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하렘-4화 (4/324)

4화

<압박면접>

석별을 나누고서 조금 시간을 들여 감정을 진정시키고 업무위치를 한 이미연은 한참동안 업무를 보다가 역시 조금 걱정되어서 천후의 이력서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원래 이런 개인정보 유출은 금지되어있었지만, 거의 천후의 친누나나 다름없는 그녀였기 때문에 바득바득 우겨서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이력서를 본 미연은 단숨에 표정이 굳었다.

“이건….”

한참동안 이력서를 꼼꼼히 둘러보고 있던 그녀는 몰려오는 두통에 이마를 꾸욱 눌렀다가, 안경을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천후가…괜찮을지 모르겠네.”

전산상의 오류인걸까? 아니면 의도적인 것일까?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이대로라면….

‘오늘내로 다시 돌아와도 하나도 안 이상하겠는데.’

미연은 천후의 가장 큰 무기여야 할 경력사항이 텅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천후가 오늘 보려고 했던 면접은 ‘일리미네이터’를 선발하는 면접이었다.

일리미네이터. 그것은 디제스터와 싸우는 것을 업으로 삼은 마법사를 말한다. 전투 마법사라고나 할까?

마법사면 다 마법사지 일리미네이터란 게 왜 따로 생기느냐고 생각할 이들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야기다.

대체 마법 좀 쓸 수 있다고 해서 무조건 목숨 걸고 싸우고 싶어 할 리가 없잖아?

오히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데, 일리미네이터 일을 하면 자신의 신분이 공개되어버리고 만다.

입에서 불 뿜는 괴물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마법사인 게 들통 나는 삶 같은 걸 바라는 마법사는 당연히 적은 것이다.

마법사의 수는 전 인류의 만분의 일. 대한민국에 한정하자면 4500명쯤. 여기서 마법기관 유그드라실이 파악하고 있는 마법사의 수가 반 정도인 2000여명.

그리고 일리미네이터는 여기서 또 1/10이하로 깎아서 130명가량.

인류의 존망을 어깨에 지고 있는 소수 정예 중의 정예. 그것이 전투마법사, 일리미네이터였다.

이런 일리미네이터가 되는 방법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유그드라실에서 직접 활동하는 방법.

둘째. 사업자 등록을 하고서 법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직원 수를 고용해서 활동하는 방법.

셋째. 디제스터 퇴치 전문 기업에 들어가서 직원이 되는 방법.

현재 이 면접장은 세 번째 방법을 위한 곳으로, 1년에 1/4분기 당 한 번씩 유그드라실에 일리미네이터 지원을 한 지망자과 각 기업의 여러 인사담당자들과 한꺼번에 집단 면접을 거쳐서 입사하는 방식이다.

즉 말이 면접이지, 사실상 경매다. 일리미네이터는 더 많은 연봉을 약속하는 곳으로 가면 되는 식이다.

이렇게 구직자 쪽에 유리하게 설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귀했기 때문이다. 말이 1/4분기지, 일리미네이터 지망자는 1년에 10명만 나와도 많다고 할 정도니.

천후가 일리미네이터를 선발하는 날에 딱 맞춰서 유그드라실을 나온 것도 이러한 희소성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리미네이터는 늘 모자라다. 없어서 문제다. 지원자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모셔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후는 당일 취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서 조금은 여유있는 태도까지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같이 취업경쟁이 심각한 시대에서 이만한 일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천후는 유그드라실에서 간간히 일을 해왔었다. 즉, 경력자인 것이다. 경력 있는 일리미네이터 지원자라니. 년에 하나 나오면 기적이라고 할 정도라 못 데려가서 안달일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면접장에선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

“어…. 영천후씨? 일리미네이터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이 있는 건 알고 계시죠?”

“아, 네에.”

일리미네이터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이란 간단하다.

마법사이며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숙련된 마법사용이 가능 할 것.

“천후 씨가 자격을 갖추지 못한 건 아닌데…너무 최소조건만 딱 충족한 거 같은데요?”

기업에서 나온 인사담당자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자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웃음소리에 따라서 힘없이 웃은 천후는 뭐라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랭크 F라니…. 어떻게 저희들이 천후 씨를 믿고서 고용을 하겠어요?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란 말입니다. 목숨이.”

“…….”

처음엔 분위기가 괜찮았다. 특히 오늘은 지망자가 3명 ‘씩이나’ 되어서 분위기도 달아올라있었다. 비록 입찰 나온 기업이 15곳이 넘었지만, 이 정도 숫자면 양반이라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마력측정기를 통과했을 때 변해버렸다.

<<당신의 마력 랭크는 랭크 F. 랭크 F입니다.>>

“랭크 F? 마력 랭크에 F도 있었어?”

“최하가 D 아니야?”

영천후의 마력 랭크를 보고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아연해졌다.

마력랭크란 간단하게 마법사가 가진 마력의 양과 질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D~SA랭크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이중 SA클래스가 가장 강력하고, D가 일반적인 마법사의 표준랭크였는데 그 이하가 나오다니?

“엥?”

결과에 놀란 건 천후도 마찬가지여서 멍하니 F라고 떡하니 쓰여 있는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흠칫 놀랐다.

“자, 잠깐만요! 이럴 리가 없는데? 저기 죄송한데 다시 한 번만 측정하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재측정은 불가능합니다.”

“으….”

랭크 F라니. 누가 봐도 이상하다. 애초에 마력 랭킹표에 저런 랭크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아니 딱 한번. 이런 케이스가 있긴 했는데….

“저기…. 영천후 씨? 혹시 대참사 생존자인 그 영천후 씨 맞습니까?”

“아, 네…. 저 맞는데요.”

“역시!”

천후의 대답에 모두들 그럴 줄 알았다느니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들에 천후는 이것에도 대답하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모든 게 늦었단 걸 깨닫곤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마력 랭크 F.

랭크표에 존재하지도 않는 수치가 잡혔던 유일한 사례가 인류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다.

그것은 바로 뭄바이에서 일어났던 대참사의 생존자의 마력을 측정했을 때 잡혔던 수치였으며.

그 사실을 보도한 언론들은 앞 다투어 이러한 제목의 기사를 내곤 했었다.

<인류 최약의 마법사 출현>이라고.

“일리미네이터 일을 너무 우습게보시는 것 아닙니까?”

“몸 좋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요. 그런 것만 보자면 군인이나 격투기 선수를 뽑으면 되지요. 안 그래요?”

“…….”

천후는 명백하게 날이 서있는 말투로 던져오는 인사담당자들의 말들을 웃는 얼굴로 받아냈다. 열댓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번갈아가면서 말 폭탄을 던지는 게 하나하나가 아파서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면접 분위기가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대참사 생존자인 걸 밝혔을 때는 그들도 사람인지라 신기해하면서 관심을 표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으로서의 관점이고….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그것도 연봉협상이 동시에 진행되는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는 전혀 달랐다.

일단 같이 왔던 다른 두 마법사들은 순식간에 임자가 정해져서는 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마력랭크는 B와 C. 일리미네이터 평균 마력랭크가 C이니 그들은 충분히 합격선이었고, 억대 연봉이 보장되었다.

그러나 영천후 혼자 남았을 때는 달랐다.

방금 전까지 ‘얼마 주겠다’소리만 뻐꾸기처럼 날리던 양반들이 갑자기 돌아선 것이다. 그게 억울해서 여러 가지 항변도 해보았다.

“잠깐만요. 제 마력랭크가 F에서 멈춰있던 건 아니에요. 다시 한 번 측정해주시면….”

“유그드라실에서 보내온 이력서에도 마력랭크는 F라고 적혀있던데요.”

“네? 하…. 그럼 경력이라도 인정해주세요. 전 지금까지 총 18번 디제스터 퇴치를 했어요.”

“하하하하. 농담도 잘하시네요. 일단 이력서에도 그런 거 안 써있고요. 마력랭크가 F인데 어떻게 디제스터를 퇴치했단 거죠?”

“안 써있다고요? …죄송한데 제 이력서 좀 보여주시겠어요?”

“뭐야? 본인 이력서 내용도 몰라요? 이분 글러 먹으셨네. 그게 지금 취업하러 온 면접자 태돕니까?”

“…….”

그 뒤부턴 일방적이었다. 열댓 명이 일방적으로 신나게 말로 두들겨 팼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일리미네이터들과 연봉협상을 하면서 불만사항들이 쌓이고 쌓여왔던 게 자신에게 터진 모양이었다.

거기다 보내줄 생각도 없는지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이쯤 와선 말도 안 나와서 천후는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고 질문마다 웃음만 내비칠 뿐이었다.

열 받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가지 않을 정도로 살살 긁으며 그를 가지고 놀던 면접관들은 그 뒤로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반응이 재미없어졌는지 린치를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먼저 나가보란 말조차 하지 않고.

“후우…. 하하.”

돌아버리겠다. 면접에서 볼 수 있는 실례란 실례는 거의 다 본 기분에 천후는 그냥 헛웃음만 지었다. 어쩌다 이지경이 됐지?

“흐음…. 영천후 씨라고 했죠? 이제야 단 둘이 남았네요.”

그 때. 이제는 자신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한 면접실 한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길고 긴 면접관용 책상 저쪽 끝에서 정장차림의 여성이 다가왔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진 금발, 같은 금색의 눈꺼풀 아래로 청색 눈동자가 엿보인다. 그녀는 그의 앞자리까지 걸어와 의자에 앉고는 그 눈동자를 정면으로 맞췄다.

“많이 당황하셨겠네요. 이해하세요. 시대가 이러니까, 당신 태도가 성의 없어보였을 수도 있어요.”

“네에….”

대답은 했지만 이해는 하지 못하겠다. 지금 상황은 그의 손에서 상당히 많이 떠나있었다.

내려오기 직전 확인했던 이력서와 그들이 이야기한 이력서 내용이 한참 다른데, 그거가지고 일방적으로 매도를 당한 사람한테 무슨 수로 이해하란 건지.

“일단…. 이게 지금 유그드라실에서 내려온 당신 이력서예요.”

“아. 감사합니다. …….”

그녀가 건네주는 태블릿 컴퓨터를 받고서 내용을 살펴본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기본적인 인적사항들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부분만 추려서 보자면 이랬다.

[마력랭크 : F 경력 : 없음]

‘뭐야, 이게….’

이건 거의 자신이 어렸을 때 가지고 있었던 능력치를 기재해놓은 수준이었다. 10년간 해왔던 일리미네이터 활동도, 마력랭크 측정 시 자신의 특수성도 전혀 언급되어있지 않았다. 이러니 태도들이 저렇지.

천후는 순간적으로 태블릿 컴퓨터를 부술 듯이 손에 힘을 꽉 주다가 간신히 진정하고는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이렇게 되어있었군요.”

“…….”

그의 반응을 그저 빤히 바라본 그녀는 왼손으로 뺨을 받치고는 다리를 꼬았다. 커피색 스타킹을 신은 그녀의 다리가 교차하며 스윽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린 천후는 짧은 스커트 사이, 허벅지와 허벅지가 만들어낸 틈 깨에 눈을 가져가다가 흠칫하고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빙긋 웃고 있었다. 남자들의 이런 시선에 익숙한 듯했다.

그 모습에 천후는 잠깐 뜨끔했지만, 곧 이 자리가 면접 장소라는 것을 떠올리고서는 자기 변호를 시작했다.

“일단…이 이력서는 잘못됐습니다. 유그드라실 쪽에서 오류가 있었던 모양인데…. 제 마력 랭크는 F가 아닙니다. 최소 D이고, 한정적으로는 A까지 올라가요.”

“흐응….”

“그리고 저는 18건의 디제스터 퇴치 실적이 있습니다. 그것들 전부 단독이고요. 이 두 부분에 대해서는 당장이라도 유그드라실에 문의하셔도 좋아요. 이것들을 고려하셔서 연봉협상을 진행하시면….”

“영천후 씨.”

“네?”

한참 설명하고 있을 때 말을 끊은 금발의 면접관은 다시금 생긋 하고 웃더니, 의자를 좀 더 끌어당겨 앉았다.

그와 동시에 한국인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모핑이 상반신에서 일어나는 것을 필사적으로 의식에서 떼어놓은 천후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뭔가 착각을 하신 모양이네요.”

“네…?”

“저희 회사는 조금 영세해서요. 사장은 아버님이지만, 제가 인사담당자와 디제스터 퇴치 시 오퍼레이터, 재무회계까지 전부 담당하고 있어요.”

“네에….”

“오퍼레이터가 뭔진 아시죠? 디제스터 출현 시 현장통제를 하면서 원격으로 상황보고를 해주는 역할이예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도 마법사인지라 다른 회사 분들보단 좀 더 수월하게 하는 편이죠.”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잘 알 순 없었지만, 방금 전까지 마지막 남은 면접자에게 자기 어필을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던 것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그녀 역시 그를 고용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다보니 일리미네이터 분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를 종종, 아니 꽤 많이 봤어요. 저 뿐만 아니라 목숨이 걸린 일이다보니까…다들 인선엔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제 말 알아들으시죠?”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지.”

“…하.”

은근한 미소에서 차가운 비웃음으로 웃음의 속성을 바꾼 그녀의 눈빛에는 어느새 경멸이 담겨져 있었다.

“그럼 똑바로 말해드리죠. 마력랭크 최소 D? 한정적인 A? 마법사의 힘이란 건 태어나면서부터 고정이잖아요. 아니, 발전 가능성은 있지만 한시적으로 늘어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아요.”

“…….”

“그리고 경력이 있어? 그렇다면 이미 여기에 쓰여 있을 것 같네요. 저나 다른 면접관들이 보기에…당신은 지금 그냥 이력서 내용을 날조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유그드라실의 자료와 당신이 이 자리에서 하는 말 중 뭐가 더 신용을 받을 것 같나요?”

“…….”

“대참사 이후로 대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모르겠지만…. 허언증은 어서 고치시는 게 나을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면접관들이 당신에게 하지 않았던 말을 제가 마지막으로 남았으니까 해 드릴게요. 불쾌하네요. 이 자리에서 나가주세요.”

“하하….”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린 천후는 비틀 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연. 그렇게 보였었군. 이해했다. 하긴 애초에…확인까지 필요하단 거 자체가 이상하지? 그들이 보기엔 유그드라실에서 보낸 이력서가 절대고, 차후 연락해서 확인할 때는 ‘사람’이 엮여서 거짓말이 나올 수 있다고 받아들였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기분 나빠질 만도 하지. 자기도 모르게 납득한 천후는 고개를 주억주억 거리며 등을 돌렸다.

아마도 그녀는 이 이야기를 해주려고 굳이 마지막에 남았던 모양이었다.

이거 참 심성 고우신분 나셨네. 이 얼마나 친절한가? 앞으로의 당신 인생을 위해서 훈계한번 해봤어요∼. 아이고 고마우셔라. 이런 식으로 무한 긍정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웃음 헤픈 그로서도 그건 무리였다.

이 문을 나가면, 이제 정말 앞길 알 수 없는 사회가 기다린다 생각하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억울했다.

분명 나오기 전까지 꼼꼼하게 이력서를 확인했었는데, 그 내용이 이렇게 바뀌어있다니…. 이건 전산오류도 뭣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누가 바꿨다고 밖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 억울한 마음에, 천후는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서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제 말에 거짓말은 없었습니다.”

“이…!”

금발의 면접관은 그의 말에 화가 나서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태블릿 컴퓨터를 잡아서 던져버렸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설명해 줬는데도!

하지만 그 순간. 천후는 빙빙 돌며 날아오는 태블릿 컴퓨터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잡았다. 그리곤 그것을 그 자세 그대로 손목 힘만으로 다시 뒤로 던졌다.

던져진 태블릿 컴퓨터는 회전하며 날아가다가, 그녀 바로 앞 테이블 위에서 미끄러지며 그녀의 몸 앞에 정확히 멈췄다.

“믿어주시지 않겠지만요.”

쿵. 그 말을 끝으로 천후는 면접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방금 그 묘기에 가까운 행동을 보고 잠깐 놀란 면접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태블릿 컴퓨터와 그가 나간 문을 번갈아보다가 중얼거렸다.

“…몸 쓰는 재주는 제법이네.”

일리미네이터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겠다면 쓸모 있을지도 모르는데. 잠깐 그런 생각을 품었지만, 그녀는 이내 그 생각을 지웠다.

저런 거짓말쟁이와 다시 만날 일은 앞으로 없다.

있을 리가 없다라고―그때가지의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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