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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39)화 (39/235)

39화 

니르로르를 처치하고 지난 수십 년의 시간.

“10년이면 강산이 변해.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도 그렇게 변해버리는데,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야 아주 급변하겠지.”

그러니, 자신의 뒤를 졸졸 따랐던 겁 많고 소심했던 주아라가 제 동생을 그렇게 만든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배신당한 마음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던지라 유리한은 수십, 수백, 수천 번을 후회하고는 했다.

옛 정에 묶여, 주아라. 플레이어 협회장인 그녀를 죽이지 않고 탑에 들어온 것에 대해.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겠는가?

“뭐, 어찌 됐든. 이렇게 내 이야기는 끝.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한번 세워볼까?”

짝, 경쾌하게 울린 손뼉 소리와 함께 무겁게 가라앉았던 공기가 단숨에 가벼워졌다.

“…….”

“…….”

그러나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하지만 유리한은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태연자약한 얼굴로 디에스에게 물었다.

“디에스, 봉인을 억지로 깨뜨리면서 잃은 게 많다고 했지? 구체적으로는?”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답해주었다.

“레벨을 비롯하여 스탯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떨어졌더군. 그리고 34층 이후 탑을 올랐던 흔적이 모두 초기화됐다.”

유리한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고요한은 아무리 지배자라고 하더라도 시험의 결과를 번복할 수 없다 하였다.

그러니까 디에스의 저 말은.

‘지배자보다 상위의 권한을 가진 존재.’

즉, 시스템이 개입된 것이리라.

디에스가 심각하게 표정을 굳힌 유리한의 얼굴에 그녀를 달래주려는 듯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유리. 30년 전보다 약해졌다고 해도 네 옆에 있는 애송이…….”

“가 아니라 요한.”

“보다는 도움이 될 테니.”

끝까지 고요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디에스 라고였다. 파지직, 그와 고요한 사이에서 다시 한번 불꽃이 튀었다.

그 둘이 날 선 신경전을 벌이거나 말거나, 유리한의 관심사는 탑을 오르는 것.

유리한이 입꼬리를 올렸다.

“35층의 시험은 굳이 치를 필요 없을 거야. 치른다고 해도 아주 간단하게 이뤄지겠지. 다만…….”

문제는, 만물.

디에스 라고를 봉인시켰던 오광의 그들이다. 유리한이 비딱하게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디에스? 만물이 네 봉인이 깨진 것을 알아차렸을까?”

그 질문에 디에스 라고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 *

만물(萬物).

모든 마법사가 바라는 곳이라고 하여, 마탑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현재 어수선한 상태였다.

“유리한의 영입을 위해 보낸 녀석들은 만물의 정예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9층의 지배자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니요!”

“순수한 육체로만 승부해야 하는 시험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누가 9층의 지배자 자리를 차지했답니까?”

“청의 기사단 소속의 돌머리라고 하더군요.”

원탁에 둘러앉아 있던 마법사들 사이에서 탄식이 튀어나왔다.

만물이 마법사의 선망이 모이는 곳이라면, 청의 기사단은 그 이름대로 검사의 동경을 받는 곳.

그들은 오광(五光)이란 이름으로 묶여, 탑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주목받았지만 서로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머리를 쓰는 시험이었다면 9층은 우리의 차지가 됐을 텐데요.”

“그래 봤자 아래층 아닙니까? 아쉬워하지 말자고요. 중요한 건 곧 개방될 70층입니다.”

“이후 79층까지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에 따라 오광의 세력이 또 한 번 바뀌겠군요.”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상석에 앉아있던 자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조용.”

소란스러웠던 공기가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모두의 입을 한순간에 다물게 만든 남자가 깊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디에스 라고의 봉인이 깨졌다.”

회의장에 앉아있던 몇은 눈살을 찌푸렸고, 몇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린 이름에 의문을 표했다.

전자는 만물의 시작을 함께한 자들이었고, 후자는 만물이 오광 중 하나로 불리게 되었을 때 입단한 자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만물의 시작을 함께했던 마법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의 봉인은 수장님께서 직접 행하셨지 않습니까?”

“그래, 내가 나선 후에야 그는 겨우 잠들었지.”

그것도 온갖 공격을 퍼부어 심신을 만신창이로 만든 후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봉인당한 것은… 아니, 자신은 그의 손에 죽었으리라.

상석에 앉아있던 남자.

만물의 최고 지휘자이기도 한, 그레이시가 눈가를 찡그렸다.

“혹, 태양교의 대주교가 바뀌었다든가 그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는가?”

“그의 소식은 갑자기 왜 묻는 겁니까, 수장님?”

“리프탄 라올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말이지.”

회의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디에스 라고의 봉인은 34층에서 행해졌다. 태양교의 대신전이 자리한, 바로 그곳에서.

그런데 대신전의 주인인 리프탄 라올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디에스 라고의 봉인이 깨졌다는 것에 처음 의견을 냈던 마법사가 다시 손을 들고는 말했다.

“혹, 리프탄 대주교가 우리를 배신한 것은 아닌지 의심됩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네.”

리프탄 라올, 그는 플레이어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자였다.

그런 그가 이제 와 자신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꼴이 우습기는 하지만…….

‘이상할 건 없지.’

하지만 34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정황을 확실하게 파악하기는 해야 했다.

“누구, 34층에 관한 소식을 아는 자 없나?”

회의장에 모인 마법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50층 이후의 일이라면 몰라도 34층의 일이라니.

아래층이라고 불리기에는 높은 층수이나, 회의장 내의 마법사들에게는 한없이 낮은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34층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했다.

T-Network.

10층 이후 오픈되는 탑의 기능으로 플레이어들끼리 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였다.

각 층마다 게시 글을 적을 수 있는 갤러리가 존재하며, 플레이어는 오른 층만큼 열람이 가능했다. 다만, 게시 글은 해당 층에 머무를 때만 게재할 수 있었다.

T-Network의 구조가 어찌 됐든 간에 만물의 원탁회의가 이뤄지고 있는 이곳은 57층.

원탁 회의에 참석 중인 만물의 마법사들은 손쉽게 34층의 게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 [시이ㅣ발! 고요한이 도대체 누군데, 혼자 당당하게 통과했냐?]

- [‘고요한=요한 리스체가스’라는 소문이 들리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는 새ㄲ1 있음?]

- [●▅▇█▇▆▅▄▇]

- [이번에는 35층 무조건 올라가겠다고 생각했는데에ㅜㅠ]

- [태양교가 원했던 새ㄲ1 요한 리스체가스 맞나요? 죽었다더니 아니었누;]

34층의 게시 글을 확인하고 있던 마법사들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34층에서 시험이 이뤄진 모양입니다. 통과자는 한 명뿐이고요. 디에스 라고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태양교와 관련하여 중요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다들 시험이 잘못됐다고 욕하기 바쁘군요.”

“흐음.”

그레이시가 둥근 탁자를 톡톡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유리한의 영입을 위해 보냈던 녀석들, 지금 한창 올라오는 중이라고 하지?”

“네, 수장님.”

“그들을 34층에 보내도록.”

“디에스 라고 때문입니까?”

“그래.”

끼이익,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레이시가 마법사들을 향해 말했다.

“디에스 라고를 처리하면, 유리한의 영입에 실패한 것과 9층의 지배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을 불문에 부친다고 알려라.”

수장의 명령은 절대적.

“알겠습니다, 수장님.”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레이시는 자신을 향해 조아린 머리들을 보다가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동시에 T-Network의 34층 갤러리를 확인했다.

게시 글 두세 개 중 하나마다 보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요한 리스체가스…….’

리스체가스, 9층을 지배하고 있던 자들의 이름이 아닌가? 그들이 모두 죽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지배자를 뽑게 되었다고 보고를 받았건만.

‘생존자가 있었던 모양이지.’

하지만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으리라.

만물의 최고 지휘자, 현시대의 대마법사라고 일컬어지는 마탑의 수장.

그레이시 아서는 로브를 휘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 * *

34층, 태양교가 내놓은 시험의 합격자에 대해 불만이 즐비하고 있는 곳에서 유리한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요한의 이름도 지워야 되지 않을까, 디에스? 너무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디에스 라고는 유리한의 곁에 서있는 고요한을 흘긋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괜찮다, 유리. 중요한 건 너다. 내 봉인이 깨진 데에 네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만물의 녀석들이 알면 안 되니.”

유리한은 디에스 라고에게 물었었다. 만물이 네 봉인이 깨진 것을 알아차렸냐고.

디에스의 대답은 긍정이었으며, 그는 곧장 T-Netwrok의 34층 갤러리에 올려진 유리한에 대한 이야기를 삭제해 나갔다.

“명성을 이용해서 게시 글을 삭제시킬 수 있다니. 나는 층의 지배자에게 내 이름을 알리는 용도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물론, 그런 용도이기도 하지. 하지만 명성은 T-Netwrok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가지고 있는 명성의 수치 중 일정한 값을 치러 게시 글을 삭제시키거나 베스트로 고정시킬 수 있으니까.

“T-Network를 사용한 적이 없나 보군, 유리. 아니면 네트워크의 존재를 몰랐던 건가?”

“알고 있기는 했어.”

다만, 이용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T-Network는 10층에 다다른 후에야 열리는 기능이다. 하지만 유리한은 9층에서의 특별 시험을 치른 후, 곧장 34층에 오르게 됐다.

T-Network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뒤였다.

“앞으로 움직일 때는 네트워크도 잘 살펴봐야겠네.”

“그러는 게 좋을 거다, 유리.”

디에스 라고는 34층의 갤러리에 유리한에 대한 이야기가 더 없나 확인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면 유리, 그냥 너의 이름을 제재 대상으로 올려버리는 게 어떤가?”

“제재 대상?”

“네 이름이 포함된 게시 글을 아예 올릴 수 없게 만드는 거다.”

“오, 그거 좋네. 하는 데 명성이 얼마나 필요하지?”

필요한 값은 1,500.

‘아, 부족하네.’

유리한의 명성은 현재 1,080. 이왕이면 ‘1,000’으로 숫자를 맞춰주지! 유리한이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일 때였다.

“부족한 값은 내가 치러주겠다, 유리.”

“그게 가능해?”

“그럼.”

하지만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에게 제 명성의 값을 주기도 전에 움직인 사람이 있었으니.

“요한!”

바로 고요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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