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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50)화 (50/235)

50화 

기초 훈련이 되어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검을 휘두르고 있는 고요한의 자세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오백, 끝. 다 했어요, 디에스 씨. 다음은 뭘 하면 되나요?”

“오백 번 더하지. 아니, 천 번.”

“훈련에 악감정은 넣어주시지 말았으면 하는데요.”

“그런 적 없다만.”

고요한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고, 디에스 라고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였다.

“저기 있다!”

“잡아라, 잡아!!”

“모두 포박해!”

여럿의 드워프들이 막을 새도 없이 들어와서는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디에스 라고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며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이기는! 너희 인간들이 크리브 님을 납치했잖아!!”

“맞아! 우리 마호가니 마을의 위대하신 지도자, 엘브리스크 님의 하나뿐인 조카님을 납치한 녀석들이 모르는 척 굴기는!!”

납치라니? 영문 모를 이야기에 디에스 라고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와는 달리 고요한은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희는 모르는 일이랍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흥, 오해는.”

고요한의 말을 끊는 목소리가 사나웠다. 이내 드워프들 사이로 덩치가 큰(그러나 키는 작은) 드워프가 나타났다.

“이봐, 인간들. 사랑해 마지않는 내 조카가 사라졌다. 어릴 적부터 내가 키운 녀석이라 아들이나 다름없는 놈이지. 아는 것 없나?”

마호가니 마을의 위대한 지도자, 엘브리스크였다.

디에스 라고는 고요한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크리브란 녀석이 유리한을 귀찮게 군다면서 소리 소문 없이 제거했나 싶어서였다.

디에스 라고의 시선에 담긴 의심을 읽은 고요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디에스 씨, 제게 분신을 만들어 낸다거나 그러는 스킬 따윈 없답니다? 저는 줄곧 검만 휘두르고 있었다고요.”

그제야 디에스는 엘브리스크에게 답했다.

“없습니다만.”

엘브리스크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인간 한 명이 없군.”

“유리는 정령석을 찾으러 마을 밖으로 나갔거든.”

“맞습니다, 엘브리스크 님.”

엘브리스크의 얼굴이 더더욱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의 주위로 진을 치고 있던 드워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그걸 우리가 믿을 것 같나!”

“엘브리스크 님, 인간들을 감옥에 가둡시다!”

“그렇습니다, 엘브리스크 님! 저 못된 인간들을 감옥에 가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거야, 원. 자신들이 어떤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

디에스 라고는 짧게 혀를 찼다.

성질 같아서는 누명을 덮어씌우고 있는 드워프들을 쓸어버리고 싶었지마는…….

‘그랬다가는 유리가 곤란해지겠지. 탑을 오르는 데 문제가 생길 게 뻔하니.’

때문에 디에스 라고는.

“너희와 함께 있던 플레이어가 정말 정령석을 찾아 나선 거라면 내 조카는 무사히 돌아오겠지! 그러니 그때까지 구금한다!”

엘브리스크의 성난 목소리에 한숨만 작게 한 번을 내쉬었다.

“모두, 저 두 인간을 잡아 감옥에 가두도록 해라!!”

“네!!”

고요한도 디에스 라고도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을 결박하려 드는 드워프들에게 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유리한이 난처해질 수 있는 만에 하나의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드워프들의 마호가니 마을 가장 안쪽의 감옥에 처박히고 말았다.

유리한을 위해서 순순히 잡혀온 거라고는 하지만, 디에스 라고도 고요한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차하면 탈출해야지. 부수는 건 쉬우니.’

‘디에스 씨가 나중에 어련히 부수겠지.’

하지만 두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 하나.

“젠장…….”

드워프들은 손재주가 좋다는 거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감옥의 쇠창살에 마력을 흘려 보내려고 했던 디에스 라고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마력이 닿기만 하면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 감옥 안에서는 힘을 전혀 쓸 수 없는 것 같군.”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디에스 라고가 산 넘어 산만 펼쳐지고 있는 아득한 상황에 한숨을 푹 내쉴 때였다.

“엘브리스크 님께서 저 두 인간을 전투 노예로 쓸 거라지?”

“그래, 귀쟁이 녀석들과의 전쟁에서 고기 방패로 사용할 거라고 했어.”

전쟁은 뭐고 고기 방패는 또 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전투 노예라니?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을 강렬하게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예감이 하나 있었다.

시험의 허점.

고요한은 9층에서 리스체가스가 저지른 일을 상기했고, 디에스 라고는 30여 년 전 탑을 오르면서 맞닥뜨렸던 수많은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두 사람은 황급히 35층의 시험 내용을 살폈다.

[이 땅에 숨겨져 있는 정령석을 찾아 드워프들의 대장, 엘브리스크에게 건네주십시오!]

[정령석의 파편 조각을 모아서 건네줘도 상관없습니다!]

정령석을 가져오라고만 했지, 몇 개의 정령석을 가져오라고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지막하게 욕설을 지껄였다. 그렇게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 사이좋게 감옥에서 갑작스러운 날벼락을 맞고 있을 때.

“오, 이게 무슨 일이래?”

유리한이 돌아왔다.

* * *

“크리브다!”

“크리브야!”

마호가니 마을의 주민들은 연신 크리브의 이름을 외쳐대면서도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 때문인가?’

유리한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제 허리를 겨우 넘는 키의 크리브에게 말했다.

“크리브 님, 마을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다녔나 본데?”

“그, 그럴 리가! 내가 사라진 걸 모르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착각은 자유였다.

“크리브!!”

“형?!”

“크리브! 오, 내 조카!!”

“작은아버지까지?!!”

마호가니 마을의 위대한 지도자, 엘브리스크와 그의 첫째 아들이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크리브가 당황하여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찰나, 유리한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우리 크리브 님 플래그 단단히 세우신 줄 알았지.”

“이익……!”

플래그가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크리브는 유리한이 좋은 의미로 저렇게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크리브가 분한 마음으로 유리한을 노려봤으나, 그녀는 그 시선에 콧방귀를 뀌고는 속닥거렸다.

“크리브 님, 그러지 마시고 저랑 말이나 제대로 맞추자고요. 마을에서 이야기 나눈 거 잊지 않으셨죠?”

“그게 어떻게 이야기야! 그냥 협박이었잖아!”

“어머,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어쩜 저렇게 얄미운 인간이 다 있을까!

크리브가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입을 벌리는 사이, 유리한은 뛰쳐온 엘브리스크에게 능청스레 물었다.

“세상에, 엘브리스크 님! 도대체 무슨 일이래요?!”

“그러는 인간, 너는 내 조카와 무슨 이유로 함께 있는 것이지?”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

“아아, 그게 말이에요.”

유리한은 난처한 듯 곤란한 미소를 꾸며내며 말을 이었다.

“정령석을 찾으러 나갔다가 크리브 님께서 위험에 처하신 것을 발견했지 뭐예요? 코볼트 사이에 둘러싸여 계시더라고요.”

“코볼트……!”

“그 빌어먹을 난쟁이 녀석들이!”

난쟁이는 드워프들 아닌가?

유리한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코볼트를 언급하길 잘했다며 속으로 한껏 웃음을 지었다.

유리한은 하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엘프와 드워프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

그 정보 중 하나가 드워프들은 코볼트를 극히 혐오한다는 거였다. 광물을 캘 때마다 온갖 장난을 쳐서 그런다나, 뭐라나.

어찌 됐든 그 몬스터를 언급하길 잘한 것 같다.

“이거 우리가 큰 오해를 하고 말았군.”

엘브리스크가 크흠,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제게 사과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리한은 마호가니 마을의 위대하신 지도자께서 제게 어떤 오해를 하였는지 정확히 모르나, 대충 짐작은 했다.

‘자기 조카를 내가 납치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억울하기 그지없는 누명이었으나 어차피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됐으니 상관없다.

유리한은 선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니에요, 그보다 제 동료들은 어디 있나요? 이 정도 소란이면 숙소에서 나와 여러분과 함께 크리브 님을 찾고 계셨을 듯한데?”

잠깐의 정적.

유리한은 그 짧은 순간에 찾아온 고요를 놓치지 않았다. 오묘하게 흐르는 분위기에 유리한이 입꼬리를 올리는 찰나.

“그 인간들은 자네의 무죄를 주장하며 찾으러 나갔다.”

“네?”

“우리가 오해를 하고 말았거든. 인간, 자네가 내 조카를 납치했다고 생각했지.”

엘브리스크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유리한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하, 그럼 길이 서로 엇갈렸나 보네요.”

“그런 모양이군. 그들이 돌아오면 정식으로 사과하겠네.”

“에이, 뭘 사과까지야!”

유리한이 능청스레 손을 휘젓고는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동료들이 돌아오면 저는 숙소에 갔다고 알려주세요. 그리고 크리브 님!”

엘브리스크의 곁에 서있던 크리브가 화들짝 놀라 유리한을 쳐다봤다.

유리한은 눈웃음을 지으며 놀리듯이 목소리를 내었다.

“멋대로 숲에 가시거나 그러면 안 돼요, 알겠죠?”

“이익……!”

저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유리한의 모습에 크리브가 분한 듯 이를 드러냈지만.

“크리브.”

작은아버지의 심기 불편한 목소리에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유리한은 그들 부자를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기 무섭게 발견한 것은 숙소 앞에 딸린 마당에 찍혀있는 수많은 발자국들이었다.

그 자국 중 유독 커다란 두 쌍의 발자국이 이내 그보다 반도 안 되는 작은 발자국들에 둘러싸여 밖으로 벗어났다.

마을 밖으로 향하는 길이 아닌, 안쪽. 정확히 엘브리스크의 저택으로 향하고 있는 자국들에 유리한이 실소를 터트렸다.

“엘브리스크한테 정령석 안 보여주기를 잘했네.”

정확히는 그 파편 조각이지만 말이다. 유리한은 품에서 푸르게 빛나는 조각 하나를 꺼냈다. 물의 정령석에서 떼어내 온, 시험을 치르는 데 중요한 물건이었다.

원래라면 이 조각을 엘브리스크한테 보여주면서 그를 꾀어낼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유리한은 제 동료들을 붙잡아 간 드워프들에게 작은 엿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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