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하하! 아하하하!”
공간을 뒤덮은 어둠은, 마치 불꽃처럼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토 하루나가 미치광이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로 방대한 마력이라니! 멋져요, 정말 멋지다고요!!”
어둠 속에 서있는 사람은 사토 하루나만이 아니었다.
유리한.
얼굴 밖으로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고 있지 않은 그녀가 사토 하루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토 하루나가 닿는 시선에 히죽거렸다.
“영웅님께서 진귀한 광경을 보여주셨으니 저도 힘내야겠죠? 명색이 마법사인데, 후배 된 사람으로 힘내야죠!”
“나는 마법사가 아니야.”
“알아요. 하지만 플레이어로서 제가 영웅님의 후배인 건 맞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유리한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사토 하루나도 그녀에게서 대답이 나올 거라 기대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뭐, 이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가진 분께서 마법사가 아니란 게 참 아이러니하지만요!”
저 혼자 저리 나불댔으니 말이다. 유리한의 주변으로 금색의 마법진이 번쩍였다.
사토 하루나가 히죽거렸다.
“익스플로전(Explosion)!”
사토 하루나의 외침과 동시에 유리한이 있던 곳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익스플로전.
지정한 곳에 큰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이었다.
희뿌옇게 피어오른 연기에 사토 하루나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크흑……!”
형체를 띤 그림자가 사토 하루나의 온몸을 결박해 버린 탓이다.
“힘을 좀 더 내야겠네.”
연기가 걷히고, 유리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다만, 머리칼이 살짝 흐트러졌을 뿐이다.
유리한이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안 그러면 죽을 거야, 너.”
그러지 않아도 죽을 거다.
아니, 죽일 거다.
드러난 감정 없이, 무심한 얼굴이었던 유리한의 두 눈에 분노가 깃들었다.
사토 하루나가 그런 유리한을 보며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죽는 것도 좋죠! 그것도 영웅님의 손에 죽을 수 있다니!!”
사토 하루나가 황홀한 꿈을 꾸듯 키득거렸다.
“이보다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 어디 있겠어요?!”
“영광이라.”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것 같네.”
그녀는 사토 하루나에게 한 걸음 다가가서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내 손으로 죽여준대?”
“끄흑……!”
그림자 하나가 사토 하루나의 목을 강하게 옥죄었다. 그에 맞춰, 사토 하루나를 결박하고 있던 그림자도 팽팽하게 당겨졌다.
사토 하루나의 모습은, 그래. 거열형을 당하기 직전의 죄인처럼 보였다.
유리한이 사토 하루나를 보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먼저 지한이를 들먹인 그 더러운 입을 찢어버릴 거야. 말했든, 네 입을 찢어버리는 건 내 손이 아니야.”
사토 하루나의 얼굴 위로 어둠이 휘감겼다.
“내 그림자지.”
어둠 속에 갇힌 사토 하루나가 제 입이 찢기는 감각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리한은 평온했다.
그녀는 들려오는 사토 하루나의 비명이, 카페에 깔린 배경음이라도 된 듯 무심하게 말했다.
“그다음은 지한이를 이용해 실험을 가한 네 빌어먹을 손을 뜯어버릴 거고.”
촤아악―!
사토 하루나의 손목을 결박 중이었던 그림자가 조이고 있던 것을 그대로 뜯어버렸다.
사토 하루나는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얼굴 위를 휘감고 있던 그림자는 사라진 지 오래.
사토 하루나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사토 하루나는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유리한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유리한이 무릎을 굽혀 앉아 사토 하루나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좋아라하며 나불거리던 그 혀를 뽑아버릴 거야.”
너덜해진 사토 하루나의 입술이 움직였다. 살짝 올라간 끝. 그건 분명 미소였다.
그러니까 사토 하루나는 지금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유리한이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실소했다.
“너도 참,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긴, 그러니까 그랬겠지.”
유리한이 키득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이 분노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미쳤으니까 내 동생을 그딴 식으로 다뤘겠지!”
성난 목소리와 함께 사토 하루나의 온몸이 어둠에 휩싸였다.
사토 하루나를 휘감은 것이 회오리치며 그녀의 온몸을 갈가리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사토 하루나를 감싼 어둠의 기세가 거세질수록 유리한의 호흡은 가빠졌다.
그럼에도 유리한은 말했다.
“더, 더 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가리 찢어버려. 지한이가 고통받은 만큼, 저 빌어먹을 마법사에게도 고통을 줘.
이성은 그러면 안 된다고, 사토 하루나에게서 알아낼 정보가 있지 않느냐고 그만 멈추라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계속해!”
분노로 잠식된 머릿속이 이성을 거부하고 있었다.
사토 하루나에게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진작 숨이 끊어진 듯 보였다.
하지만 유리한은 비명을 지르듯, 사토 하루나의 온몸을 갈가리 찢어버리라며 몇 번이고 외쳤다.
그 입을 막은 건, 유리한의 얼굴을 덮어버릴 정도의 커다란 손이었다.
“그만.”
“……!”
유리한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나지막하게 닿은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이상 짐의 힘을 사용하면 그 힘에 잡아먹히고 말 거다.”
니르로르.
죽이지 못해 데리고 있는 빌어먹을 드래곤.
유리한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니르로르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고는 말했다.
“상관없잖아.”
남자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유리한은 히죽거리며 니르로르에게 물었다.
“오히려 더 좋지 않아?”
끝에 실린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유리한이 웃음을 터트리며 니르로르에게 말했다.
“내가 이대로 죽어버리면 자유의 몸이 되는 거잖아. 그런데 왜 막으려고 해? 왜? 왜!!”
내 동생을 가지고 장난친, 저 빌어먹을 여자를 죽이려는 것을 왜 방해하느냐고, 유리한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 빌어먹을 여자는 죽은 지 오래인데도.
니르로르는 말없이 유리한을 바라보았다.
제게 닿은 목소리들은, 평소의 유리한이라면 절대로 내뱉지 않을 말들이었다.
‘분노에 눈이 완전히 멀어버렸군. 하여튼 인간이란 족속들은.’
감정에 너무 쉽게 지배돼서 문제였다. 눈앞의 여자는 조금 다를 줄 알았더니…….
‘뭐, 답지 않게 흥분한 모습이라니 보는 재미가 있기는 하군.’
하지만 말려야 했다.
니르로르가 유리한과 같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한 손을 주먹 쥐었다.
그러고는.
“허억……!”
유리한의 명치에 정확히 주먹을 꽂아 넣었다. 쿨럭, 작게 기침을 터트린 유리한의 몸이 힘없이 늘어졌다. 니르로르가 그 몸을 받아 들며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잠깐 눈 좀 붙여라, 유리한.”
처음으로 망할 드래곤한테서 이름이 불렸으나, 유리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망할… 드래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욕설을 내뱉을 뿐이었다. 저를 욕하는 소리에 니르로르가 작게 웃었다.
유리한의 의식이 그렇게 완전히 끊기자, 무섭게 휘몰아치던 어둠이 순식간에 걷혔다.
니르로르는 유리한을 짐짝 들듯 옆구리에 꼈다.
그의 붉은 눈에 처참하게 찢긴 시체가 잠깐 담겼다. 니르로르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보듯 그것을 보고는 그대로 유리한을 데리고서 몸을 돌렸다.
“유리한 씨……!”
고요한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니르로르는 그의 앞에 유리한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치료해라, 하늘 머리 인간아.”
고요한이 유리한을 살피며 말을 더듬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중에 묻고, 일단 치료부터 해라.”
유리한은 엉망이었다.
할퀴고 긁힌 상처가 얼굴뿐만이 아니라 온몸에 가득했다.
유리한이 일으킨 어둠은, 사토 하루나만이 아니라 유리한에게도 상처를 입혔었다.
분노에 이성이 날아가 버렸던 유리한,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이었다.
고요한이 유리한의 상처를 치료하며 조심스럽게 니르로르에게 물었다.
“유리한 씨는 괜찮은 겁니까?”
니르로르가 심드렁한 얼굴로 답해주었다.
“네가 제대로 치료만 한다면 괜찮을 거다. 악몽은 꾸겠지만.”
악몽이라니!
고요한이 입술을 꾹 깨물던 순간이었다.
“유리?”
디에스 라고가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그는 밤을 뒤덮어 버린 어둠의 흔적을 쫓아 태양교의 신전에 들어선 참이었다.
그런데 유리한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녀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왜…….”
라는 의문도 잠시, 디에스 라고는 곧장 검을 치켜들었다.
유리한의 옆에 서있는 검은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에 니르로르가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바꿨다.
펑! 소리와 함께 앙증맞은 날개를 가진 새끼 드래곤으로 돌아온 것이다.
니르로르가 고요한의 머리 위에 앉고는 말했다.
- 인간아, 네가 짐을 싫어한다는 것쯤은 안다.
디에스 라고가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싫어만 하겠나? 나는 너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
- 어련하시겠지. 하지만 인간아. 나를 죽이면 곤란해지는 건 유리한이다. 그래도 죽이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유리한.
망할 드래곤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디에스 라고는 결국 검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리한……?”
디에스 라고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저 빌어먹을 파충류가 이름을 부르다니? 그것도 유리의?
분명 심경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
“이봐, 너!”
니르로르는 디에스 라고의 성난 목소리를 무시했다. 대신 고개 숙여 고요한에게 물었다.
- 하늘 머리 인간아, 유리한의 치료는 다 끝냈느냐?
“네? 네, 하지만…….”
치료가 다 끝났음에도 유리한의 두 눈은 꼭 감겨있었다.
니르로르가 고요한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유리한의 뺨을 앞발로 꾹꾹 눌렀다.
- 정신을 차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다. 하지만 곤란하군. 계속 이렇게 눕혀둘 수는 없으니.
니르로르의 시선이 디에스 라고에게로 향했다.
고요한은 몸을 추슬렀다고 하나 아직 환자인 몸이었다.
더욱이 희게 질린 얼굴이, 유리한과 함께 쓰러져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디에스 라고는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내뱉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유리한을 안아 드는 손길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