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재일교포 중 마법사들을 모두 색출해라!"
"역시 한국인들은 믿을 수 없다!"
일본에서는 극우파를 중심으로 반한시위와 증오범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마츠모토 요시타케라는 한국계 입양아가 레이지를 일으켜 제 부모와 주변 주택가를 습격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지금까진 붕 떠 있던 증오를 돌릴 먹이가 확정 지어졌다.
영천후는 이미 그 며칠 전부터 불온한 소문을 막아달라 일본 정부에 요청했고, 그들도 사력을 다했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이 안 좋아지면 속수무책이었다.
"시위대를 강제해산할 수는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강경책을 쓰면 어떻게 돌아설지 모릅니다."
"큭…."
천후는 이 말에 강하게 나갈 수 없었다. 그가 등에 지고 있는 타이틀도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타국에서 일어난 시위의 강제 진압을 강요한다면 대한민국 내 그의 입지 역시 크게 흔들릴테니까.
"그럼 증오범죄라도 철저하게 막아주십시오."
"그 부분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워낙 산발적이고 경찰력이 부족해서…."
그 대답에 천후는 일본 정부에 더는 뭘 바랄 수 없단 걸 깨닫고 다른 수단을 찾았다.
일본 내 한인 사회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들은 몇몇 단체를 만들어 자경단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들을 도움으로서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간 불안감과 갑작스러운 범죄를 전부 틀어막을 순 없었다.
특히 마츠모토 사건으로 외국인 입양아들이 양부모에게서 버려지는 일이 생겼다. 그것은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아이들 전체가 그랬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사건을 은폐하지 못한 이상 민의가 움직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일어나던 일들이 뜬소문에 가까웠다면, 마츠모토 사건은 정확하게 소문에 들어맞는 일이 일어나버린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수 있는 건가?'
우연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매지션 레이지를 누군가가 의도해서 강제로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천후의 등 뒤에 소름이 돋았다.
"이것이 만약 인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들은 마법사들의 적이라 부를만합니다."
"네. 아니 하지만…. 이런 게 가능한가?"
이 여론의 시발점을 만들어낸다든가, 그 뒤의 흐름을 이끄는 일은…. 어찌 보자면 사람과 돈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마법사에게 강제적으로 레이지를 일으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단 말인가? 마법사중 누가 레이지를 일으킬지 모르는데?
그렇게 천후가 혼란스러워할 때, 희주가 말했다.
"아버님께…. 한 번 여쭤보는 게 어떠신지요?"
"아저씨요? 아무 말도 안 해줄 것 같은데…."
그의 양아버지, 최완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유그드라실만이 알고 있는 지식을 외부로 쉽게 유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났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희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확인을 할 수 있는 대상과 언제든지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런데…."
"만약 거절당한다 해도, 주인님이 이 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물어보는 게 뭐 대단히 어려운 것도 아니고, 손해 볼 것도 없다. 천후는 자신이 최근 일어났던 일들 때문에 마음속으로 최완을 조금 멀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네요. 그렇게 할게요."
천후는 바로 최완에게 연락을 넣으려고 했다. 바로 그때. 시장실의 벨이 울렸다. 보니 셀레나가 문밖에서 들어가도 되는지를 물어보기 위해 누른 듯했다. 보통 셀레나는 개인적인 용무가 있을 땐 딱히 이런 절차를 밟지 않고 그냥 들어오는데, 이번엔 조금 다른 용무가 있는 듯했다.
"셀레나? 왜?"
"음.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지금 들여보내도 돼?"
"응? 누구?"
"유그드라실 한국지부장님."
천후는 놀라서 눈을 몇 번 끔뻑거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쪽에서 먼저 찾아와버렸다.
"어. 들어오시라고 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거칠게 열리며 바바리코트의 중년남이 들어왔다. 워커를 신은 그는 쿵쿵 소리를 내며 천후의 앞까지 다가와 책상을 양손으로 쾅 내려찍으며 외쳤다.
"천후야!"
"네, 네에."
"도와다오!"
"…네?"
천후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양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가 오늘따라 작아 보였다.
*
"엘모세와트다."
"……."
"엘모세와트가 일본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행동을 시작한 거야."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흥분해있던 최완의 말은 두서가 없었다. 그걸 간신히 진정시키고 소파에 앉힌 천후는 사장실이 아니라 소파에 같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엘모세와트라면 전에 말한 반 마법사 단체 말이예요?"
"그래."
소파에 앉은 최완은 깍지를 낀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유지하던 그의 얼굴엔 짙은 피로가 엿보였다.
"한동안 잠잠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엮어서 활동을 시작할 줄은 몰랐는데. 빌어먹을."
"아저씨. 좀 진정하시고. 확신하고 있는 거예요?"
"후우. 그래. 매지션 레이지 사건이었으니까, 당연히 우리도 활동을 했어. 알고 있겠지?"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지션 레이지 사건은 마법사의 위험함을 가장 노골적으로 노출하는 사건인 만큼, 유그드라실은 해당 사건의 여파를 축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뿐만 아니라 레이지 한 마법사를 '처리'하는 것도 국가와 협조하여 유그드라실이 맡았고, 이강호는 그런 레이지를 일으킨 마법사를 상당수 처리한 헌터이기도 했다.
"우리가 세상에 나온 지도 50년이다. 레이지의 원인 파악은 거의 끝났어. 지금 시점에선 전 세계 마법사 판별만 끝낼 수 있다면, 레이지를 일으킬 사람과 아닌 사람을 가려낼 수 있을 정도다. 다만 그러면 인권문제가 발생하니까 시도하지 않을 뿐이지."
"그랬군요."
과연 놀고먹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완의 표정은 전혀 풀어지지 않았다.
"돌아와서 이번 마츠모토 요시타케 사건의 경우, 사망하긴 했지만 죽기 전까지 몇 가지 검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아낸 것은…. 이건 레이지 사건이 아니라는 거다."
"네?"
"레이지가 아니야. 이건…. 폭주한 게 아니다. 그냥 마법을 쓴 거야. 제삼자의 통제를 받아서.”
천후 역시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이미 본인이 그렇게 타인에게 지배당해서 서울 한가운데에 폭격을 가할 뻔한 적이 있는 처지니 더욱 그랬다.
“사망 직전에 그의 정신에 마법적인 조치가 취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문젠데요? 아무한테나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다행히 그렇진 않아. 부검으로 확인한 결과, 그에겐 마법적인 조치 외에도 향정신성 약물이 검출되었다. 마약류의 처치를 같이 받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생애 기록을 자세하게 조사하면서 그가 외국으로 한차례 출국했다 돌아왔다는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마츠모토는 갓난아기 때 부모에게 버려져서 보호시설에서 지냈어. 그러다가 한 차례 실수로 마법을 발휘해서 마법사라는 것이 드러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딱 한 번. 외국으로 나갔던 기록이 조작된 와중에도 남아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마츠모토는 상당히 반항적인 성격이었는데, 그 뒤로는 갑자기 고분고분해졌다는 거야.”
“…….”
“가장 결정적인 건 보호시설의 원장에게서 기억 소거의 흔적을 찾은 거였다. 그건 마츠모토나 지금까지 엘모세와트가 증거 조작을 하면서 남겼던 철벽과도 같은 정신조작과 일치했지.”
“이 짧은 시간에 많이도 조사하셨군요….”
그렇게 말하는 천후의 표정은 그리 곱지 않았다. 저 말은 곧 마츠모토에 연루된 모든 인간의 머릿속을 헤집어 봤다는 소리였으니까. 천후의 말과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는 최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일단…. 그래요. 이게 엘모세와트라는 놈들이 한 짓인 건 확실하군요.”
“그래. 애초에 놈들은 각국의 연고 없는 고아들을 세뇌해서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특기였던 놈들이지.”
최완에게선 경멸이 여과 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후회와 회한도.
“천후야. 우리라고 이러고 싶진 않다. 세계에 마법을 사용해 간섭하는 건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야. 하지만 마법에 대항할 수 있는 건 마법뿐이다.”
“…알아요. 알았으니 저에게 변명할 필요 없어요, 아버지.”
천후는 회의감을 느꼈지만, 그러면서도 이번 일에 한해서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감했다. 상대가 철저하게 초자연적인 힘인 마법을 사용해서 일을 꾸미는 이상, 같은 마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을 정리한 천후가 물었다.
“그런데 대체 뭘 도와달라는 거예요?”
“그건….”
최완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힘들게 이 자리까지 발걸음을 했지만, 직접 입에 올리는 것은 어려웠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천후의 옆자리에 앉아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희주가 천후의 손을 감싸 쥐며 가만히 말했다.
“아버님께선…. 사회적인 지위를 빌려달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
희주가 꺼낸 말에 최완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떨궜다. 그와 함께 어깨 역시 푹 하고 주저앉았다.
“사회적인 지위? 이름 말이에요?”
“네.”
“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다…. 아주 많이.”
당장에라도 우울함이라는 웅덩이에 투신이라도 할 것 같은 목소리에 천후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 고개를 든 최완의 얼굴은 한층 더 늙어있었다.
“유그드라실과 각국 정부의 관계는…. 그렇게 마냥 좋지만은 않아. 일반인의 인식도 그렇고.”
“그야 당연하겠죠.”
유그드라실 디제스터 퇴치를 위해 큐브 엘리베이터를 제공할 때와 디제스터 퇴치 중계로 국가에게 막대한 돈을 뜯어가고, 마법사에 대한 사항이 되면 제멋대로 날뛰는 데다가, 국가 측에선 어떻게 규제할 방법이라곤 없는 골치 아픈 조직이었다.
그렇다고 무시했다가는 마법사들이 불안감을 느껴서 일리미네이터가 눈에 띄게 국외로 유출되고, 이럴 때는 국외탈출을 도와주기까지 하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칼 든 강도나 다름 없었다.
그렇다고 일반인 입장에서 좋게 보기도 힘든 게, 마법사들이 모인 조직이라면서 뭔가 세계에 도움을 준다는 인상은 거의 없었다.
마법으로 다리나 건물을 뿅 만들어주길 했나, 그 잘난 큐브 엘리베이터를 일반 세계 여행용으로 풀어주길 했나. 그런 건 전혀 없으면서 레이지 사태나, 마법사에게 뭔가 나쁜 여론만 생기면 갑자기 튀어나와서 인권이 어쩌네 거리니 좋게 생각할 건덕지가 없었다.
유그드라실 입장에서는 마법이 마구 사용되기 시작하면 그 부작용, 사람 자체를 마법 사용을 위한 기계 정도로 볼 게 뻔하니 그들이 사람 취급받을 수 있도록 철저히 비밀주의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걸 옆에서 보고 있자면 총 든 놈이 깽판 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문제였다.
“그러게 그렇게 뜯어냈으면 사회봉사를 하던, 뭘 하던 좀 하지 그랬어요.”
“하고 있어, 임마! 돈도 많이 쓰고 있고! 그런데 그런 건 원래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난다고!”
“그런가?”
사실 유그드라실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어서 어떻게든 이미지 개선을 해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TV에 전면적으로 광고하거나 하는 건 자제를 하다 보니 막상 잘 알려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 네 이름 좀 팔게 해다오. 너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까.”
“흠. 그런데 보통 이런 건 원래 SA랭크를 팔아먹었잖아요. 왜 이제 와서 나를?”
“SA랭크들을 거론하는 걸 결국 협박의 연장선상이니까. 그들이 사회적인 명망을 쌓아놓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한테도 나쁜 이야기가 아니란 건 무슨 뜻이에요?”
교포들이 수난을 겪고, 증오범죄가 만연하고 있었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건 대한민국 정부와 유그드라실의 일이지, 천후와는 크게 관련이 없었다. 물론 천후 개인 감정상 그들이 해를 당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으니 그것을 돕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때. 최완의 입에선 전혀 의외의 말이 나왔다.
“이 일엔 너도 얽혀있으니까. 괜히 내가 너한테 도와달라고 왔을까. 미미르의 분석이 나왔다.”
“무슨 분석이요?”
“엘모세와트의 타겟이 너라는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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