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한참동안 복합적인 감정을 표출해낸 천후는 결국 2층 욕실로 올라가 홀로 목욕을 마쳤다. 다시금 방금 전의 그 에로 공간에 들어갔다간…여러 가지로 버틸 자신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희주는 2층 욕실 안까지 쫒아 들어오지는 않았다. 대신에 욕실 밖에 천후가 갈아입을 수 있도록 흰색 가운이 놓여있었다.
“편하네….”
적당히 넉넉한 게 편하다. 평소에 그다지 잠옷을 따로 두고 살아본 적은 없어서 어색한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이거라면 입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에 맞으신가요?”
가운을 입고 1층으로 내려오자 계단 근처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희주가 물어왔다. 그 목소리에는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당황도 뭣도 느껴지지 않아서,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어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네. 아주 편해요.”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안심했다는 듯, 가슴께에 양손을 올리며 살짝 안도의 숨을 쉬는 모습에 천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설마 이거 희주씨가 준비해주신 건가요?”
“네. 천후님이 집에서 사용하실 개인 물품은 다 제가 구입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녀 역시 비슷한 가운을 입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같은 메이커 제품을 함께 구입한 모양이었지만….
“저랑 만나보기 전에 산 거 같은데, 사이즈는 어떻게 알고….”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증명사진을 받았었으니까요.”
그것만으로? 모습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얼굴 사진과 키, 체중 정보만으로 체형을 완전히 유추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일텐데 그걸 이렇게 태연하게 말하다니?
“그리고…주무시는 방의 침대나 가구들도 제 선에서 골라서 가져온 것입니다.”
“아, 그, 그래요?”
그런데 대체 왜 혼자 사는 방에 트리플 베드를 가져다 놓은 건지에 대한 의문이 안들 수가 없었지만, 왠지 답변으로 무서운 말이 나올까봐 천후는 꾸욱 하고 궁금증을 삼켰다.
아무래도 그녀와는 야심한 밤에 나누는 대화는 줄이는 게 좋다고 생각한 그는 거실을 지나서 방으로 향했다.
“그럼 전 먼저 자러 들어갈게요.”
“네.”
방문 앞에서 취침 인사를 나눈 천후는 내심 어쨌든 이걸로 오늘의 위기는 넘겼다고 생각하곤 가벼운 마음으로 침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으아아아! 끝났다! 힘들어!”
출렁. 거의 파묻히는 것 같은 푹신푹신한 감촉에 신이나 몇 번이나 몸을 꿈틀 거리며 튕겨본 천후는 후우 하고 큰 한숨을 내쉬면서 정자세로 누우며 양손을 위로 쭉 뻗었다. 그러자….
다시금 출렁, 하고. 이번엔 침대가 아닌 다른 부드러운 것이 양손 가득히 잡혔다.
“…….”
음. 이게 뭘까. 방 안의 불은 꺼놨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은색 띄는 달빛 통해 사물들은 분간이 갔다.
손에 닿은 부드러운 것은 마치 밀가루를 발라놓은 것처럼 희었다. 그러면서도 더듬을 때마다 형태를 달리하면서 달라 붙어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옆쪽에 다른 흰 것으로 모습을 반쯤 가리고 있었는데, 천후는 그것이 걸리적거려서 옆으로 치워버렸다. 그 순간, 그것의 숨겨져 있던 부분이 드러나며 주무르던 손에서 뛰쳐나와, 무심코 그것을 양손으로 떠받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마치 진상 온 진미마냥, 탐미하며 바라본 그것의 끝에는 분홍빛 정점이 맛봐달라고 외치듯 작게 떨리며 눈앞을 사로잡았다.
“아…이, 건.”
“음….”
당황해 입을 놀리는 와중에 얼굴 가까이 닿았던 분홍 끝이 입술에 스치자, 부드러운 것의 주인이 작은 목소리를 냈다. 그제서야 그것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한 천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희, 희주씨?!! 왜, 왜 제 방에!!!”
“…?”
천후의 위에서 양 어깨 사이에 팔을 두고서 내려다보고 있던 희주는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르륵 하고 움직임을 따라 흐르는 머리카락. 깜빡이는 눈동자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하지만 더욱 시선을 가지고 가 버리는 것은…걸치고 있던 흰 가운이 허리춤까지 흘러내려와 무방비로 노출되어버린 상체.
옷을 입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볼륨의 큰 젖가슴이 그의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도 떼지 않고 아래쪽을 받치고 있는 손길을 즐기고 있는 듯이, 입가에 닿는 감각이 즐겁다는 듯 미세하게 경련하며 그 다음을 유혹해왔다.
그것에 까무러칠 것 같아 눈을 꽉 감은 천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언제 들어온 거예요!”
“처음부터 함께 들어왔습니다만.”
“윽?!”
그걸 못 느꼈다고? 하긴 그녀의 인기척은 조금 느끼기 힘든 면이 있긴 했고, 방금 전까지 다 끝났다고 긴장을 풀고 있었으니….
“그리고 이 방은…저와 천후님이 함께 사용하는 방입니다.”
“네?!”
아. 설마 그걸 위한 트리플 베드였나?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 된 천후는 아연실색했다.
“그, 그럼 지금 이건 뭘 하는 건데요?”
“…밤 시중을, 들고자 합니다.”
말과 함께 기울이고 있던 상체를 일으키자, 사르륵 하며 허리에나 걸쳐져있던 가운이 완전히 떨어져 내리며 유려한 몸이 완전히 드러났다.
긴 장발이 그 몸을 타고, 곡선이란 곡선마다 흐르며 융기와 침강을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천후는 그것을 무심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달빛 받아 드러난 나체를 보고 생각한 첫 생각. 이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부수고 싶지 않다는 열망.
그리고 두 번째는…그것을 내손으로 짓이겨서…이 여성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가 찢어버리고 싶다는 욕망.
그것을 읽어낸 것일까? 희주는 조심히 아직도 자신의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의 양손 중 오른손을 조심스레 양손으로 쥐어, 손을 더 위쪽으로 향하게 하고는 감미로이 속삭였다.
“그것을 바라셔서…벗긴 것이 아닌지요?”
“그건….”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그녀가 있는지도 몰랐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이미 그녀는 그런 뜻으로 알아들어버렸다.
천후 자신도 더 이상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아서…손 크기에 딱 맞는, 오직 그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만 같은 이것을 더 이상 놓을 생각이 없어져버렸다.
기분 탓일까? 천후는 그녀가 지금 어째선지 조금 즐거워하는 듯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살짝 구부러진 입매, 가느다랗지만 날카롭진 않은 눈가가 그렇게 말해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서서히 이성이 둔해져 자신의 양 가슴을 마구 탐닉해오는 손놀림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꿇어앉은 양 무릎을 움직여 좀 더 허리를 위쪽으로 붙였다 그러다가….
툭하고, 이미 단단하게 솟아오른 것의 끄트머리가 자신의 배꼽에 닿자 그것에 시선을 줬다가, 눈을 크게 떴다 되돌아오고선 속삭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쿡. 쿠욱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날뛰는 괴물이 느껴졌지만, 천후는 억누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녀가 천천히 허리를 들어 올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배꼽을 두드리던 괴물이 주둥아리가 점점 내려오며, 이번엔 검은 숲을 지나 양 허벅지 사이에 위치했다.
그 동안 백색 살결 위로 주둥아리를 딱 붙이고 질질 내려온 괴물은 한줄기의 투명하고도 끈적한 침으로 된 길을 만들어 내놨다.
콕 하고 서로가 만나야할 지점에 이르자, 한참 빨라지던 둘의 숨소리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희주는 한손을 내려 받아들일 것이 들어오기 수월하도록 문을 열고서, 대기줄에 서있던 손님의 첫걸음을 맞이하려했다.
마트의 대형 할인에 흥분한 손님은 개장 소리를 듣자 지체하지 않고 파고들려했다.
그 순간.
뚜루루루루루.
“!”
흠칫하고 상체를 튕긴 천후는 벌떡 몸을 일으켜선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런 그를 희주는 애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 전화 좀 받고 올게요.”
“…….”
“정말이야. 정말이니까….”
“네….”
천후는 눈을 내리깔며 대답하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 씌워줘 보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더욱 고개를 떨궜다.
무언가를 예감한 듯, 배에서부터 내려온 무색투명한 끈적한 액체를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가며 훑어나갔다.
그 모습을 어찌할 바를 몰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던 천후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전화기가 있는 거실 쪽으로 달려갔다.
*
“여보세요?”
“아. 천후 맞나요? 나갔다고 들었는데 잘 지내고 있어요?”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수화기를 집어든 영천후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서 반색했다.
“아. 인규형.”
“네. 저예요. 어떻게. 잘 됐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홍희주를 자신에게 보낸 장본인인 고인규였다. 그는 천후보다 한참 연상임에도 항상 존댓말을 써왔다.
“아뇨…. 오늘 면접은 떨어졌어요.”
“음? 떨어져요? 그럴 수가 있나? 무슨 일이 있었어요?”
놀란 음색에 천후는 오늘 면접장에서 있었던 일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에 인규는 수화기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격해진 목소리로 화를 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네요. 그 건은 제 쪽에서 알아볼게요. 천후가 다시 올라오기는 힘들 테니까. 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형, 진정하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이런 걸로 괜찮다는 소리 하는 거 아닙니다.”
“윽. 네.”
온화하면서도 확실하게 자르고 들어오자 천후는 움찔 해서는 수긍했다. 이제 막 유그드라실에서 내려와 세상물정 몰라서 이렇게 당했지만, 저것이 정상적인 사회인의 태도이리라.
과연 여러 해 동안 의지해왔던 형답다고 해야 할까?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에 살짝 미소를 지었던 천후는 곧 자신에게도 그에게 용건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 형. 그러고 보니까 오늘 홍희주 씨라는 분이 오셨는데요. 제 서포터라고…. 형이 보냈다면서요.”
“아∼.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안 그래도 천후 취향일 것 같다 싶어서 보낸 건데.”
“취향이라니….”
서포터가 외모 취향으로 고를만한 문제인가? 하지만 인규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니. 의외로 중요해요, 그 부분. 보통 몇 년 단위로, 길면 거의 평생 손발을 맞추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서포터랑 결혼하는 일리미네이터들도 굉장히 많은데 그걸 사소하게 받아들이면 안되죠.”
“그래요? 뭐…. 취향이긴 취향인데…. 아니 그게 아니라. 희주씨가 좀…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이상해요?”
천후는 희주의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너무 순종적이라거나 맹목적이라거나, 씻는데 들어온다거나, 자는데 들어온다거나….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야기 했지만, 고인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아. 사실은 그 부분 때문에 천후에게 붙여준 거예요. 그 아이도 제 환자 중 한 명이라.”
“환자요?”
“네.”
고인규는 정신과 의사. 그의 환자라면 정신병력을 가지고 있단 소리인데….
“자세한 병력까진 이야기할 수 없지만,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미약한 의존증이 좀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런데 희주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조금 달라서 꾸준히 사람이 옆에 있어야 호전되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데리고 있을 순 없는 문제라 천후 쪽으로 보낸 거예요. 마침 서포터도 필요할 것 같았고.”
“아니…. 그야 필요는 하겠지만 무슨 치료가 그래요? 희주씬 정말 진심으로 저를 주인님이라고 부른다고요. 솔직히 좀 부담스러운데….”
“흐음…. 그래서 싫어요?”
“…….”
인규의 목소리 톤이 살짝 변했다는 것을 느낀 천후의 머리칼이 쭈뼛거렸다. 지금까지 온화한 말투를 하고 있었지만 이 사람도 조금 성격이 이상해서, 수틀리면 무서운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달칵 하고 전화기를 다른 쪽으로 옮기는 소리가 낫다 싶은 직후, 인규는 살벌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싫으면 별 수 없죠. 희주는 제가 데려갈 테니까 대신 그 집, 천후의 재산으로 변제하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