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15)화 (115/235)

115화 

* * *

해가 저물고 있는 시간, 유시우는 디에스 라고의 등에 업혀 새근새근 잠든 상태였다.

“디에스, 괜찮아? 내가 안아도 되는데.”

“괜찮다, 유리. 시우가 무거운 것도 아니고 충분히 업을 수 있어.”

진짜 유시우가 무거웠다고 해도 디에스 라고는 아이를 업었을 거다.

“그래도 정 걱정되면 고요한 저 녀석한테 맡기도록 하지.”

“맡겨만 주신다면 기꺼이 시우 군을 업을게요.”

고요한이 방긋 웃었다.

디에스 라고는 단번에 얼굴을 찌푸렸다. 고요한의 신경을 긁고자 그런 말을 한 건데, 오히려 제 속이 긁힌 기분이었다.

그걸 알 리가 없는 유리한은 놀이공원 바깥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도웅 씨다! 도웅 씨!”

도웅이 유리한과 그녀의 일행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꾸벅였다.

유리한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자신들을 데리러 온 도웅에게 다가가 물었다.

“별일 없었죠?”

행복 머니뿐만 아니라 유서아, 그녀에게도 별일 없었냐는 질문이었다.

“네, 유리한 님은 시우와 즐겁게 노셨습니까?”

“보다시피요.”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의 등에 업혀 있는 유시우를 가리켰다. 도웅이 픽 웃고는 디에스 라고한테서 유시우를 안아 들었다.

“타십시오, 집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유리한은 고맙다면서 인사한 후 차에 올라탔다.

고요한과 디에스 라고가 뒷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니르로르는.

“야, 너 왜 갑자기 폴리모프를 푼 거야?”

앙증맞은 드래곤의 모습으로 앞좌석에 앉은 유리한의 무릎 위에 똬리를 틀었다.

- 차가 비좁지 않으냐?

그래서 폴리모프를 풀고 드래곤의 모습을 취했다는 거였다. 그편이 여유 있게 갈 수 있으니.

“뭐, 네가 알아서 해.”

유리한은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쳐다봤다.

고요한과 디에스 라고의 사이, 유시우가 세상모르고 쿨쿨 자고 있었다.

‘앞에 앉힐까?’

제 무릎을 차지하고 있는 니르로르는 뒤로 보내고,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애가 불편하겠지?’

하지만 유리한은 생각만 했다. 그런데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 어떻게 알았는지 유리한에게 말했다.

“시우는 걱정하지 마.”

“맞아요, 유리한 씨. 시우 군은 저희가 잘 보고 있을게요.”

“그럼, 부탁할게요.”

유리한이 싱긋 웃고는 안전띠를 맸다. 곧 도웅의 차가 매끄럽게 놀이공원을 빠져나갔다.

* * *

행복 머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시우 군을 깨우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시우는 저녁에 잠들면 다음 날이 되어서야 일어나거든요. 애가 잠이 많습니다.”

백상철이 고요한의 옆에서 감자를 깎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감자탕이었다.

유리한은 거실에 앉아 뉴스를 보는 중이었다. 튜토리얼이 이뤄지던 시기, 21C의 첨단 문물은 모두 작동을 하지 못했었다.

방송국이 무너지고, 전선이 파괴됐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튜토리얼이 끝난 지금, 그 모든 것이 복구됐으나 유리한은 문물의 이기를 제대로 누리기도 전에 탑으로 향했었다.

그러니 유리한은 탑에서 나와 있는 지금, 문명의 이기를 맘껏 누리는 중이이었다.

“유리한아, 이것을 보거라. 짐이 해냈도다.”

니르로르는 그 옆에서 달고나를 만들어 먹는 중이었다. 틀을 꾹 찍어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내자 유리한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

“맛있느니라.”

니르로르가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으며 달고나를 우물거렸다. 유리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그냥 설탕 과자잖아.”

거기에 식소다를 살짝 곁들인. 그 말에 니르로르가 두 눈을 부릅떴다.

“사과하거라.”

“뭐를?”

“달고나를 모욕한 것을.”

미친 드래곤 같으니라고.

유리한은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니르로르한테서 고개를 돌렸다. 니르로르가 어서 사과하지 않고 뭐 하냐고 그녀를 닦달했지만.

“네 달고나 내가 모조리 먹어 치우기 전에 조용히 해.”

유리한의 날 선 경고에 달고나에 환장한 드래곤은 입을 다물었다. 조용해진 거실에 뉴스 앵커의 목소리만 울리던 그때였다.

“유리.”

디에스 라고가 목에 수건을 두른 채 거실로 들어섰다.

“디에스, 대련은 다 끝났나 봐?”

“그래, 다들 형편없더군.”

유리한이 키득거렸다. 디에스 라고는 행복 머니 직원들의 부탁에 따라 그들과 대련을 가졌다.

한 수 가르쳐달라고 했던가?

디에스 라고는 그들과의 대련을 회상하며 말했다.

“쓸데없이 동작이 큰 건 물론, 하나같이 잡생각을 많이 하더군. 탑을 오르던 중 포기한 이유를 알겠어.”

분명 한계에 부딪혔을 거다. 그 한계를 부수고자, 뛰어넘고자 했을 테지만 쉽지 않았겠지.

그러니 탑을 나온 것이리라.

행복 머니 직원들을 향한 디에스 라고의 날카로운 평가에 유리한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래도 다들 시우를 위해 네게 대련을 부탁한 거잖아? 여기 있을 때 많이 봐줘.”

유리한이 봐달라는 건, 행복 머니 직원들의 성장이었다.

“당연히 봐줘야지. 우리가 없을 때 시우를 보호해야 하는 녀석들인데, 저렇게 약한 채로 놔둘 수는 없다.”

유리한은 조용히 행복 머니 직원들의 안위를 빌었다.

그러는 사이 저녁이 준비됐다.

“유리한 씨, 어서 오세요.”

유리한만을 찾는 고요한의 목소리에 디에스 라고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저 녀석, 요리에 흥미를 붙이는 것 같은데.”

불안했다. 그런다고 해도 고요한의 괴멸적인 요리 솜씨는 변함이 없을 터.

디에스 라고의 말에 유리한이 웃으며 답했다.

“뭐든 취미가 생기면 좋지.”

유리한은 그대로 니르로르한테서 달고나를 빼앗은 후 그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달고나는 저녁 먹고 먹어.”

“짐은 딱히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다만.”

“잔말 말고 그냥 먹어.”

니르로르는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어쨌든 그렇게 저녁 식사는 평화롭게 끝이 났다.

그리고 찾아온 밤.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요?”

“네, 주변 좀 둘러보고 올게요.”

“그럼, 같이…….”

가자고. 그 말을 내뱉으려던 고요한이 입을 다물었다.

유리한이 단순히 그런 이유로 밖을 나가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디에스 씨가 조용히 있는 거겠지.’

아니었다면 진작 함께 나가자고 몸을 일으켰을 테다.

“니르로르, 나가자.”

니르로르가 마뜩잖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심히 별 모양으로 달고나를 뽑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행복 머니의 사무실을 나섰다.

탁, 닫히는 문에 고요한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비 맞은 강아지도 아니고, 보기 싫으니 어깨 펴지 그래?”

“디에스 씨를 위해서 어깨를 펴고 싶지는 않은데요.”

“누가 나를 위해서 어깨를 펴라고 했나?”

디에스 라고가 보고 있던 TV를 끄고는 말했다.

“유리가 돌아와서 보면 분명 네게 미안해할 테니 그런 거다.”

그러시겠죠.

고요한은 차오르는 말을 겨우 집어삼켰다.

“디에스 씨는 유리한 씨가 왜 나가시는지 아세요?”

그것도 니르로르, 대놓고 싫어하는 용을 데리고서 말이다.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다는 어투였다.

사실,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유리한이 제게 목적지를 밝히지 않은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 디에스 라고는 기다리기로 했다. 탑을 오르는 동안, 유리한이 빌어먹을 용을 데리고 자리를 비켰던 이유를 말해주기를.

고요한은 그저 닫힌 현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 *

“유리한아.”

“왜.”

“밖으로 나온 이유가 무엇이냐? 우리가 있던 곳에서도 문을 열 수 있었을 텐데?”

유리한은 지금 행복 머니의 건물 옥상 위에 있었다. 니르로르의 질문에 유리한이 그를 보며 말했다.

“성장의 문을 열고자 밖으로 나온 건 아닌데?”

니르로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아니라면 왜 나와 단둘이 나온 것이냐?”

“애들 곁에 뒀으면 분명 싸웠을 테니까.”

디에스 라고랑 말이다. 행복 머니의 분위기가 살벌해지는 걸 유리한은 원하지 않았다.

“그럼, 다 같이 나왔으면 될 일 아니냐?”

“그러면 왜 그런 아이템을 사는 거냐고 물어봤을 테니까?”

묻지 않는다고 해도 신경을 쓸 게 분명했다. 니르로르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 아이템?”

“응, 살 게 있어서.”

유리한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달이 기우는 곳을 쳐다봤다.

“보자, 용산이 저쪽이니까…….”

몇 번 뛰면 금방 도착하려나?

잠깐 거리를 가늠해 보던 유리한이 씨익 웃었다.

“니르로르, 잘 따라올 수 있지?”

“당연한 말을 하는군. 앞장서도록 해라.”

“네이, 그럽죠.”

유리한이 픽 웃고는 건물 위를 자유자재로 뛰어넘기 시작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녀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때 ‘용산 전자 상가’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니르로르는 단번에 이곳이 유리한의 목적지임을 알아차렸다.

“어떤 아이템을 사러 왔느냐?”

“다섯 번째 문을 공략하는 데 꼭 필요한 아이템.”

전(電) 속성 저항 아이템이었다.

‘그게 있어야 다섯 번째 문을 공략할 수 있어.’

없어도 공략은 할 수 있을 거다. 다만, 목숨이 조금, 아니, 많이 위태로울 게 문제였다.

‘하필이면 뱀장어라서!’

엄밀히 말하면 다섯 번째 성장의 문을 지키고 있는 보스 몬스터는 뱀장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기를 내뿜는 긴 물고기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몬스터였다.

유리한이 뱀장어라면서 욕을 해댈 이유는 충분했다.

니르로르는 건물을 구경하다가 유리한에게 물었다.

“이곳에 네가 원하는 아이템이 있느냐?”

“아마도.”

애매모호한 대답에 니르로르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유리한은 말했다.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헌터 마켓이니까.”

그만큼 사기도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유리한은 니르로르를 데리고 왔다.

고르는 아이템이 진짜인지, 아님 가짜인지 확인을 할 수 있도록.

무기의 경우 내구도를 살펴보면 될 일이었지만, 속성 저항 아이템의 경우 유리한이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었다.

‘볼 수는 있지만, 아이템을 보는 눈이 그렇게 좋지는 않으니.’

잘못하면 호구 잡히기 십상이었다. 그 때문에 니르로르를 데리고 온 유리한은 척척 상가 안으로 향하며 말했다.

“일단, 갈 곳이 있어.”

탑을 오르기 전 방문했던 곳.

바로, ‘욜라(Oyla)’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