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96화 (196/324)

196화

<또 하나의 레이드>

"저라고요?"

"그래."

최완의 발언에 천후는 인상을 썼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걸 어떻게 믿느냐' 같은 소리는 꺼내지 않았다. 전혀 믿지 않을 거라면 시간이 아까운 짓이고, 믿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완이 그를 속일 리는 없었다. 차라리 말을 안 한다면 모를까.

최소한 천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극대화해서 네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히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런…."

먼저 마법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시켜두고, 실제로 마법사가 위협으로 다가온 사건을 일으킨다. 거기에 국가 색을 넣어서 마무리. 그럼 일본에선 마법사와 함께 해당 국가에 대한 이미지 자체도 함께 훼손될 것이다.

일을 꾸미는 쪽도 번거롭긴 하지만, 대응하긴 정말 어려운 테러였다. 천후는 결국 일본 입장에선 외국인이며, 그의 영향력이 완벽할 순 없었으니까. 멸급 디제스터 사태 이전부터 이미 우경화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왜 이런 타이밍에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죠? 저를 짓밟을 생각을 했다면 드래곤 사태 때부터 국내에서 일을 저지르면 될 텐데."

"엘모세와트의 기본적인 마법사 거래방식은 고아 마법사들을 세뇌해 파는 거다. 사회에 잠입시키는 방식도 비슷하겠지. 하지만 공교롭게도 한국은."

"아아…."

대한민국은 해외 입양 사례가 거의 없는 국가였다. 입양을 보내면 보냈지, 받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았으니 공교롭게도 자연적인 방어가 된 것이다.

"그런 것도 있지만, 드래곤 사태가 커지기 전에 너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으니까. 외국에선 말이다. 정규 공격대 활동이 활발해진 지금 발목을 채려고 한 거겠지."

일리미네이터 업계에서도 드래곤 레이드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영천후의 역량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강호가 B랭크 중에서도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지만, 특유의 특성 탓에 한참을 헤맨 것처럼, 천후 역시 한눈에 그의 포텐셜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이 때문에 그가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드래곤 트라이 이후부터였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이그네스 사태 이후였고.

"비슷한 시기에 다른 정규 공격대도 그때마다 방법은 달랐지만 한 번씩은 크게 데였었다. 반년 전쯤엔 월드 리버티의 멤버 몇이 사제 폭발물 테러를 당하기도 했지. 그 후로 월드 리버티의 활동이 크게 경화됐다. 미국 정부 측에선 은폐했지만 말이지."

"정말 위험한 놈들이군요."

차라리 보통 테러조직처럼 일을 저지르고 그거 우리가 했네 하고 광고를 하는 놈들이면 나을 텐데, 이 엘모세와트라는 조직은 전 세계에 마법사에 대한 반발심만 키우면 된단 식으로 활동하니 문제였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엔 마법이 개입되니, 이놈들이 마법사를 대체 어떤 식으로 다루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정확히 제 이름을 어떻게 빌려 쓰고 싶은 건데요?"

"이후 DS가 디제스터 퇴치를 할 때마다 해당 국가에서 유그드라실일 좀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교섭을 해줬으면 한다."

"자유롭게면…. 어느 정도로?"

"적어도 레이지나 엘모세와트로 의심되는 사건은 완전히 우리가 파악할 수 있게끔."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요?"

천후의 물음에 최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물론…. 국가에 동의를 받지 않고 검사를 한 경우는 사실 꽤 있었다만. 어지간해선 다 국가와 이야기를 마치고 진행된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많아. 몇몇 국가에선 유그드라실의 마법사는 공식적으론 입국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유그드라실의 도움으로 세계의 틀이 유지되고 있다지만, 세계 각국이 유그드라실에 보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마법사를 유그드라실이 정해둔 규제 이외의 방법으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국가는 얼마든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유그드라실은 SA랭크 마법사나 유그드라실 전력, 일리미네이터 투입을 들먹이며 국가를 협박해 저지해왔다.

그렇게 50년이 지났으니 당연히 골은 깊어졌고, 유그드라실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아예 상종을 하려 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유그드라실도 일이 이쯤 오면 대화나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러려면 그래라 하면서 공식적인 입국이 거부되고부턴 그냥 허가고 뭐고 안 따지고 큐브 엘리베이터 내려서 활동을 하기 일쑤였다.

이런 게 쌓이고 쌓인 결과, 유그드라실의 이미지는 국가 정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리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그드라실의 존재 자체가 마법사들에게 해가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일부 국가에선 말이다.

"그동안 보통 마법사나 사람들에겐 규제를 걸어놓고, 유그드라실 자체는 너무 마법 사용을 남발하고 있었어. 덕분에 정작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 활동에 지장이 크다. 당장 일본 정부와도 이번 마츠모토 사건 때 마찰이 있었지."

"그러니까…. 유그드라실이 하려는 행동은 수상한 게 아니니 협조해달라고, 제 이름으로 보증을 서달라는 거군요."

"그래."

천후는 선뜻 대답하는 것에 망설임을 느꼈다. 당장 그 유그드라실이 자신에게 별의별 걸 다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아챈 입장이니 당연했다. 게다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유그드라실에선 이 상황을 꽤 장기적으로 보고 있군요?"

"10년을 추적했는데도 뿌리 뽑지 못한 놈들이다. 얼마가 걸릴지 모를 일이니까 당연하지."

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유그드라실은 수상하지만…. 마법사 전체를 위협하는 이놈들에겐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세계 전역에서 활동하는 마법 테러 단체에 대응하려면 유그드라실의 존재는 필수적. 이 일은 그야말로 유그드라실의 성립 취지에 맞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천후야!"

천후가 골똘히 무언가를 재는 기색을 보이자, 최완의 얼굴이 노기로 물들었다.

"의심하고 싶은 마음은 안다! 하지만 이 일은!"

그의 목소리가 거칠어지자 본 천후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진정하세요, 아저씨. 흥분하시지 말고 들어요."

"……."

"전 믿어요. 아버지를 믿는다고. 이번 일도 옳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마 무조건 어느 정도 돕는 방향의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하지만…. 쉽게 구두로 정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무슨 뜻이냐?"

"제가 지식이 부족해서 말을 잘 못하겠는데…. 보증을 서는 거잖아요? 그럼 그 범위라고 해야 하나?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제 이름을 팔아먹는 걸 허용할 것인가를 정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음…!"

천후의 말에 그제야 최완의 안면에 가득하던 노기가 풀렸다. 그 자리는 이제 심각함이 대신했다.

"일이 심각하니까 급하게 아저씨가 내려와서 절 설득하려고 한 건 알겠어요. 아마 아저씨나, 아저씨의 영향이 닿는 사람들은 알아서 조심해서 행동해주겠죠. 하지만…. 아시잖아요?"

천후의 말에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최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명문화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

유그드라실은 마법사의 인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정확히는. 마법사의 인권만을 위해서.

그 때문에 그 중간중간에는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어할 만한 행동도 많이 저지른다. 일반인으로 알고 있던 마법사를 유그드라실로 텔레포트로 데려가서는 그냥 그대로 떠나버리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리곤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무런 조건 없이 보증을 섰다간,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저질러놓고 '이거 DS랑 협의한건데요' 거릴지 알 수 없었다.

"문젠 제가 아무래도 이런 쪽에 미숙해서 혼자 그 범위를 못 정할 것 같거든요. 그러니 그 시간을 좀 주셨으면 하네요."

"알았다."

"일단 제가 이 건으로 누구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되는지를 좀 정해주시겠어요?"

"네가 자문으로 삼을 사람이라면 어차피 네 여자들 정도 아닌가? 그 정도라면야…."

"그리고 패트릭도요."

월드 리버티 마스터의 이름이 나오자 최완은 잠시 검미를 꿈틀거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 라이징 선을 제외한 정규 공격대 마스터와는 의견을 나눠도 좋다."

"그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답변해드릴게요."

"부탁하마."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이건 당연한 의무죠."

일리미네이터가 마법사들의 얼굴마담이라면, 그 끝머리에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영천후였다. 그가 이런 일을 외면한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준다고 해도 공격대원들이 진심으로 따를 리가 없었다.

이런 계산적인 생각을 제쳐놓고서라도, 천후는 미미르의 분석을 믿고 있었고 자신의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조금 찜찜한 상대와도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

"좋은 대처였네.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 정말 다행이야."

이후. 자문을 위해 찾아온 친란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유그드라실의 행동 방침상, 명문화시킨 협약도 쉬이 어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냥 덜컥 받아들였으면 뒤에 크게 낭패를 봤겠지."

"그, 그 정돈가?"

"그럼. 그리고 자네가 우리들의 역량을 믿어줬다는 것도 기쁘고."

"그야 혼자선 잘 모르겠으니까 그러겠다고 한 거지."

"자신의 역량을 정확하게 아는 것도 아주 중요한 소양이네."

깔깔 하고 밝게 웃은 친란은 같이 모인 희주와 셀레나까지 해서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나는 유그드라실의 접근 방식이 좀 안일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하지?"

"그렇지, 뭘. 아무래도 마법사 단체다 보니까 그런 게 아닐까?"

"손에 만능의 도구가 있다면…. 쓰고 싶어지는 법이죠."

"???"

셋이 나누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천후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얼굴을 본 셀레나는 킥킥 웃으며 부연설명을 했다.

"유그드라실 자체가 인간 사회에 익숙하지 못하단 뜻이야. 그 시작도 마법사 구명 단체다 보니까, 방법론이 좀 문제가 있달까?"

"한국어로."

"8,000명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한계가 있다는 거네."

"그러니까 한국어로 말해줘."

"도와달라고 요구한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정부와 교섭을 해서 마법을 쉽게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청이었지만, 그보단 돈을 풀어서 우리 쪽에서 조사해달라고 했어야 합니다."

희주의 말을 듣고 나서야 좀 알락 말락 해진 천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지만 유그드라실은 마법으로 기억을 읽을 수 있잖아요? 위조 여부도 알아낼 수 있고."

"투입할 수 있는 인원수 자체가 다르고…. 기억의 경우 상대의 정신계열 마법이 더욱 강하다 보니 알아낼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고 스스로 시인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그드라실의 조사방법론, 사건 후 주변 조사로는 큰 성과를 보기 힘듭니다."

"유그드라실 인원이 8,000명이라지만, 그게 다 엘모세와트 건에만 투입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거기다 막상 기억을 완벽하게 읽을 수 있는 마법사 수는 유그드라실 내에도 얼마 안 될걸? 1/10이나 될까?"

"더 적겠지. 유그드라실의 주 업무를 수행하면서 여력을 나눈 거니 당연히 조사엔 시간이 걸리고, 은폐는 더 쉬워지는 거네. 그러면서도 이런 녀석들의 존재가 공표되긴 원하지 않아 자기들끼리만 찾으려고 노력하니 시일은 한도 끝도 없이 걸리고."

그제야 무슨 소린지 알아들은 천후는 물었다.

"그러니까 유그드라실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가 엘모세와트 조사를 대행하는 게 낫다?"

"바로 그렇네."

"그래도 그게 마법보다 정확할까…."

"거래 대상이 된 사람들의 기억은 지울 수 있지만, 그들이 해외에 나갔을 때 뜨고 내렸던 비행기 기록, 그 사이에 그를 본 모든 이들의 기억. 기록을 전부 삭제할 수 있을 것 같나? 한 두건이면 몰라도 모든 사건에?"

"……."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유그드라실도 여태까지 실마리의 실 자도 못 잡았으리라.

"마법적인 지배 여부를 알아낼 순 없어도, 처치를 받으러 이동했었는지는 조사할 수 있지. 그것도 유그드라실은 꿈도 못 꾸는 넓은 범위를."

거기까지 말한 친란은 입 앞에서 부채를 촥 펼쳤다. 모란 무늬에 덕에 코 아래는 완전히 가려졌지만, 천후는 어째 그 뒤에서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상대가 고아를 가지고 장사를 한단 것까지 알아냈으니, 전 세계 고아들의 출경 기록을 조사하면 되는 게 아닌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진심으로 할 때만 보이는 특유의 웃는 표정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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