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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5)화 (15/235)

15화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들은 것뿐이지만, 그 정보는 훗날에 도움이 될 게 분명할 터.

“그러니까 좋게좋게 생각하자, 유리한. 오광에 속해있는 자식들이 어떤 성격인지는 대충 알게 됐잖아?”

오광(五光)이라고 한데 묶여 불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세력 다툼이 존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층을 지배하고 있기도 하다고 했지?’

그래서 얻는 이득이 뭐가 있겠냐마는, 사이좋게 이곳을 함께 나눠 먹자― 이러고 있는 건 아닐 거다. 유리한은 리스체가스의 대저택을 빠져나오자마자 기지개를 쭉 켰다.

어느새 시간은 저녁이 지나 밤.

리스체가스의 밤하늘에 뜬 달은 보랏빛이었다. 별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도시라고는 해도, 불 켜진 곳이 없어 별이 빛날 만도 한데 말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에서 별을 찾고자 했던 유리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와, 별이 하나도 안 보이네. 혹시, 리스체가스에는 ‘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럴 수도 있다.

유리한은 리스체가스의 밤을 잠깐 구경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향한 곳은 방을 잡아둔 여관이 아닌, 조각상 앞이었다.

“안녕하세요, 플레이어님.”

요한 리스체가스를 처음 만났던 장소. 요한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오가는 플레이어들을 반기고 있던 요한이 유리한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내일 보자고 하지 않으셨나요?”

세 번의 만남 끝에 색다른 인사가 들려왔다. 유리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키득거렸다.

“생각보다 가주님과의 만남이 일찍 끝났거든요.”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그럭저럭이었어요. 리스체가스 가문의 요리사 솜씨는 정말 훌륭했지만, 같이 먹는 사람들이 워낙에 별로였거든요.”

요한이 웃음을 참는 듯한 얼굴로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유리한 역시 제가 한 말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요한은 잠도 안 자요? 시간이 꽤 늦은 것 같은데.”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랍니다, 플레이어님. 그보다…….”

요한의 목소리 끝이 흐려졌다. 그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씁쓸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올라가시겠네요.”

요한 역시 9층의 시험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눈앞의 여자는 가주와의 만찬을 끝냈으니, 이제 곧 10층으로 올라갈 거다. 더는 만날 일이 없겠지.

하지만.

“무슨 소리세요, 요한? 저 10층으로 안 올라갈 거예요. 제가 원하는 곳은 더 높은 곳이거든요.”

유리한의 대답에 요한이 물음표를 던졌다.

더 높은 곳을 원해서 10층으로 안 올라갈 거라니?

요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10층을 올라가야 그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을 텐데요, 플레이어님.”

유리한이 그런 건 자신도 안다면서 말을 덧붙였다.

“요한은 모르는 그런 게 있어요. 어쨌든 저는 한동안은 9층에 계속 있을 거예요!”

“왜…….”

이곳에 머무르려 하냐고, 그렇게 물으려던 요한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뭐라고.’

하지만 유리한은 요한이 묻고자 한 것을 알아차리고선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 호감도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라고는 절대로 말 못 하지.’

유리한에 대한 요한의 호감도는 현재 0. 저기서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로 계속 올려야만 한다.

유리한은 리스체가스의 사람들과 닮은 점이라고는 물빛의 머리칼밖에 없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요한.”

“네, 플레이어님.”

유리한이 요한에게 한 걸음씩 다가서며 목소리를 내었다.

“요한은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잠도 안 자고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거예요?”

“글쎄요.”

단조롭게 목소리를 내뱉었던 요한이 이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익숙해져서 괜찮답니다, 플레이어님.”

“그런 거에 익숙해지면 안 되죠, 요한.”

유리한은 달빛에 드러난 요한 리스체가스의 얼굴에서 지친 기색을 읽었다. 뺨은 여전히 빨갛게 부어있었고, 터졌던 입술에는 검붉게 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자신의 상처는 한 번도 살피지 않은 모습. 그러나 타인의 상처는 계속 봐줬겠지.

유리한은 한숨을 내쉬고는 요한의 손에 연고 하나를 쥐여주었다. 그녀의 조카, 유시우가 꼭 들고 다녀야 한다면서 유리한의 손에 쥐여준 것이었다.

“플레이어님?”

요한이 놀란 듯 물었으나, 유리한은 그의 손을 억지로 말아주고는 말했다.

“사람답게 살아야죠, 당신은 사람인데.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그리고 다치면 잘 치료하고.”

요한 앞에 멈춰 선 유리한이 방긋 웃었다. 요한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유리한에 대한 그의 호감도 ‘0’이 천천히 올라 ‘10’으로 멈춘 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10%]

유리한은 요한 리스체가스의 머리 위에 떠있는 표시에 두 눈을 끔뻑였다.

내가 뭐 했다고 요한의 호감도가 오른 거지? 취향 정말 모르겠네.

요한의 두 눈에는 이채가 감도는 중이었다. 부담스럽다면 부담스러운 시선. 유리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릴 때였다.

“플레이어님, 당신께 퀘스트를 하나 드려도 될까요?”

“퀘스트요?”

“네, 혹시 설명이 필요하신 거라면…….”

“아니요! 괜찮아요!”

유리한이 황급히 두 손을 휘저었다. 퀘스트라면, 도웅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탑에 던전이나 몬스터가 있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말했듯, 각 층마다 환경이 달라서 없는 층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민들에게서 ‘퀘스트’란 것을 받아 능력치를 올리게 됩니다. 간단한 심부름부터 몬스터 퇴치까지, 아주 다양하게 받을 수 있죠.’

‘물론, 퀘스트의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얻을 수 있는 능력치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런 퀘스트는 대부분 각 층마다 있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안내소에서 받을 수 있죠.’

9층에 도착한 처음, 유리한이 안내소를 찾아가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퀘스트를 받아,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서.

물론, 9층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도 있었다. 묻는 족족 답해준 종업원 덕분에 그럴 필요가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퀘스트라.’

도웅은 대부분의 퀘스트를 안내소에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다른 곳에서도 퀘스트를 얻을 수 있다는 말.

유리한은 눈웃음을 지었다.

“어떤 퀘스트를 제게 주실 생각인가요, 요한?”

요한 리스체가스가 미소 지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리스체가스에는 별이 뜨지 않는답니다. 모두 아래로 추락했기 때문이죠.”

“오…….”

동화 같은 이야기가 요한의 입에서 이어졌다.

“리스체가스는 옛날 한 왕국에 속해있던 작은 도시라고 합니다. 그 도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취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어쩌다 ‘탑’의 한 층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모른다는 말이겠지.

유리한은 좋을 대로 요한의 이야기를 해석하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별들이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잠깐만요, 요한.”

유리한이 황급히 요한의 말을 가로막았다.

“설마, 떨어진 별들 중 하나를 가지고 와달라는… 그런 퀘스트는 아니죠?”

“그런 퀘스트를 원하시나요?”

“아니요! 절대 아니요!!”

하늘에서 별을 따다 달라고 해도 곤란할 판국. 떨어진 별을 찾아달라고 하면 그것 역시 곤란했다.

요한이 밝게 웃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밝게 빛나고 있는 동산이 보이시나요?”

유리한의 시선이 요한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네, 보여요.”

도시에 내려앉은 어둠을 밝히고 있는 건 달빛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마치, 은하수가 한데 뭉쳐 샘물을 만든 것처럼 모여있는 빛무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별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바로 저곳에 리스체가스의 별들이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늦은 밤, 잠투정을 부리는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목소리로 요한은 말을 이었다.

“떨어진 별들은 뿌리를 내려 잎을 피워냈다고 합니다. 세 잎을 피워낸 것도 있고, 네 잎을 피워낸 것도 있죠.”

유리한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요한이 말한 ‘세 잎’과 ‘네 잎’에서 떠오르는 식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잎클로버랑 네잎클로버 아니야? 여기에도 자라?’

어릴 적,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찾겠다면서 세잎클로버를 열심히 파헤치고는 했다.

추억에 잠긴 유리한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잎을 따와드리면 될까요?”

“아니요, 세 잎이 피어난 것을 따서 와주시겠어요?”

“세 잎이요?”

틀림없이 네 잎인 줄 알았는데. 문화 차이로 여기는 세 잎이 행운을 상징하는 건가?

유리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그녀의 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퀘스트 발생!]

[의뢰자: 요한 리스체가스]

[별들의 무덤, 은하의 동산에서 세잎클로버를 채집해 와주세요.]

그런데 중요한 게 빠져있다.

유리한은 퀘스트에 대해 알리는 메시지를 찬찬히 살펴보고는 요한에게 물었다.

“보상은요?”

“사람답게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님께서 제게 알려주셔야 한답니다.”

요한이 한 손을 제 가슴께에 올리고는 선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요.”

그러니까 데이트렷다.

호감도를 충분히 쌓을 수 있는, 아주 즐거운 데이트.

유리한이 활짝 웃었다.

“좋네요!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

“네? 아니요, 시간이 늦었으니 천천히 출발하셔도…….”

“노놉! 한국인은 빨리빨리예요! 내일 봐요! 아니다, 하루가 지났네? 오늘 봐요, 요한! 아침까지 돌아올게요! 안녕!!”

붙잡을 새도 없이 유리한이 멀어졌다.

“잠깐만요, 플레이어님!”

요한은 저도 모르게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별들의 무덤에는 무덤지기가 있다고 합니다! 밤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했으니 해가 뜬 아침에 가시는 게……!”

“괜찮아요! 어차피 저한테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녀석들일 테니까 걱정 마요! 그럼, 진짜로 안녕!”

유리한은 요한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 뒤, 밝게 빛나고 있는 별들의 무덤으로 달려갔다.

* * *

“동산이라며, 시스템 새끼야.”

저게 어딜 봐서 동산이야?

유리한의 고개가 뒤로 한없이 젖혀졌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을 반복하며 깎인 드높은 암벽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얼마나 높은지, 그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암석 지대의 위를 올려다보던 유리한이 피식 웃었다.

“그래, 괜히 데이트를 보상으로 내놓은 게 아니겠지.”

유리한은 두 손을 털고는 툭 튀어나온 부근에 손을 올렸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유리한은 클라이머가 된 기분으로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

암벽을 탄 적이 없는 것은 아닌지라 유리한은 꽤 능숙하게 암벽을 올랐다.

하지만.

“아.”

불청객이 유리한의 등반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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