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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258화 (258/324)

258화

맞부딪힌 주먹에서 한차례 섬광이 일었다. 여기까진 같다. 하지만 이 뒤부터가 달랐다.

기괴한 소리가 나며, 강화주문의 효과로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된 통증. 아픔이 찾아온다. 부딪힌 주먹은 그 순간 증발하고, 그 뒤 밀고 들어오는 기세에 그대로 손목, 팔뼈가 수수깡이나 쌀가루로 만든 과자처럼 으깨지며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

뼈에 붙어있던 살점과 근육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놀란 알자드는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이전에는 출력이 비슷했는데? 아니, 굳이 이전까지 가지 않아도 방금까지 치고받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동등한 수준이라 가능했던 것이다. 갑자기 거기서 격차가 생겨났다.

“무슨-”

“그래, 나 위선자다. 그래서 어쩌라고!”

의문을 완전히 내뱉기도 전에 가까이 다가온 천후의 왼 주먹의 그의 턱으로 날아들었다. 저걸 맞으면 턱 아래가 깔끔하게 날아가고 만다! 알자드는 그것을 팔로 대신 막았다.

콰쾅!

폭음이 터지며 그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허공에 떴다. 그걸 귀신처럼 따라온 천후는 그대로 상하 콤비네이션을 구사하며 몰아쳤다.

“뭐하자는 개똥 논리야! 그래서 그럼 너나 다른 놈들이 총을 들고 날뛰고, 사람을 죽이고, 팔아먹고, 마약으로 절이는 걸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 웃기지 마! 너희는 한 번 당했으니까 무슨 짓을 해도 되고, 그 아이들은 죽기 직전이라도 피켓이나 들고서 소리치기라도 하란 거냐!”

“크…헉!”

초 접근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팔 하나를 잃은 것은 위험하다. 그는 다시 우반신체를 취하며 방어해내려 했지만, 난타 앞에선 수가 없었다. 머리를 막게 하고 다시 복부를 치는 레프트 더블에서 이어지는 헤드 버팅-어퍼컷에 알자드의 턱 아래가 깨져나갔다.

“하여간 억울하면 무슨 개 똥싸개 짓을 다 해도 괜찮은 줄 알아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이 빌어먹을 자식아!”

뭐? 억울하니까 다른 새끼들도 당해봐야 한다고? 뭔 되지도 않는 소리야? 치장만 하면 모든 게 정당화되나?

“뭐? 그리고 위선자? 그래, 나 위선자다! 그런데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짓을 봐라! 내가 위선자 짓 안 하고 버티게 생겼나!”

“이…!”

여러 마법사의 힘을 동시에 받아 힘을 발휘하는 스펠 쉐어의 특성상, 알자드의 자기 재생력은 매우 뛰어나 금세 부서진 몸이 복원되었다. 하지만 부서지는 시간이 더 빠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자드는 프론트 킥으로 천후를 밀쳐내고는, 다시 달려드는 천후에게 백스핀 엘보를 날렸다.

“큭!”

보는 순간 놀라서 몸을 숙였지만, 조금 늦어 머리 위쪽을 스쳤다. 자세가 무너지자 곧바로 도는 동작과 연계해서 들어오는 허리를 노리는 니킥. 서로 초가속 상태에서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천후는 그걸 맞아주는 대신 라이트 훅으로 그의 보디를 다시 후려쳤다.

콰쾅!

폭음이 울리며, 둘 주변의 내장 전시회로 바뀐다. 그러나 둘 다 누가 괴물인지를 뽐내는 것처럼, 서로의 상처 부위가 빠르게 아물었다.

전장 상황은 이미 이 둘에게 접근해봐야 좋을 것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주변은 휑하니 비어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알자드가 소리쳤다.

“애초에 네놈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어!”

“웃기고 있네! 네가 말한 그놈들은 마법사가 없었으면 인간이 가진 다른 면을 연구했을 거다. 좀 더 구체적인 목표대상이 있었을 뿐이지!”

천후의 부정에 알자드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과거 그 전쟁은 너무나 가혹해서…. 병기의 개선뿐 아니라 인간 본질에 대한 ‘연구’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말 그대로 지옥의 구현이었다.

거기에서 마법사가 없었다면…. 아마 그때는 마법이 아닌 다른 초능력 비슷한 걸 쓸 수 있는 방법이나, 유전학을 기초로 좀 더 우월한 전투 병사를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찍어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을 터였다.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고. 다들 잘못이 있지. 그럼 그 잘못을 저지른 놈에게 저항해야지!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는 쪽이 된 주제에 잔말이 많다! 나는 위선자지! 하지만 넌 그 위선조차도 안 한 그냥 악당이야! 네가 단순 피해자였던 때는 이미 예전에 끝났다! 그러니….”

파칙. 파칙. 흑색 오오라 사이로… 백색의 작은 광구들이 때때로 나타나 주변에서 한 번씩 번뜩인다. 알자드는 순간 그것이 그를 변화시켰음을 알았다. 지금 둘 사이에 나타난 스펙 차이의 원인.

‘그새 더 괴물이 되었다 이건가?’

알자드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남극에서 인류 전체를 위협할만한 디제스터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그에게 있어선 기습하기에 좋은 시기를 알려줬던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현장에 이 남자도 있었을 테니 당연히 거기서 뭔가 배워온 것도 있을 터.

아니.

아니다. 그것뿐이 아닌가?

혼탁스러운 정신 안에서…. 무엇이 그를 강하게 하는지 알았다. 저 흑염과 완전히 동화해, 이젠 인간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실루엣 속에서 그는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꼈다.

알자드는 코웃음을 쳤다.

뭐? 안타까움? 네가 나한테 감히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웃기지 마! 까불지 말란 말이다!

“네가 감히 나를 동정해?”

힘이 모여든다. 요새 안쪽에서부터 연결되어있던 오오라가 점점 증폭되며 그의 몸을 더욱 치밀하게 감쌌다. 그 순간 그의 눈, 코, 입, 귀. 얼굴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알자드!”

방금까지 온몸으로 인제 해부 쇼를 벌인 처지라지만, 저건 또 달랐다. 외부적인 충격도 없이 신체 이상이 일어난단 것은….

“네놈이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단칼에 천후의 외침을 끊어낸 알자드는 그 모든 힘을 한몸에 받아들이고선 섬전이 되어 그에게 쏘아져 들어왔다. 받아내지 않을 수 없다.

어느새 재생된 양손이 어지럽게 수놓이며 그의 목을 노려왔다. 잡는다기보단 으깨버리겠다는 기세가 느껴지는 움직임. 그것을 쳐내면 남은 손으로 세로로 올라오는 어퍼.

이 궤적의 주먹은 보통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아서 잘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천후는 침착하게 뒤로 물러나며 피해냈다. 하지만 밀고 들어오는 상대에게 이렇게 대처하면 계속해서 공격을 허용하게 된다.

어퍼 뒤에는 잽. 헤드 슬립으로 피해내면 바로 목 옷깃을 노리지만 그것까지 고려한 회피였다. 거기에서 바로 연결되는 원투. 그러나 직선적인 움직임에는 이미 적응했다.

‘안 맞아! 안 맞는다…!’

모든 역량을 간파당한 것처럼, 알자드의 공격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 근접거리에서… 자신과 같은 역량을 가진 놈과는 처음 상대해볼 텐데도 동요가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날아오는 주먹을 보고서도 깜빡조차 하지 않는 눈동자는 마치 그를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거기에 비친 자신은 수렁에 헤매고 있는 것처럼 헛손질을 해대고 있었다.

“이, 이건!”

갑자기 올린 출력 때문에 스펠 쉐어가 걸려있는 마법사들이 이지를 상실했음에도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공급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게 쥐어 짜는데도 이런 결과라니?

바로 그때였다.

“…흡!”

섬전과도 같은 원투. 그것의 라이트가 거둬지는 그 찰나에, 천후의 양손이 파고들었다. 지금까지 회피 일변도였다가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알자드는 꼼짝없이 걸렸다. 순식간에 그의 몸 안으로 파고들면서 오른팔을 감으며 목을 쥔다. 그리고선…!

“하아아아아아!”

후욱!!!! 끌어당기며 허리를 굽히자, 2미터에 가까운 낙차에서 사람 몸이 머리와 어깨부터 땅에 내리꽂혔다. 전형적인 매치기! 하지만 그 전형적인 매치기의 결과는 참혹했다.

쿠-웅.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지면이 떨린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마치 매트리스라도 된 것처럼 출렁이더니, 그대로 움푹 파이며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매친 천후의 몸은 그 반동으로 10미터 이상 솟구쳐올랐다.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공중에서 한 번 돌면서 땅으로 내려온 천후는 알자드를 내려보았다.

직접 떨어진 머리가 척추를 밀어내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머리 높이가 어깨보다 조금 높은 상태가 되었고, 2차로 닿은 온몸은 전신 분쇄골절이 일어나, 아무리 강화마법을 걸어놨다 하더라도 당분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꼴이 되었다.

“커…. 커어….”

지금까지 팔다리만 쓰던 놈이 갑자기 매치기라니? 생각조차 못 해서 꼼짝없이 당해버렸다. 말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 올려보는 알자드에게 천후는 간단하게 답했다.

“그래플링을 아주 못하는 건 아니야. 전문은 아니지만, 매치기 정도야 할 줄 알지.”

“…….”

할 말을 잃어버린 알자드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드러누웠다. 몸은 회복되고 있었지만, 그래 봐야 전부 회복되려면 시간 단위가 걸릴 몸이었다. 아니 이미 그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천후는 몸을 돌려서 데스웨도우의 요새로 찾아갔다. 그와 알자드가 미친 싸움을 하는 동안, 이쪽에도 어용 PMC의 병력이 들이닥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저편에서 아예 산악지역을 평탄화시켜버리고 있던 괴물 중 하나가 강림하자, 그들은 패배를 직감하고서 항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천후는 알자드와 연결되어있는 아이들을 찾아냈다. 그들은 눈이 풀린 채로 가만히 앉아있었고, 대신 연결되지 않은 다른 마법사 아이들이 그를 발견하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본 천후는 다음 순간 단숨에 그들을 전부 제압했다. 아무리 같은 마법사래 봐야 자의적인 판단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은 그의 털끝 하나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건물에서 나오고 나니…. 그의 그런 모습을 데스웨도우 측뿐만이 아니라, PMC 측에서도 두려워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지금 보이고 있는 모습은…. 말하자면 SA 랭크 마법사가 선보였다는 데몬스트레이션의 축소판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에야 그가 행하는 일이 선하고, 옳은 행위이니 다행이지만 그가 이런 괴물 같은 힘을 가진 채 날뛰려고 한다면? 그걸 막을 힘은 있을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천후는 그걸로 그들에게 섭섭해 할 수 없었다. 이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이 어용 PMC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내는 것이었지만, 역시 그건 불가능했고… 그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유그드라실이 매고 있던 총대는 이제 천후에게 이전되어있었고, 사람을 직접 죽이게 될지 모르는 이런 일에 다른 대리인을 투입할 수는 없었다.

“후….”

고개를 내저은 천후는 알자드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그 짧은 사이 척추와 목뼈, 머리 부분은 대부분 재생이 끝나있었지만 역시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그를 내려보던 천후는 그 옆에 꿇어앉으며 물었다.

“알자드 무자헤딘. 말해. 라즈베리는…. 엘모세와트의 본거지는 어디지?”

“후…. 후후…. 왜 그런 걸 굳이 나에게 묻지? 기억 조작은 이 안에서도 이뤄졌지만…. 직접 공급처인 만큼 직속 부하 중 몇몇은 어쩔 수 없이 온전히 기억할 수밖에 없었어. 그놈들이라면 술술 불 텐데. 이미 생포하지 않았나?”

“그래. 하지만…. 너에게 듣고 싶다.”

알자드는 멍하니 드러누운 채로 그를 올려보았다. 천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눈매에도 이전에 보이던 동정은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있었다.

이 마지막에 와서야 알 수 있었다.

이 미친 위선자는…. 여기까지 와서 다시 그를 구원하려 하고 있었다.

그가 저지른 죄는 구원할 수 없다. 그건 그가 평생을 노력한다 해도 속죄할 수 없는 대죄다. 그것이 아니라…

과거. 아직 그가 아무것도 모르던 청년이었던 시절.

집으로 보내주는 돈을 조금 더 늘려주겠다는 말에 냉큼 ‘간단한 실험’에 응하고 말았던 그때로 돌아가…. 그 진실을 알았을 때의 그를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놈.’

어처구니없는 놈이다. 그건 정말…. 오래전에 끝난 일이다. 되돌릴 수조차 없는 일. 이제 와서 내가 그것에 대항한다고 해서 뭐가 되지? 아무것도 되지 않아. 아무것도….

아아. 그렇지만….

주르륵.

입가에서 피가 나왔다. 그것을 느끼기 점점 힘들다. 때가 온 것이다. 예상했던 때가.

그럼에도 그는 입을 놀렸다.

“그때도-”

너 같은 놈이 있었다면-

망가진 정신 너머. 영혼이라 부를 만한 것이 내는 목소리를 굳이 삼킨 남자는 웃었다.

좆까는 소리다.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는 것.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

지은 죄는 씻을 수 없고. 자신은 그걸 즐겼다.

그렇다면 뒈질 새낀 그냥 뒈져야 해. 아무런 포장도 필요 없어.

그렇지 않나? 어리숙한 영웅?

“조까…. 난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너한테 내가 말해줄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구원 따윈 필요 없어.

그딴 건. 내가 받을 게 아니야….

후. 후후후. 낮은 웃음소리가 몇 번인가 울렸다.

흐느낌처럼도 느껴지던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끊겼다.

그 뒤.

아주 잠깐 사이에 백발노인으로 변해버린 남자의 시신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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