만…. 디제스터 처리를 업으로 삼은 자들과 마법 기관의 직원들이 상대다. 마법에 대해 전혀 모르던 어중이떠중이와는 전혀 다른 상대.

날아오는 마법들을 가볍게 상쇄시킨 이들은 빠르게 그들을 제압해나갔다.

“주 통로는 그 저택 쪽에 있을 겁니다!”

라즈베리 정도의 랭크를 가진 마법사는 이 조직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을 터.

그녀가 출입하는 통로는 분명 다른 곳과 조금 다를 가능성이 높았다. 근거라곤 고작 그것뿐이었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의지해야 했다.

이 미친놈들은 상황에 따라선 저 안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전부 자살하게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내부에 급속 침투하기 위해 편성된 영천후, 이강호, 스컬린, 패트릭, 제이나로 구성된 팀은 곧장 섬광이 되어서 저택 내부로 쏘아져 들어갔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찌이이이잉!

“악!”

“큭…!”

저택 입구로 몸을 날리는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강력한 이명음이 울려 퍼졌다. 놀란 그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왜 그래요?”

“아니… 자네는 괜찮은가? 갑자기…머릿속이….”

간신히 대답하던 패트릭은 그러다가 눈을 크게 뜨고서 손을 내 뻗었다. 놀란 천후는 몸을 피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

그곳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한 손에 약병을 든 채 허공에 서서 그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라즈베리?”

이강호는 그녀를 보고서 라즈베리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더 의구심을 품을 틈은 없었다. 그 소녀의 손에 들려있던 약병이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 회수한 약병들과는 달리 완전히 검은 것이 가득 들어차 있는 그것은 소녀의 손짓에 따라 총알처럼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쿠우우우웅!

“키에에에에에에에!”

병이 하늘에서 깨지자, 거기에서 길이 백 미터가 넘어가는 악어나 도마뱀을 연상시키는 다리 여섯 달린 괴물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놈은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눈에서 한 번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놈의 정면에 있던 삼국 연합군의 병사들과 기갑전력이 갑자기 회색빛으로 물들며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게, 게이즈 어택! 석화다!”

“저 크기는…. 멸급 디제스터입니다! 병력을 물러야 해요!”

놀란 그들이 그렇게 외쳤지만, 그때 갑자기 디제스터의 몸에서 희미한 붉은 역장 같은 것이 튀어나와 주변 수 km를 덮었다.

그 결계 범위는 귀신처럼 정확하게 그들까지만 포함하고, 저택은 감싸고 있지 않았다. 놀란 패트릭은 그 경계에 다가가 보았지만,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건…. 던전!”

<현장에 던전화 멸급 디제스터 출현 확인. ‘가르간츄아 바실리스크’라 임시로 명명합니다.>

패트릭의 말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미미르가 선고를 내렸다.

유그드라실과 정규 공격대의 연합이다. 멸급 디제스터라도 잡아낼 순 있겠지만, 그동안 시간을 주는 꼴이 된다. 게다가 저 가르간츄아 바실리스크의 게이즈 어택은 범위가 엄청나서 함부로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디제스터를 불러내는 것까진 보았지만, 설마 멸급 디제스터까지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하고 있었기에 팀 구성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이 난장판에서 과연 얼마나 빨리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

“빌어먹을!”

부서져라 이를 간 천후는 던전 경계에 주먹을 내질렀다. 부수진 못하겠지만 이 분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후웅.

“엇?!”

그의 주먹이 던전 경계가 아니라 허공을 갈랐다. 생각도 못 한 일이었기에 균형 감각이 좋은 그조차 주체를 못 하고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앞으로 몇 걸음이나 걷고 나서야 자세를 회복한 천후는 어처구니가 없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이건 또….”

보니 반투명한 저편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천후는 혹시나 싶어 이번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 거부감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자네…. 던전 출입이 자유로워진 건가?”

“그, 그러네요.”

생각도 못 한 상황에 천후는 멍하니 답했다.

“놀랍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흉내 내어 경계를 만져본 스컬린은 단단한 감촉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그만이 가능한 일인 모양이었다. 그러자 잠시 생각해보던 강호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천후야. 먼저 가라.”

“응?”

“먼저 가! 해결하고 따라가마! 한 시가 아깝다!”

그녀의 말에 당황하고 있던 천후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그래. 방법이 생긴 것이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팀으로 침투하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적어도 자기 혼자만은 움직일 수 있다.

이 현상을 보고 가장 빨리 그걸 떠올린 게 그녀라니. 그는 심각한 얼굴의 그녀에게 기습적으로 입을 맞추고는 빠져나왔다.

“아, 으!”

“갈게!”

당황하는 그녀를 보고 엄지를 치켜든 천후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쏘아져 나갔다. 미소 짓던 얼굴은 금세 다시 굳었다.

멸급 디제스터를 불러낸 여자아이가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아마 나름대로 강력한 마법사겠지? 하지만!

“비켜! 시간이 없다!”

나를 막을 정돈 아니야!!!

============================ 작품 후기 ============================

진짜 오래된 복선이 여기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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