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이 망할 용!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유리한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기껏 무기점에서 플렉스 좀 하려고 했더니!
빌어먹을 파충류 때문에 계획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유리, 아무래도 이곳에는 없는 것 같은데.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나?”
아니면 아예 버려도 좋고.
디에스 라고가 치미는 말을 집어삼켰다. 아무리 둘러봐도 드래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고요한이 연신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그래도 더 찾아보죠.”
“맞아, 디에스. 조금만 더 찾아보자.”
유리한과 그녀의 일행들이 있는 곳은 허름한 판자촌이 즐비한 빈민가였다.
처음, 니르로르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게 된 유리한은 공황에 빠졌었다.
43층은 9층의 리스체가스와 비슷한 환경이었으나, 그곳보다 비교도 안 되게 넓은 도시였다.
그런 도시에서 작은 용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다행히도 유리한은 종속 관계로 맺어진 니르로르의 기운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운을 따라 도착한 곳이 바라 이곳, 빈민가였다.
유리한이 신경질적으로 뒷목을 꾹꾹 누르며 구시렁거렸다.
“진짜 찾기만 해봐.”
그 동그란 이마에 딱밤을 때려줄 테다!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어느새 주변에는 빈민가 아이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등장해 신기한 모양이지.
유리한이 아이들에게 망할 용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니르로르를 찾고 있던 고요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델라이어 주교님?”
“요한?”
하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고요한에게 다가왔다.
“세상에, 요한! 플레이어가 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요?”
여자는 그대로 고요한의 손을 잡고서 붕붕 흔들었다.
“잘 지내셨나요, 요한? 아픈 곳은 없고요? 하긴, 없겠죠. 요한은 태양의 완전한 축복을 받은 몸이시니까!”
다른 태양교의 사제들과는 다르게, 해가 뜨지 않은 밤에도 힐을 시전할 수 있는 고요한의 능력을 칭찬하는 말이었다.
고요한이 미소를 그렸다.
“네, 좋은 분을 만나 잘 지냈답니다. 에델라이어 주교님께서는요?”
“저 역시 보다시피.”
에델라이어가 활짝 웃는 찰나, 빈민가 아이들이 그녀에게 뛰어왔다.
“에델라이어 주교님!”
“언제 돌아오셨어요, 주교님?”
“주교님, 보고 싶었어요!”
에델라이어 주교가 아이들을 한 품에 끌어안고는 방긋 웃었다.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고 있답니다. 옆에 계신 분께서 그 좋은 분인가 봐요?”
“이분 말고, 이분이요.”
고요한의 말에 따라 에델라이어의 시선이 디에스 라고한테서 유리한에게로 이동했다.
유리한이 고개를 살짝 꾸벅였고, 고요한이 그런 그녀에게 에델라이어를 소개해 줬다.
“유리한 씨, 태양교의 제2위(位) 주교님이신 에델라이어 주교님이세요.”
“제2위(位)가 아니라 이제 제1위(位)의 주교랍니다, 요한.”
“네?”
“리프탄 라올 대주교님께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고 마셨거든요. 모르셨나 보군요?”
“그런…….”
요한, 연기 잘하네.
리프탄 라올의 죽음을 눈앞에서 봤으면서, 새삼스러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구는 고요한이었다.
디에스 라고가 뻔뻔하기 그지없는 고요한의 모습에 눈가를 찡그렸다.
‘무서운 놈.’
고요한은 여상하게 웃는 낯으로 에델라이어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대주교님께서는 요바네스 한나 주교님이시겠네요?”
“그런 셈이죠. 그보다 빈민가까지 무슨 일인가요, 요한? 보아하니 곤란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말이에요.”
“아.”
고요한이 잘됐다는 듯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혹시 날개 달린 거대한 파충류를 보신 적 없나요, 주교님?”
“날개 달린 거대한 파충류요?”
에델라이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충류면 그냥 파충류지, 날개 달린 건 또 뭐란 말인가?
제대로 된 명칭을 소개해 준 건 유리한이었다.
“드래곤을 말하는 거예요.”
“아아, 드래곤……!”
에델라이어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본 적 없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구체적인 생김새를 알려주시지 않겠어요?”
묘하게 들뜬 목소리였다.
그걸 알아차린 사람은 유리한뿐이었다. 고요한은 에델라이어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줄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겼냐면…….”
“괜찮아요, 에델라이어 주교님.”
그런 그의 목소리를 유리한이 막았다. 유리한은 싱긋 웃으며 에델라이어의 친절에 사양을 표했다.
“지금 막 찾은 것 같거든요. 도와주시려던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가요, 요한. 디에스도 잘 따라오고.”
유리한은 그대로 고요한과 디에스 라고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유리한 씨?”
어딘지 모르게 일부러 자리를 피한 느낌이었다. 유리한이 웃음을 지으며 고요한에게 물었다.
“요한, 저 에델라이어 주교라는 사람은 어떤 분인가요?”
“친절하신 분이세요. 태양교 내에서도 따르는 사제들이 많았고요. 지금은 보다시피 43층의 빈민가에서 봉사활동 중이시죠.”
에델라이어 주교는 자신이 태양교에 몸을 담고 있을 때에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자신을 대해준 사람이었다.
고요한의 설명에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흐음.”
드래곤을 거론했을 때, 에델라이어가 보인 미묘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묘하게 들뜬 것 같던 목소리와.
‘탐욕스러운 눈빛이었지.’
마치, 자신들이 찾고 있는 드래곤을 손에 넣고 싶다는 욕망이 언뜻 보인 것 같았다.
그렇기에 고요한의 말을 가로막고 자리를 비켰던 것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유리, 그 망할 드래곤이 어디 있는지 안다는 말은 사실인가?”
“응.”
유리한이 방긋 웃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있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빈민가 아이들의 손에 잡혀 장난감처럼 다뤄지고 있는 니르로르가 있었다.
- 인간아!
니르로르가 유리한을 발견하고는 울부짖었다.
- 인간아, 살려다오!
유리한은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저 망할 용이 도대체 저기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 * *
“한 번만 더 제멋대로 굴면 목줄을 채워버릴 줄 알아! 니르로르!”
빈민가 아이들의 손에서 니르로르를 구해낸 유리한이 소리 질렀다. 니르로르는 입술을 씰룩였다.
- 감히 짐에게 목줄을 채우겠다니. 취향 한번 고약하구나, 인간.
“수갑을 채우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 이 빌어먹을 용아.”
구해달라며 울부짖던 모습은 어디 가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새끼 드래곤이었다.
고요한의 뒤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조금 난센스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몸을 숨기기에는 디에스 라고가 더 좋았지만 니르로르와 그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도 디에스 라고는 언짢은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며 니르로르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니르로르가 고요한의 뒤에서 열심히 날갯짓하며 말했다.
- 짐은 아무 잘못도 없다. 잘못이 있다면 네게 있겠지.
“내가 뭐.”
- 짐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 짐이 솜사탕을 받으러 간 줄도 모르고 말이다.
유리한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잃어버렸나? 자기가 제멋대로 사라졌었으면서! 그보다 뭐? 솜사탕?
“고작 그거 때문에 멋대로 돌아다닌 거였어?!”
- 고작 그거 때문이라니!
저 망할 인간이 하루에 세 번씩 솜사탕을 사줬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니르로르가 분한 얼굴로 씩씩거렸다.
- 그러게 짐에게 제때제때 솜사탕을 바치지 그랬나! 그리고 짐은 네 기운을 따라 이곳에 온 것뿐이었다!
“내 기운?”
- 그래.
니르로르가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신이 잘못한 거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태도였다.
- 짐은 이곳에서 네 기운을 느꼈다. 다시 보니 착각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네 기운이었던 건 틀림없다.
유리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착각했던 것 같다며?”
그래놓고 내 기운이었던 게 틀림없다니? 저 망할 용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유리한이 보내는 의문에 니르로르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 그러니까 나를 죽였을 때의 네 기운과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 짐의 종이 이렇게 아둔해서야.
“뭐래. 네가 내 종인 거겠지.”
- 짐은 네 선생이다.
“그래서 내가 네 종이라고?”
- 그렇다.
얼씨구?
유리한이 기가 차 헛웃음을 터트렸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디에스 라고 역시 기가 찼다.
저 망할 새끼 드래곤이 지금 누구를 보고 자신의 종이라고 한단 말인가?
‘어이가 없군.’
마음 같아서는 주제도 모르고 나불거리는 입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디에스 라고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았다.
지금 가장 어처구니가 없을 유리한이 얌전히 있었으니까.
디에스 라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를 니르로그가 황당해하고 있는 유리한에게 말했다.
- 무한의 마력이라고 했지? 그때의 네 기운과 똑같았다는 거다.
“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유리한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불현듯, 유서아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망자의 아우성(B)을 통해 봤던 조카의 기억.
‘탑에서 가지고 간다 했지?’
‘응, 더 뽑아낼 게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유리한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동생의 시체는 물건처럼 다뤄져 탑에 운반되었다. 더 써먹을 곳이 있다면서.
밀도 높은 마력이 그 피 속에 함유되어 있기라도 했던 건가. 그래서 몇 번이고 피가 뽑히다가…….
동생의 죽음을 떠올린 유리한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니, 아닐 거야.’
유리한이 두 손을 주먹 쥐었다.
동생의 시체가 이런 곳에서 썩고 있을 리가 없어. 그래서는 안 돼.
무엇보다 니르로르가 말했었잖아? 무한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때의 나와 같은 기운이라고.
‘지한이가 나와 똑같이 무한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잖아? 그래, 그랬을 리가 없어.’
하지만 유리한은 자신의 생각을 확신할 수 없었다.
정말, 유지한은 저와 같이 무한의 마력을 지니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정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유리한의 주먹 쥔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만약, 동생이 자신과 똑같이 무한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래서 그런 고통을 당한 거라면.
‘지한이가 죽은 건…….’
그런 실험을 당한 건, 자신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므로. 때문에 유리한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슴 저편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불길한 생각은 맞아떨어지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