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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73)화 (173/235)

173화 

놀라 던진 질문에 아리아텐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아리아텐이 동굴을 밝히던 불빛을 단번에 더욱 환하게 만들고는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이 순순히 우리 세계에서 쫓겨났을 것 같으냐?”

아리아텐이 과거에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몇 번이고 몸부림치고 반항했다. 결국은 추방당하고 말았지만.”

아리아텐은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유리한은 말없이 있다가 조용히 그녀에게 물었다.

“무리하게 힘을 사용한 후, 니르로르는 어떻게 했나요?”

“어떻게 하기는?”

아리아텐이 말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곳에 처박혀 힘이 회복되기를 기다렸지. 나도 저렇게 맥없는 모습은 처음 본다.”

“그렇군요.”

유리한의 낯빛이 우울해졌다.

아리아텐과의 대화로 니르로르를 치료할 수 있는 힌트를 얻으려 했건만.

‘아무래도 안 되나 보네.’

그래도 유리한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제로 바니스타와 약속한 시간이 한 달이었지?’

그녀가 뮤즈의 백작과 했던 맹세를 떠올리자 눈앞에 푸른 창이 나타났다.

[맹세가 종료되기까지 앞으로 ‘30’일 남았습니다.]

원래 서로의 심장에 걸고 맹세를 하면 이런 시스템 창이 나타나나? 아님, 기간을 정해둔 맹세라서 이런 걸까?

그런 의문에 유리한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하나 있지.”

“네? 무슨 방법이요?”

“무슨 방법이겠느냐?”

아리아텐이 쯧,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이 정신을 차리게끔 도움을 줄 방법이지 않겠느냐?”

그 말에 유리한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뭔데요? 알려만 주신다면 목숨이라도 바칠게요!”

“유리.”

디에스 라고가 진정하라는 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리한이 그제야 ‘아차’ 싶은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말은 취소할게요.”

그에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 안심한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유리한은 괜히 멋쩍어져 목 언저리를 긁적이며 아리아텐을 쳐다봤다. 아리아텐은 고요한 눈으로 제 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이번에 화이트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 사이에서 태어난 돌연변이. 그 녀석이 받은 건 어미의 힘뿐이다.”

“그래요?”

“그래, 그런데도 이렇게 드래곤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지. 왜인지 아느냐?”

유리한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 돌연변이가 블랙 드래곤이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건 들었어요.”

그 말에 아리아텐이 픽 웃었다.

“그럼, 하나 묻지.”

아리아텐이 입을 열었다.

“블랙 드래곤이 어떻게 태어났을 것 같으냐? 화이트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 둘 사이에 접점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오…….”

유리한이 입술을 오므렸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블랙 드래곤이 어떻게 태어난 거지?”

“윗세대의 영향일 테다.”

아리아텐이 담담하게 말했다.

“암만 다른 속성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해츨링이 부모 중 한쪽의 속성만 물려받는다 해도, 다른 부모의 피가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

그렇기 때문에 화이트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 둘 중 하나의 윗세대에 블랙 드래곤의 피가 섞여 있었을 거라며 아리아텐이 말했다.

“자, 여기서 문제를 하나 더 내마. 화이트 드래곤들이 지금 태어난 돌연변이를 감싸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 것 같으냐? 종족도 다른데 말이다.”

“화이트 드래곤을 닮은 부분이 있어서겠죠. 니르로르가 당신의 붉은 눈을 닮은 것처럼요.”

그 말에 아리아텐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어쨌든 방법을 알려주마.”

아리아텐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이트 드래곤들이 보호하고 있는 그 변종은 분명 저 녀석과 똑같이 다른 이름을 받게 될 거다.”

“다른 이름이라고 하면, 니르로르가 받았던 ‘죽음의 드래곤’이나 뭐 그런 이름이요?”

“그래.”

아리아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을 저 녀석이 받게끔 만들면 될 거다. 하지만 그 이름엔 모두 힘이 있어.”

“힘이라니요?”

“니르로르, 저 녀석이 받았던 ‘죽음의 드래곤’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을 거란 말이다. 그래서 저 녀석이 그 이름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유리한은 아리아텐의 말을 이해했다.

아리아텐, 그녀가 말하는 이름이란 곧 ‘격(格)’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이 탑에서 니르로르를 다시 만났을 때도 그런 창이 뜨지 않았나?

‘격이 떨어진 드래곤, ‘니르로르’가 플레이어 ‘유리한’에게 종속되었습니다…라고 말이지.’

그렇게 격이 떨어진 니르로르는 ‘죽음의 드래곤’이 아닌, ‘어둠의 드래곤’이었다.

어쨌거나 그때만 생각하면 절로 이가 갈리는 유리한이었으나 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유리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이트 드래곤들한테 있어서는 희소식이겠네요. 니르로르가 그 돌연변이에게 내려질 격을 대신 받아 간다면, 이런 전쟁은 금방 끝날 테니까요.”

또한, 모를 일이었다.

블랙 드래곤으로 태어났다는 그 해츨링이 화이트 드래곤의 모든 힘을 얻게 될지도.

“방법을 알려줘서 감사해요.”

“방법이라기보다는 자살 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무엇보다 화이트 드래곤 녀석들이 너희를 반길지 모를 일이지.”

그 말에 유리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충분히 반길 것 같은데.”

“그 녀석들은 지금 너무 흥분해 있거든.”

화이트 드래곤들은 바람의 정령왕인 아우라의 힘을 본받아 태어난 족속들.

바람이란 본디 자유자재로 변하는 것이라, 화이트 드래곤들은 주변 상황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지금 그 녀석들과 대화하는 건 무척이나 위험할 거다.”

“괜찮아요.”

유리한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드래곤들이야 탑 밖에서도 엄청 많이 만나 봤었어요.”

그뿐이랴? 그것들은 하나같이 이성을 잃은 존재들이었다. 눈앞의 아리아텐이나 리아그처럼 대화도 통하지 않는 존재.

‘그래서 처음 니르로르가 우리 세상에 나타났을 때 모두들 놀랐었지?’

대화가 통하는 드래곤이라니!

처음 그들은 ‘죽음의 드래곤’이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판단해 대화를 시도했었다.

‘그렇게 대화를 시도한 녀석들은 모두 죽었지만.’

그 때문에 니르로르는 처치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빛을 사라지게 만들지 않았던가?

또한, 그를 죽이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한다고 했다.

그러니 죽여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 나 또한…….’

유리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인간아, 괜찮으냐?”

“네? 네, 괜찮아요.”

유리한이 애써 밝게 웃었다.

“어쨌든 여러모로 감사해요. 이제 화이트 드래곤들을 찾으러 나서야겠네요.”

“그건 내 딸이 알려줄 거다.”

그에 리아그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한은 그녀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는 아리아텐에게 말했다.

“아리아텐 님,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요?”

“부탁?”

“네, 제 동료인 요한과 니르로르를 보호해 주셨으면 해요.”

화이트 드래곤들이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 모를 일이나, 니르로르를 데리고 가면 안 된다는 감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러니 유리한은 니르로르를 두고 가기로 했다. 그의 보호자인 고요한도 함께 말이다.

아리아텐은 유리한의 부탁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생각 따위 없다. 하지만 너희가 돌아올 때까지 저 녀석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건 허락해 주도록 하지.”

어쨌든 보호해 준다는 뜻이었다.

유리한은 아리아텐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잘 부탁드릴게요.”

아리아텐은 못 들은 척, 멍하니 다른 곳을 쳐다봤다. 유리한은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린 후 고요한에게 말했다.

“요한, 니르로르를 부탁할게요.”

“네, 유리한 씨.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몸조심하고요.”

고요한이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는 얼굴을 보이면서도 미소를 그렸다.

유리한 역시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네, 요한. 다친 곳 없이 몸 성히 돌아올게요.”

“약속이에요.”

“네, 약속.”

유리한이 활짝 웃었다. 디에스 라고는 화기애애한 두 사람의 분위기가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에 고요한이 말했다.

“디에스 씨도 약속이에요.”

“약속은 무슨. 못 들은 것으로 하지.”

디에스 라고가 그렇게 말하고는 리아그에게 입을 열었다.

“이제 안내해 줬으면 하는데.”

“네, 그럼 두 분께 화이트 드래곤들이 모여 있는 동굴로 안내해 드리도록 할게요.”

리아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아리아텐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녀올게요, 어머니.”

아리아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곳만 쳐다볼 뿐이었다.

* * *

아리아텐의 동굴, 흔히 말해 드래곤 레어를 나온 리아그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를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네?”

유리한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아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에 서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께 상처를 드렸을까 봐요.”

“헉! 상처받지 않았어요! 저희가 얼마나 마음이 단단한데요! 그치, 디에스?”

“응? 아, 뭐, 그렇지.”

디에스 라고가 얼떨결에 대답하자 리아그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니 다행이에요.”

그 눈웃음을 유리한이 물끄러미 보았다.

“저기,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왜 그렇게 보시는지…….”

“아, 그게.”

유리한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실례되는 말인 것 같지만, 니르로르 녀석이랑 웃는 모습이 닮은 것 같아서요.”

그에 리아그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유리한은 황급히 사과했다.

“불쾌했다면 죄송해요!”

“아, 아니요, 전혀 불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오라버니와 닮은 구석이 있다니 기쁜걸요?”

“오라버니요?”

“네.”

리아그가 활짝 웃었다.

“제 오라버니는, 그러니까 니르로르는 저보다 먼저 알을 깨고 나온 형제거든요.”

리아그는 그렇게 말하며 재잘거렸다.

“물론, 제가 알을 깨고 나오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죽였다고 들었지만요. 하지만 아무래도 거짓말이었던 모양이에요.”

리아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 당시 블랙 드래곤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모두 오염돼서 이 땅을 분노하게 만들었거든요. 여러분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블랙 드래곤은 대지의 정령왕의 힘을 본받은 분들이어서요.”

그래서 그들이 날뛸수록 이 땅의 대지가 죽어간다면서 리아그는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레드 드래곤을 비롯한 모든 드래곤은 블랙 드래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럼, 니르로르와 당신의 아버지도.”

“네, 죽었죠.”

리아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어머니께서 직접 그 손으로 목숨을 거두셨다고 들었어요.”

그 말을 끝으로 그들 간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도착했어요.”

리아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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