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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97)화 (197/235)

197화 

갑작스럽게 들려온 다정한 목소리에 구천하가 힘겹게 목소리를 토해냈다.

눈앞의 사내는 얼굴을 가리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남자의 것이었다.

그리고 차림새로 보니.

“의원…인가……?”

“그렇습니다.”

의원이었다.

구천하가 들려온 목소리에 옳다구나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럼 나 좀 살려주게! 살려만 준다면 내 두둑이 자네에게 보상하도록 하지!”

“흐음, 어떤 식으로 보상을 해준다는 겁니까?”

“원하는 건 무엇이든 자네의 손에 쥐여주겠네! 이렇게 보여도!”

“가지고 있는 건 많으니까 말이지요?”

자신의 말을 끊는 목소리에 구천하는 당황했으나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그래! 천하를 원한다면 천하를 줄 것이고 금은보화를 원한다면 그것 역시 자네에게 쥐여주겠네!”

“오호라. 혹하는 제안이군요.”

남자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원하는 게 하나 있기는 한데 말입니다.”

“뭔가?! 뭐든 구해다 주겠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다급한 목소리에 남자가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바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거라서요.”

“내가 가지고 있는 거라고?”

구천하가 한쪽 눈에 피멍이 든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게 뭔가?! 바로 주겠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건.”

남자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바로 당신의 목숨입니다.”

“뭐, 뭣?!”

구천하가 잔뜩 당황한 얼굴로 사내를 쳐다봤다. 남자는 웃는 낯을 순식간에 지우고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냈다.

“제가 원하는 건 바로 마교의 수장인 당신의 목숨이라고 했습니다. 왜, 주기 어려우신지요?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지만 말입니다.”

구천하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애, 내가 마교의 수장이란 것을 어떻게 안 거지?!’

협객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무인 따위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전혀 플레이어처럼 보이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당신을 알아본 것인지 많이 궁금한 모양이군요.”

그 말에 구천하가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그,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마교의 수장 따위가 아니라네!”

“그렇습니까?”

남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것 참, 죽음 앞에서는 어떤 인간이든 추악해진다고 하더니.”

쯧쯧, 남자가 혀를 찼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콧대 하나는 누구보다도 높던 양반께서 말입니다.”

그는 구천하를 한껏 비아냥거리고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저는 모용세가의 모용류라고 합니다. 저를, 그리고 제 가족을 잊은 건 아니겠지요?”

모용세가라니?

구천하의 입술이 떨렸다. 귀에 익은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곧, 그는 그 이름이 왜 그렇게 익숙한지 떠올렸다.

‘그래, 모용세가!’

무림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됐을 때, 무인에 의해 크게 상처를 입은 자신을 구해줬던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구천하는.

‘모두 죽였는데!’

구천하가 두 눈을 빠질 듯이 휘둥그렇게 뜨며 선이 고운 남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남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협객들께서 자리를 떠나주시기를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겁니다.”

유리한이 이 남자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유리한, 이 빌어먹을 년이!’

그녀는 자신이 무림에서 얼마나 악명이 자자한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눈앞의 남자는.

“자, 잠깐!”

제로 바니스타의 고문으로 한없이 약해진 자신을 죽이려고 왔다는 거였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희게 질린 얼굴로 외치는 목소리에 남자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외치면서 당신에게 목숨을 구걸했지만.”

남자가 끝이 뾰족한 것을 높게 치켜들었다.

“당신은 듣지 않았었지요.”

그는 그것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던 구천하의 목을 향해 그대로 찔러 넣었다.

* * *

까악, 까악―!

숲 쪽에서 까마귀 떼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객잔에 앉아 있던 유리한은 잠시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용케 쫓아왔군.”

랴오륭이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불만이 가득한 그 목소리에 유리한이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랴오륭 씨가 너무 느려서요.”

“뭐라고?!”

“사실을 말한 것뿐인걸요? 그렇죠, 백작님?”

“헉, 허억.”

제로 바니스타는 가쁜 숨을 몰아 내쉬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면을 벗고 식은땀을 닦아내는 그의 모습에 유리한이 걱정스럽게 제로 바니스타를 불렀다.

“백작님?”

“네?”

제로 바니스타가 깜짝 놀라며 대꾸했다. 유리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아, 하하! 괜찮습니다!”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그였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이봐, 백작. 들어가서 빨리 쉬지 그래?”

“하, 하하! 그래도 되겠습니까?”

“애초에 네가 빌린 객잔이잖냐?”

“아 참! 그랬지요? 그, 그럼 저는 먼저 올라가서 쉬겠습니다.”

제로 바니스타가 황급히 자리를 떴다. 방으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연약해 보였다.

“우리 잘난 영웅님께서 이해 좀 해줘. 저 녀석, 꽤 허약하거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서문기율 씨는요?”

“몰라. 나를 열심히 쫓아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더군.”

그 말에 유리한이 깜짝 놀랐다.

“그걸 그대로 놔뒀어요?”

“응.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그건 아니지만요…….”

유리한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걱정이 잔뜩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랴오륭이 미간을 좁혔다.

“이봐, 유리한. 혹시나 말해 두는데 서문기율은 애가 아니야.”

“알아요.”

“그걸 안다는 영웅님께서 서문기율을 애처럼 취급하고 있어?”

“그런 적 없는데요?”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하시지.”

랴오륭이 픽 웃었다.

“서문기율은 강해. 너나 나만큼 강한 건 아니지만, 제 앞가림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녀석이라고.”

그러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말라면서 랴오륭이 말을 이었다.

“분명 할 일이 있어 그런 거겠지. 멀쩡하게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 말에 유리한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흐음.”

의미심장한 목소리를 냈다. 동시에 의문에 찬 눈빛으로 랴오륭을 쳐다봤다.

닿는 시선에 랴오륭이 흠칫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야, 그 시선?”

“의외라서요.”

“뭐가?”

“랴오륭 씨가 서문기율 씨를 꽤 아끼고 계시는 게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랴오륭이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누가 누구를 아끼고 있다고!”

“랴오륭 씨가 서문기율 씨를요.”

“그럴 리가 있겠냐?!”

랴오륭이 버럭 소리 질렀다.

“애초에 서문기율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건 다 너 때문이잖냐!”

“제가 뭘 했다고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 목소리에 랴오륭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지?’

랴오륭은 기가 찼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여자에게 화를 내거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내가 죽는다.’

물론, 유리한이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거다. 죽이려고 했다면 진작 죽였겠지.

랴오륭이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오, 내가 말을 말지!”

“랴오륭 씨도 들어가서 쉬시려고요?”

“그래! 우리 영웅님께서 열불 터지게 만들어서 좀 쉬어야겠어! 이봐, 서율!”

“매, 맹주님?!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조금 전에. 그보다 우리 잘난 영웅님께 빈방 좀 안내해 드려.”

“네? 아, 넵!”

랴오륭의 든든한 오른팔이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유리한에게 빈방을 안내해 줬다.

그렇게 달빛이 스며드는 방을 안내받은 유리한은 침대에 누운 채로 두 눈을 끔벅였다.

- 유리한아, 자지 않느냐?

“응? 응, 잠이 안 오네.”

- 그래도 눈 좀 붙이거라.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그녀에게 질문이 날아들었다.

- 고요한과 어두침침한 인간이 없어서 그러느냐?

“그건 아니야.”

고요한과 디에스 라고와는 탑을 오르는 내내, 노숙할 때가 아니고서야 같은 공간에서 잔 적이 없는 유리한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없다고 잠을 못 잘 리는 없었다.

- 그럼?

“그냥…….”

유리한이 목소리의 끝을 흐렸다가 이내 말했다.

“새삼, 얼떨떨해서.”

- 무엇이 말이냐?

“내 손으로 동생의 복수를 실현했다는 게. 뭐, 청의 초대 기사단장은 디에스랑 요한한테 맡겼지마는 말이야.”

그리고 혈맹과 뮤즈에게는 채찍 대신 당근을 쥐여줬다.

그것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더 나은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이기적인 것 같아.”

- 네가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누가 그러더냐?

“내가 스스로를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거야.”

유리한이 신경 쓰지 말라면서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편안한 이부자리에 누워서 그런가? 쓸데없는 생각이 다 드네.”

그 말에 니르로르가 물었다.

- 짐이 기절이라도 시켜주랴?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봐.”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아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네 비늘을 모두 뜯어주겠다면서 유리한이 살벌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크흠, 니르로르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 하나도 무섭지 않도다.

“네네, 그러시겠죠.”

유리한이 픽 웃었다.

“내 걱정은 말고 너나 좀 자.”

- 짐은 그동안 실컷 자지 않았느냐?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는구나.

“오, 그래? 두 눈에 아주 졸음이 가득한데?”

- 그러지 않도다!

니르로르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에 유리한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래, 그렇다고 믿어줄게.”

그녀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리 말한 후 두 눈을 꼭 감았다.

“자자.”

- 분명 조금 전까지 잠이 오지 않는다고 그러지 않았느냐?

“그랬지만 이렇게 두 눈 꼭 감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잘 것 같아서. 그러니까 너도 어서 나처럼 눈 감아.”

니르로르가 유리한의 머리맡에 둥글게 앉고선 두 눈을 감았다. 곧,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든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 소리에 유리한은 소리 죽여 키득거렸다.

‘졸리지 않다더니.’

유리한이 픽 웃고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한 역시 까무룩 잠들었다.

그리고 맞이한 아침.

“으음…….”

단잠에 빠져 있던 유리한은 제 콧등을 톡톡 두드리는 다정한 손길에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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