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니르로르는 어둠이 존재하는 한 죽지 않는 존재다.
‘그렇다면.’
어둠이 존재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즉, 빛에 삼켜지게 하면 끝.
- 그런 짓을 하면……!
“나도 죽겠지.”
마력, 무한.
그럼에도 그녀가 마법사가 아닌 이유.
유리한은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연산 능력 따위는 개나 줘버린 플레이어가 바로 유리한.
“그런데 나는 죽을 각오로 온 거거든.”
그래야 세상이 평화로워질 테니.
때문에 유리한은 이 자리에 섰다. 마법에 재능이 없다고 해도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었다. 단순한 흉내라고 해도, 무한의 마력을 주입시키고 또 주입시키면서 확장시켜 나가면 끝.
자신 역시 끝장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어둠을 몰고 온 드래곤, 니르로르. 저 망할 드래곤을 길동무로 삼으면 되니까.
크기를 키워가던 빛이 이윽고 드래곤의 비늘을 태우기 시작했다.
- 크아! 아아아악!!
고통에 울부짖는 비명에 유리한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 또한 빛에 삼켜지고 있었음에도.
쏴아아―!
니르로르가 속박되어 있던 태평양 한가운데.
절로 두 눈을 감게 만들었던 밝은 빛이 수그러들면서 안개가 걷히고, 밤이 걷혔다.
그와 함께 모두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
[태평양 에리어의 보스 몬스터, 니르로르가 처치되었습니다.]
[지구에 약속된 평화가 찾아옵니다.]
지구 최고의 플레이어.
유리한의 희생으로 지구는 그렇게 평화를 맞이했다.
* * *
하지만 유리한은 몰랐다.
“내가 말했잖아. 내 동생 잘 부탁한다고.”
자신의 희생으로 세계에 평화가 찾아왔을지언정.
“내 동생뿐만이 아니야. 내 동생이 결혼을 하면 그 부인도.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도. 그 아이의 아이도!”
유일한 혈육은 평화를 맞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내가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약속이란 것은 깨지기 굉장히 쉽다는 걸.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려?”
유리한은 정말 몰랐다.
【 2. 평화는 깨지기 마련 】
대한민국 최고의 플레이어.
더 나아가 지구 최고의 플레이어인 유리한.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왜 그런 걸 생각하냐고? 당연하잖아. 나는 플레이어야.”
쏟아지는 몬스터와 맞서 싸워야 하는 자.
그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플레이어.
“어느 전투가 내 마지막이 될지 몰라. 그러니까 한번 상상해 보는 거지.”
나는 개죽음을 당할지, 아니면 모두가 기억해 주는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지.
그리고 유리한이 맞이한 죽음은 후자였다.
또한…….
“와우, 21C 대한민국 원룸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잖아? 원룸이 아니라 옥탑방인가? 어쨌든 지옥도 지옥 나름인가 보네?”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사후 세계는 굉장히 안락한 곳이었다.
하지만.
“돼… 됐다……!”
“……?”
“리한 님, 유리한 님!”
어느 곳이든 미친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
누구인지 모를 여자가 일어날 생각도 없이 무릎으로 기어와 유리한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뭐, 뭐야?’
여자의 손을 뿌리치기에는, 작은 손이 너무나도 앙상했다.
유리한이 당황해하는 사이, 앳된 얼굴의 여자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물었다.
“맞죠? 유리한 님 맞죠?”
“마, 맞는데요.”
대박, 나 지옥에서도 유명 인사였나 봐.
그러나 유리한은 이내 깨달았다.
“복수해 줘요! 아니다, 지켜주세요! 내 동생, 아니 당신 조카!”
그녀가 눈을 뜬 곳은 지옥 따위가 아니란 것을.
유리한이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들에 멍하니 입을 벌리는 사이, 여자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제발 좀…….”
제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손에서 힘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지옥에서 우리를 구해줘요, 고모.”
끝에서 들린 단어. 유리한은 그 단어에 목구멍이 틀어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고모……?”
그녀는 한참 후에야 꽉 막혔던 숨을 억지로 내뱉었다.
유리한을 붙잡았던 여자는 미동도 없이 바닥에 쓰러진 뒤였다.
“이… 이봐요, 야.”
유리한이 조심스레 여자의 어깨를 흔드는 순간.
[유서아가 자신의 모든 미래를 불태워 당신을 되살려 냈습니다.]
“뭐……?”
두 눈을 의심케 만드는 메시지가 유리한의 시야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타인의 미래를 거름 삼아 되살아난 존재에게 저주가 내려집니다.]
[저주, ‘고난의 행군’의 효과로 모든 스탯이 대폭 하락합니다!]
[근력 289 → 1]
[체력 305 → 1]
……
[마력 ∞ → ∞]
대폭 하락한 정도가 아니잖아?
마력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1’이 되고 말았다. 유리한의 당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저주, ‘고난의 행군’의 효과로 레벨이 초기화됩니다!]
“아니, 잠깐……!”
멈춰달라고 멈춰줄 시스템이 아니었다.
[50Lv → 1Lv]
유리한은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살아나기를 원했냐고.”
애초에 망자의 부활이라니.
‘그런 게 가능했다니.’
유리한이 두 눈가를 찡그렸다.
그런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큰 격변이 일어난 상태 창이었다.
[STATUS]
플레이어 : 유리한(Yu Rihan)
레벨: 1Lv
칭호: 유리한 세계를 여는 자(S), 어둠을 지배하는 자(S), 드래곤 슬레이어(A)
스킬: 유리한 세계(S), 오감 지배자(A), 뛰어난 암기왕(A), 냉철한 심판자(A), 망자의 아우성(B), 진실 감별(B), 뜻밖의 기연(C)
[스탯]
근력: 1 체력: 1 정신력: 1
속도: 1 명성: 1 마력: ∞
유리한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칭호였다.
“어둠을 지배하는 자? 드래곤 슬레이어?”
후자는 제 상태 창에 왜 생겨난 건지 알겠지만, 전자는 모르겠다.
유리한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가 이내 상태 창을 꺼버렸다. 꺼진 상태 창 위로 여러 개의 시스템 창이 떠올랐지만, 유리한은 무시했다.
지금은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눈앞에 나타났던 시스템 창을 생각해 보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저 여자가 스스로를 희생해 나를 되살린 것 같지만…….
‘도대체 왜?’
여자는 자신을 고모라고 불렀다.
‘서아, 유서아.’
유리한은 유서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만약, 유서아가 자신의 조카라고 하더라도 의문이 생겼다.
‘나라에서 부족함 없이 잘 대해주고 있을 텐데?’
그게 희생에 대한 대가였다.
그렇기에 유리한은 유서아의 존재를 미심쩍어하며 그녀의 뺨에 손을 얹었다.
망자의 아우성(B).
그 죽음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을 경우, 죽은 자의 기억을 엿보는 스킬.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마력은 그대로라서 다행이야.’
유리한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유서아의 기억을 엿보고자 시도했다.
[시전자의 정신력이 터무니없이 낮습니다.]
[망자의 기억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경고를 알리는 메시지에도 유리한은 단호했다.
“상관없어. 진행.”
그와 동시에 유리한의 눈앞에 유서아의 기억이 펼쳐졌다.
* * *
유서아는 유지한의 장녀였다.
유지한은 세계적인 영웅인 유리한의 하나뿐인 남동생으로, 그는 현재…….
“누나, 아빠는 왜 맨날 저기에 누워있는 거야?”
병상에 누운 채, 피를 뽑히고 있었다.
어른들은 그랬다.
너희 아빠의 피에는 밀도 높은 마력이 함유되어 있어, 주기적으로 이를 뽑아줘야 한다고. 그래야 아프지 않다고.
어릴 적에는 그 말이 사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열둘이 되던 해.
“서아야, 아빠 말 잘 들어. 아빠가 죽으면 시우랑 같이 여기를 탈출해야 해.”
유지한은 유서아에게 펜던트 하나를 손에 쥐여주었다.
“고모 거야. 소중하게 가지고 있어야 해.”
유서아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고모의 것이라는 이 펜던트는 곧 아빠의 유품이 될 거라는 것을.
“아빠는 같이 가면 안 돼……?”
“응, 안 돼.”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창백한 안색.
유지한은 하나뿐인 딸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애써 웃었다. 그렇게 얼마 후, 유지한은 죽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유지한은 피를 뽑혔다.
유서아는 일곱 살 어린 동생을 꼭 끌어안고는 벌벌 떨었다.
“탑에서 가지고 간다 했지?”
“응, 더 뽑아낼 게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향했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시선에서 유서아는 알아차렸다.
탐욕을, 욕망을.
“쟤들도 똑같겠지?”
“그럴걸? 그런데 아직 애들이라서 실험에 투입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라.”
유서아는 숨을 죽였다.
그러다가 어린 동생과 함께 도망쳤다. 도망치는 건 쉬웠다. 열두 해가 되도록 이곳에서 나고 자란 몸. 시설의 곳곳을 알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렇게 유서아는 열둘이란 어린 나이에 세상 밖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아이는 똑똑했다.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고, 동생과 함께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왜 그런 죽음을 겪어야 했는지, 어머니는 왜 없는지. 그리고.
“고모…….”
자신의 고모가 누구인지.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상가상,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깔리게 됐다.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말에 그들은 동생을 잡아갔다.
유일한 가족을.
“흑… 으흑…….”
유서아는 울었다.
밤낮이 없도록 울다가 그녀는 떠올려 냈다.
시설 내 창고에 박혀있던 낡은 서적에 적혀있던 자기희생 주문서였다.
본래라면 읽을 수 없는 것을, 어째서인지 유서아는 읽을 수 있었다. 때문에 이를 기억해 낸 그녀는 스스로를 희생했다.
“복수해 줘요! 아니다, 지켜주세요! 내 동생, 아니 당신 조카!”
제발 좀.
“이 지옥에서 우리를 구해줘요, 고모.”
내 미래를 당신한테 맡길 테니.
* * *
망자의 아우성이 끝났다.
유리한이 유서아의 기억에 사로잡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야.”
유리한은 분노하고 있을 뿐이었다. 두 눈에 혼란한 감정을 가득 담고서.
“조카…….”
유리한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는 핏물이 살짝 맺힐 정도가 되어서야 깨물고 있던 입술을 놓고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조카님?”
부르는 목소리의 끝이 살짝 떨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유리한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유서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일어나서 거짓말이라고 해봐. 응? 나한테 보여준 게 거짓말이라고 좀 해보라고!”
거센 외침에도 묵묵부답.
유리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서… 서아야… 유서아, 제발 일어나서 나한테. 나한테 제발 좀…….”
거짓말이라고 해줘.
유서아의 눈으로 본 세상은 평화로웠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게이트로 인해 쏟아졌던 몬스터로 황폐했던 거리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런데 동생은 평화롭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핏기라고는 없이 창백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있던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팔뚝에 기다란 주사기가 꽂힌 채, 미동도 없이 누워있던 동생이.
이윽고 유리한의 두 눈에 분노의 감정이 깃들었다.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릴 거다.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동생을 그리 대한 것을. 동생의 가족을 그렇게 대한 것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 거다.