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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09)화 (109/235)

109화 

디에스 라고를 막기 위해 탑에 들어갈 수는 없다. 탑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주아라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입술을 파르르 떨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지한아.”

“네, 아라 누나.”

“너는 어떻게 힘을 보탤 생각이니?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 누나를 살릴 생각이냐고요?”

“응.”

주아라가 어색하게 웃었다. 유지한은 제 가슴 위에 한 손을 얹고는 입을 열었다.

“그거 아세요? 저는 누나와 같다는 것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역시 우리 누나와 똑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플레이어라는 거예요.”

유지한은 그 말과 함께 제가 가지고 있는 힘을 내보였다.

“누나가 세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을 때, 저는 플레이어로 각성했어요. 이 힘을 가지고요.”

주아라는 유지한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무한의 마력.

주아라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힘.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유지한을 바라보았다.

“도와줄게.”

“정말요?”

“응, 나도 유리를 보고 싶어.”

거짓말이었다.

주아라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유리한, 그녀의 이름을 온 세상이 잊어주는 것.

“그러니까 나도…….”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주아라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도 힘을 보탤게, 지한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지만 주아라는 그렇게 해서라도 유지한을 붙잡아야 했다.

유리한이 살아나기 전에, 아니, 그녀가 되살아날 수 없게 유지한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마력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구세주와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도와줄까?”

“누… 누구야, 당신!”

“밝힐 이름은 없어. 다만, 너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게.”

잔뜩 쉰 쇳소리, 하지만 상대는 틀림없이 남자였다.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어도 그것 하나만큼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주아라는 그를 경계했다.

그러나 남자는 달콤하게 주아라를 유혹했다.

“유지한, 그 아이의 힘을 가지고 싶잖아. 내가 가질 수 있게 도와줄게. 어때?”

유지한이 떠난 방, 남자는 그녀의 앞에 그렇게 나타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남자의 속삭임이었으나 주아라는 그 말에 경계를 풀고서 말했다.

“좋아.”

그렇게 유지한은 온몸의 마력이 꽁꽁 묶인 채 지하에 감금당하게 됐다.

그런 그를 오광의 사람들이 우리에 갇힌 동물을 보듯 구경했다.

만물의 마법사는 그의 마력의 사용법을 제공했고, 뮤즈의 백작은 그 정보를 자신이 취득해 이용했다.

청의 기사단은 힘에 대한 욕망으로 그를 봤으며, 천하태평의 무인은 끌끌 혀를 찼다.

그리고 혈맹의 맹주는…….

“영웅님의 동생분께서 가지고 있는 힘 말이야. 유전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응?”

끔찍한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곧장 여자를 데려와 유지한의 앞에 밀어 넣었다. 유지한은 거부했다.

혈맹의 맹주를 비롯한 여러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정체 모를 약을 그의 입속에 쏟아부었다.

그리하여 태어난 아이는 모두의 기대대로 무한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번 더 진행하죠.”

유지한은 빌었다. 제발, 그만해 달라고.

그에 주아라는 말했다.

“지한아, 한 번이면 돼. 이번 일만 끝내면 밖으로 내보내 주마. 네 아이도, 네 부인도.”

유지한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주아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또 다른 아이가 태어난 후, 주아라는 유지한의 앞에서 아이의 어머니를 치워버렸다.

“죽인 거예요? 아니죠, 아닌 거라고 해줘요. 그녀만이라도 밖으로 내보낸 거라고 해달라고요!”

“네 마음대로 생각하렴.”

실험이 진행될수록 주아라는 광기에 젖어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실험을 진행하면 무한의 마력을 내 손에 쥘 수 있다. 유리한, 그녀를 뛰어넘을 수 있어!

하지만 실험이 결실을 보기도 전에 유지한은 죽어버렸다. 주아라는 안타까워했다.

‘조금만 더 버텨줄 것이지!’

유지한, 그가 가지고 있는 무한의 마력을 손에 쥐지 못한 것에.

하지만 괜찮았다.

유지한의 아이. 유서아와 유시우가 남아 있었으니까.

분명 그랬는데, 아이들은 자신의 계획을 어떻게 알았는지 도망치고 말았다.

“젠장!”

주아라는 분노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엿보고 있는 유리한 역시…….

“하, 하하.”

분노했다.

* * *

망자의 아우성에서 벗어난 유리한은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정신력이 부족해 주아라의 기억에 사로잡힌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를 통해 내다본 기억에서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유리.”

“흑, 으윽…….”

“유리!”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의 어깨를 붙잡고는 강하게 흔들었다. 유리한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디…에스.”

유리한의 주위로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녀를 향해 어느새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던 니르로르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유리한아, 기운을 갈무리하거라. 그러지 않으면 네가 기절시킨 녀석들이 모두 죽고 말 거다.”

니르로르의 품에는 유시우가 안겨 있었다.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에게 유시우를 맡긴 탓이다.

어쨌거나 유리한은 말했다.

“죽으라고 해.”

유리한이 이를 으득 갈았다.

“그냥, 다… 죽으라고 해…….”

그녀는 실험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를 쳐다봤다. 그러다 곧 주아라를 발견하고는 창을 꺼내 쥐었다.

“유리!”

디에스 라고가 황급히 유리한을 붙잡았다.

“이것 놔, 디에스.”

“아니, 못 놔.”

디에스 라고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말했다.

“이미 죽은 녀석이다.”

“알아. 알지만!”

유리한이 이를 으득 갈았다.

“몇 번이고 죽이고 싶어서 그래. 몇 번이고 저 시체를 갈가리 찢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내뱉는 목소리의 끝이 갈라졌다.

유리한의 목소리가 실험실을 메아리쳐 울리더니, 뚝뚝, 그녀의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유리.”

디에스 라고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그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유리한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흐느꼈다.

“주아라는 내 힘이 탐이 났대. 그 못지않게 내가 미웠대. 그래서 지한이를 그렇게 만든 거래. 이해돼?”

디에스 라고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유리한은 하하, 신경질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디에스 너도 이해가 안 되지? 나도 이해가 안 돼.”

유리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힘이 그렇게 탐이 났으면 말하지! 어떻게든 이 힘을 나눠주려고 했을 텐데!”

내 배를 갈라서라도, 내 피를 모조리 뽑아내서라도!

“모두 다 나눠줬을 텐데!”

유리한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파묻었다.

“끔찍해, 끔찍하다고.”

유지한,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이 그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한 자신이.

주아라를 비롯한 모두를 믿고서 세상을 위해 스스로를 내던졌던 자신이.

“…모두 끔찍해.”

유리한은 디에스 라고의 품에서 한없이 흐느꼈다. 그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조심스레 그녀의 등을 토닥여 줬다.

유리한이 눈물을 멈춘 것은 니르로르의 품에 안겨 있던 조카가 깨어났을 때였다.

“고모……?”

유시우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유리한을 향해 허겁지겁 두 손을 뻗었다.

“고모오!”

“시우야.”

“흐아아앙! 고모! 고모오!!”

“괜찮아, 시유야. 이제 다 괜찮아. 고모가 왔잖아.”

유리한이 니르로르한테서 유시우를 안아 들고는 아이를 달랬다.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아이의 뺨에 짧게 입을 맞추며, 유리한은 아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유시우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눈물을 그치고는 잠이 들었다.

“아이란 참 시끄러운 존재군.”

유리한이 니르로르를 향해 그 입 닥치라는 시선을 보냈다. 니르로르는 입술을 한 번 씰룩였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유리,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글쎄.”

유리한이 아수라장이 된 실험실을 한 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지하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게 사건 덮기 쉽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빽 지르는 목소리에 유리한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었다.

“아, 당신이 있었죠.”

경호실장이 이미 숨이 끊어진 주아라를 품에 안고서 씩씩거렸다.

“용서치 않을 겁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인데?”

유리한이 비딱하게 웃었다.

“내가 주아라의 기억에서 당신도 봤거든.”

주아라의 곁을 묵묵하게 지키고 있던 경호실장. 그는 유지한이 실험으로 인해 몸부림치는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봤었다.

“살려주는 걸 감사하게 여기도록 해요. 마음 같아서는 너희 모두 죽이고 싶은 걸 참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유리한은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다들 꺼져. 정신 차린 것 알고 있으니까. 아, 그전에 먼저.”

유리한이 검지를 들어 입술 위에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이곳에 있었던 일은 모두 함구해야 하는 거 알지?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명령을 어긴 부하는 죽기 마련.

유리한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만에 하나, 오늘의 일이 언론에 퍼진다거나 그러면 너희 모두를 끝까지 쫓아가 죽여버릴 거야.”

실험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숨을 죽이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유리한의 눈치를 살피다가 몸을 틀어 자리를 벗어났다.

“위협만 해도 되는 것이냐?”

차라리 맹약을 거는 게 낫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유리한은 니르로르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플레이어란 존재는 강자에게 바짝 엎드려 기기 마련이거든. 저 녀석들이 주아라랑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한 이야기를 함부로 퍼트리지는 않을 거야.”

“퍼트린다면?”

“그때는 가서 죽여야지.”

마침, 집 앞 슈퍼에 간다고 하는 것처럼 태연한 목소리였다.

“다시 한번만 더 시우를 건드려도 마찬가지야.”

유리한이 제 품에서 잠든 유시우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상대가 누구더라도 기필코 죽여버리고 말겠어.”

그 말을 끝으로 유리한은 실험실을 벗어났다.

실험실에 남은 사람은 오직 한 명뿐. 주아라의 시체에서 곁을 떠나지 않는 경호실장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유리한은 지하를 벗어나기 무섭게 곧장 그곳을 폭파시켜 버렸다.

우르르, 무너져내리는 흙더미를 말없이 응시하던 유리한은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 니르로르는 곧장 그녀의 뒤를 따랐다.

디에스 라고는 희뿌옇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한 번 쳐다보고는 유리한의 뒤를 따랐다.

옛 인연과의 완전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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