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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하렘-69화 (69/324)

69화

“말은 골라가면서 하지. 불쾌하군.”

테이블을 내려찍으며 몸을 일으킨 로마이어가 눈을 부라리며 얼굴을 밀착해왔다. 하지만 천후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웃었다.

‘침착하자….’

조금 놀라긴 했다. 자기보다 한참 연장자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본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젠 내가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의 대변자다.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 쉽게 밀려서도 안 된다.

궁리해야 해. 안 그럼 나를 믿는 사람들이 뭐가 되냐고?

천후는 회사를 양도받기로 한 그 날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았다. 사유물이란 걸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었던 그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들에 대해서 초탈한 면을 보일 수 있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지 않은가?

나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쓸려나가면 그들도 같이 쓸려나가는 거야. 그러니까…절대 쉽게 질 순 없다. 아니. 질 순 없다가 아니지.

이긴다.

그것은 그의 힘이, 페르소나가 되어 그에게 작용했다. 천후는 마음속으론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겉으로는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을 한 것 같진 않은데.”

논리는 나에게 있다. 이것은 업게 일리미네이터 전원이 저변에 깔고 있는 생각이다. 질 리가 없다. 천후는 계속 밀고 나갔다.

“그만큼의 힘이 있다면 제발 좀 걸맞게 써보시죠. 당신들이 그렇게 여유 있게 노니까 저희가 2주 동안 파급을 네 마리나 잡고 있는 거 아닙니까? 좀 쉬고 싶네요, 저희도. 네? 서브 퀘스트만 쓸어 먹지 마시고.”

이죽거리며 빈정대는 천후를 보고 로마이어의 주먹이 파들파들 떨렸다. 그 모습을 차마 지켜보지 못한 박찬휘는 손이 아작 났는데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천후에게 다가왔다.

그에게 있어 로마이어는 입사 시절부터, 아니 이면계약서를 작성하던 그 시점부터 B랭크 일리미네이터가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 가이드라인을 보여준 존경스러운 형이었다. 그런데 그런 형을 욕보이다니?

“뭐 이 새끼야? 말 다했냐? 뒈지고 싶어? 뒤에 여자들 끌고 다니니까 뵈는 게 없냐?”

천후는 바로 앞에 선 그를 올려보고 입에서 미소를 지웠다. 겉으로 내고 있는 얼굴, 안쪽에서 침착하자를 연발하던 자신 둘 다 의견 합치를 본다.

‘조져버릴까?’

생각해보니 초면부터 반말을 찍찍 갈기는 데다가 욕지거리를 섞는 게 굉장히 기분 나쁘다. 분명 본때를 보여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을 텐데….

자기 주제도 모르는 놈이.

눈매를 싸늘하게 굳힌 천후가 몸을 일으키려 들었다. 그것을 본 로마이어의 안색이 굳었다. 찬휘를 보자, 그는 호승심 가득한 얼굴로 일어나는 걸 기다리고 있다.

‘미친 자식…!’

상황 파악을 대체 어디까지 못하는 거지? 대가리가 없나? 식은땀을 흘린 로마이어는 거칠게 그를 뒤로 밀쳐내며 외쳤다.

“너는 입 닥치고 있어! 언제부터 네가 내 말에 끼어들 수 있게 됐지?”

“!”

로마이어는 최대한 분노를 가장하며 그가 이 자리에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으려 애썼다. 대화로 하던 것이 육박전으로 바뀌면 승산이 없다. 단순히 주먹다짐의 승패 이전에, 이런 식으로 싸움이 걸렸다는 것 자체가 페널티다.

로마이어가 천후에게 취한 건 어디까지나 ‘너는 우리를 모욕했고, 수정해주길 바란다.’라는 조금 거칠지만, 대화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찬휘의 행동은 명백하게 거기서 이탈하고 있었다.

“…….”

하지만 찬휘는 순수하게 로마이어가 자신에게 분노를 표현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황망한 눈으로 그를 올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다시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 저 병신 진짜.’

왜 실망하는데? 왜 겨우 이 맥락을 못 읽지? 로마이어는 그의 그런 태도에 속으로 아연실색했다. 덕분에 겉으로도 땀을 흘리며 당황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에 비해 천후의 안색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로마이어는 오늘 이 자리는 텄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상적인 핑퐁이 진행되었다면, 그래서 좀 더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면 완전한 설득은 몰라도 명시적인 한계점은 그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완전히 글렀다. 찬휘 뿐 아니라, 자신의 멘탈 역시 너덜너덜해진 게 이 상황에서 다시 재개했다가는 오히려 이쪽이 밀릴 판이다.

“…일단 우리 막내가 설친 건 내 쪽에서 사과하지.”

“아닙니다. 젊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죠.”

젊은 사람이라니. 동갑인 주제에. 로마이어는 그의 여유 있는 태도를 보면서 속으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천천히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하지만…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실망이 크군. 우린 어디까지나 일리미네이터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고서 이야기하고 있단 걸 명심해주길 바라네. 되도록 지금 방침은 철회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시겠죠.”

코웃음으로 답한 천후는 고개를 옆으로 까닥였다. 그 모습을 보며 로마이어는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미리 경고해뒀네.”

“…….”

그 말에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 그를 마주 본 천후는 이미 완전히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원샷하고는 테이블에 탕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여기까지 해두죠. 저는 이 이상 로마이어 씨와 나눌 말이 없네요.”

“이번만은 의견이 일치하는군.”

불쾌한 목소리로 답한 로마이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말이 그렇게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종료되자 카페 내에 감돌던 긴장감은 어느 정도 풀렸다. 뒤쪽에서 정말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있던 이브와 에바가 속닥거리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였다.

“…….”

약간 느슨해진 그 분위기에 섞여, 로마이어는 천후에게 두고 있던 시선을 그 뒤로 옮겼다. 금발에 정장을 빼입은 여성이 보인다. 그녀를 보자 그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돌아왔다.

“셀레나.”

“…….”

천후가 앉은 자리를 지나쳐 발걸음을 옮긴 로마이어는 그녀의 앞에 섰다.

“오랜만이구나. 일 년 넘게 지났나? 왜 연락을 받지 않니?”

“아…. 로마이어 오빠. 그게.”

셀레나는 그가 친밀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자 입을 어물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인지라 말 걸어오는 걸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로마이어는 좀 더 깊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칼에 손을 가져갔다.

“그 사이에 더 아름다워졌구나. 이제는 성년인가? 어때? 전에 이야기한 건 생각해 봤니?”

“아니…. 오빠, 그건 전에도 말했지만….”

머리칼에 있던 손이 점점 내려가 그녀의 볼가에 닿는다. 로마이어의 허리가 숙어지기 시작했다. 셀레나의 눈에 거부와 공포가 서렸다. 몸을 뒤로 빼려 해보지만, 반대쪽 어깨를 잡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

탁! 어느새 자리를 박차고 나온 천후가 눈을 부릅뜨고 로마이어를 밀쳐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이야기를 다 끝내고 안면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중에 방해를, 그것도 손을 내치며 방해하다니? 로마이어의 얼굴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짜 불쾌감이 서렸다.

하지만 그것이 천후만 할까?

“당신이야말로. 남의 여자에게 무슨 짓이지?”

지금까지 아무리 비아냥대더라도 꼬박꼬박 유지하던 존댓말까지 완전히 내던져버린 천후는 눈썹을 치켜뜨고선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손이 머리칼에 닿은 시점에서 이미 퓨즈가 끊어질 것 같은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대체 뭘 하려 했지? 이 빌어먹을 놈팡이 새끼가?

영천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저흰 먼저 나가겠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한 희주는 강호와 아이들을 이끌고 카페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한편, 있을 수 없는 말을 들은 로마이어의 눈이 커졌다.

“…방금 뭐라고 했지?”

“남의 여자한테 무슨 짓이냐고.”

단번에 다시 대답한 천후는 으르릉 목 울림소리를 냈다. 로마이어의 표정이 진정으로 일그러졌다. 휘청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 그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셀레나를 바라보았다.

“…셀레나?”

“…….”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봤지만, 그녀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만 돌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은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려 들었다.

그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천후는 입을 열었다.

“셀레나. 이리 와.”

“…응.”

나지막이 대답한 셀레나는 그에게 다가와 어깨에 몸을 기댔다. 로마이어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하지만 천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셀레나와 입을 겹쳤다.

“음…. 으으음….”

쭙. 쭈웁. 얇은 허리를 한쪽 팔로 으스러질 듯이 끌어안고서 혀를 섞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천후는 비는 손으로 그녀의 가슴 위에 올렸다. 그리고 양쪽 모두를 우악스럽게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음…. 으으으응….”

여인은 얼굴이 붉게 상기시키면서도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쪽에서 더더욱 애원하듯 몸을 붙여간다. 그러다….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격렬한 키스를 나누며, 한쪽 눈만을 로마이어에게 보인다.

희열에 굽은 눈.

“……!!!!”

빠드드득! 어금니가 부서지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소리가 로마이어의 입에서 들렸다. 두 주먹이 꾹 쥐어져서 부들부들 떨렸다. 천후는 그것을 보고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하아…. 하아….”

셀레나는 입을 때고서도 그의 목을 양팔로 끌어안으며 품에 안겼다. 천후는 손을 내려 그 둔부를 한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안 그래도 친란에게 들었지. 당신, 셀레나가 어릴 때부터 청혼했었다며? 포기해. 이 여자는 이제 내꺼야.”

“…….”

“알겠으면 당장 꺼져.”

천후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금 그녀와 입을 겹치기 시작했다. 셀레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치켜든다. 그 모습을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어, 로마이어는 등을 돌렸다.

“형!”

“…가자.”

침음성을 낸 로마이어는 찬휘의 외침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찬휘는 그 뒤를 허겁지겁 쫓았다.

그들이 떠난 이후에도 한참동안 물고 빨고 하던 둘은 눈치를 보다가, 리무진이 아예 떠나버리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떨어졌다.

셀레나의 얼굴에 환희가 맺혔다.

“야호! 드디어 떨어졌다! 빌어먹을 로리콘! 페도필리아! 이상색욕자! 죽어, 변태!”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그녀가 눈을 아래로 째면서 창밖을 향해 베 하고 혀를 내밀며 좋아하는 걸 보며 천후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 그래도 기분은 좋네.

*

카페에서 나온 지 한참이 지나서도 찬휘는 그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본 어떤 때보다 로마이어의 기분이 나빠 보인다는 것은 아무리 그라도 알 수 있었다.

아까 한 소리 들은 것 때문에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형은 형이다. 앞으로도 빨아먹을 게 많은 분이다. 게다가…엔체스터 콜로니 CEO의 친오빠가 아닌가? 잘만 하면….

“…씨발 년.”

“네?”

흠칫. 리무진 안에서 울린 한 마디 음성에 찬휘는 자기도 모르게 뜨끔해서 어깨를 움찔했다. 하지만 목소리를 낸 로마이어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는지 혼자서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씨발 년. 그래. 그렇게 아무 비렁뱅이한테 다리 벌릴 줄 알았다. 지 애미도 그런 식으로 가문을 박차고 나왔으니까 모전여전이겠지. 개 썅년. 나도 네년 혈통과 머리카락만 아니었으면 볼일은 없었어. 그래도 애새끼 하나만 어떻게든 낳게 하고 버리려고 했더니 나한테 이렇게 굴어?”

“…형?”

이게 무슨 소리지? 찬휘는 몸을 떨었다. 평소 그가 보이던 말투가 아니었다. 찬휘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로마이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차 돌려. 강남으로.”

그의 말에 따라 리무진의 방향을 선회한다. 그동안 로마이어는 무표정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만지작댔다.

30분 후. 강남 거리에 도착한 리무진은 강남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줄 만한 호텔 주차장에 멈춰 섰다.

“내려.”

“네?”

“내리라고.”

거친 말투에 당황하면서도 찬휘는 순순히 내렸다. 리무진에서 내리자…차 옆에는 백인 금발 미녀들이 2열 횡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찬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그러든 말든, 로마이어는 그들을 대충 훑어보더니 그중 다섯을 골라 자기 쪽으로 데려왔다. 그리고는 찬휘를 보며 턱짓했다.

“골라. 남는 애 중에서.”

“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세 명까지 골라. 내가 다섯이니까.”

찬휘의 입이 귀에 걸렸다. 조금 전에 까인 건 이미 머릿속에서 휘발되었다. 찬휘가 여자를 다 고르자, 로마이어는 그의 배를 뻥 차서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병원 갔다 와서 여기로 다시 와. 내 이름 대면 방 줄 거니까.”

“네, 형! 기사 아저씨! 빨리! 씨발, 빨리요!”

그가 콧김을 뿜으며 흥분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로마이어는 여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옆에서 몸을 부벼 오는 여자의 몸을 익숙하게 주물러대면서, 그는 낮은 목소리를 냈다.

“이래서 돈으로 안 되는 년들은 좆같다고….”

그년이나…. 동생 년이나…. 이를 간 로마이어는 스위트룸으로 들어가자마자 꺄르르 웃으며 안겨오는 여자들을 품었다.

============================ 작품 후기 ============================

저 분 꼬붕 잘 챙겨주시는 분...

코멘트, 선작, 쿠폰, 추천 모두 감사드립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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