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100화 (100/324)

100화

섬광이 터지는 그 순간, 드래곤의 정면을 막고 있던 덕모도의 해명산이 녹아내렸다.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생물체의 탈을 쓴 괴물의 아가리에서 튀어나온 빛은 소리보다도 빠르게 내다 꽂혔고, 산 한가운데에 원형 구멍이 뚫리며 고열에 인해 달아오르며 녹아 무너져내렸다.

광선은 그 산 하나를 무너뜨린 것으로 기세를 죽이지 않고 날아가 강화도 건평리와 삼흥리를 강타, 진강산 역시 관통해버리고 계속 뻗어 나갔다.

불은리 불은 초등학교는 산을 뚫어버리고 날아온 그것에 완벽하게 증발. 강화도 중앙에 긴 상처를 남긴 그것은 기세를 멈추지 않고 결국 내륙을 습격했다.

석정 교차로 인근의 대성 1주유소가 영향권에 들어가 폭발이 일어났고, 서암천 일부 구간이 물이 순식간에 끓어올라 기화되어 사라졌다.

하사리와 전류리를 긁고 지나간 그것은 결국 한강을 돌파. 파주출판산업단지에 고속도로를 뚫고는 삼학산에 다다라서야 대폭발을 일으키며 멈추었다.

광선의 종착지였던 삼학산은 완전히 불바다가 되어 산 아래 건물들로 화염을 전파하고 있었고, 광선이 스쳐 지나간 모든 지역의 하수관과 도시가스관이 폭발하며 불지옥으로 변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모든 민간인들이 해당 지역에서 이탈해있었다고는 하나, 그렇다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피해였다.

이것이 과연 괴물이 입 한 번 벌렸다고 낼 수 있는 피해란 말인가?

디제스터와의 교전 영상은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국가 존망의 위기를 극복해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열망을 받아들여 제공되고 있던 화면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혔다.

디제스터나 전쟁에 대하여 미화된 콘텐츠, 순화된 장면들밖에 본 적이 없는 수많은 시민들은 현실에서 벌어진 이상사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패닉에 빠져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한 번의 브레스 이후로 드래곤은 더 공격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무참한 장면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알았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무것도....

*

"그렇지 않나?"

그렘린 페이스와의 교전으로 인해 여러 색으로 물든 하늘 아래.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있었다. 그는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눈에는 선글라스를 써서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었다.

한여름이라 그러고 있으려면 붕대 안쪽은 땀으로 범벅일 텐데도,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목표물이 보인다.

붕대 너머로, 입술이 움찔거리며 들렸다.

그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곁에서 신형 패턴 위장의 전투복을 입은 남성들 몇몇이 나타났다. 그들은 손에 각각 저격총과 소총과 기관단총, 그리고 소총에 부착 가능한 유탄발사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소대장님."

"으음...."

붕대를 두른 남자의 손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이들은 망설이며 소대장에게 시선을 모았다. 저자의 지시에 따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지금 이 지시는 도저히 쉽게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타당하다 생각한 소대장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잠깐.... 이건 이야기가 다른데."

"무슨 소리야?"

"저건 디제스터가 아니잖나? 우린 민간인에게 총구를 겨누기 위해서 자네들과 함께 하는 게 아니네."

소신을 밝힌 소대장의 말에 붕대의 남자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꺾였다. 붕대 너머 보이는 입가엔 여전히 미소가 실려있었다.

"그래서?"

"뭣?!"

그 답변에 놀란 소대장이 자기도 모르게 소총을 그에게 겨눴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전 소대원들 역시 그를 겨눴다. 하지만 그는 피식하고 낮은 웃음을 내뱉었다.

"큭큭.... 무기를 들고 내 인근에 다가온 순간 끝이란 걸 전혀 모르고 있군."

"!"

"마법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어.... 끽해야 레이지에 걸린 놈들만 상대했을테니. 하지만 알아두라고. 진짜 마법사는.... 인간 따위 장난감에 지나지 않다는걸."

"쏴라!"

불길함을 느낀 소대장의 명령에 소대원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때. 남자의 입이 움직였다.

"내 명령을 따라라."

덜컥. 소대장을 포함한 모든 병사들이 거짓말처럼 행동을 멈춘다 싶더니, 순식간에 지정된 장소로 산개했다. 남자는 실실 웃으며 동공에서 초점을 잃은 소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저건 뭐지?"

"저건...디제스터. 디제스터 페이스리스."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제거해야 한다...."

"그래. 그럼 해야할 일을 해라."

"네!"

바르게 경례를 해 보인 그는 건물 옥상의 턱에 몸을 기대고는 총구를 아래로 향했다. 공격해야 할 목표물을 향하여.

*

"세상에.... 이건...!"

드래곤 트라이 실패에 대비하여 국내에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차를 타고 엔체스터 빌딩으로 향하던 셀레나와 희주는 라디오와 스마트폰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서 경악했다.

드래곤의 드래곤 브레스가 강화도를 관통해서 파주 일대까지 날아왔다는 소리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셀레나. 유그드라실로부터 1 공격대의 전황을 들을 수 있을까요?"

"해볼게."

레이드엔 참가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둘은 정식 서포터와 오퍼레이터였기 때문에 유그드라실에서 전황 정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미미르를 통해 정보를 들은 셀레나의 표정이 점점 창백해져 갔다.

"1 공격대 트라이 실패.... 현재 드래곤 브레스의 영향으로 위성 서포트로도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된대. 브레스 발사 직전까지 사망자가 13명.... 드래곤도 50% 이상의 신체손실이 있었다곤 하는데...."

"......."

그 소식에 희주 역시 입을 다물었다. 1 공격대, 로마이어 공격대는 국내 최상위 40인을 모은 공격대였다. 당장 공격대장인 레이나드를 제외하고 다른 2 공격대의 C랭크들은 1 공격대와의 숙련도 차이가 엄청나다. 그중 13명이 사망하다니.

희주는 빠르게 경우의 수를 생각해냈다.

일단 가장 퇴치 가능성이 높은 것은 지금 크게 손실을 본 드래곤을 영천후가 살아남은 1 공격대원들과 2 공격대를 규합해서 연전을 거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드래곤이 회복하는 시간 동안 생존자를 규합,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트라이를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당연히 첫 번째 방안보다 성공확률이 지극히 낮다. 드래곤이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걸린다.

희주는 이것이 1분 1초가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드물게 외쳤다.

"주인님과 레이나드 씨에게 연락을. 1 공격대 상황을 전파해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 하지만 그가 아니면 해결할 가능성조차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말씀 드려야 한다. 그러면서 희주는 마지막으로 가장 생각하기 싫지만, 그럼에도 대비해야 하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만약.

아주 만약에.

하늘이 무너지고. 해가 서쪽에서 뜰 확률이지만 그럼에도 만약에.

주인님이 패배하여. 멸급 디제스터가 이 나라 전체를 초토화 한다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분께서 이곳에 있었어도 반드시 행했을 일.

"아이들만이라도...."

단 한마디였지만, 셀레나 역시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입술을 악문 셀레나는 천후에게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희주는 이 순간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때였다.

카창!

"꺅!"

"뭐, 뭐야?"

"......."

그들이 타고 있는 차량 유리에 금이 갔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순간 눈을 가늘게 뜬 희주는 단숨에 유리가 금간 모양을 보고 파악했다.

'총탄. 저격.'

사람. 인간에 의한 공격. 왜? 이것만은 바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드물게 평소보다 커졌다.

"이브, 에바. 벨트를 매고 몸을 숙이세요!"

"아. 아아...."

"선생님!"

"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에 둘은 울먹이며 벨트를 착용했다. 그 순간.

터어어어어엉!

"꺄아아아아악!"

엄청난 소리와 함께 차량이 들썩이다 다시 내려왔다. 셀레나조차 앉은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갑작스런 충격에 벨트가 몸을 조여 켈록거렸다.

"움직여야 합니다."

방금 이것은 유탄에 의한 공격이었다. 이 자리에 있다간 꼼짝없이 살해당하리라는 것을 확신한 희주는 운전대를 잡고는 차를 몰았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이 저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장갑을 두른 차량을 부술 수 있는 공격은 아닙니다만, 이대론 위험합니다."

현재 이들이 타고 있는 차량은 6인승 밴이었다.

파급 이상의 디제스터만 전문으로 상대하기로 한 만큼, 혹시 세어나간 공격이 셀레나들이 탄 차량에 닿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차량을 장갑화시켜놨는데,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당장 처음 저격에 이브가 죽었으리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군용 장갑차가 아니라, 사제 차량에 방탄처리와 장갑을 덧댔을 뿐이다. 작정한 대전차 로켓이나 박격포 등에 직격당하면 버티지 못한다. 이미 시가지에서 유탄을 발사한 상태다. 딱히 대전차 로켓이라고 못 쏠 거 같지가 않다.

말하는 와중에도 차량 곳곳에서 콩 볶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소총으로 세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서, 선생님!"

"무서워요!"

아이들이 두려움에 떠는소리에 희주는 인상을 굳혔다. 그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희주와 셀레나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손이 비어있는 셀레나가 받았다. 친란이었다.

"전화를 걸고 왜 말을 안 하나? 일단 조금 늦는 것 같기에 헬기를 보내놨으니, 막 출발한 상태라면 근처 T호텔 헬리포트로-"

"란! 지금 우리 총격을 받고 있어! 차에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총격이라고?"

핸드폰 너머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곧 노성으로 변했다.

"로마이언가...! 미쳤군!"

"무슨 소리야!"

"길게 설명할 시간 없다! 유그드라실에서 차량까지 수송 가능한 큐브를 떨궈달라고 할 테니 지정 포인트로 향해라! 그동안 헬기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쪽 고층 호텔 옥상을 날던 헬기의 꼬리가 뭔가에 맞아 폭발을 일으키며 부러지는 것이 보였다. 보조익을 잃은 헬기는 속절없이 마구 돌면서 지상으로 떨어져 도로를 미끄러지며 차량 쪽으로 다가왔다.

"혀 조심!"

단 한마디의 경고를 던진 희주는 그대로 드리프트를 걸면서 옆길로 빠져나갔다. 그 순간 헬기가 조금 전 차가 있던 곳을 지나치면서 이윽고 화염을 일으키며 멈췄다.

"...반격을 해야 합니다."

차량으로 이동한 거리가 꽤 되는데도 소총과 유탄에 의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재산피해가 일어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따라오는 차량이나 헬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광범위하게 사전배치된 보병 병력에 의한 공격이다. 이런 다수에 의한 공격에 반격을 해봐야 바다에 각설탕 붓기지만....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지 않으면 유도까지 가기도 전에 그냥 끝장나리라.

다행히도 아직 도로를 차단하지도, 초소 투입도 안되어 있는 상황. 이렇게 많은 수의 군인들이 보이고 있는 것 치고는 포위가 어설프다. 아니, 이 정도면 안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작정한 군의 포위망은 절대 이 정도가 아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하나.

발버둥 칠 기회는 지금 밖에 없다.

"...건물 옥상. 특히 고층건물 위. 이상한 오오라가 덧씌워진 군인들이 보여. 교차로나 사거리 골목에도. 왜 저런 데 있지?"

"셀레나?"

홀린듯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셀레나의 머리카락이 넘실거리며 눈에서 청색 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탐색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셀레나는 그것을 시각적으로 전환하려다가, 희주가 운전을 하느라 정신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문을 외워 그녀의 관자놀이는 짚었다.

그 순간 희주는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끼며 반경 수 킬로미터의 모든 건물 상황과 사람들의 위치. 그 중 이질적인 기운을 풍기는, 지금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적들의 위치까지 전부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건?"

"감각 링크야! 반격할 수 있겠어?"

"......."

이런 걸 할 수 있었다니. 새삼 그녀를 다시 본 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월아홍취가 나타났다.

"혈인변검. 공도."

나지막이 읊조리고 그것을 허공에 찔렀다가 거두니, 칼에 피가 묻어있었다. 셀레나는 순간 차량에서 100m는 너머에서 조준하고 있던 병사 중 하나가 쓰러진 것을 느끼곤 흠칫 놀랐다.

"그거 사거리가 그렇게 길었어?"

"이 감각과 함께하니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셀레나와 같은 청색 안광을 깜빡인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심호흡을 내쉬었다. 혈인변검은 강력한 능력이지만, 사용횟수. 그리고 지속시간에도 한계가 있다. 과연 그전까지 상황이 해결될 수 있을지....

"셀레나. 주인님께 연락을."

"이미 했어!"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젠 정말 타임 어택이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100화군요. 많은 응원 감사드립니다.

100화에 이 전개가 와버릴 줄은 저도 생각을 못했지만...

8월 초에 제가 한 번 언급은 드렸습니다만,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저는 철저하게 전체던 챕터던 해피엔딩으로 끝낼 생각입니다. 꼭 기억해주세요.

그럼... 일어나서 한 화 더 올리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