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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156화 (156/324)

156화

패트릭과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온 천후는 파티장 한편에서 라즈베리와 희주가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힌 라즈베리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잡고서 이야기를 하고, 희주 쪽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간단히 대답하는 정도였지만.

어찌 되었든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셀레나나 강호, 심지어 친란조차도 그녀에겐 조금 격을 두고서 대하곤 했다. 아이들은 완전히 극 존경의 태도였고.

그렇기에 멀리서 보기에도 약간 어깨에 힘을 빼고 사람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신선했다. 그 때문에 천후는 멍하니 조금 거리를 두고서 그녀를 지켜보고 말았다.

"주인님."

하지만 아쉽게도 귀신같이 그가 회장에 돌아오자 눈치챈 희주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긴장한 모습은 많이 사라져있었기에 그것은 위안이었다.

"미스터 영!"

와락! 다시 그의 한쪽 팔을 끌어안은 라즈베리의 눈빛에 천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 그런데 천후. 옆에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은?"

같이 돌아온 패트릭이 조심스레 물어오는 말에 천후는 가볍게 답했다.

"아내 될 사람입니다."

화아악. 그 순간 그의 왼팔에 안겨있던 희주의 체온이 평소보다 훨씬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빛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어찌할 줄 모르고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취소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그녀의 어깨를 좀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 말에 패트릭은 오오 하고 감탄사를 내다가, 다시 정말. 엄청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렇군. 그런데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대한민국에선 미성년자와 결혼을 해도 합법인가?"

"네?"

"아니… 자네의 그녀는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을 넘겨 보이지 않는데…. 혹시 자네가 미성년자 취향인가 해서."

"……"

이게 무슨 소리야? 깜짝 놀란 천후가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쑤근덕거리고 있었다. 그 웅성거림에 그는 잠시 자신의 상황을 자각했다.

오른팔. 대놓고 18살인 라즈베리 장착. 이거야 라즈베리가 원래 이런 성격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왼팔. 희주의 경운… 사실 외견 액면가만 보자면 라즈베리랑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녀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그녀를 어른스럽게 보이게 하고 있었지만, 원래가 동안인 그녀는 사실 당장 교복만 입히면 고등학생. 그것도 1, 2학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양인 눈엔 원래 아시아인이 어려 보이는 마당에 이런 상황이니…. 당장 그에게 학생을 밝히는 변태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씌워진 것이다. 천후가 나이에 비해 키와 체격이 있다 보니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인 탓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사정을 파악한 희주는 드물게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깜짝 놀라 천후는 그녀를 토닥여주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아냐! 아니라고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희주 씨는 성인이에요! 스물이라고!"

"뭣? 진짜?"

"진짜예요!"

생각해보면 라즈베리와 둘이 대화를 나누던 그 장면은 나이 차이 안 나는 자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목구비 차이는 크게 나지만 말이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궁금함을 가질만했다.

"아. 이건 정말 큰 실수를 했군. 미안하네! 너무 어려 보여서 그만. 아무래도 우리는 그런 덴 좀 민감하거든."

"끙…."

졸지에 취향 의혹을 받은 천후는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셨다.

"멍청이 깜둥이! 희주 언니한테 감히 무슨 말입니까!"

오히려 화가 난 건 그 짧은 시간에 많이 친해진 라즈베리였는지, 그의 정강이를 구두로 차버리면서 화를 냈다. 그리곤 천후를 놓고 쪼르르 희주쪽으로 다가가 팔짱을 꼈다.

"언니가 어려 보이긴 하지만 완전 언니입니다. 완전 존경합니다!"

"……."

그녀의 행동에 아무 반응도 못 한 희주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아. 하지만 이런 모습은 보기 좋네.'

당황하는 모습이란 게 있긴 한가 싶을 정도의 희주였다 보니, 그걸 본 천후는 은근슬쩍 조금 두근거렸다. 폰으로 찍어두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동요는 금세 다시 사라져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조금 흩어지자, 희주는 가만히 라즈베리를 바라보았다.

"라즈. 아까 그거. 지금 여쭤보세요."

"아. 넵!"

착! 경례포즈를 취한 라즈베리는 그녀에게서 떨어져나와 천후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는 천후를 올려다보며 눈치를 보다가, 결국 양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미스터 영! 저도 DS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영웅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시면 안 될까요?"

"……."

올려보는 눈에선 아까보다 10배쯤 빛나는 라이트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감히 마주보는 것을 포기한 천후는 대신 희주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선을 스륵 피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대체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천후는 당황의 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A랭크 일리미네이터는 귀하다. 각 국가에서 잡아서 놔줄 생각을 안 할 정도로 귀했다. 그렇기에 라즈베리가 자진해서 들어오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천후는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건으로 사정이 복잡해질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패트릭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 동안 완전히 언니 자리를 굳혀버린 희주가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도 좀 신경 쓰였고.

"아, 안됩니까?"

눈에 거절당할까 봐 걱정하는 빛을 가득 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천후도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하지만 이건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 대답했다.

"A랭크를 받을 수 있다면 이득이죠. 그런데 아직 DS가 그 정도 지불능력이 없는데…"

"음? DS의 B랭크 경급 퇴치비 보상이 100억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거면 충분히 많은데요?"

"음?"

"응?"

천후와 라즈베리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서로 무슨 소린지 알아듣질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같이 듣고 있던 패트릭이 나서서 정리를 해주었다.

"너무 앞뒤를 잘라 말하니까 미스터 영이 힘들어하잖아, 라즈베리. 지금 네 사정부터 설명해야지."

"아! 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으. 뭐부터 말해야 하지."

양 머리를 감싸 쥐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에 쓰게 웃은 패트릭은 대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단 미스터 영. 라즈베리는 노블레스 클럽 회원이 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전 경험이 거의 없어. 파급이나 좀 몇 번 잡아봤을까?"

"7번입니다!"

"응. 그렇지. 그리고 경급엔 참여를 전혀 안 해봐서, 훈련도 좀 따로 시켜야 할 거야. 그렇다 보니 그녀 몸값이 자네가 생각하는 수준이랑 좀 많이 다르지."

"아아…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아직 미성년자를 상위 디제스터랑 붙일 순 없었으니까."

"……."

지당하다는 듯이 끄덕이는 클럽원들의 모습에 천후는 입을 다물었다. 15살 때부터, 첫 트라이부터 파급을 잡아온 그였기에 이들의 행동은 그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그렇지만 이젠 나이도 좀 찼고. 일을 배울 때도 됐지. 탱커가 있는 DS라면 괜찮을 거야."

"맞습니다! 미스터 영이 지켜줍니다!"

한껏 동경 섞인 눈을 한 라즈베리를 보고 천후는 잠시 고민했다. 나이에 비해 약간 어린 면이 있는 라즈베리를 공대에 들이는 게 과연 이득인가에 대한 계산을 미안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다.'

그렇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숙련도야 올리면 그만이고, 그걸 보조할 인력은 있으니까. 아까 패트릭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위 디제스터를 상대해보지 않은 A랭크도 상당히 많았다. 노블레스 클럽 자체가 그런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기도 했다 언젠가 여기서 사람을 받아 써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는데, 그 첫걸음을 떼는 의미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뭣보다….'

천후는 잠시 희주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은연중 추천하기도 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녀를 편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천후 개인에게 있어서 다른 것을 제쳐주고 생각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로 크게 작용했다.

"좋아요. 그럼 이번에 한국에 돌아갈 때 함께 가죠."

"진짜입니까? Yay!"

"대신에 정식 절차는 다 밟아야 해요. 양친의 허락도 다 받아야 하고."

"그건 걱정 없습니다! 알자드! 알자드!"

라즈베리는 이 이상이 없을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으로 다크서클의 남자를 끌고 왔다. 그는 사정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죠. 그동안 월드 리버티나 라이징 선 입단은 계속 거절당해왔으니까…. 좋습니다. 대신 서포터, 오퍼레이터는 대한민국 안에서 따로 구해주셔야겠는데요. 저는 저쪽에서 따로 같이 하던 일이 있어서,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군요. 아쉽게도."

그렇게 말한 알자드는 라즈베리의 부모 쪽 문제도 해결을 봐주겠다고 하며, 출국할 때 신병을 넘기겠다고 말해왔다. 이를 수락한 천후는 그 후 파티를 좀 더 즐기다가 저녁이 되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으. 정신없어."

"수고하셨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느라 평소엔 입도 안 대는 술을 너무 마셨다. 조금 어지럼증이 몰려오는 것을 느낀 천후는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희주는 그런 그의 양복 겉옷을 받아 걸어두곤,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천후의 몸에 비하면 손은 작고, 손가락은 가느다란데도 그녀의 안마는 시원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 감각에 몸을 맡겨버렸다. 그런 그를 아주 살짝 미소 지으며 내려보던 희주가 물었다.

"성과 보셨나요?"

"아아. 네."

희주의 물음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성과는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녀가 묻는 것은 패트릭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천후는 잠시 파티 회장을 떠나 그의 차량에서 나눈 대화를 생각해냈다.

*

"어디서 그 정보를 얻었나?“

바로 물어온 말은 그것이었다. 패트릭의 얼굴이 그때까지 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완전히 밀어버린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이 화제를 입에 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단 걸 알았다.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신급 디제스터의 존재를."

"으음!"

표정을 굳혔던 패트릭은 그러다, 항상 대기하고 있는 기사마저 내보내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존재하고 있는 건 분명하네. 하지만 뮤슨 이유인지 몰라도 유그드라실은 그들의 존재를 숨기고 있네."

"……."

여기서 다시 유그드라실인가. 혀를 찬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패트릭이 말을 이었다.

"혼란을 야기하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그들이 파괴활동을 하고 있지 않아서인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존재를 아는 한 대비하는 수밖에 없어. 유그드라실이 직접 나설 거란 확신이 서지 않는 이상 더더욱. 그렇기에 자네를 미국으로 오게 하려는 거네."

급작스러운 출현했을 때 최단시간으로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체제에선 노블레스 클럽 멤버들, 그것도 미국 상주멤버들만이 그나마 대응할 수 있으리라.

"유그드라실은 우리에게 많은 핵심정보를 숨기고 있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전부터 비밀주의가 있었지만, 자네와 우리에게 숨긴단 건 말이 안 돼. 스스로 처리할 능력도 없을 텐데."

"몇 있는 S랭크 마법사를 전적으로 신용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론 어떨지 모르겠군요. 솔직히…. 믿을 수 없는 집단입니다."

둘의 표정이 함께 굳어갔다.

*

"대충 그런 이야기였어요. 그래도 정보규제를 하는 것이 저뿐만이 아니란 걸 알아낸 건 성과였죠."

체념 섞인 목소리에 희주의 손놀림이 멎었다. 안마를 하던 그녀의 손길이 얼굴로 다가왔다. 차가운 손가락이 볼에 닿자, 천후는 천천히 그 손을 잡았다.

"주눅 든 거 아니에요. 걱정 말아요."

"네…."

목소리엔 언제나처럼 감정의 기척이 없었다. 하지만 행동만으로도 걱정하고 있단 걸 알 수 있다. 빙긋이 웃은 천후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올려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술을 너무 마셨어.'

언제나 사랑스러운 그녀가. 오늘은 좀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홀에서 보았던 모습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동한다. 천후는 그대로 일어나 그녀를 가볍게 안았다.

"그러고 보니까 단둘이 멀리 온 건 처음이네."

"아…."

"이런 데서 즐기지 않으면…. 손핸데."

살짝 붉어진 귓가가 보였다. 그 귓바퀴를 손으로 매만지자, 그녀의 몸이 살짝 떨렸다. 풀고 싶었다. 이…. 그녀에 대한 욕망 전부를.

그때.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왔다.

"씻으시겠습니까?"

그 순간 천후의 입술이 그녀의 입을 덮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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