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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79)화 (79/235)

79화 

【 12. 청예신 】

유리한과 청예신이 서로의 강함을 경계하고 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연회장에 내려왔던 엘던스 테레시는 당황해하는 중이었다.

“단장님이 43층에 내려오신다고 한 적 없지?”

“네, 없습니다.”

보좌간 역시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엘던스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유리한 님을 만나려고 내려오신 건가?’

그렇다고 해도 자신에게 알렸을 거다.

부단장인 라이 에스페란도라면 몰라도, 청예신은 저로 인해 아랫사람이 곤란해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렇게 43층에 찾아올 리가 없었다.

엘던스 테레시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청예신이 그를 발견하고는 유리한에게 양해를 구했다.

“유리한 님, 나중에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유리한이 방긋 웃었다. 청예신은 그에 미소를 살짝 그러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엘던스.”

엘던스 테레시가 황급히 청예신에게 경례했다.

“다, 단장님을 뵙습니다!”

“그래, 43층을 잘 꾸려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

청예신이 주변에 몰린 시선을 살펴보고는 엘던스에게 말했다.

“연회 중에 미안하지만 잠깐 나랑 시간 좀 보낼 수 있을까?”

순간, 엘던스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빈민가에 있었던 일 때문은 아니겠지?’

빈민가에서 일어났던 참상은 아직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다. 엘던스가 불안하게 두 눈을 굴렀지만.

“당연히 보내야지요!”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그야, 눈앞의 여자는 청예신.

청의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단장으로 엘던스 테레시에게는 가장 윗사람 되는 인물이었다.

엘던스의 대답에 청예신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좋아, 엘던스. 그럼, 유리한 님.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연회장을 벗어났다. 유리한이 두 사람이 떠난 자리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단장님께서 이렇게 나타나실 줄은 몰랐는데.”

그 말을 뒤이어 고요한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제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일 줄은 몰랐다.

‘아, 내 또래라고 하면 실례지?’

주민등록상의 유리한은 0X년생, 50대에 접어든 나이였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

어차피 외견은 또래로 보였으니 말이다.

유리한은 좋을 대로 생각하자며 주민등록상에 기록되어 있는 제 나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유리, 청의 기사단 단장은 그만 생각하고 일단 연회를 즐기는 게 어떻겠나?”

“맞아요, 유리한 씨. 술래잡기를 진행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피곤하실 거 아니에요? 물어보니까 따로 쉴 방도 마련해 놓았다고 하더라고요.”

체력적으로 많이 피곤하기는 개뿔, 유리한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기꺼이 고요한의 걱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았어요, 요한. 피곤하다 싶으면 방에 들어가서 쉴게요.”

고요한이 옅게 미소를 그렸다.

- 더벅머리 인간아, 솜사탕은 없느냐? 솜사탕을 다오.

니르로르는 이미 연회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유리한이 솜사탕을 찾아대고 있는 니르로르의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

“야, 망할 용용아. 인간으로 폴리모프나 뭐 그런 거 못해?”

- 짐은 망할 용용이가 아니라 위대한 드래곤, 니르로르다.

“그래서, 뭐.”

- 인간으로 폴리모프하는 것 따위 짐에게 아주 식은 죽 먹기라는 거다, 유리한아.

“그럼 인간으로 폴리모프 좀 해봐. 너 때문에 시선이 끌리고 있잖아.”

니르로르는 순간, 그 시선들은 자신이 아니라 너한테 향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인간으로 폴리모프하면 솜사탕 구해줄게.”

유리한의 말에 조용히 인간으로 폴리모프했다.

“됐느냐, 유리한아?”

니르로르의 온몸을 감쌌던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유리한이 연기가 걷힌 후 드러난 니르로르를 보고는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왜 하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한 거야?”

“훗, 인간의 동정심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저보다 어린 상대에게 약해지는 면모가 있지 않느냐.”

“그런가?”

확실히 그런 사람이 많기는 했다. 유리한 역시 그랬고. 하지만 유리한은 제 앞의 아이에게만큼은 예외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야, 제 앞에서 당당하게 서있는 어린아이는 니르로르였으니까 말이다.

“자, 그럼 유리한아.”

니르로르가 유리한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제 솜사탕을 내놓거라.”

누가 보면 나한테 솜사탕 맡겨놓은 줄 알겠네.

유리한이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니르로르는 어서 솜사탕을 내놓으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린아이로 변하더니 사고도 어린아이가 된 건가?’

유리한이 한숨을 내쉬고는 연회장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던 청의 기사단원을 불렀다.

“저기요.”

“네, 넵?”

“혹시 여기에 솜사탕 있나요? 없다면 하나 구해와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유리한을 알아본 청의 기사단원이 황급히 고개 숙인 후 자리를 떠났다.

“유리, 저 망할 드래곤의 말을 너무 들어주지 마라.”

“응?”

“버릇 나빠지니까 말이다.”

그에 니르로르가 이를 드러냈다.

“어두침침한 인간아, 짐이 정말 애인 줄 아느냐?”

그때였다.

“니르로르 씨, 여기요.”

고요한이 니르로르에게 솜사탕을 건네줬다. 유리한의 부탁에 자리를 떠났던 청의 기사단원이 기어코 솜사탕을 찾아온 거였다.

니르로르는 해맑게 웃으며 솜사탕을 먹기 시작했다. 유리한이 그 모습을 보고서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애 취급하지 말라고 하더니.”

하는 짓은 아이나 다름없었다.

그 소리를 또 어떻게 들었는지 니르로르가 눈을 부라렸다.

“유리한아, 짐을 애 취급하지 말라고 했느니라!”

“애 취급당하고 싶지 않으면 그 얼굴 좀 어떻게 하지 그래?”

유리한은 곧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됐느냐, 유리한아?”

아이의 모습을 취하고 있던 니르로르가 순식간에 어른의 모습을 하고서 유리한의 코앞에 다가온 탓이다.

유리한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입가에 닿는 솜사탕에 황급히 손을 들어 니르로르를 밀어내 버렸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니르로르가 꼴사납게 넘어져 버렸다.

“까, 깜짝이야! 놀랐잖아!!”

“내가 뭐 어쨌다고 그러느냐!”

니르로르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 하지만 니르로르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유리한 씨, 괜찮으세요?”

“유리, 손 닦아라.”

고요한이 니르로르를 밀친 유리한의 손을 살폈고, 디에스 라고는 유리한에게 물티슈를 건네줬다.

“빌어먹을 인간들아, 걱정할 대상이 잘못된 것 같으니라.”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유리한은 디에스 라고가 건네준 물티슈로 손을 슥슥 닦았다. 니르로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도 애 취급을 해대기에 어른의 모습으로 바꿨더니!

“뭐야, 그 눈빛은?”

“뭐겠느냐, 유리한아! 불만과 항의의 표시이니라!”

“어이쿠, 그러세요?”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꼭 저를 비웃는 듯한 웃음에 니르로르가 이를 드러냈다.

“유리한아, 봐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이 이상 짐을 화나게 하지 말도록 하거라.”

“나한테 한 번 죽었던 용용이가 잘도 말하네?”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니르로르는 당장에라도 유리한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많이 약해졌다고 해도 탑 밖의 세계를 멸망으로 밀어 넣었던 몸.

니르로르가 유리한 몰래 제 힘을 끌어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저… 유리한 님?”

엘던스 테레시와 함께 자리를 피했던 청예신이 그를 데리고 돌아왔다.

청예신이 험악한 분위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유리한에게 물었다.

“대화를 잠깐 나누고자 찾아왔는데 타이밍이 좀 그럴까요?”

“아니요, 잘 찾아왔어요.”

유리한이 활짝 웃으며 청예신을 반겼다.

“따로 자리를 가지는 게 좋을까요, 청예신 님?”

“그렇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구시대의 영웅님께 ‘님’ 자 소리를 들으니 좀 그렇네요.”

“그러시다면야.”

유리한이 곧바로 말을 고쳤다.

“저랑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43층에 내려온 걸까요, 언니?”

언니라니.

청예신이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자신이 아무리 편하게 불러달라고 했다 해도 ‘언니’라니.

‘뭐, 상관없나.’

청예신은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엘던스, 유리한 님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있을까?”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엘던스가 고개를 꾸벅였다. 유리한은 청예신과 함께 자리를 떠나기 전 디에스 라고에게 말했다.

“디에스, 요한이랑 여기 있어. 저 용용이 감시하고.”

“그래.”

디에스 라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니르로르는 불퉁한 얼굴로 유리한을 쳐다봤다.

유리한의 말이 꼭 저를 사고뭉치 취급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리한은 청예신과 함께 연회장을 떠났다.

엘던스가 두 사람에게 안내해 준 곳은 인적 드문 후원이었다.

“43층에서만 피어나는 꽃인가 봐? 후원 잘 가꿨네, 엘던스.”

청예신의 칭찬에 엘던스가 싱글벙글 웃었다. 청예신 역시 웃는 낯을 보였다.

“어떤가요, 유리한 님? 마음에 드시나요?”

“대화 장소로는 화려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네요.”

청예신이 다행이라며 싱긋 웃었다. 유리한은 그녀가 참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유리한 님, 혹시 44층을 지배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청예신의 얼굴에 걸려있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리한은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곳이라니?

“44층을 지배하고 있는 건 탑의 주민이 아닌가요?”

T-Network를 통해 관련 정보는 진작 파악한 유리한이었다. 청예신이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그 뒤를 조종하고 있는 비선 실세가 있다고 하더군요.”

“비선 실세요?”

유리한이 시사 뉴스에서 들을 법한 단어에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탑도 사람 사는 곳이니 진흙탕 정치질이 일어나고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만물이요.”

그 진흙탕 정치질을 행하고 있는 게 오광 중 하나, 만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물(萬物).

난데없이 등장한 이름에 유리한이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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