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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14)화 (114/235)

114화 

유리한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제가 빨리 사라져줬으면 좋겠나 봐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백상철이 기겁하며 외쳤다. 그 반응이 우스워 유리한은 키득거리며 말했다.

“장난이에요.”

그 장난 한 번에 백상철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유리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일주일 후에 돌아갈까 해요. 50층 이후로는 따로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탑을 오를 수 있으니까요.”

다만, 현재 최대로 오를 수 있는 층이 69층인 게 문제였다.

‘이 세계에 탑이 나타난 지 30년이 지났다고 하던데.’

그런데 아직 69층까지밖에 공략이 이뤄지지 못했다니.

‘다들 뭐 하고 있었던 거람?’

유리한의 생각을 다른 플레이어들이 들었더라면 꽤나 억울해했을 거다.

그들은 어쨌거나 목숨을 걸고 탑을 올랐기 때문이다. 유리한의 눈에 부족해 보인다는 게 문제였지.

어쨌거나 백상철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일주일 동안 휴식을 취할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유리한은 그간 고생한 몸을 편안하게 눕힐 생각이 없었다.

‘성장의 문을 이왕이면 최대한 많이 열고 가야지.’

일주일 후, 탑에 돌아가게 된다면 분명 여러 싸움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유리한은 그렇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부지런히 스탯 능력치를 올려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오늘은 푹 쉬려고요.”

유리한이 씨익 웃었다. 때를 맞춰 유시우가 졸린 눈을 비비며 유리한을 찾아왔다.

“고모오.”

유리한은 두 팔을 뻗어 조카를 안았다. 품에 꼭 안기는 작은 온기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유리한이 아이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추고는 물었다.

“시우야, 오늘 놀이공원 갈까?”

“놀이공원?”

“응, 가서 놀이 기구 타면서 신나게 노는 거야.”

그 말에 유시우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좋아요! 놀이공원 가고 싶어요! 고모랑 같이 놀고 싶어요!”

유시우는 단 한 번도 놀이공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저 TV를 통해 구경만 했을 뿐.

유리한은 활짝 웃으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좋아, 그럼 우리 시우가 형들을 좀 깨워볼까?”

“네!”

유시우가 또랑또랑 대답하고는 유리한의 품에서 내려갔다.

아이는 곧장 니르로르와 디에스 라고, 그리고 고요한이 머물고 있는 방을 열어젖혔다.

“요한 형! 아저씨들!”

고요한은 꼬박꼬박 ‘형’이라고 하면서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여전히 ‘아저씨’라고 부르는 유시우였다.

유시우는 우다다 그들한테 달려갔다.

“일어나요, 일어나! 시우 놀이공원 가야 한단 말이에요!”

아이는 세 남자의 위에서 한껏 뒹굴었다. 모처럼 편안하게 쉬고 있던 장정들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성을 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을 깨운 사람은 다름 아닌 유시우.

유리한의 조카였다.

고요한이 부스스한 머리칼을 정리하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시우 군, 무슨 일이에요? 어디를 가야 한다고요?”

“놀이공원이요!”

“놀이공원?”

고요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이공원’이라니, 가본 적도 없거니와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리한은 그것을 알고서 말했다.

“리스체가스에 있던 ‘은하의 언덕’ 같은 곳이라고 보면 돼요.”

일종의 관광지라는 말이었다. 유리한의 명쾌한 설명에 고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디에스 라고는 눈가를 꾹꾹 누르고는 유시우의 머리를 푹 눌렀다.

“유시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아이는 빨리 자고 늦게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유시우는 디에스 라고의 손길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고모랑 놀고 싶으니까 빨리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어서 일어나요!”

디에스 라고가 아이의 손에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남은 사람은.

“아저씨! 니르로르 아저씨! 일어나요!”

사람이 아닌, 드래곤인 니르로르였다.

용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시우가 시무룩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 때, 유리한이 말했다.

“가면 솜사탕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아주 다양하게.”

니르로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몸도 벌떡 일으켰다.

“가자꾸나, 유리한아.”

“머리부터 정리하지?”

니르로르가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대충 빗어 넘겼다. 유리한은 짧게 혀를 찼다.

도대체 그 누가 저 남자를 ‘니르로르’라고 생각할까?

‘그냥 할 일 없어 보이는 백수로 생각하지.’

유리한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시우야, 형들은 두고 이리 와. 너도 준비해야지.”

“네에!”

저보다 배는 큰 어른들을 성공적으로 깨운 유시우는 곧장 유리한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 * *

유리한이 조카와 함께 놀이공원에 도착한 건 점심 무렵이었다.

“자, 놀아 볼까!”

“네!”

유시우가 별 모양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맑게 외쳤다. 유리한의 눈 위에도 아이와 똑같은 것이 씌워져 있었다.

조카와의 나들이였다. 괜히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귀찮게 구는 건 사양이라는 말씀!

유리한은 조카의 손을 꼭 잡고는 아동용 놀이 기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 뒷모습에 디에스 라고가 픽 웃었다. 저도 모르게 나온 웃음이었다.

유리한이 저렇게 신이 난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으니까.

이 자리에 자신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고요한, 한눈팔지 마라.”

“한눈판 적 없어요.”

“거짓말하기는.”

고요한이 뚱한 얼굴을 보였다. 그에게 있어 놀이공원은 정말이지 신비한 장소였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것들이 곳곳에서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탑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

고요한은 디에스 라고의 눈치를 보며 주변을 구경했다.

디에스 라고가 니르로르의 행방을 묻지 않았더라면 고요한은 한 번 더 한눈을 팔았으리라.

“그 망할 용은?”

“글쎄요. 아, 저기 계시네요.”

니르로르는 솜사탕을 파는 상점 앞에 서 있었다.

“인간아, 죽기 싫으면 솜사탕을 내놓거라.”

“네?”

태연하게 협박을 가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디에스 라고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고요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야!!”

그때, 분명 조카의 손을 잡고 놀이 기구를 향해 달려갔던 유리한이 나타났다.

“아오, 이 망할 용…이 아니라! 하여튼!”

유리한이 니르로르의 뒤통수를 팍 눌렀다.

“죄송합니다! 얘가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요!”

“아, 넵.”

유리한은 상점 주인에게 사과한 후 니르로르의 머리채를 잡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유리한아, 아프다!”

“아프라고 하는 거야!”

유리한이 빼액 소리 질렀다.

“유리, 시우는?”

“놀이 기구 타는 중.”

유리한은 니르로르의 귀를 한 번 더 잡아당긴 뒤 그를 놓아줬다. 니르로르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짐을 이리 함부로 대하는 건 네 녀석뿐이다.”

“어쩌라고.”

유리한이 사납게 일갈하고는 몸을 돌렸다. 유시우가 놀이 기구에서 내려올 시간이 다 됐기 때문이다. 그 전에 아이한테 가야 했다.

‘사진!’

유리한은 제 부모가 입에 닳도록 하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다. 추억이 아무리 닳아 희미해져도 사진을 보면 다시 떠오르게 된다.

그 때문에 유리한은 도웅한테서 빌려 온 카메라로 적극적으로 아이를 찍기 시작했다.

놀이 기구를 타는 모습이나, 상점에서 기념품을 고르는 모습 등,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정작 제가 노는 건 뒷전이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유리한이 함께 온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웃는 낯으로, 심드렁한 얼굴로, 싫증 난 표정으로 자신을 뒤따르는 중이었다.

그들은 놀이공원에 도착한 후 쭉 자신만 쫓아다니고 있었다.

어린 조카와 함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자신을 말이다.

유리한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조심스레 그들에게 물었다.

“놀이 기구 같이 탈래?”

“우리는 괜찮다.”

디에스 라고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니르로르가 무엇이라 입을 열려고는 했다.

목소리를 내뱉기도 전에 디에스의 손아귀에 입이 틀어막혀서 문제였지.

유리한은 키득거리며 웃고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놀자. 애랑 어른이랑 탈 수 있는 놀이 기구가 있거든!”

모두 함께할 수 있는 놀이 기구. 그건 바로 회전목마였다.

디에스 라고가 휘황찬란하게 돌아가고 있는 목마를 보고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한눈에 봐도 그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는 했다.

“디에스, 가자.”

하지만 유리한이 같이 타자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디에스 라고는 묵묵히 그녀와 함께 몸을 실었다. 고요한과 니르로르도 함께였다.

플레이어 세 명과 드래곤 한 마리, 그리고 어린아이는 나란히 호박 마차에 앉았다.

“우와! 돌아간다!”

“시우야, 창밖으로 고개 내밀면 안 돼.”

“네에!”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한없이 맑았다. 유리한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아이의 얼굴에서 동생을 떠올렸다.

유지한도 놀이공원을 참 좋아했었다. 특히 회전목마를.

회전목마에 타면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라면서 아이는 까르르 웃어 댔었다.

“고모! 시우가 왕자님이 된 것 같아요!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아!”

그래, 그랬었다.

유리한은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미소를 그렸다.

“시우가 왕자님이면 고모는 뭐야? 공주님?”

아이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유시우는 곧 유리한을 보며 활짝 웃었다.

“왕비님이요!”

왕비는 공주보다 신분이 높다. 아이에게 유리한은 한없이 높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아이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유리한은 웃었다.

“왕비님이면 왕은 누구인데?”

유시우가 두 눈을 데굴 굴렸다. 아이의 시선이 곧 앞에 앉아있는 어른들에게로 향했다.

세 남자는 아니,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유시우의 대답을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유시우는 두 사람 중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다. 니르로르도 아니었다.

아이가 선택한 사람은.

“시우요! 시우가 왕이야!”

바로 자신이었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맥이 탁 풀려 헛웃음을 흘렸다. 아이는 그저 맑게 웃어댔다.

유리한이 유지한을 꼭 닮은 조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우리 시우는 왕자님이면서 왕인 거야?”

“네!”

참으로 아이다운 대답이었다.

어쨌거나 유리한은 지금 이 순간이 무척 행복했다.

몬스터라고는 나타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비록 하나뿐인 동생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의 딸은 병실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지만, 어쨌든 유리한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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