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사원들이 누더기 꼴이 되는 동안, 천후라고 놀고 있지는 않았다.
“…….”
“그 경제적 효과에 관해선 설명하는 시간이 아까울 것 같습니다만.”
먼저 정치권과 승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기업들의 경우 그에 대해 크게 견제할 힘이 없었다. 디제스터 퇴치 기업레벨에선 말할 것도 없었고, 일반 기업에선…. 알아서 나라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주겠다는데 반발하는 게 이상하다.
하지만 정치, 사회적 측면에선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초 예상했던 대로 텔레포테이션 규제가 한정적으로 풀린다는 이야기에 반발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나오곤 했다.
DS에도 풀어줬다면 A랭크들에게 점점 확장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마법사가 활동하는 영역이 더 넓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그 의견을 대변하는 이들이 정치인이었고, 천후는 그들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전과 다르다. 무작정 언론을 선동하며 밀어붙일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일정 부분 사실이었고, 마법사의 힘이 사회 전체에 퍼지면 인간의 노력이란 정말 쉽게 잡아먹히니까.
강경하게만 나갈 수 없는 문제였고, 그럴수록 천후에게 요구되는 연기 대본은 디테일해져 갔다. 그리고 천후는 어느 시점에서 확신했다.
‘이건 내 말빨 가지고 어떻게 안 되겠다.’
그리하여….
“그럼. 질문들을 해보시지요.”
정치인과 해당 안건 관련자들은 그의 옆자리에서 설명하는 친란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왜 저 여자가 여기에….’
‘DS 혼자만 있어도 힘든데!’
로자미아 엔체스터. 엔체스터의 말예라 불리는 그녀는 그 자체만으로도 손꼽히는 재벌 가문의 자녀. 그뿐 아니라 그녀의 인맥 중에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수없이 엮여있었다.
이 여자가 나서는 경우, 보통 그들의 이득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태도는 조심 스러질 수밖에 없었는데, DS가 그녀를 이 자리에 데려온 것이다.
DS 본인은 국가유공자 사건으로 현직 국무총리 목을 날려버린 인물. 그가 데려온 건 미국의 얼굴마담 중 하나라는 여자니, 이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그들은 둘을 번갈아 보다가 힘겹게 영천후에게 물었다.
“저기….”
“제 의견은 그녀가 정리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을 겁니다. 질문도 그녀에게 먼저 해주세요. 그중에서 중요한 것들은 제가 받아서 이야기를 하죠.”
“…….”
그 말에 모두가 떨떠름하게 로자미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부채를 펼치고서 그 아래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실 이건 이전 희주가 제안했던 방식이 응용이었다. 어차피 천후가 알고 있는 지식, 대답할 수 있는 데이터는 한 줌도 되지 않는다. 직접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러니 그는 일종의 아이콘. 행동만으로 이야기하는 표식으로 만들어버리고, ‘잡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부 떠맡겨버리는 그림이 이것이었다.
로자미아 역시 그 방법에 동의해서 이 자리에 나와 있었다.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인선이었다. 엔체스터 콜로니가 DS에 흡수되고, 인천 뉴타운 시공을 엔체스터가 맡게 되었을 때 두 기업의 관련성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로마이어로 인해 불거졌던 불편한 관계를 극복하고서 손을 잡은 두 사람이 일을 크게 벌이려고 하고, 동등 혹은 동등 이하로서 엔체스터의 사람을 써서 그들을 상대하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된다.
‘말은 셀레나도 할 수 있지만, 배경이 흐리니 그녀가 했다면 결국 그에게 말이 넘어오겠지만. 나는 다르지.’
그러면서도 이 텔레포테이션 규제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셀레나와 완전히 공유하고 있으니. 그녀만큼 최적인 인간도 없었다.
“이야기는 빨리 끝내지요. 어차피 쟁점은 몇 개 되지 않을 터. 첫째. 민간의 반발. 둘째. 효과의 문제. 셋째. 이것을 허용해주었을 때 이 나라가 얻을 대가. 이 셋이 아닙니까?”
“그…. 그렇소.”
“그럼 대답하지. 반발. 있겠지만 크지 않고, 실제로 선보이면 다들 환영할 거요. 반응에 대한 조사는 데이터에 나와 있고. 효과의 문제. 지금까지 입이 닳도록 설명했군. 당장 어지간한 빌라 한 채가 무너졌을 때 그게 대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아닐 텐데. 대응 시간이 1분 이내로 줄었을 때의 효과에 대해선 이 이상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오.”
가차 없이 앞의 두 개를 잘라내 버린 친란은 그러다 부채를 착 접고는 말했다.
“그리고 허가를 해준 국가에 내놓는 대가. 이것도 참…. 아. 실례.”
일부러 그들에게 웃음을 내비쳤던 친란은 곧 표정을 굳혔다.
“안보라는 대가는 돈으로 보이지 않는 작자들이군. 이 나라가 멸급 디제스터 사태를 겪은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은 나라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요. 하긴. 워낙 무난하게 막았으니 피해가 커 보이질 않았나 보지?”
“무, 무슨 그런 말을!”
“그렇지 않나. 이 괴물들이 내는 피해는 막대하다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닐 텐데. 한데, 알아서 나서서 막아주겠다는 사람이 나왔네. 기존보다 훨씬 빠른 대응속도로 말이지. 솔직히 그대들의 반응은 이해가 가질 않는군. 게다가 그가 최상위 공격대를 돌리기 시작하면, 해당 국가 측에서 얻을 이득이 막대할 작자들이.”
“…….”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멸급이 아니더라도, 경급 레이드만 꾸준히 뛰어도 대한민국의 발언력이 함께 상승할 것은 분명했다. 그뿐 아니라 국가 측에서 물밑 접촉으로 따로 뜯어낼 돈도 절대 없을 리 없었다.
이런 정규 공대 활동에선 당연히 뒤따르는 일이었다. 그런 공격대의 홈그라운드로 삼아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환영해도 모자를 판국에 이들이 하는 말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DS의 활동에 텔레포테이션 시스템은 꼭 필요한 게 아니오. 조금 느리긴 해도 유그드라실의 신세를 지면 그만이지. 어디 그쪽으로 돈이 나가는 것과 그나마 이쪽에서 국내 재분배가 일어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이득일지. 머리가 있다면 이해를 하겠지.”
“아…….”
“어딜 봐도 윈윈 밖엔 없는데 거기서 잇속을 챙기려 들다니. 정신이 나갔군. 당장 그 본인이 미국으로 떠나서 활동을 시작한다손 쳐볼까? 이 나라가 출국을 막을 순 있을 것 같소? 그가 마법을 쓰지 않아도 아마 7함대가 모셔갈 텐데? 정말이지 근시안적인 사람들이군.”
상하관계를 완전하게 착각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 결성한 DS 공격대 자체는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구성할 수 있었다. 그 나라에선 여론을 좀 더 신경 써야 해서 텔레포테이션 시스템을 돌리기 힘들 뿐이지, 공격대 활동 자체는 할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선 발정 난 것처럼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
당장 DS 공격대 자체만으로도 국가 간 외교로 한몫 잡은 놈들이 DS 자체에 뭔가를 바라려 들다니. 이런 생각을 어떻게 제정신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확실하게 말해주지. 앞으로도 경급 디제스터 하나 나올 때마다 일리미네이터 중에서 사상자가 나오는 레이드를 보고 싶나? 그렇지 않다면….”
눈빛을 날카롭게 바꾼 친란은 그때까지 말없이 앉아있던 천후에게 살짝 시선을 보내 말했다.
“그의 신경을 너무 거스르지 말게. 면전에서 무례하군.”
“!”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덜덜 떨면서 천후를 바라보았다. 1년에 1건에서 3건 정도 일어나는 경급 레이드가 모두 무난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천후의 첫 경급 레이드 대상이었던 ‘블랙 텐타클’은 8천 명 가까운 민간인 사상자를 냈고, 키메라는 첫 등장 시 후속 공격대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전멸할 뻔했다.
공격대원 중 한, 둘이 죽는 것은 허다한 일이었고, 그 정도로 끝난다면 성공한 레이드 취급을 받았다.
그 상황에서 영천후가 나타났고…. 그가 있는 한 이제 대한민국은 경급 이하에겐 거의 완벽하게 안전해졌다. 그냥 천후 본인이 나서버리면 전부 정리가 되니까.
하지만 이런 실랑이로 그가 싫증 나서 국내를 떠난다면?
전멸 위기를 항상 안고서 진행되는 레이드가 다시 돌아오리라. 그리고 그들이 까딱 잘못해서 미끄러지면…. 나라 안이 지옥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그들이 침울해졌을 때, 천후가 입을 열었다.
“친란. 저를 너무 무서운 사람으로 만들지 마요. 다들 겁먹었잖아요.”
“음? 그런가?”
“그래요.”
“그렇지만 보게나. 이들은 자기들의 영웅이 자기들을 떠날 거란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지 않나? 그럴 수도 있다는 걸 각인시켜 줘야 이야기하기 편해지지.”
그 말이 천후는 빙긋이 웃으며 그녀의 턱밑에 손을 가져가 간질이며 말했다.
“그런 일은 없다고 했잖아요. 만약으로라도. 기억 안 나요?”
“음. 그랬지….”
“너무 협박조로 말하지 마요, 란. 알았지?”
“으음. 알았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
가느다랗게 웃으며 말하는 친란을 보고 모든 사람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방금까지 일방적으로 몰아치던 여자를 무슨 말 잘 듣는 고양이처럼 부리는 모습엔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다.
친란을 얌전하게 만든 천후는 그녀의 목덜미 뒤를 쓰다듬어주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였죠? 아. 대한민국에 줄 허가비 부분이었던가요? 간단하게 가죠. 아실 분은 알겠지만, 사실 이미 저와 DS의 모든 활동엔 무과세가 되도록 정부와 이야기가 끝나있어요. 하지만 이래선 너무 힘드실 테죠. 그러니까…. 국내 퇴치금의 3%를 재환수하게 해드리죠.”
“3, 3%요?”
“네. 란. 텔레포테이션 시스템이 활성화됐을 시 상승하기로 한 보상금이 기존의 몇 배랬지?”
“13배로 교섭이 끝났다.”
“그걸 적용해서 생각하면 이것만도 꽤 돈이 될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저를 제외한 다른 분들에겐 또 따로 소득세를 거둘 거잖아요. 어때요?”
웃으면서 묻는 말이었지만, 그 옆에서는 암고양이 하나가 날카롭게 웃고 있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명확했다.
그의 의견을 거절하면, 자기 쪽에서 그를 설득시켜버리겠다는 눈빛.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설득 후에는 실현이 문제였다.
50명 가까이 고용한 텔레포터들을 국내의 각 지방으로 나누고, 지사를 만들어 활동하게끔 하는 준비를 하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인구수에 비례하는 출현빈도를 보이는 디제스터의 특성상 서울에서 출몰하는 일이 많았기에, 현장 적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첫 시작 테이프는 아직 끊지 않았다. 그 효과성을 입증해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가장 확실하게.
지직. 지지직.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갑자기 전기 스파크가 터지는가 싶더니, 곧 검은 구체가 생성되었다.
그 구체는 순식간에 점점 커져서, 이윽고 5m가 넘은 소처럼 생긴 괴물이 되었다. 서울 도심. 그것도 도로 한복판에 놈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 전조현상을 발견한 것만으로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
주변 구역 전체에 대피령을 알리는 음성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미친것처럼 차량을 몰고 도망가려고 했다.
바로 그때.
“크르르….”
놈이 나타난 지 이제 20초. 아직 주변 파악을 하고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상황에….
하늘에서 검은 번개가 내리꽂혔다.
그 순간, 놈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그 공격을 맞고 퇴치되고 말았다. 등장부터 퇴치까지 걸린 시간이 총 24초.
영천후가 뿜어낸 검은 불길에 의해서 시체조차 완전히 타들어 가 거리에 피해도 없었다. 이 장면을…. 함께 텔레포트 했던 군 관계자와 디제스터 대비청장은 입을 벌리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해당 사건은 단숨에 대한민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천후는 좀 더 철저하게 입증을 했다.
“모든 사건에 내가 나설 순 없어.”
두 번째는 이강호 팀이 나서서 총 퇴치시간 32초가 걸렸다. 이것도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앞으로 실제 파급을 상대하게 될 일반 일리미네이터 팀이 나섰다.
아직 훈련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그들은 일반 파급 트라이 평균 시간인 8분보다 약간 짧은 6분 30초를 끊었다.
그냥 트라이 시간이 아니라, 출동부터 퇴치까지 6분 30초. 보통 연락을 받으면 마법에 의한 비행까지도 규제가 걸려있어 차량으로 이동하느라 10, 20분은 쉽게 잡아먹곤 하던 것이 메인 퀘스트의 현실이었다. 그 사이에 일어났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정부와 안전을 바라는 시민 보두의 눈이 사로잡혔다.
그날로.
대한민국에선 디제스터 퇴치 한정으로 텔레포테이션이 완전히 허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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