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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232)화 (232/235)

232화 

그는 멀린 아서의 제자였다.

세상이 칭송하는 위대한 대마법사의 제자란 말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체도 알 수 없는 남자에게 마법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당해버렸다.

트라이가 분하다는 얼굴로 니르로르를 올려다봤다. 그 시선에도 드래곤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백작 놈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뚝하니 서 있던 제로 바니스타가 흠칫 놀라 니르로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니르로르가 물끄러미 그를 보며 말했다.

“마무리는 네가 짓도록 하거라.”

“네?”

제로 바니스타가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자 니르로르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것까지 짐이 해줘야 하느냐?”

“아…….”

제로 바니스타가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황급히 대답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니르로르가 뒤로 물러나선 팔짱을 꼈다.

마치, 제로 바니스타가 어떻게 이자와의 관계를 끝낼지 지켜보겠다는 듯이 말이다.

백작은 친구 앞에 다가가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트라이.”

“제로.”

트라이가 제로 바니스타와 똑같이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정말 나를 배신할 생각이야?”

배신이라니.

제로 바니스타는 단 한 번도 친구를 배신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를 만나기 위해 위험하고 제멋대로인 유리한 앞에서 비굴하게 굴지 않았는가?

그녀의 성격이 조금만 더 나빴더라면 자신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제로 바니스타가 간절하게 친구 향해 부탁했다.

“트라이, 멀린 님을 포기해.”

“그럴 수는 없어.”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멀린 님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어? 그분은 나를 구해주셨어.”

트라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 탑에서 죽어갈 때, 유일하게 내게 손을 내밀어 주신 분이라고!”

그런 그를 배신하라고?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차라리 죽여, 제로.”

제로 바니스타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트라이는 웃었다.

“나를 죽인 후, 죄책감 속에 파묻히기를 바랄게.”

그 말에 제로 바니스타는 심장이 뜯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트라이…….”

제로 바니스타가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성과 감정이 계속 맞부딪쳤다.

이성은 니르로르가 준 기회를 잡아 트라이를 죽이라고 외쳤지만, 감정은 그를 놓아주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제로 바니스타가 식은땀을 뻘뻘 흘릴 때였다.

그의 고민을 눈치챈 트라이가 몸을 움직였다.

“흐아아악!”

팔짱을 낀 채로 상황을 방관하던 드래곤을 향해 말이다.

수십 개의 마법진이 트라이의 뒤로 펼쳐졌다. 남아있는 모든 마력을 소진해 펼친 것들이었다.

“죽어버려!”

순간, 니르로르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한순간이나마 제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별로 강하진 않아도 멀린 아서의 제자는 맞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 트라이가 가까워졌다.

니르로르가 미간을 좁혔다.

‘위험한데.’

뒤늦게 방어막을 펼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팔이나 다리 중 하나를 내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니르로르 씨!”

그때, 누군가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우당탕!

순식간에 니르로르는 웬 남자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고요한아?”

그를 덮친 남자는 고요한이었다.

고요한이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괜찮다만…….”

니르로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유리한은 어쩌고 이곳에 있는 것이냐?”

고요한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를 대신해서 뒤따라온 디에스 라고가 답해 줬다.

“유리는 지금 홀로 싸우는 중이다. 그보다 넌 뭐 하고 있던 거지? 죽으려고 작정했나?”

날 선 목소리에 니르로르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대꾸했다.

“피하기에는 늦어 맞아줄 생각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죽으면?”

디에스 라고가 얼굴을 구겼다.

“죽으면 어쩔 생각이었지? 네가 그대로 죽어버리면 유리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있을 텐데?”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니르로르와 유리한은 종속 관계로 맺어진 몸.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그 여파로 살아남은 자마저 죽느니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된다.

니르로르가 뚱하게 말했다.

“죽어줄 생각 따위 없었으니라. 맞아도 간지러울 것 같아서 얌전히 있었더니만.”

잔소리도 심하다면서 니르로르가 투덜거렸다.

“그보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느냐?”

니르로르가 트라이를 찾았다.

그는 모든 힘을 소진해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금방에라도 죽을 듯이 미약하게 숨만 내쉬는 그의 곁을 제로 바니스타가 지켰다.

“트라이.”

트라이가 지친 기색으로 친구를 쳐다봤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울음기 섞인 목소리에 트라이가 픽 웃었다.

“그때…….”

트라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도 함께 탑에 들어왔으면 좋았을걸.”

그렇게 함께 멀린 아서를 만나 구원받았으면 좋았을 것을.

트라이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제로 바니스타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 숙였다.

콰과과광!

온 땅이 흔들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벗어나는 게 좋겠군.”

디에스 라고가 그렇게 말하며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던 랴오륭을 둘러업었다.

“아이고, 이거 감사해라.”

랴오륭이 실없이 웃었다.

고요한은 청예신을 부축해 주며 입을 열었다.

“백작님.”

제로 바니스타가 빛이 수그러든 하늘을 쳐다보고는 일어났다.

“가죠.”

친구와의 허무한 작별이었다.

* * *

쾅! 콰광!

마력과 마력이 서로 격돌하며 땅에 큰 상처를 입혔다.

한 치의 물러남도 없는 비장한 전투 속에서 멀린 아서가 분노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 리한……!

유리한이 가쁘게 숨을 내쉬면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만 포기하지 그래? 너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어.

“아니.”

유리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길 수 있어.”

당장 지금도 그녀는 멀린 아서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동생의 마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멀린, 상대를 가장 확실하게 죽이는 방법이 뭔지 알아?”

유리한이 이를 드러냈다.

“소멸이야.”

그자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완전히 부정하는 죽음.

그게 바로 소멸이었다.

유리한이 쥐고 있던 창을 바닥에 꽂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상대를 소멸시키는 방법이야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유리한!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도 몰라! 나는 그냥 파이어볼을 외친 죄밖에 없다고!’

‘정말 그것밖에 없어?! 파이어볼이 어떻게 헬파이어가 돼?!’

‘나도 모른다니까!’

바로, 마법이었다.

유리한은 1층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떠올렸다.

지니고 있던 마력을 모두 사용해 불로 숲을 태워버렸더랬지.

멀린 아서.

그에게 배웠던 마법으로 말이다.

유리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방에 동생의 마력을 풀었다.

파스스슷!

멀린 아서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글쎄.”

유리한이 웃었다.

“내가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것 같아?”

우우우웅!

공기가 요동치며 울리기 시작했다. 멀린 아서가 그 속에서 무한의 마력을 감지하고는 외쳤다.

- 유리한!

“멀린.”

유리한이 부드럽게 그를 부르곤 말했다.

“나는 네가 좋았어.”

툴툴거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가르쳐주려는 그가 좋았다.

“또한, 너와 내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서 기뻤고.”

디에스 라고와 함께 그에게 등을 맡겼을 때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마지막에 니르로르를 처치하기 위해 그가 제자들과 함께 떠났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멀린 아서.”

유리한이 웃었다.

“이제 정말 그만하자.”

그녀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파이어볼(Fireball).”

화르륵―!

피어난 불꽃이 작은 구(球)를 형성하는가 싶더니, 이내 크기를 점점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 리한! 이런 짓을 벌이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그래도 괜찮아.”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저승길 길동무로 네가 있으니까 별로 외로울 것 같지 않아서.”

- 유리한……!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는 사이 불꽃은 화염이 되어 그들을 감싸버렸다.

튀어 오른 불꽃이 유리한의 살갗에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리를 움직였다.

홧홧한 열기가 유리한을 집어삼킬 듯이 굴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 나갔다.

- 으아아아악!

멀린 아서를 향해 말이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느껴지는 건 목소리뿐.

멀린 아서는 마력 폭주를 일으키면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러나 유리한은 다리를 움직였다. 마치, 그를 찾은 것처럼.

곧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멀린.”

붉게 익은 허공을 향해 그의 이름을 내뱉은 유리한이 창을 들어 가볍게 휘둘렀다.

촤아악!

피가 흩뿌려지며 멀린 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 곳곳에 화상을 입은 그가 두 눈을 번뜩이며 유리한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 나와 함께 죽을 생각이야?

“그럴 수밖에 없다면 그래야지.”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멀린 아서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미쳤군.

“그걸 이제 알았어?”

그녀가 서글픈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지한이가 말 좀 전해 주래.”

느닷없이 들려온 이름에 멀린 아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리한이 그와 똑바로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멀린 아서의 두 눈이 떨렸다.

유리한은 높이 치켜든 창을 곧장 찔러 넣었다.

- 큭……!

친구이자 동료였던 멀린 아서의 심장을 향해 말이다.

화르륵!

무한의 마력을 이용해 피워낸 불꽃이 두 사람을 감쌌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유리한이 작별을 고했다.

“안녕, 멀린.”

그것을 끝으로 또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콰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것이 걷힌 후, 드러난 건 폐허가 된 대지뿐.

유리한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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