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현대에 나타난 상상속의 마물들. 통칭 디제스터.
처치하려면 현대 문명의 무기들을 가지고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하는 인류의 천적. 하지만…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이들의 등장으로 인류의 삶은 크게 변했다. 민방위 훈련을 해도 코웃음도 치지 않던 사람들은 이제 사이렌만 울리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방공호와 지하철역으로 대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것으로 끝날 수 있을까?
왜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지?
사례에 따라선 재래식 병기가 아예 먹히지 않는 디제스터 역시 존재한다. 일반적인 군대에서 이러한 존재들을 상대할 방법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예고도 없이 원래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툭 튀어나오는…접촉하기만 해도, 혹은 바라보기만 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마물들이 비정기적으로 튀어나오는데, 어째서 인류는 존속할 수 있는 것인가?
그 해답은 인류 그 자체에 있었다.
인류는―둘로 나뉜다. 인간과 마법사다.
인간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인간.
마법사는 말 그대로…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손끝에서 불꽃을 쏘아낼 수 있는 인간.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1000년 전 시점으로 추측하고 있다.
먼 과거부터 인간 사회에 동화되어 살고 있던 이들의 존재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공표되었고, 20세기에 와서는 인간의 다른 분류로 구분지어 학명을 받았다.
진핵생물역 동물계 진정후생동물아계 후구동물상문 척삭동물문 척추동물아문 유악하문 사지상강 포유강 수아강 진수하강 영장상목 영장목 직비원아목 원숭이하목 협비원소목 사람상과 사람과 사람아과 사람족 사람아족 사람속 호모 사피엔스 마기스트(Homo sapiens magist).
과거 마녀, 마법사, 악마 등으로 불렸던 이들의 정체.
인구 1만 명당 한 명꼴로 태어나는, 맨몸으로 초상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들.
마음만 먹었다면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릴 수 있었을 신인류.
하지만 그들은…인간이고 싶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사회에 소속되고 싶어 했다. 손에서 불을 쏠 수 있어도, 눈에서 빔이 나간다 할지라도…인간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싶어 했던 것이다.
괴물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괴물 취급 하지 않는다고? 아니. 그럴 리가. 당장 인터넷이라도 검색해보면 될 것이다.
사람 여럿이 짜서 카페 안에서 사람들 들어 올리는 염동력을 가진 초능력자 행세를 하는 몰래카메라를 촬영한 영상을 보면…소리를 지르며 허공에 사람의 몸을 띄우는 그 순간, 카페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패닉을 일으키며 그에게서 멀어지며 벽에 붙어 벌벌 떠는 꼴을 볼 수가 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로또를 매주 맞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가십거리도 안 된다는 식으로 언론에 나와서 유세를 부려댄다면?
당신이 출장 갔다가 돌아와 봤더니 당신과 똑같이 생긴 인간이 당신의 아내와 자식, 그리고 기르던 개에게 조차 진짜 당신보다 사랑 받고 있다면 어떤가? 그리고 그가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손에서 빛을 내기 시작한다면…?
그 때부턴 느끼게 된다. 저놈은 나-우리-와 다르다.
이상하다.
괴물이다―라고.
이 때문에 마법사들은 거의 절대 다수가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숨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피치 못한 사정으로, 우발적인 사고로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공개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 예를 들자면―
1200만 명의 사람들이 시체들의 산으로 변해있는 와중에서, 홀로 서있던 아이처럼.
바로 이러한 신분이 드러난 마법사들을 보호하는 기관이 있었다. 세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강력한 마법사, SA클래스의 마법사들의 총의를 모아 결성된 범세계적인 마법사 보호기구.
마법 기관 ‘유그드라실’
그것이―10년이란 시간동안 영천후를 보호해온 기관의 이름이다.
*
“천후. 옷 다 갈아입었어?”
“아. 네. 열어드릴게요.”
의료실을 나와 자기 방에서 옷을 챙겨 입은 영천후는 미연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흠. 제법 힘을 팍 줬는데.”
“헤헤헤. 그래야죠. 면접날인데.”
미연은 고개만 살짝 움직여 그의 차림새를 보고는 살짝 휘파람을 불었다. 나름 소재가 좋다곤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건 생각 이상이다.
“어때요? 어울려요? 정장은 처음 입어봐서….”
“걱정하지 마. 굉장히 잘 어울리니까.”
180의 훤칠한 키. 배우들 앞에 세워두면 오징어가 되겠지만 그래도 일반인 사이에선 준수한 얼굴. 정장을 입고 있음에도 숨겨지지 않는 다부진 몸매와 긴 다리. 일단 하드웨어에선 그다지 꿀릴게 없었다.
거기에 미운소리를 해도 웃음을 지우지 않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오늘 나름 작정 했는지 평소엔 신경도 안 쓰던 머리에 뭔가를 발라서 빳빳하게 정리해놓은 것이 꽤나 어울렸다.
“이 정도면 우리 아가 장가보낼 만하지.”
“하하. 음, 칭찬이죠?”
“그럼. 이제 여기에 두 가지만 있으면 완벽한데….”
“두 가지? 뭔데요?”
“뭐기는. 돈이랑…….”
미연은 시선을 그의 하반신 중앙에 두고선 말꼬리를 흘리며 입맛을 다셨다. 순간 소름이 돋은 천후는 샤샥 하고 양손으로 그곳을 가리면서 소리 질렀다.
“아 진짜! 그런 농담 좀 하지 마세요!”
“후후. 별로 농담으로 한 소린 아니지만….”
“아으. 진짜.”
미연은 정말 좋은 누나였지만, 이런 면은 조금 불만이었다. 언제까지고 자신을 10살 아이 취급하는 것이.
한마디 쏴주고 싶은 걸 간신히 삼킨 천후는 넥타이를 들고 거울 앞에 섰다. 아까부터 시도했었지만 영 제대로 된 모양새가 나오지 않았다.
“손재주도 좋으면서 왜 그런 걸로 헤매고 있어?”
“아니 그게….”
“이쪽으로 돌아서봐.”
몇 분이나 매듭을 가지고 낑낑대는 모습에 웃음을 흘린 미연은 그의 앞에 서서 넥타이를 메어주었는데, 그 솜씨가 사뭇 익숙했다. 그 순간, 뭔가를 떠올린 천후는 자기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와…. 잘 메시네요. 혹시 연습하셨었어요? 넥타이 메주는 거.”
“으, 응? 왜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매듭은 스스로 묶는 거랑 남 묶어주는 거랑 또 다르니까요. 아. 하긴 누나도 이제 슬슬 결혼 적령기가 위험하니까. 나이도 서르―”
쿠직! 발등에 엄청난 고통을 느낀 천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깽깽이 발로 뛰어댔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녀가 신고 있던 하이힐로 발등을 찍어버린 것이다.
“뭐라고 했니?”
“아. 아무것도 아녜요. 잘 메신다고요.”
“응. 말조심해야지?”
“네…. 잘못 했습니다….”
틀린 말 한건 없는 것 같은데 웃고 있는 얼굴이 이렇게 두려울 수가 없다. 고통에 눈물을 찔끔 흘린 천후는 좀 지나서야 다시 재대로 설 수 있었다.
미연은 그런 그의 모습을 메어주었던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올려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꼭 가야 하겠니?”
“…….”
딱히 떨리지도, 울음기 섞이지도 않은 평소와도 같은 목소리였지만…천후는 그 속에서 서운함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미 오늘이 되기 전에 몇 차례나 언급되고, 그 때마다 끝난 이야기였다.
“유그드라실에서 나가봐야…마법사인 걸 밝히고 살아가게 된다면 결국 다 우리 쪽과 연관될 수밖에 없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유그드라실의 하청 일을 하게 될 거야.”
“그렇긴 하죠.”
“그럼…그냥 여기 있어도 상관없잖아? 굳이 나가서 고생하지 말고…. 응?”
“누나….”
“나가서 뭐가 된단 거야?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나가더라도 네가 갈 곳은 없잖니!”
“…….”
어느새 몸을 바짝 붙여서 애원하듯 말하던 미연은 순간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실수했다. 이런 말은 하면 안됐었는데….
순간 안색이 창백해진 미연은 조심스레 그의 표정을 살폈다.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양친도 돌아가고 없는 사회에 나가서 뭘 하겠냐는 이야기를 해버린 걸.
하지만….
“……그래서 나가보는 거예요. 누나.”
손을 들어 그녀의 젖어있는 눈가를 엄지로 문질러 훑은 천후는 다른 한 팔로 그녀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알아요. 누나가 무슨 소리 하는지…. 나쁜 뜻으로 한 소리도 아니란 거 알고요. 그냥…아시잖아요. 제가 유그드라실에서 사는 거에 불만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란 거.”
“응….”
“대우도 좋고…직원 분들 모두 마법사니까 살기도 편하고. 그렇지만 저…여기에서만 10년을 살았으니까 조금 답답하긴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좀 알고 싶고. 거기다 전 여기서 10년이나 사느라 또래 친구도 없었잖아요.”
“그건….”
그건 확실히 문제였다. 영천후는 특수한 케이스라 10년이나 보호지정을 받아서 유그드라실안에서 머물러왔지만, 어지간해선 이렇게 길게 기관에 상주까지 해가면서 보호를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덕분에 천후는 10년간 교사들과의 개인 교습만으로 학습을 해왔고, 이는 그가 사회에 나갔을 때 소통 장애를 겪을 가능성으로도 연결 될 수 있었다. 아니 이건 이미 확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밖에 나가도 별 볼 일 없다고는 해도…전 한번 나가보고 싶어요. 왜, 저도 남자잖아요.”
배시시 웃는 얼굴을 보며 살짝 얼굴을 붉힌 미연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아무리 모든 것이 갖춰진 새장이라 할지언정…새장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10년을 살아서 사육하는 이들과 익숙해지고, 정이 붙었다 할지언정…날개가 달린 이상 창공 한번 날아보고 싶지 않을 리가 있을까?
‘이런 게 남자아이겠지.’
새삼 보면 부쩍 컸다. 키도 크고, 체격도 크고…. 그녀를 감싸 안고 있는 팔도 단단해서, 이런 아이를 한 곳에 묶어둔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단 생각이 들고 만다.
어린아이 시절의 잔영이 남아 언제까지고 품에 품어두고 싶지만, 이미 그녀의 생각 이상으로 다 자란 그는 이미 하늘 날 준비를 끝마쳐 놓고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엔 자신을 막지 못할 것을 아는 듯.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것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원망스러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뺨을 세게 꼬집어주고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알았어. 보내줄게. 대신 자주 얼굴 비춰야 돼?”
“당연하죠!”
호언하며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에 살짝 웃은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결국 언젠간 날아갈 아이다. 그렇다면 미련 없이 마음 편하게 날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리라.
“이력서랑 그런 건 다 챙겼니?”
“예. 그건 마법사 등록만 되어있으면 유그드라실 쪽에서 면접장에 전산연동이 되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던데요.”
“그래….”
희미하게 웃은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자신만만하다면 걱정한 것 없겠지.
“그럼…다녀오렴. 혹시 도와줄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상냥한 목소리로 배웅하는 것을 들은 천후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가, 고개를 등 뒤로 돌려 꾸벅하고 숙였다.
“…네! 다녀올게요!”
크게 소리 지르며 화답한 그는 다시 몸을 돌리고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가 유그드라실 밖으로
뛰어내렸다.
<<프리 폴 컨트롤 큐브 정상 작동 중. 현재 고도 43000피트. 1만 피트 지점에서 감속 시작합니다.>>
“후. 면접이라.”
비누거품을 연상시키는 반투명한 구체안에서 지상이 엄청난 속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본 그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가 방금 전까지 거주하고 있었던 유그드라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 영역으론 절대 그것을 찾을 수 없다.
아니. 그 뿐이랴. 현재 현존하는 어떤 레이더를 사용하더라도 찾을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마법사 다섯이 모여 만들어낸 마법의 정수. 그 자체이기에.
마법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마법사들만의 요람.
불가시 공중요새 유그드라실.
10년간 갇혀있어야 했던 터무니없는 새장이 있는 곳을 어림잡아 가늠해 본 그는 다시금 시선을 지상으로 돌리곤 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었다.
“그럼 가 볼까!”
줄곧 바라고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
먼먼 천공에서 좁쌀만 한 건물들을 내려 보는 것이 아니라, 저 속에서 함께 어울러 살아보고 싶다고.
오늘 있을 면접, ‘일리미네이터’를 뽑는 면접이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초석이 될 거라고 천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면접 장소에 도착하기 전 까지는.
<<당신의 마력 랭크는 랭크 F. 랭크 F입니다.>>
“…엥?”
갑자기 암운이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