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50화 (150/324)

150화

<초기 정비>

사람은 모두 들였고, 파티도 끝났다. 하지만 이들이 바로 세계 경급 레이드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파악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셀레나는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 뜻을 알 수밖에 없었다.

“아…. 이런 뜻이었구나.”

“으그극. 네? 수석 비서님? 무슨 말씀이세요?”

“아뇨. 그냥 혼잣말입니다.”

메인 퀘스트 퇴치 현장 실사를 나온 셀레나는 부상자가 물어오는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손을 움직여 차트에 기록을 해나갔다.

‘이런 거 보면 천후가 참. 싸움 관련으론 도사긴 하구나.’

이미 110명의 면접을 거쳐, 그 안에서 50명을 추려내는 동안 이력서나 관련 데이터는 산더미처럼 봤는데 무슨 파악이 더 필요할까 싶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본격적인 공격대 운영에 앞서 영천후는 일정 기간 동안 국내외 파급 디제스터를 잡기로 했다. 진짜 실력 파악을 위해서였다.

드래곤이 잡힌 지 석 달이 지났다. 그 석 달 동안의 공백기가 문제였다. 외국을 돌아다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평화를 한껏 즐긴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일을 했다고 해도 그들 역시 서브 퀘스트가 대부분이었다. 일부러 파급을 잡으러 다닌 사람은 손에 꼽았다.

편하게 하려면 애초부터 4인 이상이 한국에서부터 팀을 맞춰서 나가야 했는데, 한 기업에 일리미네이터가 4인 이상인 경우부터가 드문 상태에서 굳이 그럴 필요까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석 달이 지난 지금…. 일리미네이터들의 기량은 당시의 기량이 아니었다. 푹 쉬었거나, 쉬운 일에 적응해버렸거나. 이지선다인 상태에서 한계까지 치솟았던 기량은 떨어졌다.

‘뭐 사실 블랭크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지만….’

문제는 문제라지만 그렇게 심각한 사항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와…. 오랜만에 터프한 놈을 만나니까 적응이 안 되네.”

“많은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다치고서 무안해 하며 하는 말에 셀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특화 문제가 있었구나.’

‘그렘린 페이스’는 파급 중에서도 최상급 난이도를 가진 디제스터. 확실히 맞는 말이다. 카이팅을 하고 도망 다니기 때문에 맞추기 힘들고, 따라잡느라 캐스팅이 엉망이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이런 놈을 달 단위로 상대하다 보면 대응법도 나오기 마련. 한국 일리미네이터들은 한동안 그렘린 페이스에 완전히 특화되어버렸다.

그게 문제였다.

게임식으로 말하자면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몹만 잡은 셈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타입을 오랜만에 상대하자 적응을 못 했다. 적당히 원거리 공격이 섞인 터프한 디제스터가 나오자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렘린 페이스는 체적이 작은 만큼, 재생력은 높았지만 한 대 정통으로 제대로 맞추면 끝장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화력을 제대로 집중해서 여러 대 맞춰야 죽는 놈이 나오자 당황해버렸다.

“으. 이게 아닌데.”

일리미네이터 자신들 역시 너무 많이 다친 자신들이 믿기지 않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셀레나는 이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일리미네이터들의 기량은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지막지하게 높은 건 아니다. 사람의 기량을 수치화할 순 없지만, 그래도 여기선 C랭크 일리미네이터의 전 세계적인 평균 기량을 50이라고 쳐보자.

드래곤 사태 최 후반, 집중력이 극한까지 올랐을 때 이들의 기량은 모두 65를 넘었었다. 여기에서 드래곤 사태 때 출몰했던 고정 출현 디제스터들에 대한 기량까지 가면 80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블랭크와 특성화 딱지가 떨어진 지금, 다시 전 세계 평균 기량에서 +3~10 정도 선까지 떨어졌다. 당장 다시 그렘린 페이스가 나온다면 그놈들에 한해선 65~75 정도의 기량을 보이겠지만, 그런 놈들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포인트 맨은 다치는 게 일이었지.’

부상자가 안 나오는 게 오히려 드물었던 게 메인 퀘스트의 진실이다. 괜히 기피했던 게 아니지. 하연 등이 영천후를 보고 괜히 하악 거리는 게 아니다. 디제스터의 시선을 확실히 뺏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마법사란 정말로 드물고, 희귀한 것이다.

영천후는 이 부분을 아주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서 랜덤한 디제스터와 싸웠을 때 이들이 보이는 진정한 역량을 체크하려고 했던 것이다. 과연 싸움 관련으론, 그중에서 디제스터 관련으론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인간답달까?

쓴웃음을 지은 셀레나는 그와 레이나드가 만든 전력분석표에 빠르게 수치를 기재해나갔다.

*

“형님. 어떻게 된 거예요, 이게.”

“응? 어. 허허허.”

“말씀하신 거보다 평균이 낮잖아요.”

“셀레나 씨가 너무 박하게 준 거 아닐까?”

“끄응.”

정리해서 올라온 차트를 훑어본 천후는 인상을 찌푸렸다. 레이나드에게서 예상되는 평균점을 들은 것보다 낮았다. 그도 인간인 만큼 조금 더 후하게 불렀던 건데, 결과를 보니 참담하다.

“세계 평균치보단 높잖냐. 너도 원래 이쯤 예상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끙.”

사무실에서 레이나드와 마주 앉아 머리를 감싸 쥔 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평균치는 확실히 높다. 근소하지만 높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사람 목숨 달린 일인만큼 이건 어쩔 수가 없겠는데요?”

“버는 만큼 부려 먹겠다고 네가 파티 때 말하지 않았냐? 그 말대로 해야지 어째.”

“어쩔 수가 없네…. 다른 건 몰라도 컴뱃 캐스팅은 다들 어느 정도 할 수 있게끔 해야지.”

천후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컴뱃 캐스팅. 간단히 말하자면 이동하면서 주문을 외우는 능력이었다. 일리미네이터라곤 해도, 커밍아웃한 마법사가 곧바로 떡 하니 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그들에게 능력의 추가적인 계발 욕구란 건 그렇게 크지가 않았다.

경쟁자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별로 못 느꼈달까? 서브 퀘스트까진 둘 정도 모이면 대충 패도 이기니까. 메인부턴 1년에 3건 할까 말까고.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최고의 공격대가 될 생각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공격대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들의 역량이 달리면?

방법은 두 가지뿐.

기량 뛰어난 마법사를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데려오거나.

키워 쓰거나.

“언젠가 글로벌화 되더라도, 지금은 한국인 위주로 가고 싶어요.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키워 써야지….”

이를 바득바득 간 천후는 종이에 1, 2, 3, 4, 5라고 적고는 레이나드에게 내밀었다.

“이게…. 현재 C랭크 일리미네이터들 컴뱃 캐스팅 숙련 표예요. 평균이 4쯤 되죠. 형님이랑 태원 씨가 1급이고요. 보니까 1급은 다 합쳐서 5명쯤 되요.”

“생각보다 많네, 뭐.”

“네. 그러니까…. 그 다섯 분이 당분간 교관으로 다른 분들 훈련시키는 걸로.”

“뭣?!”

현 상황에 같이 낄낄거리면서 웃고 있던 레이나드는 갑자기 자기한테 일거리가 주어지자 흠칫 놀랐다. 하지만 천후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평균 2등급 찍기 전엔 경급 레이드 없습니다.”

“…….”

“그동안 월급 나가는 정도의 노력은 다들 해야죠.”

말은 돌려 했는데, ‘형도 밥값 하세요’라는 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캐스팅 숙련 교관이라니…. 공격대장이라고 모셔와 놓고 무슨 짓을 시키는 거람? 하지만 천후의 표정에 피로감이 가득한 게, 전혀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레이나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 나도 캐스팅이 마스터 급인 건 아닌데. 네가 직접 하는 게 낫지 않냐?”

“전 또 따로 할 일이 있어서요. 걱정 마세요. 일단 초기엔 추가로 교관을 붙여드릴 테니까. 그 사람한테 배우고 형님이 전수하면 될 겁니다.”

“응? 그런 사람이 있어?”

레이나드만 해도 컴뱃 케스팅에선 국내에서 손으로 꼽히는 숙련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를 가르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게 오토 캐스터인 천후 외에 또 있다고?

그가 놀라서 묻자, 천후는 밝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있고말고요.”

아주 밝게.

*

“아들 새끼 키워 봐야….”

“…….”

맑은 오후. 서해의 무인도에 찾아온 수염의 중년인, 최완은 입에서 한탄을 뽑아냈다.

양아들이란 놈이 저녁에 갑자기 연락해왔다 싶더니 자기 공격대원들 컴뱃 캐스팅 교육 좀 해달라고 말해온 것이다.

최완은 잠시 그날 오고 간 대화를 떠올렸다.

‘야! 나도 바빠, 임마! 아니 너 요즘 날 너무 부려 먹으려고 드는 거 아니냐?’

‘응? 에이. 그럴 리가~.’

‘뻔하게 보이잖아, 임마!’

‘에이. 아저씨, 한가하잖아요. 등록도 다 끝나서 다시 탱자탱자 놀면서. 애초에 유그드라실이 하는 게 뭐 있다고.’

‘아니거든! 완전 바쁘거든? 너 이런 말 한 거 본사 애들한테 이른다, 이 자식아?’

그 뒤로 한동안 말싸움을 주고받던 천후는 그러다 크크큭 웃고는 입을 열었다.

‘하루 4시간 천만. 열흘로 1억 드릴게요.’

‘…….’

‘양도세 떼고 세후로 1억. 사람들 성취 봐서 추가로 더 드리고. 유그드라실 안 통하고 완전히 아저씨 통장에.’

‘…양도세 떼고?’

‘떼고.’

‘내 통장에 직접?’

‘직접.’

‘소문낼 거 아니지?’

‘에헤이. 아들을 뭐로 보시는 거야.’

‘…………………………콜.’

…이렇게 당일 날은 잠시 돈에 눈이 멀어서 응해버렸지만, 생각해보면 그래선 안 됐다. 아니 지가 뭐라고 유그드라실 한국 지부장을 돈으로 부려 먹으려 들어?

겨우 하루 천만, 열흘 1억 가지고 사람을…!

‘부려 먹으려 들 수 있지.’

빠르게 아까 했던 아들 새끼 어쩌구 발언을 머리에서 지운 최완은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유그드라실이란 게…. 기본적으로 NGO인지라.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돈이 굉장히 짜다. 많이 짜다. 당장 천후가 유그드라실 직속 일리미네이터이던 시절, 파급 하나 잡았을 때 그 개인에게 들어온 돈이 700만 원이었을 정도다.

이건 천후에게만 짜게 적용된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런 식이었다. 당연히 한국지부장이니 어쩌니 해도 이건 마찬가지라서…. 당장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 사정상 유그드라실에 완전히 메인 몸인 그는 사회에 내려와 일리미네이터 활동을 할 수도 없는 처지. 개인 재산 1억 원이면 꽤 크다. 많이 크다. 아들내미에겐 푼돈인 돈이 그에겐 천금과도 같았다.

“후우….”

물고 있던 시가에서 연기를 뿜어낸 그는 묘하게 미소 지었다. 아들 새끼 키워봐야….

“보람 있네.”

으흐흐 하고 웃은 최완은 교육을 기다리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은 바론 섬 전체를 사서 어쨌다고 하는데 그건 별로 알 바 아니었다.

시작하기 전 이미 그들의 평균적인 수준 같은 것들도 들은 상태였다. 그에 맞춘 커리큘럼은 대충 준비해왔다. 단순한 것이었다.

“자아. 캐스팅 숙련이라고 해봐야 별것 없습니다. 어차피 천후가 하는 오토캐스팅까진 가지도 못할 테니까. 적당 선에서 끝내죠. 요점은 두 가지죠? 캐스팅하면서 디제스터의 공격도 피해낼 수 있는가. 이렇게 움직일 경우 대체 얼마나 캐스팅 시간이 길어질 것인가.”

담담히 말한 최완은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뱉어내곤 발로 비벼 불을 껐다.

“보니까 이 중에서 가장 숙련된 분이 강화 이동속도, 비행을 유지하면서 풀 캐스팅에 걸리는 시간이 8, 9초쯤 되더군요. 목표는 이 정도에서 조금 아래로 잡을 생각입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하게 해야죠.”

답지 않게 최완이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퐁. 포포퐁. 포포포포퐁. 모여있는 일리미네이터들 주변에 하얀색 빛의 공 같은 것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것 하나하나가 아주 약한 방출마법이라는 것을 알아챈 일리미네이터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 잠깐. 뭐 하시려고요?”

“음? 어차피 캐스팅을 유지하는 방법 자첸 다들 알잖습니까? 이제 거기서 단축을 하려면 실제로 단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게 최고죠.”

“!”

무슨 말인지 깨달은 그들이 재빨리 캐스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효관 확실합니다. 우리 아들놈도 이렇게 배웠으니까.”

수많은 빛무리가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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