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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210)화 (210/235)

210화 

그녀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먼저 보이는 건 뾰족한 귀.

엘프와 비슷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유리한은 알았다.

제게 창을 겨누고 있는 남자가 마족이란 것을.

마계다.

“못 들었냐?! 어서 정체를 밝히라니까!”

마족이 살고 있는 세계.

탑의 새로운 세상이 유리한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녀가 환하게 웃는 순간.

- 겁을 상실한 놈이구나. 죽고 싶은 것이냐?

“도, 도마뱀이 말을 했다!”

- 짐은 도마뱀이 아니다!

니르로르가 빼액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리한이 그제야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사라진 사람들을 찾았다.

“니르로르, 요한이랑 디에스는? 제로 바니스타는 또 어디로 사라졌어?”

- 모른다. 짐의 옆에는 너밖에 없었느니라.

유리한이 그게 말이 되냐고 한소리 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만! 죽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라, 인간! 도대체 어디에서 굴러온 녀석이란 말이냐!”

마족이 빼액 소리 질렀다.

유리한이 작게 숨을 내쉬고는.

“흐어억!”

제 목을 향해 겨누어져 있던 창을 손쉽게 부러뜨렸다.

마족이 놀라 입을 벌렸다.

유리한은 손바닥을 탈탈 털고는 싱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마족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인간 여자가 인사를 한 건가?

‘내 창을 이렇게 부러뜨리고선?’

유리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보고 못 들었네 어쩌네 하시더니, 귀가 안 들리는 분이었나 보네요?”

“아, 아니다! 잠깐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을 뿐!”

“아하, 그렇구나?”

유리한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마족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유리한이라고 해요. 인간이라고 한 걸 보니, 이 세계에도 인간이 존재하나 보네요?”

“그렇게 묻는 걸 보니 밑에서 올라온 녀석인가 보군.”

마족이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유리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세계가 새롭게 열렸다고 하더니만…….”

쯧!

마족이 짧게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엘렌티아라고 한다. 일곱의 고위 마족 중 한 분이신 러스트 님의 심복이지.”

“오오, 그렇군요.”

유리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렌티아에게 물었다.

“그럼, 그 러스트란 분께 안내 좀 해주시겠어요?”

“뭐?”

“제가 밑에서 온 걸 알고 계셨잖아요. 보아하니 마계는 아직 전쟁 중인 것 같은데…….”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싫으면 말고요.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분께 갈 수밖에요.”

유리한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자, 잠깐!”

엘렌티아가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자신이 붙잡은 여자는 어떻게 봐도 밑에서 올라온 인간이었다.

‘러스트 님께 데려가야 한다!’

수상쩍기 그지없었지만, 자신의 주인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예로부터 밑에서 올라오는 인간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까.

‘분명 그분께 도움이 될 터!’

엘렌티아가 그렇게 생각하며 소리 질렀다.

“러스트 님께 안내해 주도록 하지! 누가 안 하겠다더냐?! 따라와라!”

엘렌티아가 씩씩거리며 앞장섰다. 유리한은 키득거리며 웃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니르로르가 여전히 유리한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채로 그녀에게 물었다.

- 유리한아. 고요한과 디에스는 찾지 않아도 괜찮으냐?

“아니, 안 괜찮아.”

- 그런데 왜 저 녀석을 따라가는 것이냐?

“요한과 디에스를 손쉽게 찾기 위해서라고 할까?”

- 그게 무슨 소리냐?

“가보면 알아.”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는 모습에 니르로르가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하지만 니르로르는 곧 유리한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

일곱 악마 중 하나, 러스트.

마계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를 홀린다는 미인으로 소문난 그녀의 앞에 선 유리한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올라오면서 동료들과 떨어지게 됐는데 좀 찾아주시겠어요?”

당돌하기 그지없었다.

* * *

러스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동료들 좀 찾아달라고 했답니다, 러스트 님.”

러스트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걸 보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같은데?”

“네, 마계의 위대한 일곱 고위 악마 중 한 분이시죠.”

“그래, 그런데 한낱 인간 따위가 지금 내게 부탁을 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러스트가 실소를 터트렸다.

“싫으면 말고요.”

유리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고위 마족분을 찾아가야죠, 뭐.”

“누가 보내준다고 하더냐?”

쿠구구―!

러스트의 위협적인 목소리와 함께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유리한은 눈 한 번 깜박하지 않았다. 그저 물었을 뿐이다

“저를 막을 수 있겠어요?”

콰왕!

유리한의 주위로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검은 기운은 곧장 러스트의 위협을 몰아냈다.

비록 일곱의 고위 마족 중에서는 최약체라고 불리지만, 그 힘은 인간이 감당할 정도가 아니었다.

러스트가 놀란 눈을 보이며 작게 읊조렸다.

“정말 재미난 인간이구나.”

“칭찬 감사해요.”

그 말에 러스트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외쳤다.

“엘렌티아!”

“네, 러스트 님.”

엘렌티아가 예를 갖추었다.

“저 인간을 도와주도록 해라.”

그 말에 엘렌티아가 휙 고개를 들어 러스트를 쳐다봤다.

그녀가 미간을 좁혔다.

“내 명령에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것이냐?”

“네? 아, 아닙니다! 저는 단지 걱정이 되어서……!”

“걱정이라니?”

“그야, 수상쩍은 인간이지 않습니까!”

걱정 어린 목소리에 러스트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 수상쩍은 인간을 잘도 내게 데려다줬구나?”

“그, 그건!”

사실 유리한이 보여주는 기세가 무서워서 그랬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엘렌티아를 향해 러스트가 말했다.

“할 말 없으면 어서 저 인간을 도와주도록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러스트 님.”

엘렌티아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러스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 인간.”

“유리한이라고 해요.”

“그래, 유리한.”

러스트가 친히 인간의 이름을 불러주며 말했다.

“곧 따로 시간을 가지도록 하지. 내 흥미를 끈 보답이다.”

“그것참 감사한 일이네요.”

유리한이 전혀 감사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러스트는 그것 또한 재미있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엘렌티아.”

“네, 러스트 님.”

“저 인간을 도와주면서 성도 구경시켜 주도록 하거라.”

“인간을 성에 들일 생각이십니까?”

놀라 묻는 소리에 러스트가 미간을 좁혔다.

“아까부터 이상하구나. 정녕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것이냐?”

“아니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엘렌티아가 허리를 깊이 숙이며 황급히 대답했다. 러스트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휙 몸을 돌렸다.

그렇게 곧 그녀는 사라졌고.

“저기요, 엘렌티아 님?”

유리한이 엘렌티아를 불렀다.

엘렌티아가 허리를 바로 하고는 유리한을 노려봤다.

“뭐냐, 인간.”

“제 이름을 못 들으셨나 봐요.”

“뭐라?! 건방진 인간 같으니라고!”

“유리한이에요, 유리한.”

유리한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괜찮다면 이름으로 불러주시기를 바랄게요.”

“싫다면?”

“싫다면 어쩔 수 없죠.”

유리한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눈웃음을 지었다.

“강제로라도 제 이름을 부르게 할 수밖에요.”

“뭐?”

따악!

유리한이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엘렌티아를 검은 그림자가 에워쌌다.

“이거 당장 풀어! 우, 우와왁!”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 유리한아, 웬일로 그림자 밖으로 소리가 들리게끔 했구나?

“그래야 엘렌티아 님이 내 이름을 부르겠다고 말하는 게 들릴 테니까.”

그러기 전까지는 절대로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이, 이름으로 부를게! 그러니까 당장 풀어줘! 유리한! 유리한!!”

고래고래 지르는 목소리에 유리한이 키득거리며 웃고는 다시 한번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따악!

그와 함께 엘렌티아가 검은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헉… 허억…….”

가쁘게 숨을 몰아 내쉬는 그에게 유리한이 웃는 낯으로 물었다.

“어땠어요? 엘렌티아 님이 좋아하시는 걸 볼 수 있도록 해봤는데.”

좋아하는 거라니!

그가 본 광경은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거였다.

엘렌티아가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버럭 소리 질렀다.

“이 괴물!”

“제 입장에서 괴물은 엘렌티아 님이랑 러스트 님인데요?”

탑을 오른 뒤, 생전 처음 만난 마족들이었다.

엘렌티아가 씩씩거렸다.

“이 수모는 절대로 잊지 않겠다!”

“마음대로 하세요.”

유리한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엘렌티아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느꼈다.

하지만 어쩌랴?

유리한은 주인인 러스트의 손님이었다.

그런 손님을 정중하게 대하는 것도 심복인 자신의 일.

엘렌티아는 분을 삭이고는 입을 열었다.

“나를 따라오도록 해라. 성을 구경시켜 주도록 하지.”

“제 동료들은요?”

“찾아줄 거야!”

엘렌티아가 빽 소리 질렀다.

* * *

엘렌티아는 유리한에게 열심히 러스트의 성을 소개해 줬다.

“이 그림은 그리드 님께서 선물해 주신 거지. 러스트 님의 외모에 반해서 말이야. 그 옆쪽은 엔비 님께서 주신 것.”

참고로 그리드도 엔비도 같은 고위 마족이라면서 엘렌티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군요.”

유리한이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물었다.

“그런데 서로 전쟁 중이지 않나요? 잘도 러스트 님에게 선물을 주셨네요?”

“러스트 님의 미모는 마계 최고라고 불리니까.”

“그게 왜요?”

“다들 러스트 님을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라는 거다.”

그러고는 엘렌티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누구는 러스트 님이 잘난 외모를 가진 탓에 지금까지 영지를 빼앗기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어쨌든 러스트 님은 그런 분이시다.”

“네에.”

유리한이 적당히 대꾸해 줬다.

“그보다 제 동료들은요? 찾지 않나요?”

슬슬 성 구경도 지겨워졌다.

유리한의 물음에 엘렌티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참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군! 네 동료들은 진작 세작을 풀어 찾게 했다!”

“오, 언제요?”

“내가 아까 물어봤었잖아!”

그랬다.

본격적인 성 구경에 들어가기 직전, 엘렌티아는 유리한에게 동료들의 특징을 물어봤었다.

유리한은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말해줬고, 겸사겸사 제로 바니스타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 괜히 러스트인지 뭔지 하는 것 옆에 붙어 있는 게 아니었구나, 뾰족 귀야.

“시끄러, 도마뱀! 그리고 러스트 님을 그렇게 부르지 마라!”

그때였다.

“엘렌티아 님.”

“오, 그래. 유리한의 동료들을 찾았나?”

“네, 그런데 그것이.”

아까 풀어놓았다던 세작 중 하나가 그에게 속삭였다.

엘렌티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엘렌티아 님?”

“곤란하게 됐군.”

“네?”

“일단 세 사람의 행방 모두 찾았다. 다만, 그것이…….”

엘렌티아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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