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한여름. 바람은 불지 않는다. 뙤약볕에 바닥에선 아지랑이가 올라올 지경인 그런 더운 아침.
그러나 천후는 바람을 느꼈다. 그것도 태풍과도 같은 거센, 칼날 같은 바람.
'기도가 바뀌었다.'
노인의 양손에 검이 들리는 순간 노인에게서 느껴지던 미증유의 기운이 일변했다. 검을 들기 전부터 이미 노인이 강할 것이라고는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천후는 몸이 떨려왔다. 손이 잘 쥐어지지 않는다.
'두려워하고 있다?'
천후는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판단하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에 납득했다.
노인이 쏟아내고 있는 살기는 강호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그녀의 살의, 광기는 서로의 호승심을 자극해, 전의를 고취해 맞붙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설령 맞부딪히면 어느 한쪽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되게 하는. 정신을 고양하는 광기였다.
그러나 노인의 것은 다르다.
강호의 것의 무에 대한 열망으로 변질된, 전의가 변질된 살기라고 한다면.
노인의 것은 순수하다.
순수하게. 널 죽여버리겠다고 외치고 있었다. 죽는다. 대적하면 죽는다. 상대하면 죽게 된다고 뇌가, 의식이 마구 외쳐댄다. 도망가라고.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어떤 생물종에게도 당연하게 프로세스 되어있는, 쓸데없는 손실을 피하라는 명령이 육체에 마구 떨어진다.
허나.
"죽긴 누가 죽어. 영감이야말로 다 늙어서 땅바닥 긁게 해줘야 정신 차리겠군."
꾹. 의식을 바로 한다. 무의식에서 내리는 명령을 의식으로 지배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통제한 육체를 다시금 자신의 것으로 삼아 무기로 바꾼다.
걸어온 싸움을 피하라고? 여기서 내가 물러나면 어떻게 되는데?
선배는 다시 칼을 들어서 저 큰 가슴 썩둑 자르고 성전환 수술을 받으면 되나? 이브랑 에바는 친권이 계속 묶여서 인질로 쓰이고?
좆 까.
좆 까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아아아아…!"
심호흡을 내쉰다. 그와 동시에 쥐었던 주먹이 다시 풀려 가볍게 그러쥐는 것으로 바뀐다. 온몸에 넘쳐흐르는 힘을 일부러 풀어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몸을 부드럽게 바꿔나갔다.
"입만 산 놈은 아니었군."
그 기색을 본 노인은 표정을 굳히며 직도를 앞으로 내밀고 곡도를 안쪽으로 가져왔다. 전형적인 이도류의 자세. 일반적인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둘 다 상당한 길이의 검이라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왼손을 길게 내밀어 검을 뻗으면, 안 그래도 달리는 천후의 리치는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천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천후야!"
"조용히 보고 있어요, 선배."
"……."
"세상엔 한 번 호되게 당해봐야 정신 차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야."
"아…."
흐려지는 목소리에 천후는 가느다랗게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슷. 모랫바닥을 훑으며 신형이 번뜩인다. 90kg이 넘는 무게의 사람이 움직이는데, 흙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으며 나는 듯이 움직인다. 상, 하체를 가릴 것 없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다가오는 그것을 노인은 가만히 보고 있다….
찔렀다.
파슷! 작은 소리와 함께 아주 조금 잘린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어진다. 스쳤다. 노인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추격해 들어갔다. 직도를 함부로 긋지 않는다. 오직 찔러 들어가며, 천후가 피하는 모양새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되게끔 유도해나간다.
"……."
"……."
격렬한 움직임이 진행되는데도 두 남자는 말이 없었다. 뒷걸음질치는 천후를 마루 쪽으로 유도하지만, 천후는 거의 뒤로 눕다시피 허리를 꺾어가며 방향을 전환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바란바. 노인의 곡도가 천둥처럼 내리꽂혔다.
후웅!
하지만 천후는 인간의 관절 한계에 가깝다고 생각한 그 상태에서 각도를 더욱더 굽혀서 완전히 옆으로 빠져나갔다. 흑인, 그중에서도 아주 드물게 보여줄 만한 유연성. 노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 자세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은 곧 측면을 자유롭게 내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나 다를까, 천후는 그대로 상체를 일으키며 스트레이트, 아니 그에 가까운 스윙펀치를 내질러왔다.
"흠!"
노인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천후의 허리춤으로 노인의 옆차기가 날아들었다. 이미 검격권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고서 근접전에 들어온 것이다.
"칫."
천후는 주먹의 궤적을 달리하면서 몸을 비틀어 그것을 피해내고는 혀를 찼다. 판단이 빠르다. 이 영감. 실전에 익숙하다. 검으로 벤다는 것 자체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동안 노인은 다시 거리를 벌리고 검을 찔러 들어왔다.
핏. 피핏. 천후의 가동 범위에 노인이 점점 익숙해져 가면서 검이 천후의 피부를 조금씩 스치기 시작했다. 역시 리치 차이가 너무 크다. 자신은 사전동작을 보고 피하고, 저쪽은 멀찍이서 보고 찌르니 반응속도 차이가 난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 유리한 고지를 계속 내주고 있으면 안 된다. 판단을 마친 천후는 몸을 좀 더 흔들었다. 하지만 노인은 당황하지 않고 그에 맞춰 속도를 올렸다. 빨라진 만큼 단조로워졌다. 이것에는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음!"
지금까지 활로를 찾지 못하던 남자의 몸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노인은 자신이 당했단 걸 깨달았다. 일부러 단순하게 바꿔서, 자신의 움직임을 유도해 들어왔다. 노인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방도는 두 가지. 뒤로 거리를 벌리며 떼어내던가, 아니면 들어오는 몸을 칼로 아예 막던가. 판단은 순식간이었다. 전자. 무리다. 이자의 발 속도는 뒷걸음질로 땔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내준 거리는 큰 움직임이 없는 한 유지된다. 그렇다면.
곡도가 몸 앞을 가리며 천후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차단한다. 천후 역시 그것을 보았다.
'힘들군.'
여기까지 들어와서 방도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 영감보다 자신의 활동량이 배는 많은 상황. 스테미너 여유는 별로 없다. 순간.
천후의 눈에 각오가 서렸다.
"하아아!"
"!"
화악! 천후의 몸이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었다. 노인은 반사적으로 그의 몸을 베어 올렸다. 피분수가 튀었다. 하지만 그 순간.
뻐걱!
노인의 다리가 꺾였다.
"컥!"
"끄아아아아!“
달려드는 동작은 페인트. 천후는 그 직후 몸을 크게 뒤로 젖히며 노인이 다리를 찼다. 왼발 하나로 버티며 스웨이와 로우킥을 동시에 성립시킨 것이다. 인간인가 의심 가는 균형감각.
하지만 그럼에도 천후 역시 우하단 복부부터 왼 어깨까지 단숨에 베였다.
천후는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노인의 명치를 발로 뻥 밀어 찼다. 그 순간 노인의 몸이 붕 뜨면서 바닥에 떨궈졌다.
"쿠헉!"
"시팔!"
노인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지만, 천후는 상관치 않고 다시 달려들어 양손을 발로 차 그의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조임쇠로 죄여놓은 것 같은 그것들은 몇 번이나 밟히고 차이고 나서야 굴러떨어졌다.
그것을 확인한 천후는 손으로 자신의 상처를 누르며, 노인의 가슴을 발로 밟았다.
"헉. 헉. 미친 노친네야.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손녀 삶을 쥐고 흔들어야 속이 시원해? 이제 저 여자한테 손댈 생각하지 마. 댁이 뭐래든 이제 저 여잔 그냥 여자야!"
"커헉. 헉. 크. 크크크큭…. 뭐 이런 놈이…. 천연 무골 하나를 어디서 잘도 주워왔군."
노인은 그 와중에도 천후를 올려보며 크게 웃었다. 그렇게 웃다가, 노인이 낫게 말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며늘아기들을 데려오겠다."
흐읍하고 뒤에서 강호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천후는 코웃음을 치며 외쳤다.
"웃기지 마. 절대 안 내줘. 당신은 부모 자격이 없어. 실제로 양육을 포기하고 있잖아. 국내 최고의 검사든 변호사든 불러서 저항해주지. 그게 끝났을 땐 애들이 어른이 되어있을걸."
"흥…. 젊은 놈이 허세 부리지 마라. 그럴 능력이 어디 있다고-"
"넘쳐! 내 연 소득이 지금 당장도 100억이다!"
"……."
그 외침에 노인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눈이 커지며 새삼스레 그를 다시 올려다봤다. 하지만 천후는 그 차이점을 구분해내지 못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저 여자한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이들에게도! 앞으로는 아무것도! 그걸 말하려고 온 거였어. 그러니까 당신은 이 시골구석에서 죽을 때까지 왕 노릇이나 하고 있으라고! 잘 있어요, 영감님! 장례식 땐 찾아뵙지!"
노인의 가슴에서 발을 뗀 천후는 홱 하고 몸을 돌려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요."
"자, 잠깐!"
"잠깐이고 뭐고가 어디 있어! 가자고!"
"아…!"
강호는 상체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천후와 쓰러진 노인을 번갈아 보다가, 노인에게서 힘겹게 눈을 돌리며 천후와 함께 대문 밖을 나섰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식솔들은 그의 상처를 보고 대경실색하더니, 몇몇은 마당으로 뛰어들어가고 몇몇은 천후에게 다가와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천후는 그것이 제대로 마쳐지기도 전에 강호를 데리고 아예 그곳을 떠버렸다.
그때까지, 강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천후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얌전히. 얌전히….
손이 잡힌 채로. 그것을 놓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
"갔느냐?"
"네. 주인어른."
방금 나간 손님의 상태만큼이나 노인의 상태도 심각했다. 다리가 상하고, 내장도 손상되었을 것 같았다. 정 씨의 눈에 노기가 깃들었다.
"쫒을까요?"
아무리 아가씨의 정인이라지만 이렇게 굴다니. 하지만 그 말에 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크. 크흐하하하하. 쿨럭쿨럭. 멍청한 놈. 아서라. 내가 당한 걸 보면 모르겠느냐? 식솔 전부 달려들어도 안 된다."
"……."
노인의 말에 정 씨는 고개를 숙였다. 맞는 말이다. 노인은 나이를 먹었지만, 이 무가의 제일 고수였다. 그래도 수로 밀어붙이면 어찌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었지만.
"그리고 강호 그것이 같이 나서면 어쩔 게냐?"
"……."
정 씨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것을 보고 노인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주, 주인어른. 벌써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클클. 시끄럽다. 길 저기까진 나가야 병원에 갈 게 아니냐? 누워있는다고 차가 들어오는 곳도 아니고 말이다."
그 말에 식솔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들것을 마련하러 달려갔다. 그동안, 노인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것이 아니라 강호에게 가슴을 베라며 주었던 검을 정 씨를 시켜 가져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검날 너머로 광소가 내비쳤다.
"강호에게 벨 것이 생겼군."
그렇다면.
다음 경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며 노인은 들것에 누웠다.
*
읍내병원에서 간단히 치료를 받은 천후는 서울로 돌아와 제대로 수십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마법으로 치료하려고 했는데 잘 먹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 영감도 현세에 손에 꼽히는 검사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아주 안 먹히는 건 아니어서 치료기간 자체는 많이 줄어들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무슨 무모한 짓을 하는 거냐! 페인트가 안 통했으면 죽었다! 지금도 조금만 더 깊었으면 내장이 흘러나왔을 게다!"
"어쩔 수 없었잖아요, 거기선. 영감님이 너무 강한 걸 어째."
돌아오는 길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강호가 화를 냈지만, 천후는 간단히 한 귀로 흘렸다. 틀린 말은 아닌데 결과론이다.
'거기서 그렇게 안 했으면 죽었을 거 같은데.'
머리털 나고 사람상대로 이렇게 빡세게 싸운 적도 처음이라 천후는 나름 경험이 되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강호선배는 그 영감보다 더 심하단 건데.'
근질근질. 그걸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다. 아. 맨몸은 너무 불리해. 뭔가 하나 방책을 짜긴 짜야지. 천후는 옆에서 들려오는 강호의 잔소리를 BGM 삼아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어? 선배 오늘은 한복 안 입어요?"
"응? 아아…."
천후의 자택.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모여있는 와중에 천후는 강호가 웬일로 사복을 입고 있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 물음에 강호는 풀어놓은 머리를 살짝 꼬며 답했다.
"응. 생각해보니 덥기도 하고…. 그 옷은 단련할 때나 싸울 때만 입어도 될 것 같아서."
"그래요? 보기 좋네요."
지나가듯이 하는 말에 강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등 돌리고 있느라 그것을 보지 못한 천후는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응? 어디 가는 게냐?"
"네. 면허도 나왔으니까 차 좀 보고 오려고요."
강호의 본가에 다녀오고, 상처치료로 쉬는 동안 면허가 나왔다. 천후는 희주로부터 절대 안정 권고를 받았지만, 이것만은 참을 수 없어 오늘 하루는 떼를 써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옆을 심심해하던 아이들 둘이 따랐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오너라."
"좋은 차 골라올게요!”
“스포츠카!”
"예아! 스포츠카!"
고 사이에 아이들에게 나쁜 물을 들여놓은 천후는 신 나게 연호하며 문밖을 나섰다. 강호는 그걸 보고서 살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강호 씨."
나지막이. 낮은 음성이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희, 희주 씨!"
강호는 그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와 얼굴을 귓가에 붙이고 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호의 오감은 극도로 예민한 편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에 전혀 걸리지 않고 다가왔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무서운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강호 씨는…. 남자분이셨을 텐데…."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와 함께, 희주의 긴 손가락이 그녀의 목덜미를 감쌌다. 희주 특유의 차가운 체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오슬오슬 소름이 돋아났다.
"오늘은…. 이상한 옷을 입으셨군요."
"아…."
덜덜덜. 강호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렸다. 희주의 손가락은 그새 내려와 그녀의 어깨와 쇄골의 파여 들어간 곳들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쫑긋. 자기도 모르게, 몸 감각 곳곳이 치솟아 오른다.
"어찌 된 일이신지…."
"그, 그게…."
강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울먹임으로 변해갔다. 이미 다 들켰다. 분명 그러리라. 그리고 숨겨서도 안 된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강호는 천천히 말했다.
"조, 조금씩 여자가 되어가기로 했다."
"……."
희주에게서 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천천히 움직여, 어깨선을 타고 내려와 날개뼈로, 갈비뼈로, 그리고는 얼마 전 스스로 잘라낼 뻔했던 것으로 옮겨갔다.
조심스레 그것이 그러쥐어 진다.
"주인님께서…안아주셨나요?"
화들짝! 한순간 몸을 튕긴 강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기색에 희주는 가만히 그대로 있다가, 뱀이 기어 내려가듯 손을 내렸다.
그녀와 검격을 나눴을 때, 그녀의 근력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왤까? 지금은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었다. 몸이 떨리고 두렵다. 그래서…소중한 곳까지 쉽게 점하게 놔둬 버리고 말았다. 차가운 다섯 마리 실뱀이 파고들어 안쪽을 헤집다 멈췄다.
귓가에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다.
"거짓말은 아니었군요."
"으….“
“아직…. 완전한 여자가 되지 못하신 걸 보니….”
스륵. 다른 한 손으론, 그 위의 배를 아주 살짝 꾹 눌렀다. 자기도 모르게 허벅지가 떨려오자 강호는 당황해서 희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그대로 못 박혔다.
백옥 위. 흑진주와 같은 눈동자가 보인다. 자신이 남자였으면 반드시 고백했으리라 생각한 여자.
…그 여자가 요사스럽다.
악마 되어. 속삭여온다.
"진짜 여자가 된단 건… 기분 좋답니다."
"……."
"여자의 행복을 느끼고 싶지 않으신지요?"
"아…."
"느낄 수 있답니다. 당신의 비어있는 이곳에…주인님이 주시는 걸 전부 받아들이면…."
꾸욱….
눌러오는 곳에서 신호가 온다. 년 단위로나 찾아오던 감각이 단숨에 치고 올라왔다. 이래 본적이 없는데. 강호는 당황했다. 몸이 뜨겁다.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강호의 고개가 숙여졌다.
희주의 입가가 구부러졌다.
손을 거둬, 강호의 몸을 뒤에서 안았다.
"저흰….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군요."
둘만 있는 거실에서 울린 그 소리에.
강호는 단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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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렁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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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오타 추가 수정. 으으으. 맞춤법 검사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