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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209)화 (209/235)

209화 

【 26. 마계 】

“멀린……?”

유리한이 멍하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멀린이라니?’

그녀의 두 눈 역시 잘게 떨렸다.

멀린 아서.

니르로르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위대한 영웅.

대마법사이자 뛰어난 검사였던 그가.

‘살아 있다고?’

유리한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철야의 기억 속에서, 말을 건네고 있는 남자는 분명 멀린 아서였다.

생김새, 펼쳐진 마법 등등 모든 것이 그임을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유리한은 그녀의 조카인 유서아의 희생으로 살아난 몸이었다.

하지만 멀린 아서는?

‘나랑 똑같은 방법으로 되살아났을 리가 없어.’

그에게는 혈육도 없었다.

더욱이 그가 가족같이 여기던 제자들은 니르로르의 발을 붙잡을 때 함께 죽어버렸다.

무엇보다.

‘주철야가 69층의 문지기가 되기 전의 일이잖아.’

그러니까 오래전, 플레이어들이 59층을 공략해 60층 이후의 세계를 맞이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란 뜻.

유리한이 입술을 달싹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멀린 아서를 물끄러미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멀린.”

너는 도대체 왜.

“살아 있었으면서 왜 막지 않았던 거야?”

유지한.

자신의 동생이 실험체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도대체 왜…….”

막지 않았던 거야?

유리한이 목소리는 멀린 아서에게 닿지 않았다.

닿을 리가 없었다.

이건, 주철야의 기억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의 기억은 계속해서 그녀의 앞에 펼쳐졌다.

* * *

“하하하하하!”

주철야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릴 플레이어입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한 멀린 아서 때문이었다.

“간만에 웃어보는군.”

주철야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주철야의 웃는 낯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내 소원이 무엇인지는 알고 그리 말하는 것이냐?”

위협적인 목소리에 멀린 아서가, 아니, 그의 옆에 있던 작은 체구의 남성이 꿀꺽 침을 삼켰다.

“멀린 님.”

“걱정하지 마, 트라이.”

멀린 아서가 남자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고는 싱긋 웃었다.

“마교의 수장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소원이야 무림의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겁니다.”

“네 녀석은 이곳 인간이 아니로군?”

“하지만 인간은 맞습니다.”

멀린 아서는 눈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것도 수장님의 소원을 들어드릴 아주 훌륭한 인간이죠.”

그 말에 주철야가 다시 한번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내 소원이 무엇인지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기다렸다는 듯 멀린 아서가 입을 열었다.

“더욱 강한 무위(武威).”

주철야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멀린 아서는 그를 향해 미소를 그렸다.

“수장님께서 원하시는 건 그 누구보다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강한 힘이지 않습니까?”

정답이었다.

주철야가 바라는 건 커다란 힘.

그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을 원했다.

“그래서 그 힘을 내게 쥐여주겠다는 것이냐? 네가 무슨 수로?”

“수장님께서는 그저 제 손을 잡으시면 됩니다.”

멀린 아서가 주철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 손을 잡으신다면 그토록 바라던 힘을 얻으실 겁니다.”

“도리어 네가 나를 죽여 내 힘을 빼앗아 간다면?”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그리고.

“저 같은 미천한 사람이 어떻게 수장님을 죽이겠습니까?”

능글맞은 목소리였다.

주철야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혹시 모를 일이지. 내가 뒤통수를 워낙 많이 맞은 놈이라.”

주철야가 손을 내미는 척, 멀린 아서의 멱살을 쥐고 으르렁거렸다.

“남을 쉽게 믿지 않아.”

위협적인 목소리에도 멀린 아서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태도.

그것이 더욱 주철야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냥 죽일까?’

주철야는 제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은 모두 죽여버렸었다.

하지만 왜일까?

주철야는 멀린 아서의 멱살을 잡은 손에 식은땀이 맺히는 걸 느꼈다.

두려워하고 있는 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를.

주철야가 놀란 눈을 보였다.

‘이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주철야는 다짜고짜 멀린 아서를 향해 무공을 펼쳤다.

“멀린 님!”

“괜찮아, 트라이.”

멀린 아서가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잠깐 떨어져 있어.”

그러고는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법이 펼쳐졌다.

푸른 빛을 내는 마법에서 사슬이 솟아나 주철야의 온몸을 결박했다.

“크윽……!”

주철야는 온몸에 힘을 줘 사슬을 풀고자 했다.

그러나 쉽지가 않았다.

“네놈!”

주철야가 성난 목소리를 내었다. 그의 앞에서 멀린 아서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장님?”

주철야는 꿀꺽 침을 삼켰다.

‘멀린’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손쉽게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힘을 쥐여줄 수 있다.

주철야는 본능적으로 그러리라 확신했고.

“좋다.”

멀린 아서의 손을 잡기로 했다.

69층의 문지기, ‘주철야’가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주철야는 넘치는 힘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웃을 때마다 온 대지가 흔들렸다.

“대단하구나, 네놈!”

“칭찬 감사합니다.”

멀린 아서가 싱긋 웃었다.

주철야는 새롭게 얻은 힘을 맘껏 뽐내고는 그에게 말했다.

“원하는 걸 말해보도록 해라. 뭐든 들어주도록 하지.”

“괜찮습니다.”

멀린 아서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원하는 건 뭐든 얻었으니까요.”

멀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휙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그런 그를 주철야가 붙잡았다.

멀린 아서가 걸음을 멈추고는 대꾸해 줬다.

“위로요. 제가 원하는 건 위에 있어서 말이죠.”

주철야가 미간을 좁혔다.

“올라가면 죽을 것이다.”

주철야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탑이란 공간에 속해 있는 걸 알았다.

무공을 얻겠답시고 온갖 서적을 읽어댄 덕분이었다.

그의 걱정 아닌 걱정에 멀린 아서가 다시 싱긋 웃었다.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이어 말했다.

“마계는 지금 한창 전쟁 중이라고 하죠? 일곱의 고위 귀족이 그곳을 통합하기 위해서요.”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읽은 책들은 위로 올라가는 것을 하나같이 경고하더군. 우리 같은 인간은 올라가자마자 죽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렇군요.”

멀린 아서가 여상하게 말했다.

“어쨌든 간에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잠깐! 네놈, 내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느냐?! 올라가면 죽을 거라니까!”

“그거야 수장님과 같은 평범한 인간에게 해당하는 소리죠.”

“뭐라?”

“아, 이제 인간이라 부를 수 없겠지만요.”

멀린 아서가 키득거렸다.

“방금 그러셨지요? 당신과 같은 인간은 올라가자마자 죽을 거라고요.”

“그랬다만?”

“그러니까 저는 괜찮다는 소리입니다.”

멀린 아서가 가슴 한쪽에 손을 얹고는 미소를 그렸다.

“저는 플레이어이니까요.”

그것이 마지막.

멀린 아서는 그대로 제 옆에 서 있던 남자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 * *

“헉……!”

유리한이 헛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움츠렸다.

- 유리한아!

“유리!”

“유리한 씨!”

한 마리의 드래곤과 두 남자가 다급히 그녀를 살폈다.

유리한은 괜찮다는 듯 애써 미소를 그려 보이고는 복잡한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했다.

멀린 아서가 살아 있다.

그리고 그가 주철야를 69층의 문지기로 만들었다.

그런 후.

“마계…….”

70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유리한이 입술을 달싹이고는 가슴 부근을 꼭 쥐었다.

그때, 제로 바니스타가 물었다.

“마계에 대해 얻은 정보가 있습니까?”

유리한이 작게 숨을 내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주철야가 멀린 아서로부터 힘을 얻어 69층의 문지기가 된 직후의 일이었다.

“마계는 이름 그대로 마족이 살고 있는 세계예요.”

그리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각종 흉악한 몬스터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주철야의 기억에서 엿본 대로라면, 일곱의 고위 마족이 마계를 통합하느라 한바탕 전쟁 중이라고 하더군요.”

유리한은 순간 멀린 아서에 대해 말할까 하다 그만뒀다. 그가 살아 있다는 건 자신이 아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아니.

“유리, 정말 괜찮나?”

디에스 라고 역시 알아야 한다.

“유리한 씨, 괜찮으세요?”

고요한도.

왜 모두에게 알리지 않는 거냐고 묻는다면 유리한은 이렇게 대답할 거다.

‘혹시 모르니까.’

주철야의 기억 속에서 본 남자는 분명 멀린 아서였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 않나?

멀린 아서를 흉내 낸 다른 누군가일 수도.

어쨌든 간에 유리한은 눈웃음을 지으며 두 남자의 걱정을 가라앉혔다.

“오랜만에 망자의 기억을 엿봐서 몸에 무리가 갔나 봐요.”

“그렇다면.”

“쉬는 건 싫어.”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의 말에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곧바로 올라가자.”

그러고는 모두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청예신이 대답했다.

“저희 청의 기사단은 부대를 정비한 후 올라갈 생각입니다.”

“우리도.”

랴오륭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지만 제로 바니스타는 달랐다.

“저희 뮤즈는 지금 바로 올라갈 생각입니다. 준비도 모두 끝마쳤고요”

그럴 줄 알았다.

제로 바니스타는 이번 공략이 실패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

유리한이 픽 웃었다.

“좋아요. 그럼 단장님과 맹주님은 다음에 뵙도록 하죠.”

그녀는 몸을 돌렸다.

주철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가 있던 자리에 웬 문이 나타나 있었다.

유리한은 열기를 가라앉히고 있던 아쿠아의 보물을 거둔 후 문으로 향했다.

니르로르가 그녀의 어깨 위에 앉았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그녀의 양옆에 섰다.

유리한이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문소리와 함께 환하게 터지는 빛에 유리한이 눈을 감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네 녀석은 누구냐!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정체를 밝히도록 해라!”

웬 창이 유리한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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