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대형지진이 일어나자 지상에 남아있던 보조팀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공격팀에게 각종 보조마법을 쏟아부어 주기 위해 마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비행주문을 사용하지 않고 아낀 것인데 그것이 봉변이 된 것이다.
'지금 상황은 이강호씨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진리구현자 특성은 강력한 것이지만, 디제스터 상대론 계속해서 발휘하고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법 없는 맨몸으로 저런 괴물과 어떻게 대적할 텐가? 지진이 일어나는 범위도 너무 넓어서 그녀의 특성으로 다 가라앉힐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보조팀, 지상의 보조팀 구원! 공격 1, 2, 3팀 후방 하프, 나머지 회피! 탱커 어그로 유지!"
빠르게 판단을 내린 정태원은 지령을 내렸다. 큰 타격을 받아 지면에서 꿈틀거리던 오로치는 땅 울림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몸을 일으켜 사방을 노려보았다.
"어딜 보냐!"
퍼컥! 놈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천후가 다시 한 번 놈의 머리 중 하나에 때려 박혔다. 폭음이 터지면서 놈의 두개골이 갈라지고 거기서 피와 뇌수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키에에에에에엑!"
하지만 그렇게 해도 머리 중 넷만이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막상 두드린 머리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재생이 끝나버렸다. 몸통 역시 마찬가지. 지면에서 일어난 피해에 신경 쓰는 사이에 상당히 돌아왔다.
"너무 터프한데?"
회복력의 격이 다르다. 이걸 대비하기 위해 화력을 최대한 올리고 왔는데도 이 상태라니? 그때. 다시 한 번 섬광이 터졌다.
콰르르릉! 산이라도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은 소리가 나며 놈의 몸통에 구멍이 생겨났다. 하지만 놈은 이젠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지 자기 주변 날파리들을 정리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젠장!"
다시 한 번 전광 되어 그중 하나의 입을 닫게 한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위턱뼈 자체를 부러뜨려버렸지만, 놈의 머리는 전방위全方位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쿠화아아아악!
화염이 터졌다. 지면이 너무나 불안정해서 이강호가 특성을 발휘할만한 안정된 장소가 도저히 나오지 않았기에 막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악!"
"피해! 피하라고!"
펼쳐진 광경은 아비규환이었다. 애초에 발사 사전 동작을 읽고 있던 DS 공격대원들은 그나마 피해가 작었지만, 일본 B랭크나 보조팀의 경우 정통으로 맞아서 온몸에 불이 붙어버린 이들도 흔했다.
"리타이어 부상자는 전장 이탈! 재공격 준비!"
지금 이 브레스 공격은 완전히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예 천지 사방을 전부 잡아 먹어버렸으니까. 최대한 그 영향력이 적은 끝머리까지 날아가 있다가 최소 피해만 보는 것이 가장 이치에 맞는 방식.
그렇기에 보조팀을 대인원으로 편성했지만 이미 그 1/4가량이 리타이어 해버렸다.
일본 일리미네이터들은 멸급 디제스터의 의외성에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말을 안 들어먹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군!'
분명 브리핑 땐 보조팀도 비행을 유지하라고 이야기를 해뒀는데, 자기들끼리 자체적으로 논의라도 했는지 땅에서 비비고 있다가 이런 상황이 되니 통제가 어려웠다.
'그래도…!'
눈을 날카롭게 뜬 태원이 외쳤다.
"DS 멤버 라즈 제외 전원 닷지 풀 캐스팅! 강호 씨는 서브 탱킹!"
"음!"
바로 팀에서 갈라져 나온 이강호가 머리 중 하나를 난화로 내리쳤다. 은선이 번뜩이며 놈의 거체에 생채기가 생겼다가 사라진다. 호수에 조약돌 던져 생긴 파문도 이것보단 오래갈 텐데. 쓰게 웃은 이강호는 머리 둘이 자신을 노려보는 걸 보았다.
'넷에 둘인가.'
저 반대쪽에선 어떻게든 천후를 잡아먹어 보려고 아주 씨름을 하는 뱀 대가리 넷이 보인다. 천후는 그것을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 있었다. 그와 강호의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
"으음!"
콰아아악! 간신히 몸을 틀자 눈동자 크기만도 사람보다 거대한 괴물의 대가리가 허공을 물어뜯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그걸 피하느라 잠시 멈춰있던 그녀를 향해 목을 채찍삼아 크게 휘어서 날아온다.
"흡!"
허공을 문 놈의 대가리 위에 재빨리 올라탄 강호는 놈의 몸에 난화와 난향을 꽂아 넣고서 체중을 실어 놈의 목 뒤로 몸을 숨겼다.
"캬아아아악!"
그러자 휘어서 날아오던 다른 머리 하나가 솟구쳐 오르더니, 그 거대한 입을 쩍 벌려서 그녀가 매달린 목째로 물어뜯었다.
으적! 자기가 자기의 다른 목을 문 놈은 가차 없이 씹어댔다. 단숨에 그 목이 끊어지고 막 끊어진 부위에서 머리가 자라났다.
그동안, 가까스로 같이 물리기 직전에 몸을 빼고 나온 강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 몸 크기인데도 움직임이 상당히 빨라서 천후처럼 농락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었다.
허나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강호 씨! 이탈! 발사!"
그 의미를 알아챈 강호는 바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천후 역시도.
그러자…. 형언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빛의 격류가 놈의 몸을 급습했다. 처음 받았던 공격과도 비교되지 않는 화력이 폭풍.
놈이 일으킨 지진으로 지면이 떨리고 있었다면, 이 격류는 대기를 흔든다. 공격대원들을 쫓던 다른 두 마리가 위험을 감지하고 발작적으로 입을 벌려 불을 뿜어보지만, 이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화아아악! 불길이 다시 밀려 놈의 아가리로 돌아들어 가고, 곧 격류가 놈의 머리와 몸통을 쓸어버렸다. 격류는 마치 거대한 검처럼, 놈의 신체를 양분해버리고서야 그 힘의 폭사를 멈추었다.
"끼…끼에…. 에엑…!"
<오로치 육체 손상 60%를 넘었습니다.>
미미르가 알려오는 정보에도 태원은 냉정을 유지하고 공격팀을 대기 시켰다. 단숨에 다시 한 번 치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저놈이 저 상태에서 어떤 짓을 하는지 봐둘 필요가 있었다.
갑자기 두 마리로 늘어나거나, 몸체나 떨어져 나간 목이 이번엔 하수인이 되는 게 아니라 폭발을 일으켜도 대응할 수 있게끔….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최초 예상 범위 안의 일이 일어났을 뿐….
"꾸룩…꾸루루룩….!"
이 피해는 아무리 재생력이 강력한 오로치라도 너무 컸는지, 놈은 주춤거리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디제스터의 본능이 이 자리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놈은 머리를 위로 들어 올리며 크게 울부짖었다.
"캬아아아악!"
우웅. 우웅.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소리와 동시에 주변을 어둡게 하는 그림자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공격대원들은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쿠네.
"왔나!"
그것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세 마리다. 하지만 공격대원들의 표정은 오히려 편했다. 아예 예상 못 한 패턴보단, 벅차더라도 알고 있는 방식으로 나오는 게 낫다!
그 생각과 동시에 하쿠네 세 마리가 동시에 던전을 만들어냈다.
"샤야…."
"캥!"
사람 수 구분도 없이 제멋대로 일리미네이터를 나눠버린 놈들은 오로치의 주변을 날면서 꼬리를 늘렸다. 하지만!
"사라져라!"
푸칵! 기껏 던전을 셋으로 만들어 나눈 놈들의 의도를 우습게 무시한 흑염이 놈들 중 하나에게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놈의 몸을 한번 완전히 꿰뚫어버린 천후는 그대로 몇 번인가 그 주변을 돌며 놈의 몸을 훼손시켰다. 꼬리로 변신해 도망갈 틈도 없이 순식간에 하쿠네 하나가 정리당하고, 그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는 염동력으로 모아 저편의 지면으로 쏴서 날려버렸다.
"와…."
"미쳤다, 미쳤어."
"끼…끼잉…!"
지금까지 괜히 DS 일본 레이드에서 염동력을 사용할 때를 제외하곤 직접 나서는 경우가 드물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 이미 하쿠네의 패턴 파악도 끝나 하수인으로 소환한 자리에서까지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밟을 필요는 일절 없다!
일리미네이터 뿐 아니라 하쿠네들까지 자신들을 불러낸 오로치 쪽을 바라보며 낑낑대며 두려움을 표출했다. 안 그래도 화염 마인이 된 천후를 앞에 두면 경급 디제스터들은 두려워하곤 했는데, 동일한 힘을 가진 놈 하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정리되자 몸이 굳은 것이다.
"키에에에에엑!"
그런 놈들을 독려하듯 몸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오로치가 몸을 일으켰다. 4개까지 줄어있던 놈의 목은 다시 몸통 이곳저곳에 기형적으로 자라있었고, 몸이 사라진 자리에는 꾸물꾸물 가장 중요한 육체기관들만 선별적으로 먼저 재생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지진은 계속되고, 치켜든 아가리에는 불꽃이 맺혀져 있었다.
"큭! 하쿠네부터 처리! 오로치는 탱커가!"
"네!"
뒷말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태원이나 천후나 오로치의 이 패턴을 예측하고 있었다. 오로치와 하쿠네 다수를 한꺼번에 상대하게 되면 아무리 이 규모의 공격대라도 다 대응해내기 힘들다.
하쿠네를 잡아내는 시간 동안 오로치를 상대할 필요가 있다.
"하아아아아!"
쿠홧! 몸에서 흑염을 더욱 크게 피워 올린 천후는 그대로 오로치에게 달려들었다. 저 위에선 하쿠네와 교전에 들어가 시작된 폭음 소리가 들렸다.
저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이놈을 잡아둬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아아아아아아!"
불을 뿜어내기 위해서 입을 벌린 놈들의 입이 보인다. 그 입 중 하나로 치고 들어간 천후는 놈의 혓바닥 위에 발을 디디고 주먹을 위로 내질렀다. 그 순간, 놈의 턱 위에서 폭음이 터지면서 깔끔하게 머리 하나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머리 따위 아무리 날아가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른 7개의 머리가 그 자리에 불길을 뿜어냈다.
"아아아아아악!"
번개를 연상시키는 움직임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지만, 불길을 완전히 피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스스로 두른 불길 외에 다른 불꽃의 침범을 받은 천후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놈의 다른 머리를 치고 들어갔다.
"빌어먹을! 이 빌어먹을 머리가!"
이놈의 주공격수단은 머린데, 이건 무한 재생이다. 그렇다고 몸통을 때리자니, 애석하게도 천후의 공격력은 놈의 재생력을 뛰어넘지 못한다. 신위라도 때려 박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건 몸이 엉망이 되는 걸 각오하고 놈의 공격력을 잠시 봉쇄하는 것뿐!
지금까지 시선을 끄는 것에 불과했다면 이젠 서로 소모전에 들어간 것이다.
"키이이이익!"
다행이라면 하쿠네라면 이미 학을 떼는 공격대원들이 100명이 넘게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A랭크가 셋이나 섞인 공격대가. 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액 더미가 되어서 녹아내렸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1분!
그리고….
"헉…. 헉…. 빌어먹을…!"
"아-------"
몸 주변에 나신의, 영혼인지 어떤지 모를 여자들이 청명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에 시선조차 제대로 주지 못한 천후는 입에서 피를 됫박 흘리며 놈에게서 천천히 물러났다.
드래곤 때보단 상태가 낫지만, 이놈은 이놈대로 괴물이었다.
입은 화상이 너무 커지자 자동으로 나타난 검은 세 자매가 그를 회복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쯤 화염 마인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잿더미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 1분 동안 오로치는 머리들 뿐 아니라 몸통도 상당히 회복된 모습으로 굳건하게 서서 머리를 사방으로 돌리고 있었다.
*
"싸부!"
그의 상황을 조금씩 곁눈질해가며 보고 있던 라즈베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새로이 의지하고자 했던 히어로는 지금 그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녀가 동경하는 변신 히어로들처럼 그에게도 역시 한계라는 것이 있었으며…. 사람이란 무리하면 다치고, 죽는 것이 당연한 생명체였다.
'그럴 순 없어.'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레이드는 이제 절반 정도 왔다고 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그와 이강호에게 의지해 전원 풀캐스팅 같은 걸 시도하지 않는 한 저놈을 잡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걸 다시 한 번 허용해 줄까? 그동안 그가 버틸 수 있을까? 그 뒤에 다시 하쿠네가 나타나면?
누가 그걸 장담할 수 있지?
"으…!"
귓가에서 공격대장이 뭐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맴돌았다. 하지만 라즈베리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손을 들어, 오로치에게 향했다.
파아아아! 그녀의 몸에서 녹색의 오오라가 한차례 뿜어져 나오더니, 아주 잠시….
그녀의 눈동자가 녹색으로 변했다가 가라앉았다.
*
"키에에…?"
다시 한 차례 불을 내뿜으려 했던 오로치는 잠시 움찔하며 발사를 망설였다. 그것을 본 천후가 빠르게 소리쳤다.
"다시 한 번 전원 닷지 풀 캐스팅!"
"!"
갑자기 들어온 천후의 지시에 공격대원들은 잠시 움찔했지만, 곧 의도를 파악하곤 이를 악물었다.
그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전원의 풀 캐스팅으로 놈에게 치명타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안은 바로 제안자 본인, 천후의 소모를 의미한다.
그 각오를 마치고 한 소리에 공격대원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천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미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놈의 몸이 이미 많이 재생된 상황. DS 전원의 풀 캐스팅으로도 단발론 놈을 못 잡는다. 그렇다면…돕는 수밖에!
“나, 별의 정당한 적자로서 신비에 고한다!”
푸확! 갑자기 그가 발하는 오오라 색이 홍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근접거리에서 캐스팅을 시작한 것이다.
"저, 저건!"
"미친 짓이야!"
그 정체가 컴뱃 캐스팅이라는 것을 풀 캐스팅 제외 인원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제대로 한 대만 맞아도 캐스팅이 풀릴 염려가 있는 것이 컴뱃 캐스팅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기 혼자 어그로를 끌겠다고 해놓고, 저 짓거릴 시작하다니?
"캬아아아악!"
그 흉흉한 빛에서 위험을 읽었는지, 오로치의 머리들이 달려들었다. 그걸 보고 씨익 웃은 천후는 땅으로 내려섰다.
이미 지면은 땅이라기보단 파도치는 바다처럼 변하여,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후는 그 지면에서 평형을 유지하면서 날아드는 머리들을 피했다.
쾅! 콰쾅! 8개의 머리가 사정없이 지면에 처박히며 천후를 노렸다. 그때마다 지면은 진동하며, 그의 몸이 수 미터는 위로 솟구쳐올랐다.
그리고 그 치솟아오른 틈을 타서, 놈의 머리 중 하나가 그의 몸을 내리찍었다.
소리는 하나뿐이었다. 머리가 땅에 꽂히며 땅이 진동하는 소리.
허나 눈에 보이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아!"
아주 잠시 몸이 겹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의 머리가 크게 위로 젖혀진 순간, 그의 몸은 그 자리에 없었다. 눈에 확 띄는 홍염의 오오라가 보이지 않는다.
그 의미는 명백했다.
"싸부!"
잡아먹혔다!
워낙에 거대한 그놈은 2m도 안 되는 인간을 삼키는 건 큰 동작조차 필요로 하지 않았다. 대신 천후를 현장에서 없앴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집중되어있던 여덟 개의 머리를 사방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태원의 등 뒤로 한기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선택해야 했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할 것인가?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패를 뽑았다.
그가 희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짜낸 힘의 결과가 보인다. 천지 사방을 뒤덮는 총천연색의 오오라. 이것을 수포로 만들 순 없다.
네놈의 불길이 튀어나오기 전에…!
우리가 친다!
"발사아아아아!"
파아아앗! 다시 한 번 빛의 격류가 놈을 휩쓸었다. 단박에 몸통이 쓸리며, 이제는 몸의 20%도 남지 않은, 마무리만 남은 처연한 것으로 바뀐다.
"키에에에에에엑!"
하지만 놈은 멸급 디제스터.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패턴도 있다고 보여주려는 듯, 온몸이 부글거리며 또다시 무언가를 준비하려 들었다.
"크윽!"
태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 이대로 포기하고 발을 빼야 한단 말인가? 그를 저놈의 뱃속에 두고서?
그러나….
홍적은 웃는다.
누가 끝났지?
누가 포기를 했어?
적어도…. 나는 아닌걸?
불룩! 불룩불룩! 한차례, 다른 부위보다 훨씬 크게 놈의 목 안이 크게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한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이 되었을 때!
푸콰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
통째로 삼켜서 목구멍 안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것을 최대한 저항하던 천후는 놈의 힘이 잠시 약해진 순간에 목을 뚫고 하늘로 뛰쳐나왔다.
"키에에에에엑!"
단숨에 목을 회복하고 다시금 입을 벌리고 있는 놈이 보였다. 하지만 그 몸은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어있다.
이거면 충분하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
허공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해 저 높고 높은, 구름까지 닿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높게 뛰어오른 불꽃은, 그대로 응축되어….
구름 뚫고 나가던 힘, 주체 못 하는 홍염, 그 모든 것을 모아-빛이 되어 꽂힌다!
"키에에에엑!"
퍼…퍼버버버버벅! 이제 두 개 남은 머리 중 하나에 때려 박힌 그 빛줄기는 그대로 파고들어 목과 어깨, 내장을 꿰뚫고 길디 긴 꼬리를 죄다 관통하고 나서야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와 지면에 긴 파인 흔적을 만들어냈다.
그 끝머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걸려있던 홍적을 풀어버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끝."
그 순간. 마치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홍적이 관통한 오로치의 몸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올라 그 몸을 완전히 살라 먹어버렸다. 두 번 다시는 재생할 수 없게끔….
<현 시간부로 오로치는 퇴치되었습니다.>
"후……. 누나한테 또 혼나겠네……."
미미르의 보고를 들으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긴 천후는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떨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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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넵.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